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ility from Parallel Dimensions RAW novel - Chapter 314
315. 갑(甲)
국제 게이트 대책회의 장소는 서울 삼성동에 있는 대규모 행사 시설로 결정됐다. 정부는 그곳의 전시와 회의 시설을 통째로 빌렸다.
시간을 넉넉히 두고 해도 되는 회의가 아니라서 각국 대표단이 서둘러 입국했다. TV 뉴스마다 그 이야기부터 나왔다.
서정우는 회의 당일 대테러 7팀 임시팀장의 자격으로 그곳에 도착했다.
7팀에는 서정우와 백성민 외에도 두 명이 더 배치됐다. 두 사람 다 경기 북부에 열린 첫 게이트 현장에서 같이 싸운 사람들이다.
그들은 서정우가 디나인이라는 건 모른다. 그래도 서정우가 게이트 대책본부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건 안다. 그런 간접 정보조차도 대외비로 관리됐다.
그 두 사람이 서정우에게 인사했다.
“그때는 덕분에 살았습니다.”
“집에 들어가자마자 다리가 풀리더군요.”
“뭘요. 같이 살려고 한 일인데.”
7팀은 다른 대테러 팀들과 같은 제복을 입고 시설 내부를 순찰했다. 국제 게이트 대책회의를 취재하러온 기자 중 한 명이 동료의 팔을 툭 쳤다.
“저기 저 선글라스 낀 보안요원 말이야.”
“보안요원 절반이 선글라스를 꼈는데 누구?”
“저기 저 사람. 서정우 형사 아니야?”
“어? 진짜 서정우네?”
“형사가 어긴 어쩐 일이지?”
동료 기자는 상식적으로 생각했다.
“살인마와 테러리스트 잘 잡기로 유명한 형사잖아. 국제회의에 살인마 잡으러 온 건 아닐 테니까 대테 러 임무로 왔겠지.”
“그래서 복장이 보안요원 복장이구나.”
“대테러 요원으로 서정우 형사까지 투입하다니. 정부가 이번 회의에 힘 빡 줬네.”
기자가 아쉬워했다.
“저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야 하는데 말이야.”
“우린 이미 보안구역 안쪽에 있어. 지금 사진 찍으면 체포된다.”
“카메라는 입구에서 빼앗겨서 찍고 싶어도 못 찍어.”
* * *
서정우는 위장 팀원들과 적당히 순찰하는 척한 후에 팀을 둘로 나눴다. 그는 백성민과 함께 대회의실에 들어가 뒤쪽 벽에 섰다. 거기 있으면 회의가 돌아가는 상황을 직접 볼 수 있다.
게이트 대책본부는 서정우가 이렇게라도 회의에 참석하기를 원했다.
백성민이 말했다.
“정우야. 이 중요하고 유명한, 인류 역사에 길이 남을 회의에서 대테러 임무를 맡았다는 거 말이야. 앞으로 일 년은 소개팅에 써먹을 수 있겠지?”
“그 소리 왜 안 하나 했다.”
오정화 행정관이 서정우에게 다가왔다.
백성민이 활짝 웃었다.
“오 행정관님. 반갑습니다.”
“네. 반가워요.”
오정화가 백성민의 인사를 대충 받은 후에 서정우에게 말했다.
“곧 사람들이 입장할 거예요. 이 자리에 서있는 거로 충분하겠어요?”
“물론입니다.”
“생각 바뀌면 언제든지 말해요.”
“안 바뀝니다.”
오정화가 간 후에 백성민이 말했다.
“오 행정관은 아무래도 나한테 관심이 없는 것 같지? 나도 그 정도 눈치는 있어.”
“형 인연은 이쪽 세계에는 없을 거 같아.”
“너 지금 저주하냐.”
“등가교환이라는 말 알아?”
“알지. 그게 왜?”
“형이 작두 타는 능력을 얻는 대가로 뭘 잃었을까 생각해봤는데, 아무래도 그거 같거든. 연애 능력.”
