A sword priest reincarnated as a swordsman RAW novel - Chapter (34)
검공가에 환생한 검제 (34)
그로부터 얼마 후였다.
언제나처럼 해가 떨어지기 무섭게 섬 전체가 짙은 어둠으로 뒤덮였다. 유룡기사단이 주둔하는 망루 몇 군데를 제외한다면 인간의 영토가 존재하지 않는, 야생 그 자체의 땅이 송곳니를 드러내는 것처럼 보인다.
낮에는 볼 수 없었던 몬스터들이 제 소굴에서 기어나오고, 무해하게 보이던 자연환경이 적으로 돌변한다.
그 변화를 지켜보던 레너드의 눈이 어딘가를 향했다.
‘대규모의 기척이 이동하고 있다. 견습기사들과 유룡기사단, 야간훈련을 진행하러가는 중인가.’
거리가 킬로미터 단위로 떨어져있는 상태였으나, 외력경을 돌파한 순간부터 그의 기감은 몇 배로 날카로워졌다.
한 명 한 명의 움직임을 상세히 파악하려면 아무리 집중한 상태라도 백 장(300m)이 한계겠지만, 수백 명의 인원이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는 건 알아차리기 쉬웠다.
레너드도 슬슬 움직여야할 때였다.
“…오늘만큼은 역용술을 쓰면 안 되겠군.”
헤이든, 이안, 게일 모두가 야간훈련에 간 상황에서 누군가 그를 목격한다면 치명적인 의심을 사게 된다.
상대적으로 이목이 줄어든 상태라도 방심은 금물이었다.
그래서 레너드는 제 아공간주머니에 넣어둔 늑대가죽, 이제 옷이라고 할 수 있는 모양새가 된 물건을 끄집어냈다. 가까이 접근한다면 곧바로 들키겠지만, 먼 곳에서 볼 때는 사람인지 라이칸슬로프인지 모를 것이다.
또한 위장복으로만 유용한 게 아니었다.
진마경급 마물의 가죽이다보니 그 방어력도 상당해, 웬만한 공격으로는 흠집도 안 날 터였다.
‘뭐, 호신기도 사용할 수 있게 되었으니 이 가죽에 기대야할 일은 드물겠다만.’
레너드가 그렇게 생각하면서 발을 옮겼다.
진청색 늑대가죽을 뒤집어쓴 몸이 점차 흐려져, 눈앞에서도 알아보기 힘든 상태로 변화한다.
황천각(黃泉閣)에서 온 살수들을 죽이고, 놈들의 본거지까지 밀어버릴 때에 획득한 무공이었다. 시각적인 형상은 물론이고 후각, 청각마저 어느 정도는 속일 수 있다.
‘내공 소모가 너무 극심한 게 단점이었지.’
연체경 시절의 레너드가 쓰지 못한 이유였다.
이제부터는 경공을 실행하고 있는 와중에도 계속 유지할 수 있었지만 말이다.
파앗!
땅을 한 번 박차며 뛰어오른 그가 나뭇가지를 밟고, 체중에 휘어졌던 반발력까지 이용해서 몸을 튕겼다.
제 몸이 아니라 나뭇가지를 이용한 궁신탄영(弓身彈影).
새총으로 쏜 돌멩이처럼 레너드의 몸이 쏘아져나간다.
속도가 조금 떨어진다 싶으면 다시 비슷한 과정을 거쳐, 그 가속을 반복하니 내공소모는 거의 없으면서도 전력으로 달린 것과 비슷한 거리를 주파할 수 있었다.
외력경을 돌파하면서 90년치 내공을 얻었다지만, 이 섬에는 아직 드러나지 않은 위협이 산더미였다.
혹시 모르는 사태를 대비해서 힘을 아껴둬야한다.
‘>올빼미평원>이라, 야행성 몬스터들이 득실거리려나.’
레너드가 한 생각대로였다.
