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ility from Parallel Dimensions RAW novel - Chapter 279
280. 일상
서정우는 견습 성녀 윤지민과 헤어진 후에 작곡가 헌터 박철우를 만났다.
박철우가 말했다.
“네 말대로 제약회사를 만들었다.”
서정우는 살짝 당황했다.
“어? 벌써? 어떻게?”
“당연히 온갖 편법으로 떡칠하고, 생산 시설은 따로 있는 척하고, 인맥도 최대한 동원했지.”
최소한의 법체계만 겨우 유지되는 이쪽 세계에는 편법으로 해결 가능한 일이 많다.
서정우가 물었다.
“생산 시설이야 다른 데서 따로 만들어서 가져온다고 둘러대면 되지만, 파는 건?”
“당연히 팔 사람도 좀 모았지. 음악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가난하잖아. 부업으로 하라고 했더니 할 사람 많더라.”
“우린 그 많은 사람에게 월급 줄 돈이 아직 없는데?”
“그래서 사업 초반에는 약을 판만큼 먹는 수당제로 하기로 했다. 고 정 월급은 회사에 돈이 좀 들어온 다음부터 주기로 하고.”
“어쩐지 마약 딜러가 된 기분이야.”
“우린 그래도 몸에 좋은 거 팔잖아.”
“아저씨한테 이런 쪽 능력까지 있을 줄이야.”
“내가 안 해서 그렇지, 아는 사람 많다.”
서정우도 안다. 이쪽 세계의 가수나 작곡가가 음악만 해서 먹고 사는 건 굉장히 어렵지만, 박철우는 그 어려운 걸 해낸 유명 작곡가다. 박철우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작곡은 그만두고 몬스터와 싸우며 살았다. 복수를 위해서였다.
그것도 이제 지난 이야기다. 꿈속에서 다시 가족을 만난 후부터 박철우도 목숨을 아끼며 산다.
박철우가 말했다.
“그 약 말이야. 이미 합성해서 팔기 시작한 곳도 있더라.”
“알아. 내가 아는 사람도 판매 시작했어.”
견습 성녀 윤지민이 그 약을 판다. 이쪽 세계에도 약에 관한 법은 있지만, 관련 규정은 까다롭지 않았다. 검증된 제조법대로 만든 약이라면 판매 허가를 받기도 쉬웠다. 실험실에서 소규모로 만들어 파는 경우는 절차가 더 간단했다.
그러다 보니 개인이 민간요법으로 만든, 병을 낫게 하는 소금이나 수상한 엑기스도 정식으로 약병에 담겨서 팔렸다.
그렇게 파는 약은 대부분 질병 치료제다. 상처 치료제는 이미 좋은 약이 많았다.
서정우가 커다란 플라스틱병을 하나 꺼내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하얀 플라스틱병 표면에는 아무것도 쓰여있지 않았다.
“그 항생제 천 알이야. 적당히 포장해서 샘플로 뿌리자.”
“이거 품질은?”
서정우가 견습 성녀 윤지민을 생각 했다. 그녀가 정화 스킬을 아낌없이 써서 만든 약은 품질이 좋을 게 뻔 하다.
하지만 다른 실험실이 다 그런 수준의 약을 만들어낼 리는 없다.
“이건 저쪽 세계의 철저하게 관리되는 대규모 시설에서 전문가들이 만든 거야. 제조법도 오리지널 그대로고. 약의 품질만 놓고 보면 여기 저기서 소규모로 만드는 것보다 좋으면 좋았지 나쁠 수가 없어.”
박철우가 활짝 웃었다.
“품질은 당연히 최고란 소리구나. 돈 팍팍 벌어서 우리 와이프하고 딸들한테 선물 보내야겠다. 네가 배달 좀 해줘.”
“나도 돈 벌어서 영화 하나 만들어야지.”
“응?”
“돈 벌면 선화를 주연으로 영화 하나 찍으려고.”
* * *
한국만 해도 매일 게이트가 하나쯤 열린다. 전 세계에서 하루에 열리는 게이트는 백 개가 넘는다. 인류는 그 많은 게이트에서 나오는 몬스터와 전쟁 중이다.