“내가 작두를 왜 타냐고. 난 무당이 아니… 어? 윤송아 형사다!”
윤송아가 그들을 발견하고 슬그머니 다가왔다.
“아는 사람 만나니까 정말 좋네요.”
백성민이 말했다.
“저 말이군요.”
“서 형사 말인데요.”
서정우가 물었다.
“윤 형사는 여기 어쩐 일입니까?”
“골동품 마약상을 잡을 때 저도 공을 좀 세웠잖아요. 능력을 인정받아서 차출됐죠.”
서정우는 그래서 그녀가 뽑힌 게 아닐 거라고 짐작했다.
‘그 마약상의 배후에 중국 일본 연합이 있었지. 그걸 잡는데 관여했으니까, 대책본부로 끌어들여도 될 지 간을 보나 보다. 오정화 행정관이 손을 썼군.’
서정우가 확인을 위해 물었다.
“윤 형사 임무가?”
윤송아가 방실방실 웃었다.
“전 그냥 돌아다니다가 거수자가 보이면 조사하는 임무예요. 그래서 고정된 자리는 없지만 그래도 진짜신나요. 세계평화를 위한 이 회의에 저도 기여할 수 있을 줄은 몰랐거든요.”
“나중엔 더 신나는 일을 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진짜요?”
“아니면 욕 나오는 일이든지.”
“그게 무슨 말이에요?”
“아닙니다.”
윤송아는 더 물어보지 못했다. 새로운 손님이 찾아왔기 때문이다.
미국 대사가 서정우를 발견하고 다가왔다.
“아. 서정우 형사. 혹시 오늘 회의에서 발….”
서정우가 얼른 미국 대사의 말을 끊었다.
“대테러 지원 왔습니다.”
“아. 그러시군요. 하하하. 대테러.”
서정우가 길게 말하지 않으려 하는 걸 눈치챈 미국 대사가 웃으며 눈인사를 한 후에 앞쪽으로 이동했다. 대사의 수행원들이 그를 따라갔다.
게이트 위원회에서 활동한 국회의원 강현민이 그들의 앞을 지나갔다. 서정우가 말했다.
“강 의원님?”
강현민이 서정우를 뒤늦게 발견하고 활짝 웃었다.
“서정우 형사! 아! 혹시 발….”
“대테러지원입니다.”
“아, 하하. 그렇군요. 대테러 지원. 그 분야로도 서 형사가 세계 최고죠.”
“의원님 요즘 뉴스에 자주 보이시던데요.”
“아. 그것도 다 서 형사 덕분에. 하하.”
강현민은 첫 번째 게이트에서 몬스터 웨이브가 일어나기 전에 게이트 위원회에 합류했다.
국회의장이 자기 계파 의원도 아닌 강현민을 위원회에 보낸 건, 그 일의 심각성을 조금은 눈치했기 때문이다. 국회의장은 그때 정말 믿을만한 의원을 보내야 한다고 판단했다.
강현민은 원래 주요 언론이 일부러 노출을 안 시켜 묻어버리려던 의원이다. 그런데 그가 게이트 위원회에서 활동한 국회의원이라는 게 알려 지면서 상황이 변했다.
이젠 게이트 대책본부에 발을 담근 국회의원이 몇 명 더 생겼지만, 최초의 의원인 강현민이 여전히 제일 유명했다. 그러다 보니 뉴스에도 자주 나왔다.
미국 대사가 그걸 보며 말했다.
“친해 보이는군.”
대외적으로는 대사관 직원으로 알려진 CIA 요원 제임스 커튼이 옆에서 조용히 말했다.
“서정우는 다른 국회의원과는 선을 긋는데 강현민만은 예외더군요.”
“강현민보다 잘나가는 국회의원도 많은데 왜 굳이?”
“강현민도 흔한 타입은 아닙니다. 특히 뇌물이나 특혜 제안이 안 통하는 게 서 형사와 비슷합니다.”