>올빼미평원>.
대낮의 위험도는 해골 두 개에 불과하지만, 야간에는 세 개 반으로 변동하는 지역이었다. >뼈무더기의 늪> 심층부보다 더 위험한 수준으로 변화한다는 소리였다.
이 구역에서 먹이사슬의 상층을 차지하고 있는 몬스터들은 대부분 해가 뜬 시간대에 활동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두더지처럼 땅 아래에 서식하는 난쟁이몬스터, 두에르가.
어두운 동굴에서 거꾸로 매달려있는 박쥐인간, 배틀링.
햇빛 아래에선 형체를 유지할 수 없는 들개, 섀도하운드.
그러나 >올빼미평원>에서 최강이라고 할 수 있는 몬스터는 한 종족뿐이었다.
‘아울베어(Owlbear), 그 생김새가 궁금해지는데.’
올빼미의 머리를 한 곰이라니?
트롤과 마찬가지로 B랭크로 등록되어있는, 야수형과 조류형 특징이 섞인 몬스터였다.
카르데나스의 평가는 트롤보다 높고, 오우거보다 낮은 정도. A랭크에 가까운 B랭크라는 느낌일까. 붉은 트롤처럼 진마경에 들어선 개체들은 그 역시 방심해서는 안 되는 상대다.
“오.”
수십 분만에 >올빼미평원>을 목도한 레너드가 저도 모르게 감탄성까지 흘렸다.
숲이나 늪과 달리 탁 트여있는 평원이 하늘에서 쏟아져내린 달빛으로 은은하게 빛나고 있었다.
경치만이라면 틀림없이 명승지라고 할 만했다.
그러나.
‘날 감지했다. 잔월무상공(殘月無常功)은 아직 쓰고 있는데, 정확하게 내가 서있는 방향을 바라보는군.’
은신 계통을 꿰뚫어보는 능력이나 초감각, 그 시선을 느낀 레너드가 제 몸을 휘감았던 안개를 흩어버렸다.
그러자 >올빼미평원>의 여기저기서 시선이 몰려들어, 그를 해부하기라도 할 것처럼 살펴보았다. 이곳에 서식하는 몬스터 대부분의 시력이 특출하다는 증거였다.
올 거라면 언제든지 와라.
레너드의 손아귀가 작게 움찔거리면서 언제든지 검을 뽑을 준비가 되어있음을 알린다.
그런데 예상을 크게 벗어나버린 사태가 일어났다.
“…오지 않는다고?”
허탈한 표정이 된 레너드가 괜히 두리번거렸다.
당장이라도 온 사방에서 덤빌 것처럼 노려보더라니, 갑자기 그 시선까지 감추고 숨어버렸다.
그와 절대로 싸워주지 않겠다는 의사표현이었다.
>올빼미평원>의 까다로운 부분 중 하나다.
양지에서 살아가는 몬스터들과 다르게 음지에서 돌아다니는 몬스터들은 그 손익계산이 철저하다. 조금이라도 위험하다고 생각되면 발을 빼고, 기회가 올 때까지 숨어버린다. 기회가 안 온다면? 그냥 건드리지 않는다.
‘사파보다는 하오문에 더욱 가까운 기질인가.’
무림 시절의 기억을 떠올려본 레너드가 두 눈을 찌푸렸다.
사도(邪道)에 속한 무인들은 그 특성상 강자에게는 약하고, 약자에게는 강하게 구는 게 보통이다. 제 상급자에게 뇌물을 바치면서 하급자들을 수탈하고, 강자에 대한 원한을 약자에게 화풀이한다.
하지만 강자존과 상명하복에 철저한 마도와는 달리 사도는 배후에서 수를 부린다. 상급자의 찻잔에 독을 타고, 잠자리에 암기를 설치하며, 배후에서 칼로 찌른다.
정면에서 본 강자에게는 고개를 숙이지만, 그가 등을 돌린 순간부터 비열한 악의를 드러내는 것이다.
