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Sword Sense RAW novel - Chapter 342
109화 종장 (3) >
‘젠장. 왜 하나도 안 부럽지?’
선두에 있는 백혜향과 설백의 살기 어린 신경전에 우호법 송좌백이 중얼거렸다.
이걸 보니 그때가 떠올랐다.
처음에 멋도 모르고 설백의 신비롭고 아름다운 외모에 반해서 들이댔다가 고작 한 수만에 실신한 그였다.
초절정의 극을 눈앞에 둔 자신을 가지고 놀 만큼 괴물이었다.
그런데 보면 볼수록 백혜향과 비슷한 류였다.
흔히 말하는 맹수, 즉 포식자에 가까웠다.
“클클. 보기 좋구나.”
스승인 기기괴괴 해악천의 그 말에 송좌백이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저런 기 센 여자들이 녀석 하나를 차지하자고 신경전을 벌이는 게 보기 좋은 현상이라는 건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지….진짜 많다.”
옆에서 들리는 송우현의 목소리에 송좌백도 침을 꿀꺽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마상의 대지를 가득 메우고 있는 요물의 군세.
본교의 전력을 비롯해 사파에서도 제법 세력을 갖춘 방파들을 전부 끌어 모아서 북진해왔다.
한데 이 정도 규모일 줄은 몰랐다.
“…….스승님. 이거 정말 이길 수 있겠습니까?”
혈교를 비롯해 사파 연합이 합류해도 여전히 격차는 커보였다.
그런 송좌백의 말에 답한 것은 해악천이 아니라 귀살권마 장문량이었다.
“이기고 지고의 문제를 넘어섰다. 저걸 막지 못하면 인간의 씨가 마를 테니.”
“빌어먹을. 이젠 하다 못해 저런 괴물들까지 설치네.”
“…….이놈아. 해 형한테는 꼬박꼬박 스승님이라고 하면서 노부한테는 태도가 그게 뭐냐?”
“대충 넘어갑시다.”
“하여간 이놈은.”
장문량이 못마땅해하며 혀를 찼다.
하지만 이를 더 따지고 있을 틈은 없어보였다.
이제 곧 수백 년 동안 없었던 무림, 아니 중원 사상 최대 규모의 대전쟁이 시작된다.
선두에 있던 백혜향이 검을 뽑아들고서 소리쳤다.
“존성들! 그리고 본교의 교인들은 들어라. 긴 말은 필요없다. 저 하찮은 미물들을 쓸어버린다!”
“와아아아아아아아!!!”
사방이 쩌렁쩌렁 울릴 만큼 혈교인들의 사기 넘치는 함성 소리가 곳곳으로 퍼져나갔다.
전의를 잃고 있던 정파인들 역시도 이런 들끓는 감정이 전파된 것 마냥 함성을 지르며 앞으로 나아갔다.
“우리가 질 수 있나!”
“정파인들의 전의를 보여줘라!”
“와아아아아아아아아!!!”
그것은 어느새 북서쪽에서 진군해오는 무쌍성의 전력에까지 퍼져나갔다.
“무림 연맹과 혈교에 밀릴 참이더냐!”
“와아아아아아아아!!!”
무쌍성의 무인들이 질 세라 목청이 찢어져라 외쳤다.
조금 전만 하더라도 공포와 두려움으로 가득했었는데, 양대 세력의 원군이 나타나면서 되살아난 사기에 반인반사의 존재의 눈빛이 한없이 싸늘해졌다.
“이놈들이!”
‘고작 수가 늘어난 것만으로 기고만장해지다니.’
여전히 열세임에도 기세가 살아난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사파 연합이 합류했다고 해도 여전히 전력의 차이는 두 배를 넘어섰고 자신들에게는 최강이자 최고의 전력이라 할 수 있는 마선이 있었다.
그가 조심스럽게 마선을 쳐다보았다.
그런데 이 상황을 불쾌해하는 그와 달리 마선의 입 꼬리가 올라가있었다.
“흥미롭군.”
“스승님. 어찌 하여…..”
“더럽고 탐욕스러운 버러지들의 유일한 강점이다.”
“그건…..”
“위험 앞에서는 누구 할 것 없이 하나가 되는 모습을 보이지.”
반인반사의 존재는 이를 부정할 수 없었다.
그 역시도 지금은 요물이 되었다고 하나 얼마 전까지 뇌장이라는 인간이었다.
인간은 서로 다투다가도 공동의 적이나 위험에 부딪치게 되면 서로 힘을 합치는 모습을 보인다.
그게 바로 지금이었다.
생겨난 이래 한 번도 손을 잡지 않았던 삼대 세력이 한 자리에 모였다.
요물의 군세에 대항하기 위해서 말이다.
“그렇다고 해도…..”
“상관없다. 어떠한 존재든 간에 자신의 목숨이 경각에 달하면 발버둥을 치는 것이야 만고불변의 진리.”
-슥!
마선이 손을 들어올리자 잠시 멈춰있던 요물들이 포효했다.
-크워어어어!!!
-오오오오오!!!
그리고 손을 앞으로 뻗자 요물들이 일제히 앞으로 진격했다.
대지를 새까맣게 메운 그들이 진격하자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대지가 크게 진동했다.
그런 그들을 바라보며 마선이 이죽거렸다.
“한데 그렇게 피어난 희망이 무참히 짓밟히게 된다면 그 절망은 어떨까?”
그 말에 반인반사의 존재 역시도 그와 표정이 같아졌다.
앞으로 벌어질 일에 대한 기대감으로 말이다.
-두두두두두두!!!
요물의 군세와 인간의 군세가 접전지로 진군을 했다.
대지의 흔들림이 더욱 강해졌다.
포효성과 함성이 뒤섞이며 고조되어가는 열기.
이윽고 두 세력이 부딪쳤다.
-챙! 차차차창! 콰쾅!
서로가 서로를 죽이는 치열한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이것은 인간들 간의 싸움이 아닌 이종 간에 생존을 다투는 싸움이었다.
그 치열함과 살벌함은 여태껏 벌어진 어떠한 전쟁들보다도 더 모두를 극한의 상황 속으로 끌어들였다.
불과 부딪친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벌써 양측에는 수백여 명이 넘는 사상자가 발생했다.
