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ility from Parallel Dimensions RAW novel - Chapter 83
83. 흑가면
강릉 비행기지 사령관이 수송기에서 내린 서정우에게 말했다.
“윤 중령 부탁으로 수송기에 자리 하나 만들어준 게 이렇게 크게 돌아올 줄은 몰랐습니다. 앞으로 우리 비행기지에 오시면 일본행 자리 하나 정도는 어떻게든 만들어드리겠습니다.”
“고맙습니다. 그런데 상황 수습으로 바쁘실 텐데 뭘 마중까지.”
“아무리 바빠도 인사는 해야지요. 그런데 혹시.”
사령관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소속이…….”
“민간인입니다.”
“아. 군 소속이면 어떻게든 우리 기지로 끌어올까 싶었는데. 아쉽습니다. 각성을 일찍 했으면 제대할 때 많이들 말렸겠습니다.”
“막을 때마다 멱살 좀 잡고 흔들었더니 수작 부리는 사람이 없어지더군요.”
“아. 그, 그렇습니까?”
비행기지 사령관은 재입대 제안을 해볼까 하던 생각을 곱게 접었다.
서정우가 물었다.
“그런데 어떻게 된 겁니까? 이 기지는 방어력이 만만치 않다고 들었는데.”
“바다에서 돌발 게이트가 열렸는데 거기서 비행 몬스터들이 튀어나와 대비할 틈이 없었습니다. 기습을 당한 거지요. 거기다 보스 몬스터인 와이번의 전자기 교란 능력이 통상적인 수준보다 훨씬 강력했습니다. 처음에는 주술 교란에 당한 줄 알았습니다.”
서정우가 주변을 돌아보았다. 기지 곳곳에서 연기가 나고 있었다. 부서진 방어 시설도 많았다. 여기저기에 불타거나 찢어진 몬스터의 사체가 굴러다녔다.
몬스터는 사냥한 사람에게 기본 권리가 있다. 그런데 이번 경우는 군 비행기를 타고 군 작전에 참여해 싸운 것이라 계산이 좀 복잡했다.
‘숫자만 많지 멀쩡한 사체가 거의 없어서 돈은 얼마 안 되겠네. 와이번도 바다에 떨어졌고. 내 몫은 알아서 계산해 주겠지.’
“피해는 어느 정도입니까?”
“보다시피 많이 부서지고 많이 다쳤습니다. 중상자는 모든 운송수단을 동원해 후송 중입니다. 그래도 보스 몬스터를 일찍 잡은 덕분에 전사자는 없습니다. 요원님 덕분입니다.”
이쪽 세계의 의사들은 부상자 치료 능력이 뛰어나다. 몬스터의 특정 성분을 섞어 만든 약도 상처 치료에 굉장히 잘 듣는다.
“요원이 아니라 민간인이라니까요. 어쨌든 다행입니다.”
“혹시 다른 거 뭐 필요한 거 있으면 다 말씀하십시오. 내가 들어줄 수 있는 건 다 들어드리겠습니다.”
서정우는 기지에 비축된 레드 포션이 있으면 하나만 팔라고 하고 싶다. 그런데 차마 그런 요구를 할 수가 없다. 레드 포션의 기지 보유분이 몇 개든, 오늘 다 쓸 게 뻔하다.
‘이러니 레드 포션이 매물이 없지.’
기적의 상처 치료제라고 불리는 레드 포션에는 특정 몬스터의 희귀 성분이 대량으로 들어간다. 재료가 워낙 귀해서 생산량이 적은데, 만드는 족족 이렇게 소모되어 버린다.
“그럼 하룻밤 잠만 재워 주시죠.”
저쪽 세계로 넘어가려면 어차피 하루가 지나야 한다.
기지 사령관의 얼굴이 더 밝아졌다.
“아. 그래 주시겠습니까? 하하하. 이런 말 해서 죄송하지만, 혹시 잔적 소탕 도중에 버거운 놈이 발견되면 좀 도와주십시오.”
“물론이죠. 아. 게이트는 어떻게 하실 겁니까?”
