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tor and actress RAW novel - Chapter 170
170. NFL의 스타(3)
조성환의 몸이 떨렸다.
어지간한 선수들 앞에서도 전혀 떨 일 없는 거구가.
본능적으로 몸을 떠는 걸 본 도윤은.
생각보다 꽤 심상찮은 반응이라 여겼다.
하지만 자신이 나서기엔 이르다고 생각했다.
30분 전부터 형동생 하며 말을 트긴 했지만-
무슨 사정인지 아직 알 수 없으니.
“망할! 저기 있는 조가 내 선수라고! 내 선수! NFL 사무국에서 찾아오는 꼴 보고 싶어?”
“NFL이고 MLB고 나는 잘 모르겠으니까, 정식으로 출입증 발급받아 오라고!”
경비와 고함을 치며 싸우던 매니저는.
조성환을 향해 눈을 부라렸다.
마치.
너 미친 거 아니냐고 말하는 눈빛이었다.
조성환은 결국 시선을 마주하지 못하고 피해 버렸다.
그래서.
도윤이 물었다.
“무슨 일이야?”
“……몰래 나왔어요.”
그 한마디에.
도윤은 대강의 사정을 파악할 수 있었다.
뻔하다.
저기 저, 내 선수라고 외치며 들어오려 하는 매니저와.
그 매니저의 시선을 피하는 선수.
“아.”
칼에게 들은 적이 있었다.
NFL 몇몇 팀에서 하는 ‘선수 보호’를.
물론 외국인이고, 첫 시즌이라 보호하고 적응을 돕는 건 맞아 보이지만…….
선수가 이렇게 두려워하면.
조금 문제가 있어 보인다.
“저는…… 그냥 하루라도 편안하게 쉬고 싶어요. 규칙 없이.”
축구든, 야구든, 미식축구든, 어떤 단체 스포츠든 소속 팀의 규칙을 따라야 하는 건 맞다.
하지만 그 규칙이 모두 옳은 건 아니다.
그리고 이 경우…….
저렇게 매니저가 찾아와 소리까지 치며 항의하는 ‘규칙’이 있는지도 의문이고.
“너무 힘들어요. NFL에서 뛰는 이상 철저하게 자기관리를 하는 건 맞지만…… 이렇게 감시당하는 게 맞나 싶어요.”
도윤은 NFL에 대해, 아니 스포츠 구단의 생리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하지만 선수가 이 정도로 불안해하면.
그 구단이 잘못하고 있다는 결론 정도는 내릴 수 있었다.
지금 조성환이 거짓말을 하는 게 아니라면 말이다.
“이러다 미식축구가 싫어질까 봐 겁나요.”
그 말에 도윤은 물었다.
“그래서 어떻게 하고 싶은데?”
조성환은.
도윤을 향해 천천히 고개를 들어.
입을 열었다.
“하고 싶어요.”
“뭘?”
“제 마음대로요.”
도윤은 그 말에 씩 웃었다.
“그럼 그렇게 해.”
책임을 진다는 의미는 아니다.
하지만 이 눈앞의 덩치만 크고 순수해 보이는, 마치 성호 같은 녀석에게 적어도 길은 알려주고 싶었다.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는 길을.
‘성호가 순수하진 않지만.’
여하튼 조성환은 그 말에 뭔가 깨달은 게 있는지 고개를 끄덕였고.
곧바로.
“그래, 젠장! 드디어 오는군! 저기, 내 선수가 내 신분을 증명해 줄 거야!”
매니저에게 다가가더니-
“오늘 제가 알아서 들어갈 테니까 이만 돌아가세요.”
“뭐?”
“저 오늘 훈련도 없고 인터뷰도 없어요. 일정도 없는데 왜 제가 숙소에만 처박혀 있어야 하죠?”
당당하게 물었다.
왜 지금 내가 여기 있으면 안 되는지를.
덕분에 매니저는 당황했는지 어버버거렸고.
여기에 거구의 조성환이 한 걸음을 떼자.
묘한 위압감을 느끼며 한 걸음 물러섰다.
“자꾸 이러면 구단이 곤란해질 수도 있어. 조, 너는 스타야. 아무 데나 함부로 다녀선 안 된다고! 이번 시즌이 끝나면 잠시 자유를 얻을 수 있잖아?”
그러면서 아까보다는 훨씬 부드러운 목소리로 조성환을 설득했으나-
조성환은 요지부동이었다.
이런 와중에 촬영장 근처에 있던 기자들이 우연찮게 냄새를 맡고 다가오는데.
이때.
도윤이 합류해 한마디 거들었다.
“아무 일 없을 거라 제가 보증하죠. 오늘 촬영이 끝나면 제가 집 앞까지 무사히 데려다주겠습니다.”
매니저는 조금 놀랐다.
그리고 어느새 주변에 자리한 기자들을 보며 매우 당황했다.
기자들은.
