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Return RAW novel - Chapter (182)
뭔가를 해낼 수 있다는 생각은 버려야지. 나는 앞으로도 솔직히 그를 대할 거다. 아흔아홉 개의 진실을 다 보여줄 거야.” “그럼 나머지 한 개의 거짓은 뭡니까?” “왜 거짓이라고 생각해?” “네?” “아직은 말해주지 않은 진실일 수도 있지.” “어떤 진실요?” 나는 창밖 저 멀리 보이는 무림맹 건물을 보며 말했다. “나중에, 아주 나중에 알게 될 거다.” * * * 다음 날 새벽, 잠에서 깼다. 천마호신공이 나를 깨운 것이다. 객방을 나와 일 층으로 내려가니 문 닫은 일 층 객잔에서 누군가 혼자 앉아 있었다. 아무런 기도를 드러내지 않았지만, 그는 어둠 속의 윤곽만으로도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등을 돌린 채 앉아만 있는 모습만으로도 나를 긴장하게 만드는, 그는 바로 무림맹주 진패천이었다. “오셨습니까?” 그의 맞은편에 앉았다. 주위에 천룡소호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멀지 않고 곳곳에 은신한 채 주위를 철통처럼 지키고 있을 것이다. 진패천이 불쑥 아버지 이야기를 꺼냈다. “살면서 자네 부친을 두 번 정도 만난 적이 있네.” 나는 묵묵히 그의 이야기를 들었다. “만날 때마다 더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사람이었지. 나를 멈추지 않게 한 것은 자네 부친이었네.” 맹주의 마음이 어떤 마음인지 알 것 같았다. 아버지는 그 누구보다 강해지기를 열망하는 사람이었으니까. “한동안 잊고 지냈는데, 어제 자네가 꺼져 가고 있던 내 마음의 불씨를 되살렸네.” 자신의 기도를 받아낸 내게 그만큼 강렬한 인상을 받았다는 의미였다. 젊은 내가 이 정도면 나중에는 어떻겠는가? 이런 위기감이 들었을 것이다. “좋아, 이번 일은 자네에게 맡기겠네.” 이 결정이 내려지기 전까지 고민을 많이 했을 것이다. 과연 그는 누구와 의논했을까? 그가 가장 믿고 있는 사람은 누구였을까? “단, 한 가지 조건이 있네.” “말씀하십시오.” “이후의 모든 진행 과정을 내가 알아야겠네. 이 시간부터 자네에게 내 사람이 한 명 붙을 거야. 그 사람이 자네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볼 거네.” 지금도 우리 주위에 누군가 은신해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는 아버지의 호위인 휘 만큼이나 은신술의 고수였다. 물론, 나는 그를 감지하고 있다는 것을 드러내지 않았다. 무림맹주가 이번 일을 내게 맡기는 것은 혹시나 있을지 모를 배신자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나를 시험하려는 마음도 있었다. 차기 교주가 될 수도 있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아보려는 마음에서 비롯된, 결국 나는 마교주와 무림맹주 모두에게 시험을 치르게 되었다. “대신 저도 조건이 있습니다.” “뭔가?” “천명회주는 저희 쪽에서 처리합니다. 대신 최대한 은밀하게 처리하고 돌아가겠습니다.” 진패천이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딱 할 일만 하고 가게.” 나는 진패천의 걱정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진하령의 마음을 흔들지 말라는 뜻이었다. “함께 온 수하가 저를 놀립니다. 운명적인 사랑의 끝은 항상 비극이라고요. 한데 요즘 젊은 사람들은 비극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건 저뿐만 아니라 손녀분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나는 진패천이 왜 이렇게 걱정하는지 잘 알고 있다. 