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evil RAW novel - Chapter 192
193화. 비밀(秘密)
이번 공격에서도 천마의 방해로 실패했다.
한숨 소리가 허공에서 들리다가 사라지고 말았다.
천마는 사방을 살펴보지만 보이는 것이 없었다.
역시 성한 바람에 구름만 물결 칠뿐이다.
“제기랄 놈!”
잔상법술로 사방을 훑어봤다.
여지없었다.
성난 물결이 일고 있는 수중의 해골이 보였다.
이상한 괴어 들이 비상하고 있었다.
허공에선 혈조들이 발톱으로 낚아 올리는 장면만 성했다.
그리고 파천도의 칼날이 비쳤다가 사라졌다.
난쟁이가 펄쩍 뛰어오르자 얼른 눈을 감아버렸다.
“에―효!”
이번에는 눈길을 거두고 귀를 쫑긋한다.
코도 벌름거리면서 사방을 경계했다.
코로는 세상의 온갖 잡냄새가 진동했다.
귀에 들리는 것은 죽어가는 비음 신음만 들릴 뿐이었다.
그런데 어디서 많이 듣던 신음이라 눈만 껌벅였다.
다시금 귀를 기울였다.
그러다가 안색이 싹 변하고 말았다.
“마의존애의 신음이 분명한데 어디가 아픈가?”
눈앞에 그녀의 삼삼한 벽안의 눈동자가 떠올랐다.
왠지 몰랐다.
뭔가가 아쉽다.
가슴에 저림이 남겨져 싱숭생숭했다.
나중에는 미련만 한 말이나 쌓였다.
“제기랄!”
귓속이 이상할까 싶어서 다시 심기를 거둬드렸다.
이번엔 가슴 한구석이 찌르르 울렸다.
겹겹으로 울림이 찐했다.
하나는 아직 멀고 가깝게는 지척이었다.
모골이 곤두서지 않고 짧은 울림이 전해졌다.
최소한 적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바람이 성한 잠시 뒤였다.
누군가가 바위 위로 불쑥 솟구쳐 올라왔다.
뜻밖에 추풍이었다.
멋쩍은 듯이 술과 안주를 들고 흔들고 있었다.
“허허! 군주께서 이곳에 혼자 계신 것도 모르고.”
추풍이 천마에게 다가섰다.
“군주를 찾다가 면회가 금지된 사실을 알고 그냥 돌아갈까 슬쩍 올라왔더니 과연 여기에 계셨군요.”
천마가 반가워 벌떡 일어나 앉았다.
“히히히! 추풍 형! 이게 얼마 만이오?”
천마가 반가워하며 주둥이가 찢어지도록 웃었다.
그의 손에 들린 술병에 그만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아이고! 뭐! 이런 것을 다 가지고 오셨소!”
냉큼 술병과 통닭을 받아 들었다.
이어서 킁킁대며 냄새를 맡았다.
추풍의 얼굴과 몸뚱이를 씹듯이 냄새를 맡았다.
심지어 추풍의 독특한 검기와 그림자까지 훑었다.
눈동자까지 까뒤집기를 멈추지 않았다.
추풍은 천마의 행위에 얼굴이 일그러지고 말았다.
“아니 왜?”
“조금 전에 그놈과 싸웠소.”
“그놈이라 하시면 바로 골기란 괴인을…….”
천마가 고개를 끄덕여 보이고는 맛있게 먹기 시작했다.
“쩝쩝! 추풍 형이 아니었으면 굶어서 죽었을 것이오.”
추풍은 웃음을 모르는 자였다.
소싯적 과거의 일이었다.
부친과 오랜 별거 끝에 만났을 때였다.
반가워 웃었다가 혼난 뒤로 웃음을 잃었던 그였다.
모름지기 검수란 반가움까지도 통제해야 한다고 배웠다.
남이 자신에 대해서 모르면 모를수록 좋았다.
상대를 속이면 속일수록 이익이 많았다.
위장해야 한다고 배웠기에 웃음을 잃었던 세월이다.
그런데 지금은 아니다.
멍청한 녀석만 만나면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참으로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사왕부에 오신다고 큰소리를 치셨는데 종무소식이라…. 이렇게 만나러 왔더니 감옥 생활을 하고 계셨구려!”
추풍은 사왕부에 있었던 살인 이야기를 자세히 들려줬다.
“신비한 놈이 온다는 정보를 들었지요.
눈들을 빤히 뜬 상태에서 살인이 터졌고요.
아무래도 잡기는 틀린 것 같습니다.”
“히히히! 쩝쩝! 그게 뭐! 그렇게 신비하다고 야단이시오.”
천마가 술과 안주를 마시고 먹으며 피식 웃었다.
오히려 추풍이 얼떨떨해졌다.