“해군의 장갑 돌격함들이 오고 있습니다. 보스 몬스터를 잡았으니까 나머지는 해군의 힘으로 충분히 해결 가능합니다.”
바다 위의 게이트 근처로는 공간 왜곡 때문에 커다란 전함은 못 들어간다. 장갑판을 두른 고속정 크기의 배들이 들어가서 처리해야 한다.
* * *
서정우는 관사의 작은 방 하나를 얻었다. 더 좋은 관사도 있지만 그런 곳은 부상자가 써야 한다. 기지 사령관이 이 작은 방을 내준 것도 나름대로 크게 신경 쓴 것이다.
서정우는 그곳에서 간단히 씻고 미리 챙겨온 저쪽 세계의 간편식을 먹은 후에 옷과 장비를 도로 챙겼다.
“막사 빈자리나 달라고 해야겠다.”
그가 그 방을 나가려고 할 때 전화가 걸려왔다. 각성자 특수부대의 윤현식 중령이었다.
“어. 형.”
– 야. 전화 되는 거 보니까 강릉 비행기지에 도착했나 보다?
“왜? 일본에 가서 안 돌아올까 봐?”
– 에이. 나야 널 믿었지. 어쨌든 내 덕에 비행기 탔으니까, 참관인으로 오면 진짜 적극적인 침투작전 한 번 하자.
“적극적? 무슨 작전인데?”
– 어……. 게이트 진입?
서정우가 인상을 확 썼다.
“누울 자리를 보고 발을 뻗어야 하는데, 죽을 자리에다가 뻗네? 단체로 미쳤어? 어떤 또라이 생각이야?
– 야. 들어간다는 게 아니야. 게이트 진입에 대한 이론이 새로 나와서 검증 차원에서 간만 보는 거야. 새 이론으로 만든 측정장비 한 번만 돌려보고 바로 빠지는 거라니까? 그리고 이거 다국적 합동작전이다?
“수고들 하셔. 무덤에 술은 뿌려줄게. 다국적이니까 양주도 준비해야겠네. 내가 형 무덤엔 꼭 진짜 양주 뿌릴게.”
– 야. 내가 너 그 비행기에 태워주느라고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아?
“그것도 정산 다시 해야 할 것 같은데?”
– 그게 무슨 소리…….
전화기 너머에서 갑자기 북적거리는 소리가 났다. 당황한 윤현식이 다른 사람과 이야기하는 소리도 작게 들렸다.
잠시 후에 윤현식이 말했다.
– 어. 정우야.
“여기 소식 이제 들어갔나 보네? 그럼 이제 정산 다시 해야지?”
– 아니야! 나는 아무 소식도 못 들었어! 약속 꼭 지켜라. 참관인으로 꼭 와야 돼. 이미 너 온다고 보고도 다 했어! 야. 그리고 너 실력이 예전보다 더 좋아진 거 같아서 되게 기대된다. 우리 진짜 살아서 빠져나올 수 있겠어.
“어허. 이거 왜 이러실까?”
– 어? 어? 전화가 왜 이렇지? 꼭 끊어질 것 같…….
전화가 진짜 끊어졌다.
“아오. 이 형이 진짜.”
강릉 비행기지를 습격한 몬스터들은 다 쓸어 버렸지만, 이곳으로 오지 않은 놈 몇 마리가 아직 남았다. 그놈들은 공군 전투기와 육군 보병이 출동해서 처리했다.
비행기지를 방어하는 부대는 혹시 모를 습격을 대비해 비상경계 태세를 유지했다.
서정우는 방을 부상자에게 넘겨주고 기지 내의 천막 막사로 자리를 옮겼다. 기지 사령관은 그에게 10인용 천막 막사 하나를 통째로 내주었다.
그는 그곳에 있는 야전 침대에 드러누웠다.
잠시 후에 전화가 걸려왔다. 이선화였다.
“어. 왜?”
– 왜 아직도 안 오는데?
“넌 또 왔냐?”
