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ility from Parallel Dimensions RAW novel - Chapter 241
242. 사이비
박광천 이사의 얼굴에 화난 신도의 주먹이 꽂혔다.
“으악!”
박광천이 손바닥으로 왼쪽 눈을 덮으며 뒤로 물러났다. 신도가 다시 주먹을 내질렀다.
서정우가 그 주먹을 중간에 잡았다.
“지금 뭐하는 겁니까?”
신도가 소리를 질렀다.
“저 새끼 때문에 다 죽을 뻔했습니다!”
“다 죽이라고 명령한 건 교주인데?”
“저 새끼가 살인 로봇을 안 팔았으면 그러지도 못했습니다!”
“칼로 찌른 놈보다, 칼을 판 놈이 더 문제다?”
신도는 당황했다.
“그, 그건….”
“교주가 아직도 무섭나 봅니다? 만만한 박 이사님만 때린 거 보면.”
서정우가 주먹을 놓아주었다. 남자가 조금 부끄러워하며 뒤로 물러났다.
이 강당에는 조금 전까지만 해도 신도였던 사람이 서른 명쯤 있었다. 그들은 이제 복동민을 교주로 떠받들지 않는다. 복동민이 그들을 죽이려 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복동민을 두려워하던 마음이 한순간에 사라진 건 아니다. 그들은 조금 전까지만 해도 복동민이 진짜 신의 사도라고 생각하고 두려워했다. 일부는 교주를 존경하기도 했다. 그런 기간이 꽤 길었다. 그러던 사람을 한순간에 만만하게 보는 건 쉽지 않다.
이성은 속았다는 걸 금방 이해했지만, 나약한 마음이 현실을 완전히 받아들이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빠른 사람은 단 몇 초 만에 태세를 전환하지만, 여기 있는 신도들에게는 좀 더 긴 시간이 필요했다.
반면에 박광천은 교주보다 만만해 보였다. 게다가 그가 저 로봇들을 교주에게 팔았다.
방금 그 신도는, 강자가 두려워서 그에게 해야 할 비난까지 만만해 보이는 관계자에게 퍼붓는 짓을 했다. 서정우가 속으로 혀를 찼다.
‘사람 사는 곳에서 흔히 일어나는 일이지.’
박광천이 서정우의 옆에 서서 눈두덩을 문지르며 말했다.
“후우. 서 형사. 고맙습니다.”
“박 이사님. 복동민에게 돈 받은 거 있으면 감옥 가실수도 있는데 뭘 벌써 고맙다고 합니까?”
박광천이 눈에 대고 있던 손을 얼른 흔들었다.
“아닙니다. 난 복 과장에게 뒷돈은 한 푼도 안 받았습니다. 그런 거 안 받아도 나 돈 많아요.”
“이 회장님이 연봉 많이 주시나 보네요.”
“그야 김 이사와 나는 회사가 손바닥만 할 때부터 회장님을 모셨으니까… 다른 이사들보다는 많이 받습니다.”
로봇에 붙었던 불은 금방 꺼졌다.
서정우가 로봇들의 상태를 하나씩 확인하며 전투 과정을 복기했다. 그는 한 방에 못 잡고 갑옷 틈으로 다시 칼을 날려 잡은 놈 앞에 섰다.
‘몬스터가 상대였으면 위험했어.’
대몬스터 단검술에는 그런 연계 동작이 없다. 서정우는 전투 센스로 두 번째 공격을 성공시켰다.
‘로봇을 칼로 잡는 건 만만치 않네.’
그는 검술이 아니라 사격 스킬 각성자다.
‘뭐, 실전이면 총으로 쏴버렸겠지.’
서정우가 교주 복동민을 향해 걸어 갔다.
교주의 얼굴색이 나빴다. 맞아서 그런 게 아니라 건강 상태가 나빠 보였다.
‘저주 아이템을 쓰면 생명력이 빨려나간다더니.’
생명력이 소모된다는 표현은 주로 저쪽 세계에서 쓴다. 이쪽 병원에서는 이 상황을 다른 방식으로 설명할게 뻔하다.
‘아니면 설명 못하든지. 어쨌든 안색 보니까 오래는 못 살겠네.’
박광천은 혼자 남으면 두들겨 맞을까 봐 얼른 서정우를 따라갔다. 서정우가 복동민의 손에 수갑을 채우며 말했다.