“어허! 놈과 한바탕 싸웠더니 맛이 좋다. 쩝쩝!”
소매로 입술을 닦았다.
“군주께선 범인이 어떻게 사라졌는지 아신단 말씀이오?”
“그놈의 수법은 뻔합니다.”
추풍은 어이가 없어 웃을 뿐이었다.
멍청한 바보 같은 녀석이 또 무슨 허풍을 떨까 싶었다.
눈을 동그랗게 뜨는데 그는 천연덕스럽다.
눈으로 하늘을 가리키고 있었다.
“저―기!”
추풍이 쳐다보니 뭉게구름만 떠 갈 뿐이다.
이해할 수가 없었다.
“추풍 형은 촛대 바위를 단숨에 뛰어오르지 않았소?”
추풍이 머리를 끄떡였다.
“그거야! 소제의 주종이 경공술이라 그렇지요.”
경공술은 천하의 최고라고 자부하고 장담하는 그였다.
“그놈도 마찬가지로 단숨에 뛰쳐나왔다면 누가 알겠소?”
천마의 말에 추풍은 피식 웃었다.
“그건 불가능한 일이오. 외곽 경비대에는 청홍의 금군이 지키고 있었소. 그것만 해도 장장 오십여 장 거리요.”
추풍이 열을 올리며 말했다.
“거기다가 인공 호수가 삼십여 장쯤 됩니다. 합쳐서 팔십여 장에 달하지요. 그리고 장원의 초소에서 문까지 이십여 장이 됩니다. 아무리 경공술의 귀신 할아비라도 어림도 없습니다. 백여 장을 단숨에 날 수는 없는 일이란 말이외다.”
추풍의 강한 부정에도 천마는 웃기만 했다.
“저길 보시오. 지금 성안에서 뭘 하고 있는지 보이시오?”
추풍이 천마가 가리키는 곳을 쳐다봤다.
구름 곁 멀리서다.
성채의 호상(虎狀)이 희미하게나마 보였다.
가물거리며 뭔가가 날고 있는 장면이 눈에 띄었다.
“사람은 날지 못해도 새는 얼마든지 날 수 있지요.”
천마가 술을 마시고는 부언했다.
“나라면 비둘기를 잡고도 백여 장쯤은 날 수 있지요?”
추풍은 흠칫 놀랐다.
자신이라면 그런 정도는 능히 날 수 있다고 생각은 했다.
그렇다면 상대는 허공으로 침입해 들어 왔다는 뜻이다.
충청이면 당성에게 발각을 당하자 도망쳤다는 뜻이었다.
게다가 뒤늦게 타종이 울렸다.
사왕부가 살인자에게 촉각을 세웠다.
그래서 밤하늘을 보지 못했을 것이라고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발견하지 못했다고 해도 날갯짓은 들었을 것이다.
살수의 전문가인 촉성의 오대 살수가 지키고 봤다.
하나같이 최절정의 고수들이었다.
십 장 안에 개미 새끼 하나라도 놓치지 않았을 터였다.
“범인이 새를 타고 사왕부에 침입했단 말씀이시오?”
천마가 머리를 흔들며 피식 웃는다.
“추풍 형은 저기 보이는 것이 새라고 생각되시오?”
추풍이 쳐다봐도 뭔지 구분이 되질 않는다.
그러면 저것이 뭘까?
“군주께선 저것이 자세히 보이시오?”
천마가 고기를 씹으면서 술병을 목구멍에 처박고 마셨다.
“꿀꺽꿀꺽! 쩝쩝! 냠냠!”
마시고 삼키는 소리에 머리가 흔들릴 정도였다.
얼마나 맛있게 먹는지 추풍은 군침을 삼켰다.
“꿀꺽!”
손가락까지 쪽쪽 빨아대는데 손톱이 녹색으로 빛났다.
‘음! 이상하다. 어째서 손가락이 저렇게 녹청색일까?’
추풍은 궁금했지만 묻지 않았다.
“손톱이 이상하지요?”
“네.”
천마는 녹용도 일개와 만났던 이야기를 들려줬다.
“네―에? 녹용도 일개를 만났단 말씀이시오?”
“헤헤, 냠냠, 그런 다음에 시력도 좋아졌지요.”
천마가 음식을 씹으면서 턱주가리로 가리켰다.
“헤헤! 추풍 형께서도 어렸을 때 저것을 타봤을 것이오.”
추풍은 밤하늘을 쳐다보다가 신음을 터뜨렸다.
자신의 심장이 벌렁거림을 느끼고 나서였다.
그림자가 뭔지를 깨달았다.
그랬다.
해마다 이맘때면 벌어지는 행사였다.
물에는 배를 띄우고 하늘에는 연을 날렸다.
고공낙하 신법.
그냥 연만 날리는 것이 아니었다.
연을 타고 올라가서 상대를 떨어뜨리는 전통 놀이었다.