그런데.
‘하오문은, 잡도(雜道)들은 그보다 더 이질적이다.’
하오문에서 잔뼈가 굵은 놈들은 제 목숨만을 최우선적으로 생각하며, 그것을 위해서라면 동료고 동맹이고 전부 팔아먹는 최악의 장사치였다.
이쪽에 붙었다가, 저쪽에 붙었다가 하는 박쥐의 천성에다가 신념도 긍지도 없이 살아남기만을 추구하는 벌레 같은 습성을 덧붙인 쓰레기들의 무리.
레너드는 그 불쾌한 기억을 떠올리면서 검을 뽑아냈다.
“네놈들이 오지 않겠다면, 내 쪽에서 가줘야겠지.”
은신능력을 간파하는 재주는 놈들에게만 있는 게 아니었다. 연체경 시절보다 몇 배나 넓고, 몇 배나 자세해진 기감은 그 정신력을 쏟아넣으면 더욱 예민해진다.
>올빼미평원>의 마물들이 그를 피하겠다면, 직접 찾아가서 모조리 베어죽이면 그만이다.
그 순간이었다.
“——호오.”
하오문과의 악연으로 잠시 날카로워졌던 신경이 가라앉고, 살기로 번들거리던 눈동자가 다시 맑아진다.
레너드를 향해서 빠르게 다가오고 있는 기척 때문이었다.
크고 강하다.
한 번의 도약으로 수십, 어쩌면 백 미터 이상을 뛰어넘으며 그에게 접근하고 있다. 기감을 펼치지 않은 상태에서도 멀리 떨어진 곳으로부터 땅이 진동하는 느낌이 전해진다.
‘왔구나!’
드디어 그의 시야에서 모습을 드러낸 건, 평원 위를 세차게 활공하듯이 날아드는 곰의 형상이었다.
아울베어.
이 >올빼미평원>의 지배종족이 바로 등장했던 것이다.
탐스럽기까지 한 털가죽은 놈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새하얀 색이었고, 올빼미의 형상을 한 머리통에서 번뜩이는 두 눈은 맹금류의 그것이었다.
몸 길이는 3미터가 조금 안 되는 정도였지만, 체중은 트롤 이상으로 무거워보인다.
‘그런데 몸의 움직임은 더 날래고 부드럽군. 조류형의 특징 때문인가?’
겉모습만 들여다보면 퍽 귀여워보이지만, 곰과 올빼미는 그 생태계 먹이사슬의 최상층에 군림하는 동물들이었다. 그런 두 종족의 장점만을 받아들인 몬스터가 아울베어라고 하면, 결코 얕봐서는 안 될 적이다.
그의 생각에 호응하듯이 금방 지척까지 다가온 아울베어가 큰 소리로 포효했다.
뀨이이이이익—!
생각지도 못한 포효성이었다.
곰과 올빼미의 울음소리가 뒤섞인 탓인지, 아무리 들어봐도 앙증맞기만 한 소리가 평원 한복판에 울려퍼졌다.
레너드조차 잠시 당황해서 한 박자 늦었을 정도였다.
콰아앙!
아울베어가 휘두른 앞발이 땅을 도려내고, 그 자리에 흉한 크레이터를 남긴다.
“허, 맹수라는 놈이 참 귀엽게 우는구나.”
보법으로 몇 개의 잔상을 남기면서 후퇴, 5미터까지 간격을 확보한 레너드가 검을 치켜세웠다.
아울베어의 강함은 확인했다.
성마경급이지만 동급의 트롤보다 좀 더 강한, B2등급에서도 상위권으로 꼽히는 정도. 유마경의 오우거라면 1대1로도 이길 수 있는 괴물이다.
레너드에겐 별 감흥도 없는 수준이었지만 말이다.
“하긴, 초입에서부터 진마경급을 마주치는 게 쉬운가.”