-촥! 콰득!
“끄아아아악!”
-크워어어어어어!
인간이고 요물이고 할 것 없이 여기저기서 퍼지는 비명소리들.
아비규환을 방불케 할 만큼 전선은 더욱 격화되어 갔다.
이런 와중에 눈에 띄는 이들도 있었다.
“하압!”
팔대고수와 오대악인이라 불리는 절세고수들은 차원이 다른 활약을 보이고 있었다.
그들이 움직일 때마다 수많은 요물들이 파죽지세로 죽어나갔다.
아무리 요물들이 보통 사람들보다 강하다고 해도 이 정도 절세고수들의 앞에서는 여느 약자들과 다를 바 없었다.
“와아아아아! 무정풍신의 풍영팔류다!”
“부맹주의 도격에 적들 수십 마리가 베여나갔어!”
“저 여잔 뭐야? 요물들이 얼어붙고 있어.”
“미친! 저게 그 해악천인가? 주먹질로 요물들을 짓이겨 놓는데?”
정사를 막론하고 이런 절세고수들의 활약은 모두의 사기를 돋우기에 충분했다.
그들의 가장 큰 역할이 이런 것이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모두가 이렇게 활약하는 것은 아니었다.
-콰드드득!
“끄아아아악!”
“빌어먹을! 도찬!”
요물의 날카로운 어금니에 찢겨나가는 동료들의 죽음을 누구보다 가까이서 지켜보며 치열하게 싸우는 이들이 더욱 많았다.
하지만 누구 하나 물러서지 않았다.
자신들이 여기서 물러나게 되면 더욱 많은 이들이 죽음에 내몰릴 것을 알기에 그랬다.
-촥!
“아가씨! 조심해요!”
사마영이 요물의 목을 베며 소리쳤다.
“하아….하아…..고, 고마워요.”
소영영은 형산파에서 차기 여협의 자리를 맡아둘 만큼 뛰어난 후기지수였지만 이런 아비규환과도 같은 전쟁은 처음이었다.
경험이 부족하기에 점점 지칠 수밖에 없었다.
그런 그녀의 곁은 사마영이 지키고 있었다.
‘공자님의 누이 동생은 제가 지킬게요.’
진운휘의 혈육을 죽게 할 수 없었다.
그런 사명감으로 사마영은 그녀를 보호하며 요물들과 맞서고 있었다.
하지만 요물들의 수는 너무 많았다.
무림 연맹과 혈교 및 사파연합, 그리고 무쌍성이 힘을 합쳤는데도 저들은 끝도 없이 밀려왔다.
요물들의 체력이나 힘은 인간과 차원이 달랐다.
그들은 지치지도 않았고 인간을 죽이며 그 피를 취할 때마다 금방 회복해갔다.
어째서 강소성과 안휘성이 하루를 넘기지 못하고 초토화되었는지 새삼 알 것 같았다.
‘이길 수 있을까?’
점점 의구심이 피어올랐다.
이대로라고 한다면 오히려 아군이 먼저 지칠 것 같았다.
그렇게 되면 비등한 양상도 빠르게 무너져 내릴 거다.
‘아니야. 이런 마음을 먹어선 안 돼.’
이제 겨우 반 시진 정도가 흘렀을 뿐이다.
어떻게든 버텨야 한다.
그렇게 여기고 있던 찰나였다.
-쿠르르릉!
“따, 땅이?”
갑자기 지반이 흔들렸다.
사마영이 다급히 소영영에게 소리쳤다.
“아가씨 물러서요!”
그 순간 무너진 지반의 틈으로 다른 요물들과는 차원이 다른 거대한 놈이 나타났다.
십여 장은 되어보이는 길이에 수백 개의 날카로운 이를 가진 요물이었다.
“무슨 크기가?”
“피, 피해라!”
-촤촤촤촤촤촤촤촤!
“끄악!”
“컥!”
요물이 회전하며 움직이자 근방에 있던 자들이 속수무책으로 몸이 찢겨나가며 죽어갔다.
아군이고 할 것 없이 요물은 닥치는 대로 사람들을 공격했다.
-크와아아아아아아!
그리고 놈이 다음으로 노린 자는,
“언니!”
바로 사마영이었다.
경공을 펼치며 놈과 거리를 벌리려하는데, 너무 빨랐다.
덩치와는 달리 엄청난 속도로 움직인 놈이 순식간에 그녀를 따라잡아 입을 쩌억 벌렸다.
‘아!’
이대로 당하는가 싶었다.
그 순간 입을 벌리고 있던 거대한 요물 놈이 몸을 뒤틀며 비명을 질렀다.
-카가가가각!
왜 그러나 싶었는데 놈의 몸이 반으로 갈라져 있었다.
“괜찮으냐?”
“아버지!”
놈을 그렇게 만든 자는 바로 월악검 사마착이었다.
전쟁이 시작되자마자 무쌍성의 전력에서 이탈해 곧바로 적들을 뚫고서 딸이 있는 곳으로 한달음에 달려온 그였다.
‘다행이군.’
평소에 티를 내진 않았지만 누구보다 여식인 그녀를 아끼는 사마착이다.
사마영이 그 모습에 뭉클해져서 눈물을 글썽였다.
운휘의 누이 동생을 지켜야 한다는 책임감으로 버텼지만 그녀 역시도 상당히 지치고 두려운 상황이었다.
“녀석.”
사마착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서로가 피로 얼룩져 있었지만 이 순간만큼은 애틋하다.
-촤촤촤촤촥!
한데 그녀들의 곁으로 다가온 이들은 사마착만이 아니었다.
붉은 적발을 휘두르며 적을 무차별적으로 난도질하며 뚫은 이가 있었으니, 악귀 가면을 벗어던진 백혜향이었다.
“오랜만이군.”
“백혜향.”
불여우 같은 이 여자가 이렇게 반가울 줄이야.
뭔가 반가운 마음에 인사라도 하려고 하는데, 백혜향이 불만스럽게 말했다.
“아직 우리끼리도 합의보지 못한 게 있는데, 제멋대로 탁자 위에 한 사람을 더 올렸더군.”
“……그게 무슨?”
“저거 말이야.”
백혜향이 고개 짓으로 가리킨 곳에 하얀 눈발이 휘날리고 있었다.