– 반갑지? 나 보고 싶으면 얼른 와.
“너무 자주 온다고 불평하는 소리라는 거 알잖아?”
– 나는 몰라요. 아무것도 몰라요. 바보예요. 그래서 언제 오는데?
“내일.”
– 아. 왜? 내일은 나 오디션 보러 가는데!
“잘됐네. 꼭 붙어라. 그 오디션. 그래야 스케줄이 바빠서 못 오지.”
– 후훗. 지금 내가 너무 논다고 걱정해주는 거야?
실제로 걱정돼서 한 말이다. 이선화가 얼마 전에 노렸던 조연 자리는 결국 스킬을 가진 배우가 차지했다. 그녀는 요즘 서정우의 집에 거의 매일 찾아온다. 촬영 중이라면 그럴 수가 없다.
“네가 너무 많이 먹으니까 걱정하는 거야. 식량 저장고 텅 빌까 봐.”
– 웃겨. 식량이 점점 늘어나던데?
갑자기 텐트 입구가 쓱 열리면서 여군이 들어왔다.
“아. 통화 중이시군요.”
이선화의 목소리가 날카로워졌다.
– 왜 여자 목소리가 들리지? 어떤 년이야!
서정우가 물었다.
“무슨 일이십니까?”
“쳇. 이미 임자가 있……. 아, 아니, 그게 아니라, 사령관님께서 식당을 안내해 드리라고 하셔서요.”
“아. 괜찮습니다. 전 이미 따로 먹어서.”
여군을 내보낸 후에 서정우가 전화기에 대고 말했다.
“들렸지?”
– 난 오빠 믿었어. 알지?
“알겠냐?”
* * *
서정우는 강릉 비행기지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이튿날 출발했다.
돌아갈 때는 올 때처럼 산을 타지 않았다. 기지에서 헬리콥터를 한 대 내줘서 편하고 빠르게 원래 목적지도 이동했다.
헬리콥터 조종사가 공터에 착륙한 후에 물었다.
“여기는 아무것도 없는데 왜…….”
그곳에는 폐허가 된 호텔 잔해만 남아있었다.
“수련하러 왔습니다.”
“아아. 이렇게 험한 곳에서 수련하셔서 스킬 숙련도를 높이신 거군요. 대단하십니다.”
헬리콥터 조종사는 경례를 하고 돌아갔다.
서정우는 저쪽 세계에서 넘어올 때 사용한 바로 그 장소로 이동했다.
그곳에서 평행차원 텔레포트 스킬을 사용했다.
숲의 풍경은 그리 바뀌지 않았다. 다른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그는 바로 산에서 내려갔다. 내려갈 땐 올라올 때보다 빠르게 움직였다. 겨우 몇 분 만에 산을 빠져나가자 멀쩡한 호텔 입구가 나타났다.
“그 산업스파이 놈들은 잔당까지 다 쓸어버렸으니까 이제 뒤통수 맞을 일은 없겠지.”
그는 저쪽 세계에서 하루를 보냈다. 그런데 이쪽 세계에서만 보면, 그가 일본에서 국제 산업스파이 잔당의 소굴에 소이탄을 터트린 때부터 10분밖에 지나지 않았다.
서정우가 호텔로 들어갔다. 일부러 CCTV가 찍는 곳을 통해 들어간 후에, 호텔 데스크의 직원에게 걸어갔다.
직원이 그를 알아보고 웃었다.
“어제 산행은 어떠셨어요?”
서정우가 씩 웃었다.
“괜히 산에 올라갔다가 고생만 했습니다. 그냥 편하게 쉴걸. 방 있지요?”
* * *
이튿날, 쌍둥이가 이용하는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판에 일본 소식이 올라왔다.
– 일본에는 만화, 영화, 애니메이션을 가리지 않고 히어로 자료를 정리해 제공하는 인터넷 사이트가 있습니다. 꽤 유명한 사이트입니다. 그런데 그 사이트가 앞으로는 현실 세계의 히어로를 메인으로 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그 이유는, 운영자가 흑가면을 쓴 히어로를 직접 만났기 때문이라더군요.