스포츠 스타 조성환과 그의 매니저로 짐작되는 남자, 그리고 최근 미국에서도 이름을 알리고 있는 배우가 서로 마주한 구도가.
굉장히 흥미로운 표정이다.
결국.
매니저는 재빠르게 머리를 돌렸고.
“오케이. 그럽시다. 스타에게도 휴식이 필요한 거 아니겠습니까? 하하.”
매우 호탕하게 웃는 척하며 한발 물러섰다.
지금 여기서 더 따지고 들었다간.
조성환을 설득시키기 전에 기자들을 먼저 상대해야 할 판.
“그럼, 잘 부탁합니다. 도윤.”
“두말하면 잔소리죠.”
도윤은 씩 웃었고.
조성환은 멀어지는 매니저의 모습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 쿵쾅거리는 심장을 진정시키려 애썼다.
하지만.
꽤 개운한 표정이었다.
진작 이렇게 할걸.
물론.
뒷일은 아직 잘 모르겠다.
일단 돌려보냈지만, 아마 돌아가면 또 한바탕해야 할 텐데…….
‘몰라, 그건 그때 생각하지.’
조성환은 무책임해지기로 마음먹었고.
“형, 저마저 촬영장 소개시켜 주세요.”
해맑게 웃어 보였다.
* * *
조성환은 NFL의 스타다.
당연히.
기사가 안 뜰 리 없었다.
-도대체 어떻게 했으면 선수가 탈출하고 그것도 배우랑 엮여? 무려 할리우드 촬영장에서!
“저, 그게…… 저희도 감시를 한다고 했는데…….”
-집어치우고 당장 선수부터 데려와!
“하, 하지만 거긴 아직 기자들이…….”
-그럼, 그대로 둘 거야? 그 배우라는 녀석이 같은 한국인이라면서? 그럼 어딜 데려갈 줄 알고!
“자기가 보증한다면서…….”
-변명 일색이군. 더 듣기 싫으니까 당장 해결해! 난 지금 냄새 맡은 기자들 잠재우러 갈 테니까!
기사가 몇 개 떴고.
NFL 최고의 키커이자 램스의 보물, 조성환에 대한 기사였던지라.
구단은 그야말로 난리가 났다.
관심도 엄청났다.
도대체 매니저와 무슨 일이 있는 거냐며 팬들의 트윗이 줄을 이은 데다.
과거 램스가 선수 한 명을 과도하게 ‘보호’한 나머지 선수가 우울증을 호소했던 사건이 재조명되며-
혹시 이와 비슷한 일이 아니냐는 문의가 빗발쳤다.
다시 말해.
일이 꽤 크게 터진 것이다.
‘이 망할 놈을 당장…….’
덕분에 매니저는 조성환이 돌아오는 대로 마구잡이로 쏘아붙이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지금은 전혀 그럴 수 없었다.
“다시 촬영장에 갈 수도 없고!”
자기 입으로 약속한 말이 있는데.
그게 과연 되기나 할까.
여하튼 램스에 비상이 걸린 사이.
조성환은 아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촬영장 구석구석을 도윤의 안내를 받아 구경하는가 하면.
그렇게나 받고 싶었던 도윤의 사인도 받았다.
“정신없는 와중에도 이건 챙겨왔죠.”
바로.
자신의 헬멧이었다.
“당연히 제가 직접 착용하는 거예요.”
슥 내민 가방을 보던 도윤은 웃음을 터뜨렸고.
“사인…… 혹시 힘드세요?”
“아니. 사인이 무슨 대단한 거라고. 줘.”
펜을 들어 거침없이 사인했다.
그러자 돌려받은 조성환은 마치 보물이라도 된 양 굉장히 소중하게 헬멧을 끌어안았다.
“헤헤. 앞으로 중요한 경기에 쓰고 나갈게요.”
해맑게 웃는 모습을 보면.
수많은 사람들의 열광 속에서 살아가는 스타가 맞나 싶다.
도윤과는 조금 다른 의미의 스타지만-
도윤은 자기 자신이 언제 저렇게 해맑게 웃어봤나 고민해 봤다.
아무리 생각해도…….
없는 것 같았다.
‘항상 그런 식이었지.’
회귀해서는 쉼 없이 연기에만 매진했고.
연기에 매진하는 과정에서 연기에 필요한 것들을 위해 불필요한 여흥은 뒤로 미뤄두거나, 아예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래서 가끔은…….
매번 웃고 다니던 유준이 부러울 때도 있었다.
어떻게 저렇게 매번 해맑게 웃을 수가 있나 싶어서.
선배님, 선배님 하며 엉겨 붙던 모습이 신기하기도 했고 말이다.
‘여유를 좀 찾아볼까.’
도윤은 문득 그렇게 생각했다.
외로운 건 아니다.
성호도 있고, 민주도 있고, 두칠도 있고, 촬영장에서 함께하는 사람들도 있으니까.