그곳에서 설백이 요물들을 얼려버리고 있었다.
가히 놀라운 무위를 보이고 있었지만 백혜향은 그녀를 정말 못마땅하게 여겼다.
이제야 그녀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은 사마영이 눈물을 글썽였다.
“뭐야? 너 설마 우는 거냐?”
“아니거든요.”
그런 그들의 대화에 사마착이 끼어들었다.
“설마 녀석은 아직도 오지 않은 게냐?”
그렇지 않아도 진운휘가 보이지 않아서 탐탁지 않게 여기고 있던 사마착이었다.
자신의 딸이 이렇게 위험에 처하도록 남편 될 이가 없으니 말이다.
백혜향 역시도 이게 궁금했는지 물었다.
“운휘는 어딨지?”
그 물음에 사마영이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공자님이 죽었대요.”
“뭐?”
“그게 무슨 소리냐?”
사마영의 그 말에 두 사람이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이들은 아직까지 아무 소식도 접하지 못한 상태였다.
그런데 뜬금없이 진운휘가 죽었다는 그 말을 들으니 영문을 알 수가 없었다.
이에 사마영이 눈물까지 보이며 슬퍼하던 것을 멈추고서 붉어진 눈으로 요물들이 있는 뒤편을 날카롭게 노려보며 말했다.
“…….요물들을 이끌고 있는 저 검은 도포의 놈의 손에 공자님이 당했대요.”
“헛소리 하지마!”
“저희도 믿지 않았어요. 하지만……”
사마영이 품속에 소중히 가지고 있던 것을 꺼냈다.
그것은 남천철검의 부러진 검병이었다.
‘!?’
이를 본 백혜향의 얼굴이 무섭게 일그러졌다.
무인이 자신의 독문병기를 잃는다는 것은 가볍게 치부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정말 그가 죽었을 지도 모를 일이었다.
-으득!
무섭게 살기가 치솟았는데 당장이라도 신형을 날릴 기세다.
그러고 있는데 사마착이 물었다.
“……녀석의 검을 그리 만든 게 저 자라는 것이냐?”
요물들 틈에 유일하게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는 존재.
안 그래도 그것을 의아하게 여겼던 차였다.
뭔가 범상치 않다고는 생각했지만 천하제일이라 불리는 사위를 죽인 게 맞다면 요물들 이상으로 위험한 존재였다.
“전 맹주였던 백향묵의 말이 사실이라면 저 자가 이 요물들을 움직이는 배후인 것 같아요.”
“그럼 저놈이 원흉이라는 거네.”
-찌익!
사마영의 그 말에 백혜향이 소매를 찢어 천으로 검병과 자신의 손을 감았다.
절대로 검을 놓지 않게 말이다.
그리고 살의가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저놈을 죽이면 이 미물들을 멈출 수 있고 운휘의 생사도 확실하게 알 수 있겠군.”
“같은 생각을 했군.”
사마착이 동의한다는 듯이 몸을 돌렸다.
그녀와 마찬가지로 마선이 있는 곳으로 향하고 있었다.
사마영이 우려를 금치 못하며 말했다.
“위험할 수도 있어요.”
“위험하기는 모두가 마찬가지야.”
-팟!
그 말과 함께 백혜향이 전광석화처럼 신형을 날렸다.
새까맣게 밀려드는 요물들의 사이를 한 자루의 검이 되어 파고들었다.
“애비도 가보마. 위험하니 이 앞으로는 뛰어들지 말거라.”
-팟!
사마착 역시도 그녀의 뒤를 따라 신형을 날렸다.
진운휘에 대한 생사여부를 떠나서 적의 머리가 저 반대편에 있었다.
전쟁의 기본은 그 머리를 치는 것에 있다.
아무리 요물들이라고 해도 자신들을 이끄는 존재가 죽는다면 분열될 확률이 높았다.
-파파파팟!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은 그들만이 아닌 모양이었다.
요물들의 틈바구니를 뚫고서 전진하는 다섯의 절세고수들이 있었다.
“크하하하핫. 이놈들 비켜라!”
-콰직! 콰직!
두 주먹을 휘두르며 요물들을 짓이겨가며 전진하는 기기괴괴 해악천.
-화르르르륵!
그리고 패열도에 불꽃을 일으키며 파죽지세로 나아가는 열왕패도 진균.
백혜향보다도 먼저 앞서 나가고 있는 설백.
이 다섯 고수들은 새까맣게 앞을 가로막고 있는 요물들을 뚫고서 놈에게로 다가갔다.
그런데 앞으로 나아가던 그들의 고개가 위로 향했다.
‘아닛?’
마선이 어느새 허공의 위를 걸어가고 있었다.
가만히 뒤에서 전쟁을 지켜보고 있으리라 여겼는데, 이미 한복판의 허공이었다.
모두가 이것이 기회라고 여겼다.
-파파파파팟!
다섯 고수가 누구 할 것 없이 위로 튀어 올랐다.
그리고 상의한 것도 아니었는데, 동시에 마선을 향해 최고의 절초를 펼쳤다.
-적혈금신(赤血金身) 패권무적(敗拳無敵)
-열염신공(熱炎神功) 극화천도(極火千刀)
-빙백신공(氷白神功) 백월한음(白月寒陰)
-혈천대라검(血天大羅劍) 삭혈검정(削血劍靜)
-무월공검(無月空劍) 월향패검(月向敗劍)
어느 하나 할 것 없이 최고의 초식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제발!’
모두가 이 광경에 집중했다.
과연 요물들의 우두머리를 죽일 수 있을까?
그 순간 모두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우우우우우웅!
기기괴괴 해악천, 열왕패도 진균, 북해빙궁의 설백, 혈교의 부교주 백혜향, 월악검 사마착 이 다섯 절세고수들이 허공에 뜬 채 멈춰 섰다.
가장 충격이 심한 것은 당사자인 이들이었다.
‘이럴 수가!’
‘어찌 이런 일이?’
‘진기만으로 막은 건가?’
‘닿지조차 못하다니.’
‘이런 괴물이 세상에……’
그들의 주먹과 병장기가 애초에 놈의 반경에조차 닿지 못했다.
보이지 않는 방패가 있는 것처럼 공간이 일렁거리며 그들을 강제로 붙들고 있었다.