아들이 며느리와 함께 비극적인 최후를 맞았기 때문에, 손녀만큼은 남녀문제로 인한 비극에 휩싸이지 않기를 바라기 때문이었다. “때론 비극은 가까운 곳에 있을 수도 있습니다.” “무슨 뜻인가?” “손녀분이 그 많은 사람 앞에서 저와 사귄다고 말한 것은 단지 저에 대한 호감이나 호의 때문만은 아니었을 겁니다.” “자넬 죽이려 한다는 그자 때문이란 말인가?” “진 소저는 맹주님을 닮았습니다. 결코 불의를 참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더 걱정일 때가 있지.” “그럼 그게 누군지, 어떻게 손녀분을 압박하는지 그에 대해 알아보십시오. 그 한 번의 조사가 백 번의 걱정보다 더 손녀분과의 사이를 좋게 해줄 겁니다.” 잠시 날 노려보듯 응시하던 진패천이 한마디 말을 남기고 그곳을 떠났다. “쓸데없는 걱정은 말고 맡은 일이나 잘하게.” 저 멀리 사라져가는 맹주의 뒷모습을 보다가 난 이 층 객방으로 올라갔다. 방으로 들어가기 전에 허공에다 말했다. “제가 잘 땐 함께 주무세요. 어디 가면 말씀드릴 테니까.” 괜한 친한 척에도 은신한 그는 아무 대답이 없었다. 제162회 콩깍지를 벗겨낼 때가. 두 번째 본선이 시작되었다. 서른두 명에서 열여섯 명이 남게 되면서 소룡전의 열기는 더욱 뜨거워졌다. 이제 자기 고을은 물론이고 인근에서도 이름을 날리는 후기지수들만 남았다. “자, 그럼 무림맹주님을 위해 우승하겠습니다!” 서대룡은 농담처럼 말했지만, 그의 각오가 담겨 있는 말이기도 했다. 이번 상대는 산동이가(山東李家)에서 온 이휴(李烋). 도법 대 도법의 대결. 오히려 서대룡은 앞의 비무보다 이번 비무를 더 자신있어했다. “이상하게 다른 무공보다 도법을 상대하는 것이 마음이 편하네요. 왜 그런 거죠?” 혈천도마의 도법을 전수받는 중이니, 아무래도 도법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상태였다. 그러니 상대적으로 도법이 더 편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우리 도련님이 방심하시는 거지.” “아닙니다. 절대 아닙니다.” 서대룡은 손사래를 쳤다. 방심이란 말은 억울할 만하다. 그는 이번 대회를 위해 태어난 사람처럼 노력 중이었으니까. “이휴 싸우는 것을 봤지? 만만한 상대 아니다. 방심하지 마.” “알겠습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나는 이번 대결에서 서대룡이 이기리라 예상했다. 상대의 도법이 서대룡이 익힌 도법에 비해 상성상 불리했기 때문이다. 과연 내 예상대로 서대룡은 어렵지 않게 이겼다. 환호하는 군웅들에게 손을 흔들어주며 서대룡이 비무대에서 내려왔다. “드디어 여덟 명에 들었어요!” 이제 서대룡은 무림맹의 정예조직에 뽑히게 될 것이다. “아쉽군요. 이제 새로운 삶을 살 기회가 생겼는데.” “계속 있을래? 네가 세작으로 남겠다면 통천각에서는 두 손 들고 환영할걸.” “세작요?” “적진 속에서 신분을 감추고 활약하는 거지. 황천각 수석 입학의 천재적 두뇌! 게다가 무공까지 겸비한 최고의 세작! 어때?” “무림맹주가 각주님과 제 정체, 이미 알고 있다면서요?” “기억하고 있었어?” “저 버려두고 가실 생각 꿈도 꾸지 마십시오! 우승보다 더 좋은 게 각주님 오른팔 자립니다. 소룡전이 아니라 천하제일 비무대회에서 우승하더라도 오른팔 자리가 좋습니다.” “정말 그럴까?” “그럼요.” “자, 그럼 상상해 봐! 네가 천하제일인이 됐어. 온 무림인들이 다 너를 존경해. 이래도 내 오른팔이 좋아?” “네.” “네가 그렇게 무서워하는 마존들도 널 보며 미소를 지어. 네가 실수로 극악소마의 발을 밟았는데 그럴 수도 있지요, 이쪽 발도 밟으시겠소? 라고 해. 자, 이래도?” “네! 그래도 오른팔이 더 좋습니다.” “강호의 미녀들이 한 번만 만나 달라고 줄을 서. 이래도?” “각주님은 외팔이 무인이라도 멋지실 겁니다.” 나는 웃음을 터뜨렸고, 서대룡이 따라 웃었다. 요즘 여인보다는 무공에 푹 빠진 그였기에 이 농담은 오히려 재미가 있었다. 이렇게 귀여운 서대룡을 어디에 보내겠는가? “가기만 해! 네가 없으면 당장에 그 오른팔 자리는 장 군주를 앉힐 거다.” “아! 남 주려니까 또 고민되는군요.” 서대룡 팔 강 진출이라는 쾌거와 함께 우린 비무장을 떠났다. * * * 다음 날 비무대에 오르려는 진하령에게 호위인 추호가 물었다. “혹시 편찮은 곳이라도 있으십니까?” 