“살인…은 사실 영장이 없으니까 나중에 추가하자.”
복동민이 더듬거렸다.
“뭐, 뭐라고? 분명히 날 살인죄로 체포한다고….”
“그거 거짓말이야.”
“그럼 난 왜….”
“살인 미수로 체포하면 되겠다.”
“놔라! 이건 함정 수사다! 나는 무죄다!”
“대량 살상 미수라고 할까 보다.”
서정우가 로봇을 막지 못했으면 이곳에서 대참사가 날 뻔했다.
그는 피해자의 권리까지 읊어준 후에, 이전에 세웠던 가설 중 하나를 버렸다.
‘복동민은 저쪽 세계와 연결된 게 아니야. 저쪽에선 로봇 부대는 못 쓰니까. 저 아이템도 주술 몬스터가 만든 게 아니지. 그놈들은 기계는 못 만들어. 그 하얀 조각도 발견된 적 없는 종류고.’
그 아이템이 어디서 났는지 여기서 대놓고 물어볼 수는 없다. 그래서 좀 돌려서 물었다.
“총이라면 또 모르겠는데, 칼과 방패로 싸우는 로봇은 도대체 왜 만든 거냐?”
비록 두 다리가 아니라 바퀴로 움직이는 로봇이지만, 근접 전투 능력은 생각보다 괜찮았다. 서정우 없이 일반인들만 싸웠으면 인간 쪽이 학살당할 뻔했다.
교주 복동민이 기운 빠진 목소리로 대답했다.
“사장이 어디서 프로젝트를 받아왔더라. 발주 회사가 어디인지도 안 가르쳐주는 비밀 프로젝트인데, 거기서 소스코드를 훔쳤다. 그걸 BH 테크 로봇에 얹고 다시 손봤는데.”
복동민이 허탈한 표정으로 욕을 했다.
“씨발. 그렇게 해도 형사 한 놈을 못 잡네.”
서정우가 인상을 살짝 썼다.
‘결국, 결론은 아틀라스 프로젝트 인가?’
그는 HG 테크가 아틀라스의 하위 프로젝트를 맡았다고 추측했다. 이해가 가지 않았다.
‘전쟁터에서 칼은 총보다 불리해.’
저쪽 세계의 검술 스킬 각성자는 칼을 공격용으로 쓰지 않는다. 그들은 보통 딜탱의 역할을 맡는다. 일반 공격은 총으로 하고, 칼은 몬스터가 접근했을 때 방어용으로 쓴다.
검술 스킬 각성자조차도 총을 드는 게 더 나은데, 로봇은 말할 것도 없다.
‘로봇에 총을 붙이는 쪽이 훨씬 만들기 쉽고 위력도 항해. 그러면 팔을 달 필요도 없어.’
칼을 휘두르려면 정교한 구조의 팔이 필요한데, 그건 총보다 훨씬 많은 돈을 잡아먹는다.
‘미국이 그쪽으로 초보자도 아니고.’
미국은 이미 무인 전투 로봇 개발 프로젝트를 여럿 진행하고 있다. 심지어 혼자 날아가 싸우는 무인 전투기까지 개발 중이다.
‘이런 세상에서, 미국은 칼과 방패를 든 로봇이 도대체 왜 필요하지?’
서정우가 반으로 쪼개진 용의 조각상을 생각했다.
‘저주와 비슷한 증상을 일으키는 화학물질. 그것도 혹시 그 프로젝트의 일부인가?’
강세영도 그 프로젝트와 관련된 사고에서 유사 석화독에 중독됐다. 서정우는 슬슬 궁금해졌다.
‘미국은 도대체 뭘 만드는 거야?’
* * *
서정우는 원래 확인사살을 기본으로 한다. 죽은 척하는 몬스터에게 방심하고 접근했다가 다리라도 물리면 다리가 잘려나가기 때문이다. 그는 지금 이 로봇들도 다시 칼로 찍어 확실히 끝장내고 싶었다. 하지만 여기는 보는 눈이 너무 많다.
‘여기서 로봇에게 다시 칼을 꽂으면 미친놈처럼 보이겠지. 이게 다 증거물이기도 하고.’
그가 칼을 만지작거리자 사람들이 기대하는 눈으로 쳐다보았다. 그들이 서정우와 문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아. 나가는 문.’
