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wise Chef Life RAW novel - Chapter 62
61화. 야밤 식당(5)
***
“늦었다. 이제 다들 집에 가. 동식 형님도 피곤하실 텐데 들어가시고요.”
“네, 잘 먹었습니다.”
“사장님 덕분에 포식했어요.”
“더 놀다 가면 안 돼요? 어차피 집에 가도 할 거 없는데.”
동식, 은정이 자리를 털고 일어났고, 강훈은 너무 아쉬워했다.
강훈은 전역 후 잠자리가 바뀌어서 그런지 아니면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 때문인지, 밤에 잠을 통 자지 못했다. 침대에 누워 뒤척이며 웹 소설을 읽거나 너튜브, 게임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다가 12시가 훌쩍 넘어 간신히 잠이 든다. 새벽 출근을 위해 5시에는 일어나야 하니 보통 수면시간은 서너 시간이 고작이다.
“밤에 잠도 안 오고 심심하다고요.”
“인마, 사장님도 쉬어야지.”
가장 연장자인 동식이 강훈을 나무랐다.
오늘 같은 날은 쉬어도 될 텐데, 직원들을 위해 번거롭게 음식 준비까지 하며 회식 자리를 마련해줬으니 이쯤에서 빠져주는 게 예의다.
“쩝··· 아쉽다.”
“다음에 날 잡아서 또 놀자.”
“좋아요. 다음엔 MT 가요.”
“MT?”
“강훈이 이 자식. 사장님이 그럴 시간이 어디 있냐? 이제 조금 있으면 방송 출연도 하셔야 할 텐데.”
“맞다. 방송 출연. 근데, 우리 사장님 방송 나가면 막 유명해져서 팬클럽 생기는 거 아냐?”
“하긴 사장님 정도면 얼굴도 잘생기셨고, 요리도 잘하시니까 인기 좀 끌겠네.”
은정이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아무도 알아채지 못했지만, 팬클럽이라는 말에 민주의 얼굴이 살짝 어두워졌다.
“하긴, 요즘 TV에 나오는 셰프들보다는 우리 사장님이 백배는 낫지.”
“쓸데없는 소리 그만하고, 어서 가. 지하철 끊기겠다. 이것도 하나씩 가져가고.”
해준이 쇼핑백을 테이블 위에 올려놨다.
양파 카레와 돈가스다.
“이게 뭐예요?”
“양파 카레랑 돈가스야. 민주 말고 다 자취하잖아. 끼니 거르지 말고 챙겨 먹으라고.”
“크흡, 감동입니다. 저녁까지 푸짐하게 주시고, 뭘 또 이런 거까지··· 잘 먹겠습니다.”
“저도 잘 먹을게요!”
“근데 구성이 좀 다르네요.”
쇼핑백 안을 살펴보던 강훈이 말했다.
“너랑 동식 형님은 돈가스랑 카레 많이 쌌어. 여자애들은 레몬청 하나씩 넣었고.”
피부를 매끈하고 뽀얗게 만들어주는 B급 레몬으로 직접 담근 레몬청이다.
민주의 말을 듣고 며칠 실험한 결과, B급 레몬은 피부 트러블을 없애주고, 매끈하게 만들어주는 효과가 있는 게 분명했다.
“피부에 좋으니까 하루에 한 잔씩 꼭 타 먹어.”
“고맙습니다.”
“잘 먹을게요.”
“들어가. 형님, 들어가세요.”
“넵.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잘 놀다 가요, 사장님.”
“안녕히 계세요.”
***
집에 돌아온 민주는 옷을 벗고 앉아 레몬청을 보물이라도 다루듯 조심스럽게 들어 올렸다.
투명한 유리병 안에 예쁘게 담긴 레몬.
먹기가 아까울 정도였다.
“그래도 맛은 봐야겠지? 오빠가 하루에 한 잔씩 꼭 타 먹으라고 했잖아. 히힛.”
시원한 탄산수에 레몬청을 크게 한 숟가락 떠 넣고, 레몬을 한 조각 띄웠다.