그의 걱정에 진하령이 고개를 돌렸다. “아니. 왜?” “기분이 안 좋아 보이셔서요.” “걱정 마. 별일 없어.” 사실 그녀의 기분은 가라앉아 있었다. 할아버지가 개최한 연회 이후 검연과도, 조신과도 만나지 않았다. 조신 같은 자가 앙심을 품으면 사람 하나 죽이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증거를 남기지 않고 죽여버리면, 심증이 가더라도 놈의 죄를 물을 수 없다. 그리고 이 세상은 시종의 죽음에는 아무도 관심이 없을 테고. 정말 마음 같아선 살려달란 말이 나올 때까지 조신을 박살 내고 싶은데. 그럴 수 없는 것은 할아버지 때문이다. 할아버지가 맹주로 계시는 한, 자신이 사고를 치면 그 수습은 고스란히 할아버지가 떠안아야 한다. 그래, 참자, 참아. 조신은 참아지는데, 잘 안 참아지는 것이 있다. 사람 마음이 참 묘한 것이 편하게 볼 때는 별 생각이 안 들었는데, 막상 못 만나는 상황이 되니까 괜히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시로 사람을 당황하게 만드는 건방진 시종이 뭐가 좋다고. 그녀가 비무대에 올라서자 사방에서 환호성이 들렸다. “호북일미! 진하령! 호북일미! 진하령!” “힘내세요, 진 소저!” “사모합니다, 진 소저!” “꼭 이깁시다!” “국수 먹읍시다!” “우승하십시오, 진 소저!” 그녀는 분명히 들었다. 응원 속에 섞여 있는 이상하고도 반가운 말을. 그녀의 시선이 군웅을 향했다. 그녀의 시선이 닿는 곳마다 환호성이 터졌다. 호북일미가 자신을 쳐다봐 주는 것에 감동한 이들이 목청이 터져라 그녀의 이름을 연호했다. 그녀는 그들 속에서 검무극을 찾아냈다. 그녀는 그를 바라보며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같이 국수 먹자는 신호였다. 그날 그녀는 추호의 걱정과는 정반대로 그 어느 때보다 멋진 실력을 발휘했다. 그녀의 검은 빠르고 정확했으며 보법은 더없이 우아했다. 보는 사람을 열광시키는 화려한 승리를 거두며 그녀도 팔 강에 진출했다. * * * 객잔에는 검무극은 미리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승리 축하합니다.” 진하령은 축하 인사를 받는 대신 단호히 말했다. “우리 만나면 안 돼요.” “왜 안 되죠?” “그걸 몰라서 물어요? 당신이 위험해지니까 안 되죠.” “그런데 왜 오셨습니까?” “그건…….” 잠시 망설이던 그녀가 뜻밖의 말을 꺼냈다. “약속 때문에요.” “무슨 약속요?” “가보면 알아요.” 그녀가 검무극을 데리고 객잔을 나섰다. “혹시 경공 할 줄 알아요?” 경공할 줄 아느냐고? 검무극이 웃으며 대답했다. “알죠.” “아니에요. 말을 구해서 가죠.” 괜한 걸 물었다는 듯 그녀가 말을 구했다. 검무극은 그녀가 하자는 대로 따랐다. “말은 탈 줄 알죠?” “보통 시종은 말을 끄는 사람이지만, 보고 계신 시종은 특별하잖아요? 잘 탑니다.” 그렇게 두 마리의 말을 빌려서 달렸다. 그녀가 검무극을 데려간 곳은 무림맹 동쪽에 있는 동호였다. “전에 여기 구경시켜 달라고 했잖아요?” “그걸 기억하고 계셨습니까?” “우리가 뭐 그리 대화를 많이 나눴다고 그걸 잊어버려요?” 자기가 말하고선 진하령은 내심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러게, 뭔 대화를 그리 나눴다고 이 난리를 치는 걸까? 할아버지 앞에서 난리, 조신 앞에서 난리. 동호까지 오고.’ 그녀가 검무극을 쳐다보았다. 여전히 헝클어진 채로 늘어뜨린 머리카락과 얼굴을 덮은 수염 때문에 얼굴은 잘 보이지도 않았고, 옷은 낡고 더러웠다. 대체 이 사람이 뭐가 좋다고. 그때 검무극이 그녀에게 말했다. “우리 저기로 가볼까요?” “네? 왜요?” “저기 저 언덕에서 보면 더 경치가 좋아 보일 것 같아서요.” 검무극이 데려간 곳에서 진하령은 진심으로 감탄했다. “정말 아름다워요!” 동호의 아름다움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기가 막힌 자리였다. “어떻게 알았어요? 이 자리?” “원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