신도 중에 이 강당 안에 있고 싶어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런데 문이 음성인식 잠금장치로 잠겨 있어서 나갈 수가 없다.
한 남자가 의자를 들고 문의 잠금 장치를 내리쳤다. 그래도 문은 열리지 않았다.
서정우가 말했다.
“비켜요. 다치니까.”
사람들이 재빨리 공간을 비웠다. 서정우가 문틈의 폭을 확인했다. 너무 좁아서 칼날이 지나가기엔 무리가 있었다.
그가 칼을 전자식 잠금장치를 향해 내질렀다. 칼날이 케이스를 뚫고 내부 기판과 철판까지 가른 후에, 문 반대쪽으로 튀어나갔다.
그가 칼날을 당기며 문을 박찼다. 걸쇠가 밀려 떨어지며 문이 활짝 열렸다.
사람들이 환성을 질렀다.
“열렸다!”
그들은 앞다투어 문밖으로 뛰어나갔다.
서정우가 그들에게 말했다.
“여기를 벗어나지 마시죠. 간단한 조사는 받으셔야 합니다.”
당장 여기를 빠져나갈 생각이던 신도가 항의했다.
“우리는 죽다 살아난 피해자입니다! 어떻게 우리에게 이 지옥에 있으란 말을 할 수 있습니까?”
서정우가 중세 기사가 쓰던 형태의 칼을 빙글 돌려 어깨에 걸친 후에 말했다.
“그냥 가시는 분은 교주와 한패로 의심받습니다. 여기 누가 있으셨는 지는 조사하면 어차피 다 나옵니다.”
“그래도 우리는 집에 가야겠….”
갑자기 젊은 여자가 그 신도를 향해 외쳤다.
“당신이 대사제잖아! 가긴 어딜 가!”
“아, 아니, 난. 한자리 준다길래 그냥….”
서정우는 그녀가 누군지 안다.
‘정하린의 회사 인턴 동기. 현실을 빨리 받아들이는 타입이네.’
몇 사람이 화를 내며 대사제를 둘러쌌다.
적대적인 위험에 노출된 사람은 또 있었다. 신도 몇 명이 박광천을 향해 다가갔다.
박광천이 급히 손을 흔들며 말했다.
“난 아닙니다!”
“당신이 저 갑옷 괴물들을 팔았다며! 우리 다 죽으라고 그런 거잖아!”
박광천이 열심히 변명했다.
“회사에 주문이 들어와 납품한 것 뿐입니다. 그래서 내가 저 로봇의 약점을 서 형사에게 알려줄 수 있었습니다!”
그가 서정우를 팔아먹자 화내던 사람들이 멈칫했다.
곧바로 박광천의 목소리가 커졌다.
“내가 약점을 알려줬으니까 당신들이 이렇게 살아 있는 거야! 나한테 고마워해도 모자랄 판에 이게 무슨 짓이야!”
사람들이 머뭇거렸다.
박광천이 생각했다.
‘통했….’
통하지 않았다. 그중 한 명이 항의 했다.
“그냥 물건만 판 사람이 왜 여기 와서 절을 하는데? 한통속이니까 그런 거 아냐!”
상대의 논리가 너무 약했다. 박광천이 반격의 기회를 잡고 기가 살아서 소리를 질렀다.
“나만 절했어? 당신들도 했잖아! 나도 속았다고! 그리고 난 속은 지 두 시간밖에 안 됐어! 당신들은 벌써 몇 달째….”
이곳에는 논리보다 감정이 앞서는 사람이 많았다.
소리를 지르는 그를 향해 돌이 날아왔다.
박광천은 화들짝 놀랐다.
“으악!”
서정우가 그 돌을 칼로 툭 쳐서 날려버렸다. 돌을 친 칼날이 날카롭게 울었다.
사람들이 움찔했다.
서정우가 말했다.
“아아. 폭력은 자제하시고. 이분은 저하고 협의해서 이곳에 정보를 캐러 온 거니까 참으시지요.”
협의했다는 건 상황을 안정시키기 위해 그냥 한 말이다. 안 그러면 박광천에게 계속 돌이 날아올 분위기였다.
박광천은 서정우가 편들어주자 당장 기가 살아서 신도들을 향해 삿대질을 했다.
“그러니까 당신들이 나한테 사….”