한밤중이라고 해도 그 정도면 위험도가 해골 네 개는 될 수 있으리라. B3등급이면 견습기사가 조를 짠 상태에서도 목숨만 부지해서 도망치라는 것이 권고사항이었다.
지난번에 그가 상대한 붉은 트롤의 자폭 같은 경우에는, 그 브래들리라도 중상을 피하기는 어려웠겠지.
겨우 두 마리가 죽은 것뿐인데 대규모의 영역다툼이 벌어질 정도로 큰 존재.
그게 진마경에 도달한 몬스터였다.
뀨이이이이!
레너드가 놈을 무시하는 것을 알았는지, 아울베어가 새하얀 털로 덮여있는 가슴을 크게 부풀리면서 분노했다.
그와 동시에 놈의 몸 주변에서 칼바람이 휘몰아쳤다.
바람을 지배하는 힘.
아울베어의 발 아래에 자라나있는 풀들이 깎여나가면서 그 부스러기가 자잘하게 흩날린다.
‘역시나 금(金)의 속성력인가. 털가죽과 몸의 방어력도 제법 높아졌다고 생각해야겠다.’
새하얀 털을 본 순간부터 짐작한 상태였지만, 다시 한 차례 확인한 레너드가 검을 늘어트렸다.
금속성의 상극에 부합하는 오행속성은 화(火).
오행검기(五行劍氣)
염인(炎刃)
칼날만 용광로에 담그기라도 한 것처럼 붉게 물들어가는 검 주변으로 아지랑이가 일렁거린다.
밤공기로 서늘해졌던 대기가 점점 달아오르는 열기.
뀨익!?
들짐승과 날짐승 모두가 불을 무서워하듯이, 아울베어가 그 열기에 깜짝 놀라서 뒷걸음질쳤다.
하지만 레너드는 더 봐줄 생각이 없었다.
놈이 후퇴한 것보다 아주 조금만 더 깊숙하게 들어간다.
오행육신법(五行六神法)
적오태양(赤烏太陽)
열화(熱火)의 보(步)
펑! 하고 레너드의 발뒤꿈치에서 폭음이 터졌다.
수류의 보가 쏟아지는 빗줄기마저 피해내는 오의라면, 이건 벽력탄의 폭풍마저 추월해버리는 직진의 오의.
순간적으로 음속을 뛰어넘은 몸 뒤에서 충격파가 발생하고, 호신기로 보호한 몸이 반동으로 욱신거린다. 그럼에도 칼날을 휘두르는 손아귀만큼은 흔들릴 줄을 모른다.
적색 검광이 번뜩였다.
쩍!
아울베어의 거대한 팔 하나가 아무 저항도 없이 잘려나가, 허공에서 몇 바퀴 회전하면서 피를 흩뿌렸다.
단면부가 까맣게 탄 것만 봐도 칼날에 머무르는 열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었다. 재생력을 원천봉쇄하는 화력. 몸 안에 침투시킨 화기는 몇 분만 주어진다면 아울베어의 내장까지도 태워서 망가트리겠지.
뀨이이!? 뀩!? 뀨아아아아!
팔이 잘려나간 고통과 몸 안에서 불이 타오르는 고통.
절단통(切斷痛)과 작열통(灼熱痛)이 동시에 찾아들자, 놈은 그 상황마저 잊고서 땅을 뒹굴었다.
어떻게든 몸 안에 달라붙은 불을 꺼보려는 시도였으나, 별 의미는 없었다. 레너드의 오행기가 놈의 마나보다 몇 배나 더 강하고 많았으니까.
그래도 놈의 고통스러운 삶은 오래가지 않았다.
푸확!
목 아래로 붉은 선이 얇게 그어지자, 이내 서럽게 울부짖던 아울베어의 머리통이 튀어올랐다.
B2등급에 해당하는 몬스터의 허망한 죽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