그렇게 전투가 흔한 세상이지만, 오늘 그리핀 전투는 특별했다. 여러 채널에서 그 뉴스가 나왔다.
이쪽 세계에도 인터넷 게시판이 있다. 텍스트 위주의 게시판이지만 글이 올라오면 댓글이 붙는 구조는 저 쪽과 같았다.
-그리핀을 이렇게 쉽게 잡은 적이 있던가?
-광화문 주둔 공격헬기 편대 네 대가 싹 다 쓸려나갔는데 뭐가 쉬워?
TV 뉴스 자료 영상으로 공중전 장면이 나왔다. 그 영상은 조감독이 찍은 것이 아니다. 훨씬 더 먼 곳에서 다른 사람이 가정용 캠코더로 찍은 것이라 화질이 좋지는 않았다.
-그 후에 바로 잡았잖아.
-그리핀의 한쪽 날개 날려버린 거 전차포라더라. 스나이퍼가 쐈나?
-스나이핑 스킬이 전차포에 적용 될 리가 있냐?
현장 목격담도 올라왔다.
-나 오늘 거기 구청 임시 구호소에서 각성자 특수부대 봤다.
-진짜야?
-당연히 진짜지. 요원들 포스 쩔더라.
-이야아. 그러니까 그리핀을 잡은 지상군이 각성자 특수부대란 거네?
-역시 대한민국 최고의 특수부대!
-요즘은 그 부대 실력이 예전만 못하다는 말이 있었는데, 아니네! 살아 있네!
피해 상황도 바로 공개됐다. 공격 헬기 네 대 추락했고, 건물 일곱 채가 완전히 무너졌다. 일부분만 파손 된 건물은 너무 많아서 몇 채인지 아직도 파악 중이다.
다행히 사망자는 없었다.
저격수 서소라가 그 뉴스를 보면서 말했다.
“중형 게이트의 비행형 보스 몬스터를 상대로 도심에서 벌어진 전투 치고는, 피해가 작은 편이에요.”
이선화가 자랑했다.
“오빠가 나섰는데 당연하지.”
“보스 외에는 잔챙이 밖에 안 나왔기 때문이죠. 비행 몬스터도 보스 한 마리뿐이었잖아요.”
“쳇. 소라 넌 너무 냉정해. 저쪽 소라는 하나도 안 그런다던데.”
서소라의 눈이 살짝 커졌다.
“네? 그걸 언니가 어떻게 알아요?”
“으응?”
“저쪽… 이야기를 들었어요?”
서소라가 신나서 자랑했다.
“듣기만 했겠어? 저쪽에 갔다 왔는데?”
서소라는 진심으로 놀랐다.
“네? 그게 어떻게 가능해요?”
“해보니까 되더라고.”
그녀가 화를 벌컥 냈다.
“미쳤어요? 그런 실험을 왜 해요? 그러다 둘 다 죽어요!”
“아냐. 실험한 게 아니야. 그리핀이랑 정면에서 마주치는 바람에 탈출 방법이 그것밖에 없었어. 그래서 오빠가 나랑 같이 평행차원으로 텔레포트 했는데.”
이선화가 목걸이를 손으로 쓰다듬었다.
“오빠가 준 이 목걸이가 날 텔레포트의 위험에서 보호하더라.”
“아. 전설 등급 성물 목걸이.”
“어. 이게 그런 대단한 거라며? 넌 이것도 알고 있었네? 난 걸고 다니면서도 몰랐는데?”
서소라가 말을 돌렸다.
“어쨌든 무사하니까 다행이에요.”
“그치? 히히.”
“그런데 왜 돌아온 거예요? 저쪽 세계가 더 풍족하고 안전할 텐데.”
“거기서 나는 너무 유명해서, 내가 있을 곳이 없더라. 숨어 살아야 하더라. 그렇게 사느니 여기가 나아. 필요한 건 오빠가 갖다 주면 되니까.”
“이해했어요. 그럼.”
서소라가 손을 내밀었다.
“그 목걸이 내가 좀 쓸게요.”
“어?”
“난 안전한 그쪽 세계에서 살아야지. 그쪽에서 난 인생 막 산다면서요? 나도 가서 인생 막 살고 싶어요. 마음 턱 놓고 흥청망청 살 거예요.”
