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ademy’s Black-Haired Foreigner RAW novel - Chapter (70)
.”
“그래야지.”
롤스로이스 팬텀의 뒷좌석에 앉는다.
“출발하겠습니다.”
운전석에 앉은 한서진이 시동을 걸자, 차가 부드럽게 출발한다.
*
“그럼 저는 여기서 대기하도록 하겠습니다. 두 분, 즐거운 시간 되십시오.”
롤스로이스 팬텀 앞의 한서진을 뒤로 한 채로, 임간학교 준비에도 들른 적 있던 오다이바의 쇼핑몰인 도쿄 플라자에 도착했다.
원작 8권에서도 유지가 리츠코와 싸웠던 장소가 여기다.
“우와. 진짜 로봇이야! 김 군, 나 로봇 사진······. 찍고 싶은데 괜찮아?”
마코토가 눈을 반짝이며 묻는다.
“그래, 맘대로 해라.”
“김 군이랑 같이 찍고 싶은데······.”
마코토가 셀카봉을 꺼낸다.
아니, 그런 건 또 어디서 가지고 온 거야.
한숨이 절로 나온다.
‘빌어먹을.’
내가 왜 이래야 하는 건지 모르겠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지금은 리츠코 소환을 위해서라도, 마코토와 장단을 적당히 맞춰줘야만 한다.
어쩔 수 없다.
“그래. 찍자, 찍어.”
“응. 셀카 찍으려면 좀 옆으로 와야 해. 조금만 붙자 조, 조금만······.”
마코토가 얼굴을 붙이며 내 곁으로 붙으며 자연스럽게 팔짱을 낀다.
“나, 남자끼리 이 정도는 괜찮으니까······.”
“남자끼리라는 말하지 마라. 좋은 말로 할 때.”
열받으려고 하니까.
누가 남자끼리 그런 거 한다고.
진짜 남자가 아니라서 망정이지.
주변을 둘러본다.
“!!”
이쪽을 향해 삿대질하는 백금발 바바리코트, 올리비아와 양옆에서 그녀의 왼팔과 오른팔을 각각 잡으며 말리는 시늉을 하는 린과 니시자와가 보인다.
잘들 논다. 진짜.
“찍을게! 김 군. 스마일이야!”
찰칵.
로봇을 배경으로 한 셀카가 찍힌다.
“됐다. 히히.”
뭐가 그렇게 좋은지, 셀카를 몇 번이나 돌려보던 마코토가 자연스럽게 내 손을 잡는다.
“뭐야, 손 왜 잡아?”
마코토가 왕자님 웃음을 지으며 머리를 긁적인다.
“같은 남자끼리 이 정도는 할 수 있잖아? 그, 쇼핑몰 안은 사람 많다고 들어서, 혹시 김 군 놓칠 수도 있는 거고······.”
남자끼리 아까 하지 말라고 했던 거 같은데.
하여간 이 미친 세상은 말하면 제대로 들어처먹는 놈이 단 한명도 없다.
역시 한서진이 이 세상의 유일한 정상인이야.
국뽕만 좀 안 하면 참 좋을 텐데.
“그래, 맘대로 해라.”
리츠코 나올 때까지만 참자. 참아야 하느니라.
참을 인 자를 새기면서 마코토와 손을 잡은 채로 쇼핑몰 안으로 들어간다.
쇼핑몰 안은 마코토의 말처럼 복잡했다.
많은 인파가 북적대는 쇼핑몰 안을 마코토와 함께 돌아다닌다.
“스킨은 이게 좋겠지? 로션은 이게 좋겠다.”
“어머 손님, 피부가 참 예쁘시네요. 여자인 저보다도 더 깨끗해.”
“칭찬 감사합니다.”
화장품 상점에서 몇 번을 뺑뺑이를 돌고 나온 뒤에 들른 곳은 의류매장.
“와······. 예쁘다.”
마코토의 발걸음이 마네킹 앞에서 멈춘다.
그녀의 눈동자에 들어온 건, 누가 봐도 여성스럽게 보이는 하늘하늘한 하얀 땡땡이 원피스.
‘여성스러움을 동경하는 성격이었지?’
원작에서도 그녀는 의류매장 앞 여자 마네킹에서 한참을 서성였었다.
애니메이션에서도 제법 괜찮은 작화로 나온 장면이라 기억난다.
‘나도 저런 예쁜 옷을 입고 싶어.’ 같은 독백이 나왔던 장면이다.
마코토 팬들이 제일 좋아하는 장면으로 꼽기도 했고.
원작 내용을 떠올리고 있던 그때.
“어머. 손님.”
착.
의류매장 남직원이 갑자기 나오더니, 마코토의 손목을 잡는다.
“저 원피스가 입고 싶으셨군요. 손님이랑 잘 어울리실 거 같은데. 한번 입어보실래요?”
“예, 그, 그, 그게······.”
“입어볼게요!”