공력을 극한으로 끌어올렸지만 그 상태로 떨림만 있을 뿐 움직이지 않았다.
설백과도 같은 하얀 뱀의 눈을 가진 마선이 입 꼬리를 벌렸다.
그리고 말했다.
“절망이 무엇인지 깨달아라.”
-슥!
놈이 가볍게 손을 휘저었다.
그 순간 엄청난 압력과 함께 공간이 휘어지더니, 이내 다섯 절세 고수들의 신형이 포탄처럼 튕겨져 나가버렸다.
-파아아아앙!
“끄악!”
“컥!”
그 위력이 어찌나 강한지 그들은 수십 장이 넘는 거리를 날아갔다.
그들과 부딪친 요물이나 사람들은 그 위력을 감당하지 못해 찢겨지고 으깨질 정도였다.
모두가 튕겨나가는 이들을 피해야만 했다.
-콰콰콰콰콰콰콰쾅!
그들이 멈춘 것은 자신들을 튕겨낸 힘의 여파가 저절로 사라졌을 때였다.
바닥에 처박힌 백혜향이 핏물을 토해냈다.
“끄웩!”
고작 한수에 멀쩡한 곳이 없었다.
온몸의 뼈가 부러져서 제대로 몸을 일으켜세우기조차 힘들었다.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나마 금강불괴에 가까운 신체를 가진 해악천조차도 비틀거리며 무릎을 펴지 못했다.
‘…….무공의 범주를 벗어났다.’
이건 인간의 힘이 아니었다.
아니 착각한 것 같다.
애초에 저 존재는 인간이 아닌데 말이다.
“아버지!”
“쿨럭….쿨럭…..물러서라.”
앞선 두 사람과 달리 그나마 멀쩡해 보이는 월악검 사마착.
그 또한 내상을 입기는 마찬가지였다.
방금 전에 그 힘은 몸을 관통하여 오장육부에마저 충격을 가했다.
수준이 달랐다.
‘저놈은 어쩌면……’
그가 가장 이상이라 생각하는 경지에 이르렀을 지도 몰랐다.
오직 의지만으로 모든 것을 행하는 그 경지에 말이다.
만약 그런 것이라면 자신을 비롯해 모든 사람들은 무(武)에 있어서 최고의 경지에 이른 절대자를 눈앞에 두고 있는 셈이었다.
그때 마선이 손을 위로 들어올리는 것이 보였다.
-고오오오오오!
마선이 손을 들어올리자 그가 뻗고 있는 위쪽의 허공이 크게 일렁였다.
그 길이만 자그마치 삼십여 장에 달하는 듯 했다.
‘설마?’
사마착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모두를 향해 소리쳤다.
“피해라! 놈이 휘두르는 간격에서 벗어나!”
하지만 이미 늦었다.
일부 무림인들이 다급히 몸을 날렸지만 마선이 손을 앞으로 내려치자, 엄청난 일이 벌어졌다.
그의 바로 앞에 일직선으로 있던 모든 존재들이 일렁이는 공간의 압력에 의해 그대로 존재 자체가 사라져버렸다.
-콰아아아아아앙!
폭이 삼 장(丈), 거리가 삼십여 장.
그곳에 보이지 않는 커다란 검으로 내려친 것만 같은 굵은 흔적이 생겨났다.
모두가 이 광경을 보고서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쿨럭….쿨럭…..무형검(無形劍).”
열왕패도 진균이 허탈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자신의 눈이 잘못되지 않았다면 저 일격은 무형검이 틀림없었다.
과거 백무자는 초인의 벽을 넘어선 존재가 그 무(武)를 완성하게 되면 초월의 경지에 이른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렇게 되면 검이 없어도 검을 가진 것과 마찬가지인 무형의 검을 다룰 수 있게 된다고 고서에서 읽은 기억이 있다.
‘저게 실제로 가능한 일이었다니.’
충격 그 자체였다.
애초에 놈은 자신들을 가지고 놀은 것이다.
본인이 나선다면 더욱 빠르게 상황을 몰아갈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허공에서 저 웃고 있는 모습만 봐도 알 수 있다.
놈이 입을 열자 그 목소리가 사방을 울렸다.
“두려움, 공포, 절망. 그것이 네놈들에게 어울리는 감정이다.”
누구 하나 놈의 말에 대답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부정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삼대 세력이 하나로 힘을 합치면서 되살아났던 그 전의가 방금 전의 일로 완전히 죽어버렸다.
모두가 어둡고 창백한 얼굴로 마선을 바라보았다.
“이제 너희 버러지 같은 인간 놈들의 멸망을 즐겁게 지켜볼 수 있겠구나.”
-크워어어어어어어!
-오오오오오오오오!
놈의 그 말에 요물들이 포효를 했다.
마치 승리를 목전에 앞둔 전사들처럼 말이다.
전의를 상실한 무림인들은 이를 망연자실한 눈으로 지켜보았다.
‘공자님…….’
모두와 마찬가지로 절망에 잠겨 있는 사마영.
그녀는 이상하게 이 순간에도 진운휘의 모습을 떠올렸다.
그가 있었다면 달랐을까?
이런 생각이 들었지만 지금에 와서도 나타나지 않는 것을 보면 그는 정말로 저 괴물의 손에 죽은 것 같다.
-주르륵!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허공에 떠있는 마선이 손을 앞으로 뻗었다.
진격의 신호라도 되는 것 마냥 요물들이 사람들을 향해 다시 달려들려 했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쿠르르르르릉!
하늘에서 들려오는 천둥소리.
마른 밤하늘 위에서 갑자기 들려오는 천둥소리에 요물들이 멈춰 섰다.
전의를 상실하고서 놈들을 지켜보던 사람들마저도 그 소리에 의아해하며 하늘을 쳐다보았다.
-쿠르르르르르르!
그때 어두운 밤하늘을 뒤덮고 있던 구름이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이내 그것이 회전을 하며 용권풍처럼 회오리를 쳤다.
그와 함께 회오리가 치며 내려오는 구름 속에서 구멍이 생겨나더니, 이내 그곳에서 검을 타고서 누군가 나타났다.
-파아아아아앙!
‘!!!’