“캬아~ 시원하다.”
썬플라워 음료 담당인 민주가 평소 만드는 레모네이드보다 더 톡 쏘고, 상큼했다.
레몬 특유의 맛과 향이 더 진하달까.
“이건 더 맛있네? 암튼 오빠 솜씨는 알아줘야 한다니까.”
음료 담당인 자신이 만든 것보다 맛있었다.
해준이 가져오는 식재료의 품질도 뛰어났지만, 음식 솜씨도 뛰어났다.
솜씨도 솜씨지만, 도대체 이렇게 좋은 재료들을 어디서 구해오는지 가끔은 궁금해지기도 했다.
얼굴도 잘생기고, 친절하고, 요리도 잘하고, 섹시하고···.
“아··· 생각하니까 또 보고 싶잖아.”
조금 전에 헤어졌으나, 해준의 얼굴이 또 보고 싶었다.
그러다 문득 창피해져 이불에 얼굴을 묻고 발을 동동 굴렀다.
차해준 생각에 민주는 밤새 뒤척이다 새벽이 다 되어서야 겨우 잠이 들었다.
.
.
.
다음날 새벽.
“윽, 피곤해. 밤새 잠을 설쳤어.”
새벽 끝에 간신히 잠들어 겨우 두어 시간 남짓 자다 깼다.
보나 마나 피부가 푸석푸석해졌을 것이다.
“오빠 만나야 하는데, 피부가 이게 뭐··· 어?! 뭐지?”
밤을 새우다시피 했음에도 푸석푸석하기는커녕 마치 마사지라도 받은 것처럼 피부가 부드러워지고, 맨들맨들 했다.
“의외로 괜찮네.”
***
썬플라워 회식이 끝난 날 밤.
“어휴, 술 냄새. 이강훈! 너 술 마셨어?”
거실에 앉아 공개 코미디 방송을 보던 소은은 동생이 술 냄새를 폴폴 풍기며 들어오자, 가볍게 인상을 쓰며 말했다.
“마셨지. 우리 사장님이 맛있는 거 만들어줘서.”
“맛있는 거? 뭐?”
“삼겹살, 돌돔 회, 된장찌개··· 또 뭐 먹었더라? 암튼 엄청나게 먹었어. 배 터질 것 같아. 으~!”
강훈이 올챙이처럼 툭 튀어나온 배를 쓰다듬으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런 동생이 못마땅한 소은. 자신의 저녁은 고작 라면에 찬밥 한 덩이 말아먹은 게 전부였기 때문이다.
“자식이, 그랬으면 이 누나 것도 좀 싸 왔어야지! 누나 자취방에 얹혀사는 주제에 혼자만 맛있는 걸 먹고 와?!”
헤드록을 걸어 동생을 응징했다.
“악! 아, 아파. 하지 마.”
“인마. 하나밖에 없는 누님이 방도 내주고, 백수 자식 일도 소개해줬으면 오늘 같은 자리에 나도 함께 불렀어야지.”
“직원 회식인데 누나가 왜 와?”
“단골인데, 좀 가면 안 되냐?”
나름 차해준의 썬플라워 1호 고객이라 자부했다.
그 옛날 지하철역에서 판 뚱드위치의 최초 고객.
“그, 그만해.”
“안돼. 넌 좀 더 당해야 해.”
“이거 줄 테니까 제발. 토할 거 같단 말이야.”
강훈이 쇼핑백을 머리 위로 들며 항복해왔다.
킁킁?-
매혹적인 카레 냄새에 소은의 팔이 스르르 풀렸다.
“이거 뭐야?”
“사장님이 싸주신 거야. 먹으라고.”
“동생아. 넌 이런 걸 가져왔으면 진작 말을 하지이~.”
마침 출출하던 참이다.
야식은 아침 붓기 최대의 적이지만, 차해준 사장이 만들었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붓기든 살이든 포기할만한 만큼의 맛.
