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isor Jihoon Kim RAW novel - Chapter 134
133. 직진 (3)
세종로 정부서울청사, 정현석을 태운 미니밴이 청사 건물 앞으로 들어서자 누군가 와서 문을 열었다.
“대표님 장관님께 말씀 들었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차관님께서 직접 나와계셨습니까?”
“하하, 아래 직원 시킬 수 있습니까. 어서 가시죠.”
정현석은 자신을 마중 나온 정무 차관의 안내를 받아 정부청사로 들어섰다.
“요즘 특임장관실 분위기는 어떻습니까?”
정현석의 물음에 특임 차관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아무래도 어수선하지요. 장관님께서 사임을 생각 중이라는 보도가 나온 후에 직원들은 하던 업무가 엎어지지 않을까 고민을 합니다.”
정현석은 특임 차관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책임자인 장관이 사퇴하고 새로운 책임자가 오게 되면 이전에 하던 일들은 포기해야 하는 경우가 다반사일 거라고 생각했다.
“장관님께 여쭈어봐도 딱히 대답을 해주지 않으시니 저도 답답합니다.”
지훈은 자신을 향해 그렇게 말해오는 차관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한번 잘 얘기해보겠습니다. 걱정하지 마시고 아래 직원들 동기부여나 잘 해주십시오.”
“네. 알겠습니다.”
두 사람이 얘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덧 엘리베이터는 목적지인 8층에 다다랐고, 특임장관실로 들어선 정현석은 허훈과 손을 맞잡았다.
“대표님께서 갑작스레 찾아오신다고 하셔서 놀랐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하하, 죄송합니다. 급하게 장관님께 묻고 싶은 것이 있어서요.”
“미안해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얼마 전에 저도 불쑥 찾아갔지 않습니까? 이번에 대신하시죠.”
허훈의 말에 정현석은 웃었고, 허훈의 안내를 받아 자리에 앉았다.
“차라도 드시겠습니까?”
“아닙니다, 다음 일정이 있습니다. 금방 일어나야 할 것 같습니다. 방이 꽤 넓습니다.”
“예. 저도 처음 들어와 보고 나서 놀랐습니다. 장관 집무실 크기 제한 규정이 따로 있다고 하더군요.”
정현석은 고개를 끄덕이며 허훈을 바라보았고, 허훈은 궁금하다는 표정으로 정현석을 바라보았다.
“그래, 대표님께서 이곳에 무슨 일로 저를 찾아오셨습니까?”
“여쭤볼 게 있어서 찾아왔습니다. 정말 본인 뜻으로 사퇴하려고 하십니까?”
본질을 물어오는 정현석의 말에 허훈은 고민하는 듯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아니신가 보군요. 청와대에서 찍어 내렸을 리는 없고, 여당입니까?”
“대표님, 저 때문에 저들과······.”
“먼저 장관님의 의지부터 확인하고 싶습니다. 일을 계속하고 싶다는 마음 가지고 계십니까?”
정현석은 허훈의 말을 중간에 끊고는 되물었다. 허훈이 고민하는 듯 잠깐의 정적이 흐른 후 허훈이 입을 떼기 시작했다.
“비록 우리 당 정부는 아니지만, 그간 열심히 해왔습니다. 대통령께서도 제 당적은 중요하지 않다는 듯 대해주셨고요.”
허훈이 그렇게 말하자 정현석은 무슨 뜻인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뜻인지 알 것 같습니다. 이번 일 제가 나서는 게 맞는 것 같습니다.”
“대표님······.”
“다음부터는 이런 일이 있다면, 장관님께서도 저에게 다 터놓고 얘기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장관님을 위하는 게 당을 위하는 겁니다.”
“제가 따로 도울 일은 없겠습니까?”
허훈은 결연한 정현석의 말을 듣고는 고개를 끄덕이며 되물었다.
“대통령을 찾아가시지요.”
**
청와대 대통령 집무실.
“안 그래도 오늘 중으로 연락하려고 했습니다.”
“저 때문에 정국이 시끄러워진 거 같아 송구스럽습니다.”
허훈은 대통령 조진규와 독대를 나누고 있었다. 평소에는 비서실장 등이 동석했지만, 오늘은 대통령이 허훈과의 독대를 원했다.
“저도 제가 고민 중인 것을 언론에서 어떻게 알아낸 건지 신기할 뿐입니다.”
허훈이 그렇게 말하자 대통령은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허 장관과 대화를 나눈 사람 중 하나겠지요. 예를 들자면 한정수 원내대표 같은 사람 말입니다.”
조진규는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않고는 한정수의 이름을 거론했다.
“내가 비록 국회 생활을 해본 적이 없지만, 진보당 당원으로서 20년을 활동했습니다. 나는 그 사람을 아주 잘 압니다.”