그 존재를 보는 순간 모두가 전율을 금치 못했다.
‘그다!’
그들 모두가 어검비행을 펼치며 나타난 저 존재를 알아보지 못할 리가 없었다.
“아아아! 공자님!”
눈물을 흘리던 사마영의 입에서 기쁨의 탄성이 흘러나왔다.
죽었다고 알고 있던 그가 살아서 나타났다.
그것도 신화 속의 존재가 세상에 강림하듯이 말이다.
-파치치치치칙!
회오리치는 구름을 뚫고 나온 존재가 손을 내밀자 허공에서 오색 빛으로 찬란한 뇌전의 검이 나타났다.
이를 투창하듯이 그 존재가 허공에 떠있던 마선을 향해 날렸다.
-푸슈우우우우우우!
마선이 자신을 향해 쇄도해오는 오색 빛의 뇌전의 검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공간이 일렁이며 절세고수들을 상대했을 때와 똑같은 일이 벌어질까 했는데, 이내 믿기지 않게도 공간이 뒤틀리며 뇌전의 검이 그것을 통과했다.
-콰드득!
‘아니?’
마선조차 이것을 예측하지 못했는지 하얀 두 눈이 커졌다.
하지만 피하기에는 이미 늦었다.
오색 빛을 내뿜는 뇌전의 검은 그를 향해 직격했다.
-파치치치치칙!
“크윽!”
사방으로 뇌전의 불꽃이 튀며 마선이 뒤로 튕겨나갔다.
튕겨나간 놈은 수십 장이 넘게 날아가 뒤쪽 고원 지대에 있던 산봉우리를 뚫고 들어갔다.
-콰콰콰콰콰콰콰쾅!
굉음과 함께 흔들거리는 산에서 피어오르는 먼지.
이를 보며 모두가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 괴물 같은 존재를 일검에 날려버린 것이었다.
봇물이 터지듯이 함성이 터져 나왔다.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
죽었던 사기가 일순간에 반전되었다.
자신의 스승이 일격에 당한 모습에 반인반사의 존재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저, 저놈이 어떻게?”
분명 스승인 마선의 손에 죽은 그였다.
태호의 바닥에 가라앉아 있어야 할 그가 멀쩡히 살아있는 것이었다.
그런데 당혹스러운 일은 이게 끝이 아니었다.
-우우우우우웅!
뒤에서 느껴지는 이질적인 기운에 다급히 고개를 뒤로 돌렸다.
공간이 일렁이며 일그러지고 있었다.
“축지?”
그것은 공간을 접는 축지술이었다.
한데 단순히 한 사람이 왔다갔다 거릴 수 있는 크기가 아니었다.
사방에서 거대하게 공간이 일렁이며 일그러지는데 그곳에서 갑자기 수많은 금색 갑주를 입은 이들이 오열을 맞춰서 진군해 나왔다.
-저벅저벅!
북을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힘차게 이어지는 행진.
군의 사방에서 보이는 펄럭거리는 장대 깃발에는 대연제국 황도 정규군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이럴 수가!”
“저게 대체…..”
이 광경에 놀란 것은 반인반사의 존재만이 아니었다.
무림인들 또한 일렁이는 공간 속에서 계속해서 나오는 수많은 황도 정규군의 모습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적어도 열흘이 지나야 도착할 거라 판단했던 황도 정규군이다.
그런데 그들이 생각지도 못한 방법으로 나타났다.
-으득!
반인반사의 존재가 이를 악물었다.
놈의 눈에는 일렁이는 공간 저 편에서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거대한 진의 한가운데서 술(術)을 펼치고 있는 대머리 노인의 모습이 보였다.
‘비선 노옹!’
한때 십선의 일인이자 맹약으로 황궁을 지키는 존재.
맹약으로 인해 개입하지 못할 거라 여겼었는데, 설마 이렇게 이들을 도울 줄은 몰랐다.
‘축지술을 광역으로 펼치다니?’
이게 가능한 일이었던가.
이 여부를 떠나서 접힌 공간 속에서 금의위를 비롯해 계속해서 황도 정규군이 진군해오고 있었는데, 그 숫자는 헤아리기 힘들 정도로 많았다.
방금 전만 하더라도 숫적으로 우위였던 요물들이다.
한데 황군의 등장으로 양상이 달라졌다.
그들은 무림의 삼대 세력과 후방에서 나타난 황도 정규군의 사이에 갇혀 옴짝달싹할 수 없는 형태가 되어버렸다.
끝
ⓒ 한중월야
천하제일검의 등장과 더불어 나타난 황도 정규군.
“하아……”
극도의 긴장으로 물들었던 전장이었다.
모든 것이 끝났다고 여겼을 때, 예기치 못한 희망은 수많은 이들의 입에서 안도의 숨이 흘러나오게 만들었다.
그것은 누구도 예외가 아니었다.
“형!…….운…운휘다.”
동생 송우현의 말에 송좌백이 투덜거렸다.
“빌어먹을 자식. 아슬아슬할 때 나타나서 주목 받네.”
말은 이렇게 하면서도 얼굴은 안도감으로 가득 차 있다.
녀석이 나타나지 않았다면 요물들의 손에 모두가 이 세상에서 하직했을 테니 말이다.
사마영이 자신의 아버지를 부축하며 말했다.
“아버지. 공자님이 살아있었어요.”
“그래. 그렇구나.”
그녀의 말에 월악검 사마착이 몸을 일으켜 세우며 입 꼬리를 올렸다.
그렇게 못마땅하게 여겼던 사위였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반가움과 더불어 한 가지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네 안목이 이 애비보다 낫구나.”
“헤헤.”
그 말에 사마영은 이를 활짝 드러내며 웃었다.
이처럼 감정이 벅차서 들떠있는 또 다른 사람이 있었으니, 그의 친부인 무쌍성의 성주 무정풍신 진성백이었다.
‘하령 보고 있소?’
그녀가 지켰던 아들이 무림의 희망이 되었다.
만인이 환호하며 추앙하는 모습에 너무도 자랑스럽고 뿌듯했다.
“클클.”
해악천은 그저 웃음만 흘렸다.
자신을 상대로 교섭을 하려들었던 그 애송이가 이렇게까지 성장하다니.
누구보다 감회가 남달랐다.