하지만 가끔은.
여유가 너무 없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가 있었다.
그때마다 별 신경을 쓰진 않았지만.
이제는 생각이 조금씩 바뀌는 것 같았다.
‘뭘 해볼까.’
드라이브?
사진?
영화 감상은…… 아무래도 연기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 같아 기분이 좀 그럴 것 같고.
식도락을 해볼까?
아니면 성호나 두칠이 틈만 나면 이야기하는 연애를?
아니다.
연애를 뭐 하고 싶다고 해서 아무나 만날 것도 아니고.
그렇게 도윤이 생각을 이어가는 사이.
“감사합니다. 형님. 덕분에 오늘 너무 즐거웠어요.”
조성환이 도윤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표했다.
정말.
해맑게 웃으면서 말이다.
* * *
민주가 조성환에 대한 소식을 전해준 건.
하루가 채 지나지 않아서였다.
“램스 난리 났네요.”
“성환이 구단?”
“네. 예전에 비슷한 일이 있었나 봐요. 어떤 선수가 램스 소속이었는데, 너무 잘해서 구단에서 빡세게 관리하다가 선수가 우울증을 호소했던 일이요.”
도윤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 지경까지 가면 문제 있는 거지.”
“그래서 이번에 기자들이 냄새 맡고 캤더니 조성환 매니저가 꽤 유명한 사람이라 추측이 쉬웠나 봐요.”
민주에게 휴대폰을 건네받아 기사를 읽던 도윤이 피식거렸다.
“그렇네. 예전에도 다른 구단에서 문제 일으킨 적 있던 사람이고.”
잘된 일이다.
적어도 이젠 그런 말도 안 되는 감시는 안 받을 테니.
자고로.
좀 아니다 싶으면 터뜨리는 게 최고다.
내부적으로 해결하자, 왜 일을 크게 만드냐.
이런 말들은 아무런 쓸모도, 의미도 없고 오히려 피해자의 아픔만 만들 뿐이다.
‘사람 사는 곳은 다 똑같지.’
여하튼.
일은 잘 해결된 모양이다.
-형님! 구단에서 저 매니저 바꿔준대요!
이렇게 문자가 온 걸 보면 말이다.
도윤은 이렇게.
의도치 않게 또 한 사람을 바꾸었다.
그런데.
이제는 도윤도 바뀔 것 같았다.
“민주야.”
“네?”
“시간 죽일 만한 뭐 없을까.”
민주는 사뭇 진지한 그 물음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오빠 취미 만들게요?”
“그렇게 될 것 같은데.”
“그럼 그냥 하고 싶은 거 하세요. 마음 가는 대로.”
민주는 취미를 추천해 주기보다는.
그냥 도윤이 하고 싶은 걸 하길 바라는 듯했다.
하기야.
취미도 마음이 가야 하는 거지.
남이 추천한다고 되는 게 아니니.
그래서 도윤은 고민하던 차에.
문득 회귀 전 일상의 토막 하나를 떠올렸다.
“성호야.”
“네, 형.”
“카메라 하나 알아봐. 예전에 했었다면서?”
“아, 예전에 학교 다닐 때 동아리에서 잠깐…… 근데 제가 그런 말을 했었어요?”
안 했다.
회귀 전, 그러니까 도윤이 ‘사고’를 치고 성호와 술 한잔하다 들은 이야기니까.
물론 도윤은 뻔뻔하게 밀고 나갔다.
“난 들었어.”
“그랬었나……? 근데 카메라는 왜요? 저 혹시 사진사 시키시게요?”
“넌 날 도대체 뭘로 보냐?”
“종종 갈구는 도사마?”
“5초 준다.”
“카메라 알아보러 갈게요! DSLR로!”
도윤은 잽싸게 방으로 들어가는 성호에게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시선을 거뒀고.
민주를 보며 어깨를 으쓱였다.
“카메라 정도면 나쁘지 않은 취미 같아서.”
“그럼요. 오히려 좋은 취미죠.”
“형님, 사진 찍으러 다니시게요?”
두칠의 말에 도윤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냥 예전에 해봤던 기억이 나서. 요새 심심하잖아.”
회귀 전의 일상.
마약 누명을 쓴 뒤.
집에서 굴러다니던 카메라를 들고 여기저기 쏘다니던 기억.
그때는 답답함으로 가득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래도 나쁘지 않은 시간이었다.
도윤이 카메라라는 취미를 문득 떠올린 건.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여유 가지려고 하시는 거 보기 좋네요.”
“그래?”
“여유를 가진다고 목표점에 늦게 도달하는 건 아니죠. 잘 생각하셨어요.”
도윤은 민주의 그 말에 깨달은 바가 있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튼.
조성환도 바뀌었지만.
도윤도 바뀌게 된 셈이다.
다른 사람을 변화시키기만 했던 이전과 달리-
이제는.
스스로도 변화를 마주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