“서정우와 가까운 정치인이라…. 그럼 우리도 강현민과 친하게 지내야겠군.”
서정우가 디나인이라는 건 비밀이다. 그런데 그 비밀이 완벽하게 지켜진 건 아니다.
몇 나라가 그 비밀을 눈치챘다.
미국은 정부와 대책본부, 그리고 국회에 꽂아놓은 빨대를 이용해 그 정보를 손에 넣었다. 다른 나라도 비슷한 방법을 사용했다.
미국 대사와 서정우가 짧게나마 대화하는 걸 본 다른 나라 대사들이 서정우에게 접근해 말을 걸었다. 서정우는 영어가 짧아서 한국말만 썼다. 대신에 대사들이 한국말을 할 줄 아는 직원과 같이 움직였다.
몇 나라 대사가 인사말을 하고 간 후에, 윤송아가 당황해서 물었다.
“저기요. 서 형사. 내가 진짜 이해가 안 가서 물어보는데요.”
“네.”
“강 의원님은 우리나라 국회의원이니까 아는 사이일 수 있죠. 그건 그렇다 쳐요. 그런데 미국 대사에, 러시아 대사에, 중국 대사에, 일본 대사가 왜 서 형사를 찾아와서 말을 걸어요?”
“그냥?”
“지금 날 바보로 아는 거죠?”
“난 저 사람들하고 모르는 사이입니다. 아. 미국 대사는 전에 인사는 잠깐 했군요. 그게 다입니다.”
“아니, 아는 사이든 모르는 사이든 이 상황은 말이 안 되는데….”
백성민이 옆에서 윤송아에게 말했다.
“정우가 원래 외국에서도 유명하잖습니까?”
“그걸 누가 모르나요? FBI 요원이 와서 살인마를 찾는 법을 물어봤으면 이해했을 거예요. 근데 왜 강대 국 대사들이….”
새로운 손님이 서정우를 찾아왔다. 물리학과 기계공학 분야의 권위자인 정기훈 박사였다.
“서 형사! 하하하. 역시 서 형사도 왔군요!”
“정 박사님도 오실 줄 알았습니다.”
정기훈의 딸 제시카도 따라왔다.
“정우 오빠. 안녕?”
“우리가 남매는 아닐 텐데?”
“쳇. 한국 남자들은 오빠라고 부르면 좋아한다던데.”
정기훈이 물었다.
“서 형사. 혹시 오늘 회의에서 설명을….”
“대테러 요원이 그런 걸 할 리가 없지요. 지금 전 대테러 7팀 임시팀장입니다.”
정기훈이 씩 웃었다.
“아하. 그런 거군요. 나중에 술 한 잔 마십시다. 내가 의견을 구할게 좀 있어서. 하하.”
정기훈과 제시카가 간 후에 백성민이 물었다.
“정우야. 저 아름다우신 분은….”
“한국계 미국인 제시카 정. 제시카가 한국에 들어와서 살 리 없으니까, 형이 미국 가서 살 거면 소개해주고.”
그렇게 소개팅을 원하던 백성민이 이번에는 바로 포기했다.
“난 영어울렁증이 있어서 미국은 좀.”
국제 게이트 대책회의가 시작됐다.
회의 전부터 여러 나라가 따로 개별 협상을 했다. 이 회의 후에도 개별 협상은 계속될 예정이다.
그래도 큰 틀은 이 회의에서 결정 하기로 했다.
서정우는 뒤쪽 벽에서서 회의를 참관했다. 통역의 목소리가 이어폰을 통해 들렸다.
한국 정부의 과기부장관이 나와 균열 소멸장치의 설계도를 공개한 이유를 말할 때는 박수를 받았다. 회의가 평화롭게 진행된 건 딱 거기까지였다.
그 후부터는 말싸움 대잔치가 열렸다.
가장 큰 싸움은 균열 소멸장치의 물량 분배 이야기가 나왔을 때 터졌다.