“그런데, 무슨 카레가 이렇게 생겼어? 감자도 당근도 없잖아.”
“양파만 넣고 끓인 거래. 엄청 맛있다던데?”
“그으~래?”
에어프라이기에 돈가스를 데웠다.
그 위에 양파 카레를 소스처럼 뿌리고, 칼로 쓱쓱 썰어 입에 쏙.
“으으음~ 맛있다.”
콧소리가 절로 흘러나왔다.
내일 아침에 사랑니를 뺀 것처럼 얼굴이 퉁퉁 부어도 괜찮을 만큼의.
“이거 돈 받고 팔아도 되겠다. 메뉴에 올린 데?”
“글쎄. 난 잘 모르겠는데. 그보다 누나. 나도 한 입만.”
“야, 넌 몸에서 삼겹살 냄새가 진동을 하는구만. 뭘 또 먹어?”
“냄새가 너무 향긋해서. 나도 좀 줘.”
“싫어.”
“웃겨. 이거 사장님이 나 준거거든.”
“술 취했으면 가서 씻고 잠이나 자!”
“쳇, 나 불면증이거든?”
“그럼 TV나 보든가.”
“한입 먹고.”
“윽!”
실랑이 끝에 강훈은 겨우 돈가스 2조각을 빼앗아 먹을 수 있었다.
더 먹고 싶었지만, 양파 카레를 얹은 돈가스 앞에서 누나 소은의 전투력은 만기 전역 병장이 감당하기에도 버거웠다.
“쩝··· 맛있네.”
강훈은 옆으로 누워 축구 너튜브를 켰다.
오늘 업로드된 영상은 3개뿐. 7개는 봐야 겨우 잠이 드는데, 영상 개수가 아쉽다고 생각하며 첫 번째 영상을 틀었다.
그리고.
.
.
.
“어?”
강훈이 눈을 뜬 건 다음 날 아침이었다.
“뭐야? 아침이야?”
“이강훈! 일어나. 아침이야. 출근해야지.”
누나 소은이 문을 쾅쾅 두드리며 깨우는 소리가 들렸다.
“구라쟁이 자식. 불면증이라더니 눕자마자 5분 컷으로 잠드냐? 빨리 씻어. 씻고 누나 뚱드위치 좀 만들어주라.”
“뚱드위치? 나 만들 줄 모르는데.”
“취사병 출신에 몇 달째 썬플라워 주방에서 일하는 놈이 그거 하나 못 만들어?”
소은이 강훈의 자존심을 살짝 긁었다.
해준이 만드는 건 어깨너머로 보긴 봤다.
만드는 과정이 그다지 어렵지는 않았다. 달걀을 삶아서 마요네즈와 설탕을 적당히 넣고 버무려서 식빵 사이에 듬뿍 발라주면 끝.
“솜씨 발휘해 봐?”
“콜.”
잠시 후.
강훈은 꽤 그럴듯한 뚱드위치를 만들어 식탁 위에 올려놨다.
“오~ 그럴듯해.”
“그치? 맛있겠지? 먹어 봐.”
“어디 썬플라워 주방 막내 솜씨 좀 볼까.”
속이 두툼한 샌드위치를 한입 베어 물었다.
강훈은 사뭇 긴장된 얼굴로 누나의 평가를 기다렸다.
“어때?”
“우엑, 맛없어. 비린내도 나고.”
“그, 그 정도는 아닐 건데.”
“아니긴. 맛 하나도 없구만.”
믿지 못하겠다는 강훈은 누나의 뚱드위치를 뺏어 맛을 봤다.
“진짜네.”
비록 어깨 너머로 훔쳐보긴 했지만, 비율이 크게 다르지 않을 터.
맛이 좀 떨어지는 수준이라면 이해하겠지만.
이건···.
“맛이 없어도 너무 없어.”
자신이 모르는 비법이 따로 있는 게 분명했다.
‘나중에 꼭 가르쳐달라고 해야지.’
***
“민주, 하이.”
“왔어?”