“미안해. 이미 나한테 파장이 맞춰 져서 나만 보호할 수 있대. 오빠는 이런 걸 귀속 아이템이라고 부르더라.”
서소라는 실망하지 않았다.
“그럼 오빠가 저쪽에서 하나 더 구하면 되겠네요.”
“응?”
“나도 콱 저주에 걸려볼까? 같은 거 구해다 주나 보게.”
“소, 소라야?”
* * *
서소라는 서정우가 집에 돌아오자 마자 비슷한 성능의 성물을 요구했다.
서정우는 순순히 대답했다.
“찾아는 볼게.”
“난 게으르고 흥청망청 사는 한량이 되고 싶어요.”
“그래. 넌 저쪽으로 가면 그렇게 될 거 같더라. 저쪽에선 이미 그러고 있으니까.”
* * *
서정우는 일단 평행차원을 넘어 형사로 사는 세계로 돌아왔다.
“소라 부탁 말고는 당장 급한 일은 없나?”
최근에 이선화가 납치됐지만, 그런 일이 재발할 확률은 극히 낮았다. 이선화를 납치한 놈들부터 그걸 지시한 놈들까지 어떻게 갈려 나갔는 지 잘 알려졌기 때문이다.
지금 아시아태평양 나노 제약은 본사까지 타격을 입은 상태다.
특히 한국 지사의 직원들은 충격과 혼란에 빠져 우왕좌왕하고 있었다.
BH 테크 회장 이병훈은 새로 인수한 SH 십자 제약의 사장을 겸임 하고 있다. HG 테크 사장 강성훈은 부사장을 맡았다.
이병훈이 서정우에게 말했다.
“자기가 근무하던 회사가 알고 보니 마약에 납치, 인체 실험까지 자행했다는 게 알려지면서, 그 회사 직원들의 동요가 극심합니다.”
강성훈도 경쟁적으로 상황을 설명 했다.
“이미 사표를 던진 사람도 많고, 남아 있더라도 마음이 떠 있는 사람이 많습니다. 이 기회에 필요 인력을 스카우트하는 중입니다.”
“물론 그중에는 이번 일에 깊게 개 입한 놈들도 있으니까, 그런 놈들은 빼고 스카우트해야지요.”
“아예 한국 지사의 인력과 시설까지 통째로 삼키고 싶지만, 우리 말고도 헐값에 손에 넣으려는 경쟁사들이 좀 있습니다.”
“한국 지사를 몇 조각으로 찢어서 나눠 먹게 될 것 같습니다. 영업망은 어쩔 수 없이 다른 곳과 나눠야 하지만, 연구소와 중요 생산 시설은 우리가 통째로 먹는 게 목표입니다.”
서정우가 상황 설명을 들은 후에 말했다.
“알아서 잘하시겠죠.”
서정우는 그 회사 경영에까지 신경 쓰고 싶지 않았다. 그런 건 원래 이 병훈이나 강성훈이 전문가다. 서정우는 다른 걸 원했다.
“쉽게 만들 수 있게 제조법을 손을 본 제약 레시피 나온 거 있으면 좀주시죠.”
이병훈이 얼른 USB 메모리 스틱을 내밀었다.
“여기 준비했습니다.”
강성훈도 커다란 가방을 가리켰다.
“약은 알약으로 꽉꽉 담았습니다”
며칠 뒤에 포켓츠가 신곡을 발표했다. 그건 서정우가 박철우에게 받아서 넘겨준 곡이다.
그 신곡은 발표하자마자 큰 인기를 끌었다.
흥청망청 사는 아이돌 서소라의 콧대가 한없이 높아졌다. 그녀가 서정우에게 말했다.
“뭐 필요한 거 있어? 얼마야? 얼마짜리면 되겠어?”
“천 년 동안 사람들의 진심이 담긴 간절한 기원을 받은 물건이 필요해. 항상 휴대 가능한 크기여야 하고, 천 년 전부터 숭고하고 고결해야 한다. 역사책에 나오면 더 좋고.”
“그런 게 어디 있어?”
“국립 박물관 국보?”
“미친 거 아냐?”
그런 성물 후보가 몇 개 있긴 한데, 그건 국립 박물관을 털기 전에는 손에 넣을 수 없다.