‘호종대…..네놈과 나는 참 복이 많은 것 같다. 저런 대단한 녀석의 스승이니 말이다.’
먼저 세상을 떠난 호적수가 그리워진다.
정말로 녀석과 함께 제자를 키웠다면 어땠을까?
괜히 낯간지러운 생각에 코웃음만 나올 뿐이다.
“흥. 괜히 걱정했잖아.”
백혜향이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켜 세웠다.
인간은 참 놀라운 존재다.
절망 속에서는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릴 것만 같았는데, 그의 등장으로 이젠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부상의 고통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와아아아아아아아!!!”
백혜향이 환호성을 지르고 있는 교인들에게 외쳤다.
“뭣들 하고 있는 거냐? 미물들을 쓸어라!”
“충!!!”
그녀의 명에 답한 혈교의 교인들이 일제히 요물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사기가 되살아난 그들의 기세는 일당백의 용사와도 같았다.
이런 전의는 당연히 모두에게로 퍼져나갔다.
“기회를 놓지 마라! 무림 연맹의 무인들은 모두 진격하라!”
“와아아아아아아!!!”
부맹주 열왕패도 진균의 외침에 정파인들 역시도 요물들을 향해 신형을 날렸다.
전의가 하늘 끝까지 치솟았는지 더 이상 그들의 눈빛에 두려움은 없었다.
“지켜볼 생각이냐? 진격!”
“진격하라! 와아아아아아아!!!”
무쌍성의 무인들도 질세라 함성을 지르며 진격했다.
황도 정규군을 이끄는 총사령관 이연 대장군이 큰소리로 군사들에게 명했다.
“황제 폐하의 지엄한 명이시다. 요물들을 처단하라!”
“황명을 받듭니다!!!”
개개인이 무력에서 무림인들에게 밀린다고 해도 황도 정규군의 강점이 있었다.
그것은 압도적인 물량이었다.
후방을 가득 메운 군사들이 시위를 당겨 활을 쏘자 요물들의 머리 위로 하늘이 새까맣게 뒤덮이며 화살비가 쏟아져 내렸다.
-파파파파파파파팍!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성벽마저 뚫는다는 대형 합성궁(쇠뇌)에서 발사되는 화살들은 요물들을 여러 마리를 동시에 관통할 정도의 위력을 보여주었다.
-크케에에에엑!
-카아아악!
-컥! 컥!
요물들의 비명소리가 사방에서 터져 나왔다.
우두머리인 마선이 부재한 상태로 전후에서 수많은 인간들의 틈바구니에 갇힌 요물들은 장수를 잃은 군사들과 다를 바가 없었다.
반으로 나뉘어 우왕좌왕 하는데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분산되면 안 된다! 차라리 후방을 뚫어라!”
반인반사의 존재가 소리를 지르며 이들을 이끌어보려고 해도 소용없었다.
애초에 이들은 마선이라는 존재에게 굴복하여 따르는 것이기에 그에게는 이들을 자유자재로 통솔한 권한도 능력도 없었다.
이대로 가다간 지금까지 기다려왔던 모든 것이 일장춘몽으로 끝날지도 몰랐다.
‘훗날을 기약해야 하는 건가.’
고민하고 있던 찰나였다.
갑자기 어디선가 커다란 포효소리가 들려왔다.
-크워어어어어어어어!!!
마치 천지를 뒤집을 것만 같은 엄청난 포효성에 전쟁을 치르고 있던 모든 존재의 시선이 그곳으로 향했다.
마선이 처박혔던 산봉우리로 짙은 안개가 피어올랐다.
그 안개 속에서 거대한 검은 그림자가 보였다.
마치 유유히 헤엄치는 물고기처럼 고원의 산봉우리 사이를 유영하는 존재.
-파치치치칙!
길고 긴 그 존재가 움직일 때마다 사방에서 푸른 불꽃이 튀어 올랐다.
안개 사이로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는 그 존재에 모두가 경악을 금치 못했다.
‘!!!’
사슴처럼 솟은 검은 뿔과 타오를 듯한 붉은 등 깃.
그리고 백여 장을 훨씬 넘어서는 거대한 길이를 자랑하는 비늘의 거체.
그것은 전설 속에서만 들어오던 존재.
바로 교룡(蛟龍)이었다.
모두가 넋을 놓고서 할 말을 잃었을 때 반인반사의 존재만 교룡의 등장에 반색하고 있었다.
“아아아! 스승님 믿고 있었나이다!”
용으로서 현신한 모습은 그야말로 대재앙 그 자체였다.
-쿠르르르르!
교룡이 움직일 때마다 산봉우리가 무너져 내리고 부서져 난리도 아니었다.
방금 전까지 사기가 극도로 치솟았던 모든 사람들이 순간 망연자실함을 감추지 못했다.
“용이라니?”
“저, 저걸 어찌……”
전설, 설화에서나 들어볼 법한 교룡이라는 저 영수 급의 존재를 무슨 수로 죽일 수 있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크워어어어어!
그런 교룡이 서서히 이곳으로 날아오고 있었다.
놈이 움직일 때마다 사방에서 뇌전이 몰아치는데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누구 하나 이런 교룡에게서 시선을 뗄 수가 없었다.
-크아아아아!
그때 교룡이 천천히 입을 벌렸다.
그 순간 교룡의 입에서 짙은 연기가 흘러나오더니 이내,
-화르르르르르륵!
거대한 불꽃이 뿜어져 나왔다.
부채처럼 넓은 형태로 퍼져나가는 엄청난 화염에 모두가 기가 질리고 말았다.
화염은 누구 할 것 없이 뒤엎으며 모든 것을 불태워버릴 기세였다.
그때 허공을 가로지르는 누군가의 모습이 보였다.
어검비행으로 단숨에 용이 내뿜는 화염으로 날아간 그가 손을 휘둘렀다.
그러자,
-촤아아아아아아악!
일렁이는 공간과 함께 화염이 반으로 갈라졌다.
“베, 베었어!”
“불꽃이 갈라지다니!”
마상의 대지를 뒤덮으려 하는 거대한 불꽃을 반으로 가른 그 모습은 가히 장관이었다.
모두가 눈이 휘둥그레질 지경이었다.