“…”
“한정수와 같은 자기 살길만 찾는 정치인들이 아직도 국회에 있는 현실이 참 안타깝습니다.”
허훈은 몹시 안타까워하는 조진규를 바라보며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래, 허 장관의 뜻을 나에게 확실하게 얘기해줄 수 있겠습니까?”
조진규의 물음에 허훈은 품속에서 봉투를 꺼내 조진규에게 건넸다.
“대통령님의 뜻이 제 뜻입니다.”
“내 뜻이요? 하하, 사직서를 내면서 하는 말치고는 내 뜻을 허 장관이 잘못 이해한 것 같습니다.”
허훈이 탁자 위에 내려놓은 사직서 봉투를 바라본 조진규는 씁쓸하다는 표정으로 허훈을 바라보았다.
“저는 그저 대통령님 선택의 폭을 넓혀 드릴 뿐입니다. 대통령님께서 저에게 더 일하라 하시면 할 테고 이 사직서를 수리하신다면 물러나겠습니다.”
“하하, 허 장관의 속뜻을 알고 싶어 이렇게 모셨는데 내게 짐을 떠넘기는군요.”
조진규는 허훈이 스스로 그만둔다는 말은 아닌 거 같아 기분이 좋았지만, 한편으로는 선택권을 자신에게 넘기는 것이 부담되는 듯 보였다.
“좋습니다. 허 장관께서 선택권을 내게 넘기셨으니 나도 고민을 좀 더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그 정도 시간은 주실 수 있겠지요?”
“당연합니다. 대통령님께 바로 결론을 내리시라 재촉하는 것은 더더욱 아닙니다.”
“혹시 정 대표의 의견을 들었습니까?”
조진규는 야당의 의견이 궁금한지 허훈을 향해 물어왔다.
“정현석 대표께서는 임명권자인 대통령의 의견을 들어보라 하셨습니다.”
“하하, 정현석 대표라면 무언가 묘안을 제시할 줄 알았는데 원론적인 답이군요······.”
조진규는 고민이 되는 듯 관자놀이를 주물러댔다.
“알겠습니다. 결론이 나면 허 장관에게 연락하지요. 오늘은 이만 일어납시다.”
조진규의 축객령에 허훈은 자리에서 일어나 깊숙이 고개를 숙이고는 뒤돌아서서 대통령 집무실을 빠져나왔다.
**
“대통령은 우리가 필요합니다.”
보수당 대표실에는 정현석과 정현석 계파로 불리는 의원들이 모여 있었고, 지훈이 그들을 대상으로 브리핑을 하고 있었다.
“현재 여당 내의 대통령 계파가 다수라고 하더라도 한정수를 위시한 의회 출신 계파와 초선 모임을 합치면 그들을 압도합니다. 그리고 원용희 대표를 축출해냄으로써 대통령을 향한 무력시위도 했고요.”
“그렇지, 솔직히 초선 모임까지 동원해서 원용희를 끌어내림으로써 한정수 쪽은 명분도 가져간 거야. 당 내부의 초선까지 반대하는 대표니까.”
임건식이 지훈의 의견에 동의한다는 듯 거들어오자 지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개혁법안 특히, 국정원법과 사학재단법 같은 법안을 통과시키려면 야당의 협조가 필요한 상황입니다. 서로를 믿지 못하는 한정수와 조진규 대통령 사이에서 오히려 연정 상대인 우리와 사민당이 더 믿음이 갈 겁니다. 주고받은 게 확실한 사이니까요.”
지훈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내 무리 속에 있는 적보다는 서로 이익이 있는 거래 상대가 더욱 믿을만하다는 건 정치의 기본이었으니까.
“허훈 장관을 통해 대통령에게 자신의 거취를 물은 것은 깔끔한 수였어. 대통령이 만약 한정수의 손을 잡아 허 장관의 사표를 수리한다면 우리는 정부여당에 양보해오던 것들을 거래 대상으로 돌릴 수 있으니 손해 보는 것이 없고, 대통령이 사표를 반려한다면 한정수 쪽과 싸울 수 있는 명분이 생기니 말이야.”
서권혁이 지훈과 정현석을 번갈아 보며 그렇게 말하자 지훈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오히려 지금은 한정수가 급하게 대통령과 힘겨루기를 하려고 한 것이 우리에게 꽃놀이패를 쥐여준 거나 다름없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래? 다들 좋게 상황을 보고 있으니 만족스럽네. 그렇다면 여당의 대응도 생각해 봤지?”
만족스러운듯한 표정을 짓던 정현석은 지훈을 향해 물어왔고 지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대통령이 사표를 수리한다면 힘 싸움에 승리한 거니 앞으로 주도적으로 정국을 이끌어나갈 겁니다. 문제는 대통령이 사표를 반려했을 때입니다.”