소멸장치를 구하지 못한 나라 특사가 외쳤다.
“돈이 있어도 못 산단 말입니다!”
현재 균열 소멸장치를 만들 수 있는 회사는 전 세계에 열 곳뿐이다. 그 장치의 연료나 마찬가지인 몬스터 스톤을 확보한 나라는 게이트가 열려 몬스터와 전쟁을 치른 곳뿐이다.
제조 회사와 몬스터 스톤 중 하나라도 있는 나라는 사정이 좀 나은데, 둘 다 없는 나라는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둘 다 가진 나라의 특사가 발언권을 얻고 말했다.
“최선을 다해 균열 소멸장치를 생산하고 있지만, 우리 국민을 몬스터로부터 지키는데 쓸 물량도 모자랍니다.”
“어디 우리 폭격기로부터도 지켜보시지!”
“지금 그거 선전포고냐!”
“아직은 아니다! 아직은!”
생산된 균열 소멸장치를 내수용으로만 쓰는 나라는 없다. 그러면 정말 전쟁이 터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부는 수출한다.
문제는 가격이다.
“더 좋은 조건을 제안하는 나라부터 물량을 공급하는 건, 그 장비를 생산하는 기업의 권리입니다. 그건 국가가 막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라고 부추기고 있다던데!”
그런 식의 항의는 그나마 돈이 많거나 군사력이 강한 나라나 할 수 있다.
돈도 없고 군사력도 약한 나라에서 온 특사가 발언권을 얻어 말했다.
“장비의 가격이 자고 일어날 때마다, 아니, 시간 단위로 폭등하고 있습니다. 우리 나라의 예산으로는 그 비싼 장비를 살 수 없습니다. 부족한 돈은 차관을 얻어서 해결하라고 하더군요. 차관은 공짜가 아닙니다. 차관을 얻으려면 이자는 물론이고 나라의 권리까지 내놓아야 합니다. 어제 협상한 곳에서는 광산 채굴권을 내놓으라더군요.”
특사가 울분을 참지 못하고 외쳤다.
“우리보고 몬스터 대신에 자원 사냥꾼들의 침략을 감수하라는 겁니까!”
서정우가 오정화 행정관 쪽으로 자리를 옮겼다.
“오 행정관님.”
“아. 서 형사. 회의를 실제로 보니까 어때요?”
“개판이네요.”
“네? 아, 네. 좀 그런 면이 있죠.”
“균열 소멸장치의 특허권에 내지 분도 있다고 했지요? 그 지분이 발언권을 가질 만큼 큽니까?”
오정화가 서정우의 귓가에 속삭였다.
“물론이죠. 서 형사에게 제일 큰 발언권이 있어요. 원천 데이터를 제공한 것도 서 형사고, BH 테크도 서 형사 편이잖아요.”
“그럼 지금 균열 소멸장치를 만드는 기업 열 곳 모두에게, 물건값 그 따위로 받거나 손님 가려서 받으면 생산 라이센스 회수하겠다고 통보하세요.”
“네?”
“오늘 당장.”
“하지만 그러면 필요한 물량을 만들어낼 수가….”
“그놈들이 인류의 존립을 인질로 잡고 날뛰는데 그걸 왜 두고 봅니까? 다른 방법을 찾아야지.”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지금 방식은 잘못됐어요. 그런데 생산 라이센스를 회수해도 그 회사들은 균열 소멸장치를 계속 만들 거예요. 국민을 지키기 위해서 어쩔 수 없다고 하겠죠.
“압니다. 하지 말란다고 안 할 놈들이면 지금 저따위 짓을 안 할 테니까. 그러니까 내 말을 확실히 전 해요.”
오정화가 침을 꼴깍 삼켰다.
“뭐라고 전할까요?”
“그런 나라는 앞으로 게이트 관련 기술과 몬스터 정보 제공 대상에서 배제하겠다고. 국물도 없을 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