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isor Jihoon Kim RAW novel - Chapter 162
161. 출마선언 (2)
일주일 후.
“프롬프터 제대로 나오죠?”
“네네, 두세 번 확인 했습니다.”
“제가 한번 더 확인 해볼 수 있을까요?”
정현석의 대선 출마 선언이 예정된 장소에는 아침 일찍부터 캠프의 인원들이 나와 준비 중이었고, 지훈은 행사 진행팀 관계자와 얘기를 나누며 정현석이 서게 될 단상을 점검 중이었다.
“잘 나오네요. 제가 연설문 읽어 보겠습니다. 프롬프터 진행 시켜주세요.”
지훈은 프롬프터(Prompter, 원고를 띄워주는 기기)를 점검 중이었는데 후보가 원고를 충분히 외웠더라도 정면을 바라봐야 하거나, 순간적으로 원고의 내용을 잊었을 때 보조해주는 중요한 기기였기 때문에 지훈이 직접 두세번에 걸쳐 확인했다.
“좋습니다. 잘 되네요. 본 행사때 차질 없도록해주세요.”
“네. 걱정 하지 마시고, 맡겨주십시오!”
지훈이 한참 행사 진행에 대해 점검하고 있을 때 지훈의 곁으로 한 사람이 다가와 등을 두드렸다.
“조 기자님, 벌써 출근하셨습니까?”
“하하,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정 대표님 출마 선언 취재는 제가 합니다.”
지훈의 등을 두드린 상대는 한 보수지의 기자였는데, 지훈은 의외라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상대는 팀장급의 기자로 필드에서 뛰기보다는 데스크에서 활동하는 기자였기 때문이다.
“하하, 정 대표님 급이 있는데 제가 직접 나와야지요. 잠깐 취재 괜찮겠습니까?”
“그럼요.”
지훈은 다른 사람들의 일에 방해되지 않도록 기자를 데리고 잠시 장소를 옮겼다.
“장소 선정이 흥미롭습니다. 구윤서 의원은 독립기념관을 택했고, 김준태 후보는 광화문 세종대왕 동상 앞에서 진행했는데, 정 대표님은 여기 국회 마당에서 진행하는 이유가 있을까요?”
“대표님의 의지였습니다.”
“정 대표께서 직접 국회로 정하셨습니까?”
정현석의 출마 선언은 국회 잔디마당 분수대 앞에서 진행될 예정이었는데 기자는 이유가 궁금하다는 듯 물어왔고, 지훈은 이유에 관해서 설명해나가고 있었다.
“네. 아무래도 국회가 민의의 장이라는 상징성도 있고요. 장소에 대해 의미를 두는 것보다는 메시지에 의미를 두고 싶어 하셨습니다.”
“그럼 메시지는······.”
“대표께서 직접 작성하셨습니다.”
“하하, 그렇군요. 정 대표를 제외한 보수당 후보 3인이 힘을 합칠 거라는 말이 있던데? 소문 들으셨지요?”
최근 여의도 내에서는 정현석을 견제하기 위해 보수당 대권 경선 후보들이 힘을 합칠 거라는 소문이 왕왕 나오고 있었다. 기자는 그것을 물었고, 지훈은 고개를 살짝 끄덕이고는 입을 열었다.
“듣긴 했습니다만, 제가 답변을 드릴 성질의 것이 아니네요. 어쨌든 우리는 우리의 길을 갈 뿐입니다.”
“원론적인 답변이지만, 이 정도로 만족해야겠지요? 기사에 실어도 되겠습니까?”
기자의 물음에 지훈은 미소로 답을 대신하고는 손목에 걸친 시계를 확인했다.
“시간이 되었네요.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지훈은 기자와 악수를 한 후, 발걸음을 옮겼다. 행사시간이 다가오자 국회 잔디 마당은 기자와 정현석의 지지자들로 가득 들어찼는데, 언론을 통해서 나온 출마 선언 일정을 보고 찾아온 것 같았다.
잠시 후, 정현석이 타고 있는 미니 밴이 국회 잔디 마당으로 들어섰고, 지훈은 재빨리 다가가 차 문을 열어주었다.
“어서 오십시오.”
“아침부터 수고 많았어.”
“아닙니다.”
정현석과 지훈은 얘기를 나누며 행사장까지 걸었고, 행사장을 향하는 도중에도 정현석의 지지자들이 악수와 사진을 요구 해왔다.
정현석은 단 한 명의 요구도 무시하지 않았고, 이러다 행사시간이 지체될 수 있어 결국 지훈이 나서야 했다.