그러나 정작 이 불꽃을 벤 당사자는 그렇지 않았다.
* * *
‘…….베지 못했어.’
나는 분명 불꽃을 가르다 못해 놈의 목을 베려했다.
신검합일에 무형검이라면 충분히 가능하리라 여겼는데, 베이기는커녕 몸에 흠집조차 나지 않았다.
스승님의 말대로 놈은 이미 영수를 넘어서 신수에 이른 건가.
심상 속에서 스승님이 했던 조언이 떠오른다.
스승님은 마선 화룡진인이 이미 검객으로서 초월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했다.
그렇기에 당시 사람들은 그를 검종의 시초라 칭했다고 했다.
스승님마저도 놈을 죽이지 못했다.
그렇기에 정양 진인이 영보 필법으로 봉인하지 않았던가.
인간의 육신으로도 말도 안 되는 재생력일 텐데, 저렇게 용의 형태로 있는다면 죽일 방도가 없다.
그때 놈이 나를 매섭게 쳐다보았다.
그러자,
-쿠르르르! 쾅쾅!
하늘에서 번개가 내려치며 정확하게 내게 직격했다.
풍신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나였기에 허공을 박차며 이를 피해냈다.
천지조화마저 다루는 신수다웠다.
번개마저 내려쳐서 나를 노릴 줄이야.
-그게 끝인 것 같으냐?
그때 머릿속에서 놈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 순간 사방이 환한 빛으로 일렁였다.
하늘을 쳐다보니 먹구름 전체에서 튀어 오르는 새하얀 뇌전의 불꽃이 일제히 나를 향해 내리쳤다.
그 범위는 자그마치 수백여 장에 이르는 규모였다.
나무뿌리처럼 연결되어서 그물망처럼 뒤덮는 뇌전을 피할 방법이 없었다.
‘칫!’
나는 허공을 향해 무형검으로 검초를 펼쳤다.
피할 수 없다면 뇌전을 베어내서라도 막는 수밖에 더 있나.
오색 빛깔의 뇌전으로 뒤덮인 무형의 검이 하늘을 가르며 내려치는 번개들을 베어냈다.
-파치치치치칙! 촤촤촤촤촤촤!
정신이 없다.
무인들이 펼치는 초식은 보이기라도 하지.
눈 앞이 번쩍일 때마다 바로 코앞에 번개가 다가와 있다.
-촤촤촤촤촤!
전부 벤 것 같았는데, 짧은 찰나에 수백, 수천에 이르는 뇌전의 줄기를 다 막는 것은 아무리 지금의 나라고 해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결국 번개 한 줄기가 내 어깨를 관통했고,
-파치치칙!
“큭!”
그 순간 연달아 뇌전이 나를 뒤덮었다.
-콰콰콰콰콰콰콰쾅!
-죽어라.
놈은 어떻게든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서 나를 죽이려는지 계속해서 번개를 퍼부었다.
이러다간 정말 압사되겠다.
번개도 번개지만 내려치는 힘에 의해 땅이 함몰되고 있다.
벌써 십여 장이 넘게 파고들었다.
‘그렇다면….’
-콰쾅!
나는 무형의 검의 방향을 위가 아닌 땅으로 향했다.
그리고 번개가 내려치는 곳이 아니라 땅 속으로 두더지처럼 더 깊이 파고들었다.
그렇게 안으로 파고들다 방향을 틀어 놈이 있는 곳을 향했다.
-콰콰콰콰콰콰콰콰!
놈이 내 기운을 느끼고 있는지 번개가 위에서 내려쳐지는 것이 느껴졌는데, 그래도 지면이 보호하고 있어서 닿지 않았다.
-쾅!
“목이 베여도 안 죽나보자!”
순식간에 위로 솟구친 나는 땅에서 튀어나와 놈의 거대한 목을 향해 무형검을 휘둘렀다.
-촤아아아악!
-크워어어어어어어!
고통스러워하는 포효 소리와 함께 검은 피가 폭포처럼 쏟아졌다.
나는 허공을 밟고서 신형을 날려서 이를 피해냈다.
딱 맞춰서 번개를 맞고서 떨어질 때 놓쳤던 사련검이 날아와 나를 태웠다.
-탁! 슈우우우우!
놈의 아래서 벗어나자 놀라운 광경이 보였다.
잘려나갔던 놈의 거대한 몸체가 엄청난 속도로 재생하고 있었다.
기껏 벤 것이 무색하게 하게 말이다.
-크하하하하하하하하!
놈에게서 벗어나고 있는데, 광오한 웃음소리가 목소리를 울렸다.
스스로도 엄청난 재생력에 흡족한가 보다.
역시 완전한 불로불사는 목이 베여도 죽지 않는다.
-네놈은 나를 죽일 수 없다. 나는 신수. 너희 버러지 같은 인간들이 범접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놈의 목소리에 웅성거리는 소리들이 들린다.
하긴 무형검에 목이 베여도 순식간에 재생하는 것을 보았으니 저렇게 혼란스러워하는 것도 당연한 반응이다.
놈이 기고만장해진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순양자나 정양 진인조차 나를 어찌하지 못했다. 한데 그들에게 배운 네놈이 나를 어찌할 수 있단 말이냐?
“득의양양하군. 좋아. 그럼 별 수 없네.”
-파치치치칙!
나는 뇌전의 순응 상태로 돌입했다.
전신이 오색 빛깔의 뇌전으로 번쩍였다.
그걸 본 교룡의 하얀 눈이 이죽거리듯이 위로 꿈틀거리며 움직였다.
-어리석은 것. 천둔의 힘은 내게 통하지 않는다.
그렇겠지.
대도천둔검법은 네놈에게서 비롯되었으니까.
더군다나 용의 형태가 되어서 더더욱 통하지도 않고 말이야.
나는 피식 웃으며 놈에게 말했다.
“누가 천둔으로 네놈을 상대한다고 했나.”
-뭐?
칠성현문의 마지막 문을 개방하기 위해서다.
마지막 일곱 번째 별, 요광(搖光)을 열려면 최고조에 이른 정기신(精氣神)이 하나가 되어야 한다.
-고오오오오오!
내게서 엄청난 기운이 집중되는 모습에 뭔가 심상치 않음을 느꼈는지, 놈이 또 다시 번개를 일으키려고 했다.