– 흑가면? 그런 히어로도 있습니까?
– 운영자가 무려 다섯 명이나 되는 강도에게 습격을 당했는데, 흑가면을 쓴 사람이 갑자기 나타나서 그놈들을 물리치고 구해줬답니다.
히어로 사이트 운영자 모모코는 서정우를 경찰에 신고하지 않았다. 그녀는 처음에는 그 일을 비밀로 하려고 했다.
그런데 일본 경찰이 그녀를 찾아냈다.
일본 경찰은 서정우가 불태워버린 건물을 조사하다가 멀지 않은 곳에서 기절한 양아치 다섯 놈을 찾아냈다. 경찰은 그들을 깨워 상황을 파악한 후에 그녀까지 찾아내 조사했다. 두 사건이 관계가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모모코는 경찰이 알아냈으니 비밀로 하는 건 의미가 없다고 판단하고 그 일을 인터넷에 공개했다.
그녀는 유명한 인터넷 사이트 운영자다. 그곳에서 대놓고 밀어주는 바람에 흑가면에 대한 이야기가 일본에 빠르게 퍼졌다.
– 그 흑가면이 일본 정통 히어로라고 주장하는 사람까지 생겼습니다.
– 훗. 흑가면 따위. 우리나라에는 더 단단한 철가면이 있습니다. 철가면은 그냥 강도가 아니라 은행강도를 잡았습니다. 그것도 총으로 쏴서. 문화재 밀수업자도 잡았고요.
– 철가면은 히어로가 아니라 괴도잖아요. 괴도 철가면.
– 일본 흑가면과 괴도 철가면이 싸우면 누가 이길까요?
– 서정우가 이깁니다.
– 여기서 서정우가 왜 나옵니까?
그런데 흑가면과 철가면은 별명부터 비슷하다.
– 혹시 일본 흑가면과 괴도 철가면이 같은 사람 아닐까요?
– 그럼 출입국 관리 기록을 찾아보면 괴도 철가면이 누군지 알 수 있겠네요. 최근 출국자 명단만 뒤져봐도 될 것 같은데. 배 타고 밀항한 게 아니라면요.
총격전과 방화가 겹친 사건이라 일본 경찰은 특별 수사팀을 꾸려 사건을 조사했다.
네 발이나 터트린 소이탄의 위력이 너무 강해서 건물 잔해에서는 쓸만한 정보가 나오지 않았다. 단서가 될만한 건 다 타버렸기 때문이다.
그 전날 밤에 근처에 나타난 흑가면은 당연히 용의선상에 올랐다.
그런데 경찰이 아무리 조사해도 흑가면에 대한 단서를 찾을 수가 없었다.
서정우는 평행차원을 이용해 목표 지점 근처 산으로 바로 이동했다. 당연히 어떠한 교통수단도 이용하지 않았다. 현장 근처 CCTV에도 찍히지 않았다.
그가 유일하게 모습을 드러낸 건 양아치 다섯 놈을 때려잡고 모모코를 구해줬을 때뿐이다.
일본 경찰은 흑가면이 그 건물을 불태운 사람인지조차 확신하지 못했다.
CIA 일본 지부에도 비상이 걸렸다. 그들은 원래 국제 산업스파이 조직의 잔당을 상대로 감시 및 도청 작전을 준비하던 중이다. 그런데 조사 대상이 갑자기 소멸했다.
CIA의 한국 담당 요원 제임스 커튼은 심각했다.
‘그놈들이 숨어 있던 건물에 불이 나? 잔당은 모두 사망하고?’
제임스는 그 정보를 입수하자마자 바짝 긴장했다.
‘내가 서정우에게 그 주소를 가르쳐줬는데.’
서정우가 먼저 그에게 그놈들에 대해 물었다. 제임스는 서정우에게 빚을 지운다는 생각으로 그 주소를 가르쳐주었다.
그런데 정확히 그 주소의 건물이 날아갔다.
“설마 이걸 서정우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