순식간에 손목을 잡혀 끌려가는 마코토.
갑자기 일어난 일이라 미처 대응하지 못했다.
“저거 대체 뭐 하는 인간이야?”
미친 건가?
그리고 마코토 쟤는 왜 또 그걸 순순히 끌려가 주고 난리야.
빌어먹을 라노벨 상황 같으니.
이젠 웃기지도 않다.
어쨌건 마코토를 밀착 감시해야 하니 여기서 더 벗어날 수는 없다.
한숨을 쉬며 대기석에 앉는다.
시간은 그리 길게 걸리지 않았다.
“으, 으으으으······.”
앓는 소리를 내는 마코토.
원피스를 입은 그녀가 붉어진 얼굴로 내 앞에 선다.
“여, 역시 이상하지······. 김 군······.”
그녀가 어색한 듯 쭈뼛쭈뼛한 태도로 원피스의 치맛자락을 만진다.
남장여자가 다시 여장한다?
내가 지금 뭘 보고 있는 거지?
돌겠네, 진짜.
원작에서도 이런 상황은 없었던 거 같은데.
누가 볼까 봐, 특히 지금 미행하고 있는 3인방이 목격할까 봐 더 무섭다.
안 그래도 성별을 가리지 않는 귀축이라는 오명까지 뒤집어쓴 마당이다.
거기에 남자를 여장시키는 취미가 있다는 귀축까지 가기는 싫다.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속을 진정시키면서 말한다.
“야, 안 이상하고 너랑 잘 어울리니까 지금 당장 그 옷 탈의실 가서 벗고 와라. 좋은 말로 할 때.”
그녀의 원피스를 빨리 벗기려면 먼저 칭찬해준 뒤에 요구사항을 말하는 게 맞다.
당근과 채찍 전략이다.
역겨운 대사를 내뱉어야 하는 내 속이 뒤집히기는 하지만, 이 위기를 모면할 수만 있다면 상관없다.
“어, 어울려······. 정말······? 나 같은 거랑도 어울려······?”
마코토의 얼굴이 빨갛게 물든다.
그녀가 손가락으로 원피스 끝자락을 배배 꼰다.
“어울리니까 빨리 탈의실 좀 가라고!”
제발.
부탁이야.
내가 역겨움 참으면서 너 좋아하는 여성스럽다는 칭찬도 해줬잖아.
그러니까 빨리 좀 가라고.
“아, 알았어······. 고마워······. 김 군.”
히히.
뭐가 그렇게 좋은지 히히덕대며 탈의실로 향하는 마코토.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의자에 주저앉는다.
주변을 둘러본다.
다행히 3인방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어휴.
진짜 십 년 감수했네.
*
마코토가 탈의실 안에 들어선다.
끼익. 탁.
문을 닫는다.
탈의실 벽에 걸린 거울에 그녀의 모습이 비친다.
남자처럼 짧게 자른 초록빛 머리, 남자처럼 생긴 중성적 외모.
그에 어울리지 않는 하늘하늘한 원피스.
점원의 손에 이끌려서 강제로 원피스가 손에 쥐여졌을 때, 반강제로 탈의실로 떠밀려졌을 때.
낑낑대며 원피스를 입었을 때.
마코토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나 같은 여자한테 원피스는 안 어울려.’
그래도 입고 싶었다.
어울리지 않더라도, 한 번쯤은 남자가 아닌 여자로 살고 싶었다.
세상 사람들이 나를 남자가 아닌 여자로 봐줬으면 좋겠다.
단 한 번이라도.
그래서 굳이 점원의 손길을 뿌리치지 않은 걸지도 모른다.
원피스를 어렵게 입고 김덕성 앞에 나섰을 때는 각오했다.
그가 안 어울린다고, 대체 무슨 짓이냐고 욕을 퍼부어도 당연한 일이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아니었다.
“어울린다고 해줬어.”
두근.
마코토의 심장이 뛴다.
그녀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른다.
“······김 군이 잘 어울린다고 말해줬어.”
마코토가 양 손으로 달아오른 뺨을 감싼다.
기분 좋은 설레임이 그녀의 마음을 가득 채운다.
아직 여자로서의 경험이 부족한 마코토는 감정의 정체를 아직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이것 하나는 분명했다.
지금까지 그녀가 김덕성에게 느낀 감정이 주군과 시종 사이에서 오는 고양감이었다면, 지금의 두근거림은 그것과는 결이 다른 감정이라는 사실을.
아니 어쩌면, 그 이전부터 있던 감정일지도 모른다.
이 일을 계기로 수면 위로 드러났을 뿐인 걸지도.
마코토가 고개를 세차게 흔든다.
“어쩌면 좋지······.”
마코토가 붉게 물든 표정으로 손을 떤다.
으으으으.
앓는 소리를 약하게 내던 마코토가 황급히 원피스의 지퍼가 있는 등 뒤로 손을 가져다 댄다.