“그래, 그게 문제지. 한정수가 지금 날뛰는 걸 보면 쉽게 물러날 것 같지는 않은데.”
정현석이 그렇게 묻자 지훈은 모두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만약 제가 진보당의 상황이었으면 두 가지 안을 놓고 고민할 겁니다. 하나는 대통령이 개각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이끌어가는 겁니다.”
“개각을 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네. 해임건의안입니다.”
지훈이 그렇게 말하자 모두가 놀랍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게 가능하겠나? 여당 내에서도 반발할 거고 사민당 또한 연정 파트너라 제외해야 하는데.”
“17석을 가진 정당이 하나 더 있습니다.”
“대안당? 설마.”
임건식은 지훈의 예상이 너무 나간 것 같다고 말해왔고 지훈은 어느 정도 공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저 또한 한정수 원내대표가 대안당의 손을 잡는 건 무리수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먼저 허 장관에게 사퇴를 종용하고, 그것을 언론에 흘린 것 자체도 무리수입니다. 또 대통령과 힘겨루기를 시작했으면 무조건 이겨야 하고요.”
“다들 우리가 대통령과 힘겨루기할 때 생각 안 나십니까? 그 당시 저는 김민수와 오태영을 끌어들여 대통령과 힘 싸움을 했습니다. 애매한 싸움을 걸었다가는 잡아 먹혀버린다는 건 다 알지 않습니까?”
정현석은 지훈의 생각에 공감한다는 듯 말했고 다른 의원들 또한 고개를 주억거렸다.
“한 가지 더 있습니다.”
지훈이 그렇게 얘기하자 모두는 지훈을 바라보았다.
“대안당과는 앞서 말했던 깔끔한 거래 상대가 될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 당은 연정이라는 기치 아래 여당과 정부에게 많은 양보를 해왔습니다.”
“그렇지 김무길 비대위원장 때부터 정 대표님 모두 싸우는 국회를 만들길 꺼리셨으니까.”
“네. 그렇습니다. 허 장관을 끌어내린다면 그들을 도울 명분이 없어진 우리는 여당과 거래를 하게 될 테고 협상 과정에서 일어나는 잡음은 결국 발목 잡는 야당이라는 평을 듣게 될 겁니다. 그리고 이는 대안당으로서는······.”
“현재 우리 당으로 몰리고 있는 중도층의 지지율이 떨어지면 우리는 보수세력 통합이라는 카드를 꺼낼 수밖에 없지.”
“맞습니다. 대표님의 미래를 위해 다음 총선은 승리해야 하는 싸움입니다.”
지훈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자 정현석은 모두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저런 무리수들을 차단하기 위해 여러분들을 여기로 모신 겁니다.”
“차단이요?”
정현석의 말에 임건식이 되묻자 정현석은 고개를 끄덕인 후 모두를 바라보았다.
“저는 한정수를 만날까 합니다. 여러분들은 저 대신 우리 당내를 관리해주십시오. 이영식 원내대표님께도 부탁드렸습니다.”
“좋습니다. 무엇을 하면 되겠습니까?”
“이승호 의원께서는 초선 모임에 한 번 참석해서 의견을 모아주십시오.”
“알겠습니다.”
“임건식 의원과 서권혁 의원님께서는 당내 중진들과 계파가 따로 없는 의원들의 의견을 모아주시고요.”
정현석이 그렇게 얘기하자 두 사람은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 양 의원님께서는······.”
“제가 구윤서 쪽을 만나겠습니다.”
양진호에게 어려운 부탁을 하려고 했던 정현석은 대뜸 자신이 하겠다고 말해오는 양진호를 보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청산은 대구의 위성도시기도 하고, 또 저도 구윤서 시장과 여러 번 왕래가 있었습니다. 대표님의 재신임 기간 구 시장이 무리수를 두긴 했지만, 이번 일은 당을 위한 일이니 도움을 줄 겁니다.”
“다행입니다. 제가 양 의원님께 부탁을 드리려고 했는데 제일 어려운 일을 선뜻 나서주시니 고마울 따름입니다.”
정현석이 고맙다는 눈빛을 보내자 양진호는 씩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모두 이번 일은 허 장관을 위한 일이기도 하지만 나의 미래와 당의 미래도 걸린 일이기도 합니다. 다들 그 점 생각하면서 움직여 주셨으면 합니다.”
정현석의 말에 모두가 알았다고 대답을 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사무실 밖으로 나갔다.
모두가 자리를 뜨자 정현석은 지훈을 보고 굳은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다음은 한정수 차롄가?”
“네. 한정수 원내대표를 상대로는 정공법을 선택하셨으면 합니다. 돌아가지 않고 가장 빠른 길로 직진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