“대표님, 곧 행사시간이 다가옵니다.”
“그래, 알겠어. 조금만 더······.”
정현석의 고집에 지훈은 어쩔 수 없다는 듯 옆에 서서 기다렸고, 행사시간이 점점 다가오자 지지자들은 요구하던 것을 멈추고는 힘내라는 말들로 정현석을 응원했다.
단상 앞으로 다가가자 정현석 계파로 불리는 국회의원들과 정현석 캠프에 합류한 국회의원 그리고 학계 인물들까지 자리하고 있었는데 정현석은 그들과도 인사를 한 후 단상 앞에 섰다.
“정현석 보수당 전 대표의 대통령 출마 선언이 있겠습니다.”
한쪽에서 마이크를 잡고 서 있던 이승호의 말에 행사가 시작되었고, 정현석은 단상 옆으로 빠져나와 고개 숙여 인사를 한 후 단상 앞에 섰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이 자리에 서기까지 저는 참 많은 분을 만나고 다녔습니다. 그분들은 제게 왜 대통령이 되려고 하느냐? 지금까지 해온 것들과 지금 있는 것에 만족하고 살면 평생을 존경받으며 잘 살 수 있지 않으냐? 하고 말해오셨습니다.”
정현석은 비장하다기보다는 담담한 말투와 표정으로 출마 선언문을 읽어내려갔다.
“참 마음이 아팠습니다. 이런 물음들이 지금 시대를 반영하는 물음인 것 같아서 말입니다. 우리는 지금 그런 사회에 살고 있습니다.”
정현석은 정면을 주시하며 계속해서 연설을 이어나갔다.
“세상에 대한 고민 따위는 하지 마라! 너 하나만 잘 살면 된다! 안락한 삶을 영위하고 절대 남들 앞에 서서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지 말아라! 남이 하면 따라 하고 절대 뒤처지지 말아라!”
큰소리로 연설을 해나가던 정현석은 잠시 숨을 고르고 입을 열기 시작했다.
“그것은 지난날 불의를 보고 참지 못했던 사람들이 겪어야 했던 설움과 탄압, 그런 모습을 보고도 내가 손해를 보게 될까 봐 입도 뻥끗하지 못했던! 남이 때리면 같이 때리고, 남이 욕하면 같이 욕해야 하는 정의롭지 못했던 이 나라가 만들어낸 한탄 섞인 가르침이었습니다.”
정현석의 연설에 행사장에 모인 모두는 숨을 죽이고는 정현석을 바라보았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저는 지난 세월이 가르친 설움과 한탄을 가슴에 품고 제19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합니다.”
정현석이 그렇게 얘기하고 숨을 고르자 주변에 있던 지지자들은 작은 소리로 박수를 보냈다.
“먼저 저는 정의로운 사회가 될 수 있도록 앞장서겠습니다. 권력의 시녀가 되어버린 공권력부터 바로 잡겠습니다. ‘모든 국민은 법 앞에서 평등하고 성별, 종교 사회적 신분에 의한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는 헌법 11조의 정신부터 바로잡겠습니다.”
정현석의 말에 지지자들은 다시 한번 큰 박수를 보냈다.
“국민의 81%가 법 앞에 평등하지 않다는 답을 했습니다. 검찰과 경찰이 더 이상 권력의 눈치를 보지 않고, 국민을 위한 권력 집단이 되도록 뿌리부터 개혁하겠습니다. 국세청은 세금을 징수하는 데 있어 신분의 차이를 두지 않도록 할 것이며, 국정원은 불법적, 탈법적인 행위를 멈추도록 개혁하겠습니다. 공권력의 행사가 만인에게 평등해야 우리는 더 정의로운 나라를 만들 수 있습니다. 저 정현석이 앞장서겠습니다!”
정현석이 연설을 하다 잠시 숨을 고를 때마다 촬영 기자들은 그런 모습마저 놓치지 않으려는 듯 연신 셔터를 눌러댔다.
“국민 여러분! 제가 대통령이 된다면 권위주의부터 탈피하겠습니다. 아직도 사회 곳곳에는 수직적인 권위주의 문화가 사회를 병들게 하고 있습니다. 대통령을 왕처럼 떠받들며 권력 실세들이 득세하는 사회를 바로 잡겠습니다. 권력이 감시받고 비판받는 사회는 민주국가에서 당연한 현상입니다. 개개인이 권력 앞에서 겁먹지 않고 바른 소리를 할 수 있는 문화를 제가 앞장서서 만들겠습니다.”