이선화 때는 그녀를 살리려면 성물이 꼭 필요했다. 그래서 그는 밀수 출업자를 때려잡고 해외로 유출될뻔한 고승의 사리를 슬쩍 빼돌렸다.
지금 저쪽 서소라는 그때처럼 위험한 상황이 아니다. 생명이 위험하지도 않은데 국립 박물관을 털 수는 없다. 설사 털어서 저쪽으로 가져간다 해도 그 유물이 성물이 된다는 보장은 없다.
‘틈틈이 찾아봐야지.’
남수정이 경찰서로 찾아와 서정우에게 성적표를 보여주며 자랑했다.
“짜잔! 성적 오른 거 봐요. 저 이러다가 대학 갈지도 몰라요.”
서정우가 성적표를 보며 웃었다.
“너 원래 공부 잘했다더니, 진짜였나 보다.”
“흐흐. 당연하죠.”
“대학 갈 거지?”
“성적이 계속 올라서 집에서 통학 가능한 곳으로 갈 수 있으면요. 사실 대학 꼭 가고 싶었거든요.”
“꼭 가라. 넌 할 수 있어.”
“넹!”
서정우가 같이 온 정현수에게 물었다.
“넌?”
정현수는 프로 게이머는 포기하고 인터넷 게임 방송 스트리머로 진로를 전환했다.
“구독자가 이천 명이 넘었어요. 흐흐흐.”
“인터넷 방송 좀 재미있게 하나보다?”
“제가 재능이 있더라고요.”
남수정이 정현수에게 물었다.
“저번에 구독자가 오백 명도 안 된다고 나보고 나와달라더니?”
“네가 나오는 날 빵 터져서 이천 명 넘은 거야. 다 네 덕분이지.”
남수정이 두 손으로 허리를 짚으며 말했다.
“말하기 전에 알아서 쏴라.”
“넵!”
“네가 쏘는 거니까 효진이네 뷔페 가자.”
“어, 어?”
“거기서 효진이하고 셋이서 먹방 찍자.”
톱스타 이선화가 주연을 맡은 영화의 촬영이 시작됐다. 장현성 감독은 첫 촬영 현장에서 고사를 지냈다. 서정우도 그 행사에 초대받았다. 현민호는 구경하러 온 서정우를 보자마자 직각 인사를 했다.
“정우 형! 고맙습니다!”
현민호는 서정우 덕분에 살인 누명을 벗었다. 방송 출연도 여러 번 했다.
덕분에 현민호는 물론이고 소속 아이돌 그룹, 그리고 이 영화까지 홍보가 됐다.
현민호와 같은 아이돌 그룹 멤버들도 서정우에게 직각 인사를 했다.
“고맙습니다!”
톱스타 이선화가 서정우의 옆에서 자랑했다.
“많이들 고마워해. 정우 씨 아니었으면 어쩔 뻔했어?”
서정우가 자기 일처럼 자랑하는 이선화를 돌아보았다. 이선화는 당당했다.
“왜요? 왜? 뭐요?”
서정우가 피식 웃었다.
“아니요.”
뒤쪽에서 이수현이 끼어들 틈을 노렸다.
그렇게 평화로운 날이 이어졌다. 이쪽만 평화로운 게 아니다. 몬스터와 싸우는 세계에서, 박철우가 말했다.
“도매상 몇 곳에 우리 약을 공급하기로 했다.”
서정우가 물었다.
“약의 출처를 의심하는 사람은 없고?”
박철우가 실실 웃었다.
“경찰은 가내 수공업으로 마약 만드는 놈들을 쫓기도 바빠. 품질 좋은 질병 치료제를 만드는 우리를 경찰이 굳이 의심하겠냐?”
“업계 경쟁자들은?”
“네가 신약 정보를 계속 푸니까 그거 만들기 바빠서, 굳이 우리한테 신경 쓰지 않더라.”
서정우는 쉽게 만들 수 있는 신약 제조법을 유럽사이트에 익명으로 계속 공개하고 있다.
서정우가 말했다.
“이렇게 약을 가져와서 팔다가 자리 잡으면, 저쪽에서 생산 설비도 좀 뜯어올까?”
“그거 좋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