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Return RAW novel - Chapter (28)
거냐?” “사실이니까.” “좋다. 그렇다고 치고. 그럼 너는 어떻게 살아남은…….” 여상이 흠칫하더니 상황을 파악했다. “네놈이구나!” 나는 옅은 미소로 대답을 대신했다. 여상이 소리쳐 수하들을 불러 모았다. 그들이 우르르 몰려와서 나와 마차 주위를 포위했다. “여자와 아이를 구했다면 멀리 달아날 일이지, 왜 호랑이굴로 다시 돌아왔나?” 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여기 호랑이가 어딨나? 길러준 주인을 문 개새끼들만 득실대고 있구먼.” 여상은 물론이고 주위를 둘러싼 자들이 살기를 뿜어냈다. 그들은 여상의 수족들과 배신한 황금장의 무인들이었다. 찔리는 것이 있기에 그들은 더욱 차가운 분노로 양심을 가렸다. 마차 옆에 선 금사연이 아들을 꼭 안았다. 공포에 질릴 상황이었지만, 그녀는 겁을 먹은 기색이 아니었다. 여유는 오직 강자의 몫임을 잘 아는 그녀였고, 상인의 혈육답게 눈치가 빨랐다. 그녀는 내가 편히 싸울 수 있도록 아들을 데리고 마차로 들어갔다. 여상 역시 내가 보통이 아님을 느꼈기에 매우 조심스러웠다. “소협은 누구시오? 우선 안으로 들어가서 한잔하면서 말씀 나눕시다. 좋은 술로 대접하겠소.” “그렇게 예의 차릴 것 없다. 착한척해도 안 봐준다. 빌어도 안 봐주고. 그러니 마음껏 욕하고 지랄해라.” 회유책이 먹히지 않을 것을 직감한 여상이 차갑게 명령했다. “합공해서 죽여라!” 그는 ‘합공’이란 말을 강조했다. 명령이 떨어지자 사방에서 놈들이 달려들었다. 쉭! 쉭! 쉭! 쉭! 쉭! 시원한 바람 소리와 함께 내 손에서 비수가 날았다. 피해야지, 튕겨내야지란 생각이 들었을 때는 이미 비수는 그 생각마저 끊어버리고 급소에 박힌 후였다. 달려들던 무인들이 후두두 떨어지며 바닥을 뒹굴었다. 회귀 전 인생에서 익혔던 비도술은 비도종사(飛刀宗師) 서문철(徐文哲)의 탈명비술(奪命秘術)이다. 이전에도 이후에도 나는 이보다 뛰어난 비도술을 찾지 못했으니, 평생 가져가도 될 무공이었다. 가져온 비수가 떨어지자, 살아남은 자들이 기뻐하는 모습이 보였다. 내가 비도술의 고수라는 착각에서 비롯된 아주 짧은 순간의 기쁨이었다. 나는 검을 뽑아 들고 놈들에게 달려들었다. 그들은 고수와 중수 사이의 여러 단계의 실력이었는데, 대성을 이룬 비천검법 앞에서는 어떤 변별성도 보여주지 못했다. 내가 한바탕 장내를 휘젓자 적들은 모두 쓰러졌고 여상의 얼굴은 핼쑥해졌다. “대협께선 누구시오?” 피가 뚝뚝 떨어지는 검이 소협을 대협으로 만들었다. “대협은 무슨! 그냥 지나가다 돈 냄새 맡은 칼잡이지.” “얼마면 그냥 물러가 주겠소?” “돈 많아?” “한 사람의 인생을 바꿀 정도로는 있소.” “그렇게 돈이 많은 놈이 왜 이런 짓을 저지른 거야? 네 인생을 바꾸고 싶었으면 네 돈을 써야지, 왜 딴 사람 돈을 건드려? 그것도 모시던 주인 돈을.” 대답이 궁색한 여상은 입술을 잘근 깨물 뿐이었다. 그가 머리를 굴리며 어떻게 해야 할지를 망설이던 바로 그때. “검을 버려라!” 뒤쪽 건물에서 놈의 수하가 금아수의 목에 검을 겨눈 채 밖으로 나오고 있었다. 수하 딴에는 인질극을 벌여 나를 굴복시키려던 모양인데, 그 모습에 여상은 탄식하며 낭패한 표정을 지었다. 어떻게든 금아수를 숨겨서 나와 협상을 하려 했는데, 멍청한 수하가 그를 밖으로 데려온 것이다. 어쨌거나 이미 일은 벌어졌기에 여상은 버럭 소리를 내지르며 나를 압박했다. “어서 검을 버려! 안 그러면 황금장주는 죽는다!” 순간 한 줄기 검기가 허공을 찢어발겼다. 비천검법 제사식 염천식(炎天式). 원래도 거칠고 패도적인 검기발출식이었는데, 그것이 흑마검에서 강력한 내공까지 실리자 그 기세는 하늘이 놀라고 땅이 뒤집힐 정도였다. 쿠콰콰콰콱! 살아 있는 것처럼 회오리치며 날아간 검기가 무인을 치고 지나갔다. 금아수를 방패 삼아 몸의 삼분지 이를 숨기고 있었는데, 드러난 삼분지 일이 사라지고 없었다. 금아수만 세워두고 죽은 몸이 털썩 쓰러졌다. 