“야. 나 오늘 피부 어때?”
권은정이 출근하자마자 민주 앞에 똑바로 서서 진지하게 물었다.
가만히 얼굴을 살피던 민주가 뭐라 대답하기도 전에.
“뽀얗지?”
라고 물었다.
“진짜 그렇네. 팩하고 잤어?”
“팩은 무슨? 가자마자 피곤해서 그대로 뻗었구만. 게다가 나. ···오늘부터 그날이야. 나 그날에 턱드름 장난 아닌 거 알지?”
뒷말은 주변을 살피며 민주에게만 들릴 정도로 작게 말했다.
“근데 왜 이렇게 뽀얘?”
“해장할 게 없어서 사장님이 준 레몬청 한잔 타 먹고 출근했는데. 지하철에서 잠깐 졸고 일어나니까 잡티랑 여드름이 싹 없어진 거 있지.”
“뻥!”
“진심.”
“그래?”
은정이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민주도 밤새 제대로 잠도 못 자고 뒤척였으나, 피부 컨디션이 나쁘지 않았다. 아니, 평소보다 좋았다. 그래서 왜 그럴까? 원인을 찾던 중이다.
“너도 오늘 은근 뽀얗다?”
눈만 떼구르 굴리던 민주를 보며 은정이 말했다.
민주야 워낙 평소에도 아기 피부에 얼굴도 예뻤지만, 오늘은 좀 더 광채가 난다고 해야 할까.
“그게. 실은 나도···.”
“민주야.”
해준이 주방에서 나오며 민주를 불렀다.
“네, 오빠.”
“어제 그 양파 카레 말이야. 먹어 봤어?”
“엄청 맛있던데요.”
“저도 먹었어요. 오늘 아침에. 완전 존맛.”
은정도 엄지손가락을 치켜들며 칭찬했다.
“반응 보고, 메뉴에 올리려고. 점심 손님들한테 서비스로 줄 테니까 반응 좀 봐줘.”
“알겠습니다.”
“늦었다. 손님 받을 준비 하자.”
“넵!”
***
“끄응···.”
소변을 누던 이서준이 인상을 썼다.
며칠 괜찮던 소변 줄기가 다시 시원찮아 졌기 때문이다.
쪼르르-
“이거 또 왜 이러지?”
볼일을 봐도 본 것 같지 않은 찝찝함.
토마토 파스타를 먹은 다음 날부터 효과를 본 서준은 백화점에서 비싸고 신선한 토마토를 배송해서 매일 하나씩 먹었다.
전립선 건강 회복을 기원하며.
그런데 전립선 상태가 며칠 전으로 되돌아갔다.
‘토마토가 아닌 건가? 내가 그날 또 뭘 먹었지?’
전날부터 굶었던 터라 그날 먹은 건 썬플라워의 모둠 가스와 토마토 파스타가 전부다.
가게 앞에서 신규 런칭 프로그램 담당 피디인 장일수를 만났기에 정확히 기억한다.
‘혹시 그 가게 셰프가 뭔가 전립선에 좋은 음식을 재료로 넣은 건가?’
찾아가서 물어보고 싶었으나 문제가 있다.
나름 유명 배우인데, 대뜸 찾아가 전립선에 좋은 재료를 음식에 넣었냐고 물어보기 너무 민망했다. 혹시나 소문을 낼지도 모르고, 말이다.
“아~ 어쩌지.”
좌절감에 머리를 헝클이고 있던 그때.
매니저 경식이 집으로 들어왔다.
“형님.”
“왔냐?”
“왜 이렇게 표정이 안 좋으세요? 무슨 일 있으세요?”
“아무 일 없어. 근데 우리 집엔 왜 왔어?”
“야밤 식당 미팅 겸 첫 촬영 일정 잡혔어요.”
“그래? 메인 셰프가 누군데?”
“돈가스집 사장이요.”
“썬플라워?”
“네.”
“그래?”
이서준의 눈이 반짝였다.
자연스럽게 물어볼 찬스가 생겼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