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GATE RAW novel - Chapter 361
화
사람의 생각은 참 단순한 면이 있다.
나는 모성에 오게 되면 그리 어렵지 않게 내가 원하는 일들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일단 리샤가 근무했다는 연구소를 찾는 일이나 그곳에서 적당히 분탕질을 치거나 혹은 일을 꾸미는 것이 어렵지 않을 거라고 여긴 것이다.
그런데 막상 움직이려고 생각하니 막막하다.
어딜 가건 초고층의 건물들과 그 건물들 사이를 오고가는 자동차들로 북적이는 곳이지만 막상 우리 셋은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다.
멀쩡하게 돌아다니는 대중교통 조차도 우리는 이용하는 것이 불가능한 것이다. 신분 검사 따위가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니다. 모성에서 사용할 수 있는 텔론이 없기 때문이다. 나나 포포니 리샤의 툴틱에 쌓여 있는 텔론은 실제로 데블 플레인 연합에 속한 행성이 아니면 사용 할 수 없는 상황이다. 모성에선 그렇게 데블 플레인 연합과 다른 식민지 행성들을 따로 묶어서 묶음으로 만들어 버렸다. 아니 정확하게는 점차 그렇게 변해가고 있는 중이다.
우리 쪽에서 툴틱을 새로 만들어서 보급하면서 우리 쪽 툴틱으로 정보를 옮기고 나면 그걸 쓸 수 있는 곳이 데블 플레인 연합으로 국한되게 된 것이다.
툴틱을 이용한 모성의 언론 플레이에 당하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모성에서 개인 툴틱에 간섭할 수 있는 모든 기능들을 배제하다 보니까 그런 문제가 생긴 것이다.
사실 그에 대해선 여러가지 복잡한 문제들이 생기고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툴틱을 두 개나 지니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아니 툴틱은 하나지만 그 속은 둘로 나뉘어져 있는 거다. 그러니 텔론의 경우에도 모성 쪽에서 쓸 수 있는 계좌와 데블 플레인 연합에서 쓰는 계좌로 나눠서 넣어 두는 것이 유행이라고 하던가 그랬다.
뭐 그런 문제는 이제 데블 플레인 연합을 이끌고 있는 지휘부나 그 휘하의 관리들이 알아서 해결을 해야 할 문제다. 그런 문제들까지 일일이 해결하고 나설 정도로 내가 시간이 많은 것도 아니고, 여유가 넘치는 것도 아니고, 능력이 탁월한 것도 아니다.
아무튼 지금 당장 문제는 우리가 거지 신세라는 건데 어쩔 수 없이 그 문제부터 해결을 하고 볼 일이다.
“어딜 가시게요?”
리샤가 앞장서서 걷기 시작하는 내게 묻는다.
“어딜 가나 어둠은 있기 마련이지.”
“네?”
“그런 게 있어.”
“우웅. 남편 또 하수인 만들 거야?”
이해를 못하는 리샤와는 달리 포포니는 뭔가 알겠다는 듯이 내게 묻는다. 하긴 이런 것이 경험 차이라고 하는 거겠지.
포포니는 나와 함께 다른 식민 행성을 다니면서 뒷골목의 쓰레기 같은 인생들을 재활용해서 하수인을 만드는 것을 많이 봐서 이젠 척 하면 척이다.
“그래야지. 우리가 직접 움직이는 것 보다는 그래도 기반이 있는 놈들을 부리는 쪽이 더 쉬울 테니까 말이야.”
“흐응. 그런다고 뭐가 나올까?”
포포니는 뒷골목 범죄자들에게서 얻을 수 있는 정보가 별 것 있겠냐는 듯이 시큰둥하다.
“그냥 우리가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신분 정도만 만들거나 빌릴 수 있으면 그걸로 족한 거지. 밑바닥 인생들이 저 까마득한 곳에서 모성과 식민 행성 전체를 움직이는 이들에 대해서 알고 있을 거라고 기대하는 건 아니니까 말이야.”
“우웅. 그런 거야?”
“뭐 그렇지. 실제로 모성에 살고 있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식민 행성에 살고 있는 사람들과 다를 바가 없어. 어떤 의미에선 모성의 생활 수준이 더 낮은 경우도 허다하지. 모성은 이미 포화상태나 다름이 없으니까 말이야. 그러면서도 모성 사람들에 대한 통제는 거의 없어. 방임주의라고 할까? 그래서 제 멋대로 살아가고 있는 거지. 모성이 발전을 멈춘 것도 참 오래 된 일이라고 해.”
“발전을 멈춰?”
“아, 그건 제가 설명을 할게요.”