그가 빨리 환복하라고 명령을 내렸다.
그러니 일단은 다른 잡념 없이 명령에만 집중해야 한다.
마코토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지퍼와 씨름을 시작했다.
“윽. 흐윽.”
하지만 지퍼는 유난히 제대로 내려가지 않았다.
“에잇!”
마코토가 지퍼에 힘을 준 순간.
부욱.
지퍼가 내려간다.
스르륵.
그와 함께 지퍼에 씹힌 압박 붕대가 빠르게 풀린다.
압박 붕대가 풀리기 시작하면서 그녀의 하얀 어깨와 등, 커다란 흉부가 존재감을 드러낸다.
마코토가 황급히 가슴을 양 손과 팔로 감싼다.
압박 붕대의 일부가 속옷처럼 그녀의 흉부를 감싼다.
“!!”
마코토의 눈동자가 커진다.
알몸이 되는 상황은 피했으니 급한 불은 껐다.
하지만 본인의 손으로 개판이 된 압박 붕대를 수습하는 건 역부족이다.
타인의 도움이 필요하다.
그렇지만 지금 남장이 풀리면 안 된다. 아직은 그럴 때가 아니다.
“어, 어떻게 하지······. 어떻게······.”
여자라는 사실을 밝힐 수는 없다.
그러니 점원을 부를 수도 없다.
결국 지금 상황을 수습할 수 있는 사람은 한 명뿐이다.
그녀의 비밀을 알고 있는 유일한 인물.
“김 군!! 도와줘!!”
지금 당장 내 옆으로 집합
“도와줘!! 김 군!!”
저 멀리서 마코토의 목소리가 들린다.
도와달라니? 뭘 도와달라는 거지?
의자에서 일어나 매장을 걷는다.
그녀의 목소리가 들린 건 탈의실.
문을 똑똑 두드리며 말한다.
“무슨 일이야?”
“나, 부, 붕대가······. 풀어져서······. 여기 들어와서 도와줘······. 김 군밖에 생각이 안 나서······. 미안해······.”
횡설수설하는 마코토.
앞뒤가 잘라먹힌 말이었지만, 무슨 뜻인지는 알겠다.
옷을 갈아입다가 압박붕대가 난장판이 된 모양.
남장여자라는 사실을 들키면 안 되는 상황이니, 점원을 못 부르고 내게 도움을 요청했겠지.
한서진을 부르는 것도 어렵다. 한서진은 마코토가 남장여자라는 사실을 알고 있기는 하지만, 마코토는 자신의 정체를 한서진에게 들켰다는 사실을 모르니까.
십중팔구 더 큰 소란이 벌어질 게 분명하다.
게다가 한서진은 바깥에서 대기하면서 해야할 일이 있다.
정말 어쩔 수 없이 내가 나서야 하는 상황.
외통수다.
“그래, 알았다.”
한숨을 쉬며 탈의실 문을 연 순간.
“!!”
얼굴을 붉힌 마코토와 눈을 마주쳤다.
푸릉.
너덜너덜해진 붕대와 양 팔로 가리고 있는데도 압도적인 존재감을 드러내는 가슴과 새하얀 상체가 눈에 보인다.
민망한 광경.
조건반사적으로 얼굴이 뜨거워진다.
눈을 질끈 감는다.
완전한 러브 코미디적 상황.
돌겠네, 진짜.
라노벨 주인공들은 이런 걸 어떻게 참은 거지? 진짜 부처들인가?
눈을 질끈 감으면서 탈의실 문을 닫는다.
“야, 붕대 내놔 봐.”
어쨌건 들키면 곤란한 건 마찬가지.
빨리 처리하고 끝내야 한다.
그렇게 생각하며 들끓는 신체를 진정시키던 그때.
“이, 이쪽 보지 마······!”
마코토의 외침이 들려온다.
아니 얘는 또 왜 동문서답이야?
*
마코토가 얼굴을 잔뜩 붉힌 채 얼굴을 숙이고 있다.
그녀의 가슴이 두근댄다.
“이, 이쪽 보지 마······!”
아슬아슬하게 흉부를 가리는 압박붕대를 양손으로 끌어안으면서 마코토가 소리친다.
팔뚝 사이로 삐져나오는 하얀 살집이 보인다.
그녀의 눈이 감긴다.
“무슨 소리야 그게? 아니, 붕대 달라니까 뭘 보지 말란 거야?”
그의 목소리가 귓가에 꽂힌다.
수치로 심장이 터질 것 같다.
얼굴이 화끈거린다.
쓸데없이 크기만 한, 팔뚝과 붕대로도 다 가리지 못하는 가슴의 존재감이 팔뚝에 느껴진다.
“보지 말라는 거야, 휴, 흉하니까······. 내 가슴······.”
암살에 방해되기만 하는 지방 덩어리.
쓸모없는 물건.
카미야 리츠코는 그녀의 가슴을 그렇게 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