-쿠르르르르릉!
-가만히 지켜볼 것 같으냐?
그때 교룡의 거대한 머리 쪽으로 누군가 나타났다.
그는 다름 아닌,
“스승님?”
기기괴괴 해악천이었다.
“용이다! 용! 크하하하하하하!”
진혈금체의 적혈금신까지 어느새 펼치고서 놈의 코앞까지 나타난 스승님이었다.
그런데 그뿐만이 아니라 아버지 무정풍신 진성백도 나타났다.
“아버지!”
“시간을 벌어주마!”
아버지의 신형이 여덟 갈래로 나누어지며 이내 작은 회오리를 일으키며 놈의 턱을 향해 쇄도했다.
스승님도 질 새라 두 주먹으로 용의 턱을 향해 솟구쳤다.
-파아아아앙!
번개를 일으키려 하던 놈이 머리가 두 절세고수의 일격에 살짝 휘청거렸다.
그러나 크게 타격을 입진 않았다.
오히려 하찮은 존재들에게 몸이 닿은 것이 노했는지 단번에 징벌하려 들었다.
-이 벌레 같은 것들이!
-크오오오오오!
놈이 거대한 입을 쩌억하고 벌리며 그들을 집어삼키려 했다.
하지만 진기로 내가 그들을 잡아당긴 덕분에 빈 허공만을 집어삼켜야 했다.
-쾅!
그들을 놓친 교룡이 더욱 분노하며 불을 뿜기 위해 입을 벌렸다.
그러나 눈앞에서 벌어지는 광경에 하얀 눈이 흔들렸다.
-이건?
어느새 마상의 대지 전체가 은하수처럼 찬란한 빛을 내고 있었다.
이 광경에 전장터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 빛을 내는 것은 다름 아닌 검들이었다.
요물들과 싸워서 목숨을 잃은 죽은 자들의 검들이 찬란한 빛을 내뿜으며 서서히 허공으로 떠오르고 있었다.
그 숫자만 거의 수천 자루에 가까웠다.
-무슨 짓거리를 하려는지 모르겠지만 소용없다.
-화르르르르륵!
빛으로 물든 부러지고 망가진 검들을 보며 뭔가 불길했는지 교룡이 불을 뿜어댔다.
이에 나는 앞으로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공간이 일렁이며 이내 놈이 내뿜던 불이 역으로 튕겨나갔다.
-화르르르르르륵!
-크워어어어!
역으로 불꽃을 뒤집어쓴 놈이 몸을 뒤틀었다.
그러는 사이 내 주위로 수천 자루에 이르는 빛의 검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그런데 검들을 물들였던 빛이 점차 사람의 형상을 띄고 있었다.
마치 영혼처럼 말이다.
“이럴 수가……”
“공형!”
“의정?”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검을 쥐고 있는 빛의 형상을 보며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들은 죽은 검의 주인들이었다.
-……이게 대체?
역으로 맞은 불꽃을 털어내던 교룡이 이 광경에 하얀 눈이 커졌다.
놀라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이건 네놈이 봉인되고서 한참 후에 스승님께서 깨달은 마지막 심득이니 말이다.
칠성현문의 마지막 요광은 검과 함께 했던 마지막 의지를 끌어내는 힘이다.
스승님은 이를 두고 이렇게 칭했다.
‘절대 검감(絶對 劍感).’
손등에 있던 북두칠성의 점들이 전부 푸른빛으로 일렁였다.
그와 함께 빛의 형상을 하고 있던 수천 자루의 검과 함께 있던 의지체들이 일제히 교룡을 향해 쇄도했다.
-파파파파파파파파파팡!
마치 그 광경은 수천의 유성들이 떨어지는 것만 같다.
몰아치는 검들의 의지에 교룡이 비명을 질렀다.
-크아아아아아아아아!
이 검들은 명검도 아니었고 요검도 아니었다.
하지만 살아생전 담겨있던 검주들의 의지와 하나가 되어 신검합일의 공명을 일으켰다.
그렇게 엄청난 재생력을 보이던 교룡의 육신이 이것에 닿을 때마다 소멸 수준으로 사라져갔다.
-이노오오옴!
“그만 발악하고 죽어.”
유성처럼 내려치는 요광의 묘리에 놈이 절규를 했다.
-끄아아아아! 이렇게 된 이상 네놈만은 데려가겠다!
그러더니 마지막 발악을 하듯이 내게 입을 벌려 응축하여 파랗게 변한 불꽃을 내게 쏘았다.
-파아아아아앙!
“피햇!”
“이놈아!”
나와 가까이에 있던 아버지와 스승님 해악천이 위로 솟구쳤다.
내게 놈의 마지막 발악이 닿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말이다.
그때 내 가슴 쪽에서 빛이 반짝였다.
그러더니 앞으로 튀어나가 이내 직격해오는 파란 불꽃을 향해 검을 내질렀다.
-파아아아아아앙!
그와 함께 불꽃이 내게 닿지 못하고 사방으로 갈라졌다.
내 가슴에서도 검의 의지체가 발현되다니 이게 무슨 영문인지 알 수가 없다.
의아해하고 있는데, 허공으로 솟구쳤던 스승님 해악천이 놀란 얼굴로 사라져가는 의지체를 향해 말했다.
“호…..종대 네놈이?”
‘!!!’
순간 나는 가슴이 울컥했다.
앞에서 사라져가는 의지체의 형상이 빛으로 이루어진 남천철검을 쥐고서 흡족한 얼굴로 웃고 있었다.
‘하…….’
요광이 불러일으킨 기적인건가.
그렇게 보고 싶었던 얼굴을 이렇게 보다니.
의지체와 빛으로 이루어진 남천철검이 흩어지듯 사라지며 내 앞에 먼지처럼 흩어져가는 교룡의 육신이 보였다.
-………
나를 죽일 듯이 노려보던 놈의 하얀 눈이 허탈함으로 물들었다.
그러더니 이내 그 머리마저 완전히 흩어졌다.
-파스스스스스!
“와아아아아아아아아!!!”
그 거대하던 교룡이 먼지가 되어 사라지자, 기쁨의 환호성이 마상의 대지를 울렸다.
끝
ⓒ 한중월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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