검기를 날리느라 내공을 쏟아낸 지금이 기회라 여겼는지, 여상이 벼락처럼 검을 내지르며 기습했다. 대비하고 있었기에 그 회심의 일격은 당연히 빗나갔다. 연속되는 공격에 여상의 허점들이 계속 보였다. 평생을 갈고 닦았어도 내게 안 될 텐데, 수련이 있어야 할 자리에 탐욕이 들어찼으니, 내 상대가 될 리가 없었다. 곧장 제압할 수도 있었지만, 놈에게 몇 수 더 기회를 주었다. 여가장주를 손쉽게 제압한다면, 나에 대한 궁금증과 환상이 너무 커질 것이기 때문이다. 여상의 검이 요혈을 노리며 연속해서 날아들었다. 자신의 목숨이 걸린 상황이기에 공격은 필사적이었다. 보는 사람은 박빙의 승부에 숨을 죽였겠지만, 내 마음은 명경지수(明鏡止水)였다. 그렇게 삼십여 수가 지났을 때. 푹. 살이 찢기는 소리와 함께 싸움은 끝이 났다. 내질러진 여상의 검은 허공에 멈춰 있었다. 그 검날에 금아수가 기뻐하는 모습이 반사되어 보였다. 여상의 공격을 비스듬히 교차한 내 검은 그의 심장에 박혀 있었다. 날 향한 여상의 눈에 원망이 가득했지만 나는 차분히 그에게 말했다. “당신은 수호세가 가주잖소? 당신만은 이러면 안 되는 거였잖소? 다음 생에서는 돈을 벌고 싶으면 상인이 되시오. 사람을 죽이고 싶으면 살수가 되시고.” 이미 절명한 여상은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검을 뽑자 그가 허물어졌다. 숨죽인 채 마차 창문으로 바깥을 지켜보던 금사연은 환호성을 지르며 아들과 함께 내렸다. “아버지.” “할아버지!” 금사연과 아이가 금아수에게 달려가서 안겼다. “사연아! 양아!” 아버지를 부둥켜안고 금사연이 눈물을 흘렸고, 엄마가 울자 아이가 따라 울었다. 잠시 후, 갇혀 있던 황금장의 무인들이 풀려났다. 장내가 정리되자 금아수는 다시 한번 내게 고마움을 표했다. 금사연에게 앞서 이야기를 전해 들은 그는 자신을 구해준 것보다 딸과 손자를 구해준 고마움이 훨씬 컸다. “이 은혜는 절대 잊지 않겠소. 소협은 우리 가문을 멸문에서 구한 은인이시오. 부디 존성대명(尊姓大名)을 알려주시겠소?” 여상과 그의 수하를 단신으로 처리했으니 나에 대한 궁금증이 얼마나 클지 상상이 되었다. “그냥 지나가던 낭인에 불과합니다.” “낭인왕(浪人王)이 왔더라도 이들을 이렇게 쉽게 처리하진 못했을 터인데.” “과찬의 말씀이십니다.” 내가 끝내 신분을 밝히지 않자 금아수도 더는 묻지 않았다. 금사연이 금아수에게 앞서 나와 했던 약속을 전했다. “은공께 약속했어요. 보상은 돈으로 하겠다고요.” 금아수가 흡족한 표정으로 딸을 칭찬했다. “잘했다. 가장 확실한 약속을 했구나.” 여유를 되찾은 그는 비로소 복건제일거부의 면모를 드러냈다. “만약 은공께서 필요한 것이 돈이라면, 오늘 제대로 찾아오셨소.” 제26회 많이 가져갈수록 인연은 깊어진다. 금아수가 황금장 지하의 비밀통로를 앞장서 걸었다. 길은 미로처럼 복잡했다. 벽과 천장, 바닥 곳곳에 치명적인 함정과 기관 장치가 숨겨져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함께 뒤따르던 금사연의 긴장이 전해져왔다. 오직 길을 아는 자만이 갈 수 있는 복잡한 길을 돌고 돌아 도착한 곳은 황금장의 보물이 보관된 비밀창고였다. “우리 목숨을 구해줬으니 전 재산을 줘야 마땅하겠지만, 그건 현실적으로 무리가 있소.” “거기까진 바라지 않습니다.” “액수를 정해 보답하는 것도 좋겠지만, 그보단 이게 어떻겠소? 이곳에서 은공이 한 번에 가져갈 수 있는 만큼 가져가시는 거요. 대신 수레를 사용해서도 안 되고,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서도 안 되오.” “제가 가지고 나오는 것까진 인정한단 말입니까?” “그렇소.” “내공을 사용해도 됩니까?” “물론이오.” “그럼 꽤 많이 들고나올 텐데요?” “은공이 아니었다면 우린 다 죽었을 터, 이 정도는 보상해야겠지요.” “고맙습니다.” “지금부터 한 시진 드리겠소. 괜찮겠소?” “충분합니다.” 