“박 이사님.”
박광천이 즉시 말을 바꾸었다.
“나나 당신들이나 다 저 사이비 사기꾼에게 당한 피해자란 말입니다! 피해자끼리 이러지 맙시다!”
그에게 화를 내던 사람들이 그때서야 돌을 내려놓았다.
박광천이 안심하며 한 마디 덧붙였다.
“저기 대사제라는 인간은 빼고. 저 놈은 내가 봐도 가해자 같으니까.”
멀지 않은 곳에 있던 순찰차 한 대가 신고를 받고 달려왔다.
차에서 내린 경찰 두 명은 처음에는 상황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여기 무슨 종교단체가 들어왔다고 하지 않았나?”
“용의 군단 교단입니다.”
“이름만 들어도 사이비네. 분명히 돈 문제로 싸움 난 거야.”
느긋하게 들어오던 두 사람은 사건 현장을 보고 나서 안색이 창백해졌다.
“저, 저 갑옷 저거 설마 사람은 아니겠지?”
“잘려 나간 사이로 기계장치 같은 게 보이는데요?”
“로봇이라고? 이게 말이 돼?”
“지원 요청할까요?”
“아직도 안 했냐? 당장 해!”
곧바로 그 지역 경찰서에서 경찰차가 몰려왔다. 나중에는 지방경찰청에서 경찰특공대까지 보냈다.
백성민도 소식을 듣고 경기도로 달려 왔다.
“정우야. 어떻게 된 거야?”
서정우가 어깨를 으쓱했다.
“동네 아는 동생의 친구가 이 사이비 교단에 빠졌다고 해서 알아보러 왔는데, 와보니까 이 지경이더라고.”
백성민이 강당을 보았다. 문은 전자식 잠금장치가 부서져 있고, 안에는 열 대의 갑옷 로봇이 불에 탄 채로 굴러다녔다.
밖에는 삼십여 명의 사람들이 간단한 조사를 받고 있었다.
“네가 이 지경으로 만든 건 아니고?”
“그거야 뭐 대충 넘어가자.”
“네가 한 거 맞네.”
백성민이 부서진 로봇들을 보았다. 하체에는 무한궤도 바퀴가 붙어 있고 상체만 갑옷을 입은 로봇 형태인데, 전부 다 불이 붙었다가 꺼져 그을음이 많이 묻어있었다.
“저것들은 다 뭐냐?”
“BH 테크에서 여기다 판 로봇.”
“어? 거기서? 누가 팔았는데?”
“저기.”
서정우가 가리킨 방향에 BH 테크 박광천 이사가 보였다.
백성민이 말했다.
“박 이사 저 인간 내가 사고 칠 줄 알았다. 나만 보면 시선 피하는게 되게 수상했거든. 어떻게 칼잡이 로봇을 만들어서 팔아?”
“아니. 팔 때는 재난구조 로봇이었는데, 그걸 여기 교주가 직접 개조 했어.”
“직접?”
“교주가 HG 테크의 개발자 출신 이거든.”
“개발자가 사이비가 되니까 무섭구나. 그런데 이러면 사건을 어떻게 분류해야 하지? 로봇이 사람을 폭행한 사건?”
“살인사건이야.”
“어? 여기서 사망자는 안 나왔다고 들었는데?”
“HG 테크의 개발자가 교주에게 살해당했어.”
“HG 테크? 어떻게? 증거는?”
“그건 그 사건 담당자가 찾아내야지. 난 살인사건이라는 것만 알려주려고.”
백성민이 고개를 가볍게 끄덕였다.
“우리 일 아니네. 다행이다.”
“반응이 왜 그래? 형 실적 쌓는 거 좋아하잖아.”
“이제 실적이 넘쳐서 괜찮아. 아. 그런데.”
백성민이 궁금해했다.
“살인사건 증거가 쉽게 나올까?”
“교주는 화학무기를 이용해서 신도들을 모았어. 그럼 그걸 발사한 장치 내부에 그 화학물질이 좀 묻어있겠지? 그걸 피해자의 혈액이나 머리카락 분석 결과와 비교하면 뭔가 나올 거야.”
“그렇겠네. 범인이 다 씻어버리지 않았다면 말이야.”
“넉넉히 남아 있을 거야.”
그건 서정우가 용 조각상 안에 넉넉히 묻혀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