이후로도 정현석은 공약들을 발표하며 연설을 이어나갔고, 연설을 마무리할 시간이 다가오자 담담한 표정으로 정면을 바라보았다.
“혹자가 제게 말했습니다. 부잣집 도련님으로 태어나 평생을 고민 없이 살아온 네가 정치를 잘할 수 있겠냐고 말입니다. 대통령에 출마하려고 하는 것도 개인적인 영광을 찾는 게 아니냐고 말입니다. 짧다면 짧은 제 정치 인생 평생을 따라온 물음이었습니다.”
정현석은 그렇게 말하며 담담했던 표정을 지우고는 비장한 표정으로 정면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런 우려와 냉소가 섞인 물음에 저는 정치 인생 내내 행동으로 말해왔습니다. 단 한 번도 현실에 안주하지 않았고, 저부터 앞장서서 개혁을 해왔습니다. 국회에 첫 등원을 하던 날 결심했던 것이 있습니다. 부조리로 가득한 세상을 바꿔보겠다고 말입니다. 저의 지난 정치 인생을 돌이켜보면 그 다짐을 지키기 위해 참으로 아등바등 살아온 것 같습니다.”
정현석은 그렇게 말하며 자신의 지지자들과 행사장에 자리하고 있는 사람들 모두의 면면을 번갈아 보고는 확신에 찬 표정과 눈빛으로 입을 열었다.
“국회에 처음 등원하던 그 날 했던 다짐을 이 자리에서 다시 한번 하려고 합니다. 용감하게 앞장서겠습니다. 불의와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평범한 사람들의 편에 서겠습니다. 세상이 조금이라도 정의로웠으면 좋겠다는 말에 행동으로 답하겠습니다. 우리 아이들에게 좀 더 나은 세상을 물려주겠습니다. 제 모든 것을 다해 도전하고 반드시 그런 세상을 만들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정현석은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깊이 숙였고, 사람들은 국회 잔디 마당이 떠나가라 정현석의 이름을 연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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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마 선언을 마치고 캠프 사무실로 향하는 미니 밴 안에는 어떠한 소리도 들리지 않고 정적만이 자리 잡고 있었다.
한참을 그렇게 아무런 말이 없이 두 눈을 감고 있던 정현석은 지훈을 바라보고는 입을 열었다.
“왜 아무말이 없냐?”
정현석의 물음에 지훈은 정현석을 마주 보고는 의문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네?”
“‘연설 잘하셨다. 훌륭하다.’ 등등 뭐 말해 줄 거 많지 않냐? 평소엔 그런 말 잘하더니 오늘은 왜 아무런 말이 없냐고.”
정현석의 말에 지훈은 무슨 말인지 알겠다는 듯 피식 미소를 지으며 정현석을 바라보았다.
“감정에 복 받치니 아무런 말도 안 나오네요.”
“뭐?”
“대표님께서 마지막에 하신 연설 말입니다. 그냥 대표님의 옆에서 도왔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가서요.”
지훈의 말에 정현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그 연설문을 쓰면서 지난 세월이 떠오르더라고. 처음에 네가 세상을 바꾸려고 아등바등 살아간다는 사람이 있다고 했을 때 말이야. 등원 첫날부터 무슨 그런 말을 하나 싶었거든······ 근데 우리가 그런 길을 걸어왔더라고.”
“…”
“연설문을 쓰면서 새롭게 마음먹었어. 내가 아닌 다른 누가 세상을 바꾸겠다고 나설 때는 그렇게 나처럼 아등바등 살지 않게 만들어야겠다고 말이야. 내 손으로 그런 사회를 만드는 게 우선이지만······.”
정현석의 말에 지훈은 고개를 끄덕이며 웃음으로 답을 대신했고, 정현석 또한 그런 지훈을 바라보 미소를 지었다.
“할 수 있습니다. 대표님은 말씀하신 것들을 모두 지켜왔으니까 말입니다.”
그때, 운전을 하던 최준호가 룸미러를 통해 두 사람을 바라보며 얘기했다.
“저도 오늘 감동 많이 받았습니다. 대표님이 말씀하신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 수 있게 비록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대표님을 수행하는 일뿐이지만, 이 차 안에서만큼은 고단한 일에 치이신 대표님이 편히 쉬실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최준호의 말에 지훈은 크게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우리 각자가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자. 그것이 우리가 원하는 세상을 위한 길일 테니까.”
지훈은 룸미러에 비친 최준호의 눈을 바라보며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고, 최준호는 그런 지훈을 보며 기분이 좋아진듯 미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