나는 천천히 보물창고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 * * 검무극이 보물창고 안으로 들어가자 금사연이 금아수에게 물었다. “괜찮으시겠어요?” “뭐가 말이냐?” “은공의 무공이라면 생각보다 많이 가져갈 수도 있어요. 아깝지 않으시냐고요.” 금사연은 농담처럼 웃으며 말했지만, 내심 아버지가 나중에 화병이라도 나지 않을까 걱정되기도 했다. 아버지는 재물을 모으는데 자신의 인생을 바친 사람이었다. 한데 그 인생의 많은 부분이 누군가의 손에 들려 사라져 버릴 수도 있었다. 그런데 아버지의 반응은 뜻밖이었다. “저 안에 오늘 우리가 지켜낸 것보다 더 귀한 것이 있더냐?” 금아수가 딸의 어깨를 두드려주었다. “너와 양이가 산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만약 너희들까지 잃었다면…….” 금아수는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거란 소릴 평생 듣고 살았지만, 적어도 그는 자식에 관해서는 피도, 눈물도 철철 흘리는 사람이었다. 다만 표현할 기회가 없었을 뿐. 오히려 이번 기회에 금아수는 절실하게 깨달은 것이 있었다. 모든 재산을 다 바쳐도 아깝지 않을 혈육인데, 재산을 모으기 위해 혈육을 등한시했다는 사실이 너무나 후회스러웠다. 그리고 재산을 다 주어도 아깝지 않은 또 하나의 이유. 죽음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 자신이 어떤 목적을 위해 노력하다 죽는다면 여한이라도 없지, 이번 경우는 믿었던 가신의 배신이다. 아마 죽어서도 눈을 감지 못했으리라. “저 소협, 보통 사람이 아니야.” “네. 어린 나이임에도 실력이 보통이 아니었어요.” “내가 본 것은 실력만이 아니다.” “그럼 또 뭘 보셨죠?” “그걸 뭐라고 표현할까 아까부터 고민했었다만, 생각해내지 못했다. 저 소협에겐 뭐라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기세가 있다.” 평생 수많은 사람을 만나온 그였다. 어린 나이임에도 이렇게 여유로우면서도 독특한 분위기를 내는 사람은 처음이었다. “돈은 다시 벌면 되지만, 저런 사람과의 인연은 평생 한 번 올까 말까지.” 더구나 상대는 젊었다. 금아수는 딸과 손자가 이끄는 황금장의 다음 시대에서도 저 청년과의 인연이 이어지기를 바랐다. “그래서 다 가져가도 상관없다. 많이 가져가면 갈수록 우리와의 인연은 깊어질 테니.” * * * 나는 단언할 수 있다. 평생 이런 보물창고는 두 번 다시 들어와 보지 못할 것이라고. 한쪽에 금붙이가 산처럼 쌓여 있었는데 쳐다보면 눈이 부실 정도였다. 불상과 무인상, 식기류와 장식품, 호랑이, 두꺼비, 거북이, 돼지 등 온갖 동물들까지. 그야말로 황금으로 만들어진 모든 것들이 쌓여 있었다. 처음에는 잘 진열했을 터인데, 나중에는 그 개수가 너무 많아져 그냥 산처럼 쌓아둔 모양이다. 그 옆 장식장에는 진귀한 보석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반지나 목걸이, 팔찌 등의 보석류부터 옥으로 만든 여인들의 노리개까지. 반대쪽 장식대에는 도자기들이 진열되어 있었고, 뒤로는 유명 화공의 그림이 걸려 있었다. 그야말로 온갖 진귀한 것들이 가득했다. 다시 그 옆으로 나를 흥분시키는 것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어두운 곳을 밝히는 야명주와 입에 물고 있으면 중독되는 것을 막아주는 피독주(避毒珠)였다. 특히 피독주는 크기가 아주 작은 최상품이었다. 그것이 각기 다섯 개씩. 돈이 있어도 쉽게 구할 수 없는 것들이었기에 이곳에 있는 그 어떤 보석들보다 더 값진 것이라 할 수 있다. 기쁜 마음으로 야명주와 피독주부터 챙겼다. 그것들을 모두 챙겨 품에 넣었다. 어마어마한 가치가 품으로 들어갔지만, 이제 시작이었다. 다음으로 챙긴 것은 비싸게 팔 수 있는 반지를 손가락에 꼈고, 팔찌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