바람에 연을 타고 날면서 경공술을 연마하는 것이다.
경공술에 조예가 깊은 사람이라면 틀림없다.
바람만 불어도 수백 장까지 날 수 있는 것이 보통이었다.
이것이 천마교의 지방 놀이였다.
하늘을 날고 있는 연은 경비대에서도 봤을 것이다.
거기에 대해서 신경을 쓰지 않았기 때문일 터였다.
범인은 능히 쉽게 침입했다.
사건을 저지르고 연을 타고 도망쳤을 것이 분명하다.
추풍은 순식간에 그 자리에서 사라지고 없었다.
“군주! 고맙소이다. 다음번에는 용주로 대접해 드리리다.”
추풍은 감사하는 소리만 남겨졌을 뿐이었다.
“허허허! 용주라 그것 좋지요.”
천마가 대소를 터뜨리며 술을 마시는 순간이었다.
“군주께선 천비가 용주를 구한 것을 어떻게 아셨지요?”
천비가 어느새 등장해 방글방글 웃고 있었다.
천마의 눈이 금방 밝게 떠졌다.
“우―헤헤헤! 용주를 갖고 왔단 말이지요?”
천비가 무릎을 꿇고서 용주를 한 잔 가득히 따라 올렸다.
“군주님! 새해에는 강녕하시고 소원 성취하십시오.”
천마가 눈시울만 붉혔다.
“히히! 고맙다.”
* * *
오동으로 변신한 소귀는 꾀돌이다.
한마디도 말해서 잔머리를 굴리는데 천재였다.
그는 함정을 만들어 놓고 누군가가 걸리기를 기다렸다.
아침부터 경계를 강화하면서 찰나의 순간을 노렸다.
그의 목표는 금위군 군주인 소주를 죽이는 일이었다.
그를 죽이려고 귀문관에 들어서 살인 수법을 배웠다.
살인 수법 중에서 최고는 고육지계였다.
자신의 몸이 조각나도 그놈만큼은 반드시 죽이고 싶었다.
이유는 없었다.
단지 소주란 그놈이 미워서였다.
그를 죽이려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으나 실패했다.
두 번 다시는 그런 일을 반복하고 싶지가 않았다.
고육지계를 펼치는 중이라 이번만큼은 성공하고 싶었다.
“네놈은 반드시 내 손에 죽을 것이란 말이다.”
오동으로 변신한 소귀는 이빨을 갈아붙이고 있었다.
* * *
용쟁호투!
호각지세!
결투의 묘미는 여기에 있다.
싸움은 일방적으로 끝나면 재미가 없을 터였다.
아슬아슬하게 위기를 넘기는 짜릿한 승부가 관건이다.
이긴다는 희망이 엿보여야만 싸움에 목숨을 걸 것이었다.
하수라 할지라도 희망이 보이면 용기를 얻는 법이다.
그런데…….
지금처럼 비참할 정도로 몰리면 그건 싸움이 아니다.
개죽음일 뿐이다.
애초부터 실력의 차이가 확연하게 났으면 모른다.
백기를 들었으면 낭패는 없었을 터였다.
상대가 강해도 이길 수 있겠다 싶어서 과감하게 덤볐다.
그런데 이게 실수였다.
상대가 강해도 너무 강했다.
너무 벅찬 상대였다.
한 치의 빈틈도 없었다.
섬뜩한 살기를 견딜 재간이 없었다.
수비만 거듭하다가 상대의 검에 어깨를 찔리고 말았다.
패배는 고사하고 수치스러웠다.
정확히 딱 십 초 만에 패하고 말았다.
놀람에 앞서 분해 죽을 지경이었다.
그것도 상대가 봐줬기에 어깨에 상처를 입었을 뿐이었다.
독한 마음을 먹고 찔렀다면 목에 구멍이 났을 일이었다.
“흥! 네놈이 감히 여인을 능욕하고 시도했다. 그것도 모자라서 암살하려고 들였다!
금군의 명예를 걸고 다시금 덤벼보란 말이다.”
비참하게 패배를 당한 자는 금군의 대장인 소귀다.
그는 귀문관 출신이며 거기서 살인 수업을 받았다.
무림에 살수로 명함을 내밀 정도는 되었다.
그래서다.
과감하게 오동으로 변신했다.
그의 목표는 금위군의 군주인 소주를 죽이는 일이었다.
그런데 목적을 이루기도 전에 패했다.
그것도 여인에게 패해서 어안이 벙벙했다.
소귀의 몸에서 피가 솟구쳤다.
벽사신검을 뽑아서 다시금 덤볐지만 허사였다.
패배가 결과를 말해줬다.
그는 수치스러워할 말이 없었다.
소귀는 한숨과 함께 고개를 푹 숙였다.
절대악인
— 정원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