리샤가 뒤따라오며 듣고 있다가 앞으로 나서며 끼어든다. 혼자 뒤쳐져서 따돌림 당하는 듯한 느낌에서 벗어나고 싶은 모양이다.
나는 ‘제발 제가 설명하게 해 주세요.’하는 빛이 역력한 리샤의 눈빛에 슬쩍 어깨를 들썩여 주곤 시선을 앞으로 뒀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리샤가 포포니에게 설명을 시작한다.
“여기 모성이나 다른 식민행성이나 일정 수순이 되면 더는 발전이 없어요. 아, 과학에 대한 이야기가 그렇다는 거죠. 기술 발전이 멈춰 버렸다고 할까요? 그게 꽤나 오래 된 일이죠.”
“우웅. 더 나은 물건이 안 나온다는 건가요?”
“외형이 바뀌거나 혹은 조금 더 편리한 물건이 나오거나 하는 등의 변화는 계속되고 있어요. 하지만 그 기본이 되는 기술은 답보 상태에 있는 거죠. 예를 하나 들어 보면, 우주선은 여전히 광속의 70% 이상의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어요. 그럼 다른 방법으로 우주선의 속도를 높일 방법이 나와야 하는데 그런 것이 없다는 거죠. 실제로 플레인 게이트를 거대하게 만들어서 우주선을 보낸다면 그건 빛의 속도가 문제가 아니게 되는 거죠. 그런데 그런 시도가 없어요. 한계에 달한 엔진에서 멈춰버린 거죠. 사실 그게 벌써 몇 백 년은 지난 일이에요.”
“하지만 남편이 그랬는데, 엄청난 연구소가 있어서 이런 저런 연구를 하고 있다고. 그걸 남편이 직접 봤다고 했어. 그리고 전에 특수부대인가 뭔가 하는 것도 그런 연구에서 나온 거라며? 그럼 발전을 하고 있는 거잖아.”
우와 예리한 포포니.
“맞아요. 그게 문제죠. 연구는 계속되고 있고, 뭔가 더 나은 것이 나오고 있어요. 하지만 그걸 알고 있고, 또 배우고 있는 사람들은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아요. 지금 당장 모성이니 식민 행성에 있는 이들의 학습 수준으론 감당할 수 없는 내용들이 연구되고 있죠. 하지만 아까 이야기한 것처럼 일부만 알아요. 특정한 이들만 그걸 배우고 또 발전시키기 위한 연구에 투입되는 거죠.”
“그럼, 그 특정한 사람들이 모두 없어지면 어떻게 되지?”
“그럼 새로 처음부터 가르쳐야죠. 한 세대 정도 걸리겠군요.”
“아, 그렇구나. 어릴 때부터 새로 가르치면 되는 거구나. 에헤. 그런데 왜 그렇게 하는 거지? 이상하네?”
“위험하니까요.”
“에?”
리샤의 위험하다는 단답형의 대답이 이해가 되지 않는지 포니가 잠깐 멍한 표정이 된다.
“일정 수준이 넘어가는 과학 기술은 사람들의 생활에 도움이 되기보다는 부작용을 만드는 경우가 더 많았어요. 점점 편해진다는 것은 점점 게을러진다는 것이고, 또 일하지 않고도 굶지 않게 되면 사람들은 점차 무기력해지기 시작하죠. 뭔 가 할 이유가 없어요. 먹고 사는 것에 불편함이 없으니까요. 과학의 발달은 그것이 가능한 세상을 만들 수 있어요. 그래서 그 직전에 멈추기로 한 거예요. 대신에 의료나 기타 문제에 있어서는 조금 과한 수준까지 끌어 올렸죠. 물론 그것도 젊게 오래 사는 정도에서 멈췄어요. 불로장생까지는 어떻게 허용했지만 영생은 넘보지 못하게 한 거죠. 그런 거예요. 어느 정도 한계에서 멈춰진 발전. 그것이 지금의 모습인 거죠.”
“우와, 대단해. 그렇구나.”
포포니는 리샤의 말을 어느 정도 이해한 듯 하다.
하지만 실상 리샤의 설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빠진 것을 아직 알아차리지 못했다.
세상의 발전이 멈춘 가장 큰 이유는 인류의 공통적인 가치관과 사상이 딱 그 정도까지만 허용하기 때문이란 사실 말이다.
더 나은 발전으로 일하지 않고도 평생을 먹고 사는 데에 지장이 없으면 그 많은 여유를 좀 더 생산적인 활동, 혹은 자기 성장을 위한 행위에 투자를 하면 좋을 것이다. 그리고 모든 인류가 그러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지금의 발전 상황에서 멈추는 일은 있을 필요가 없는 것이다.
모성에서 아직도 숱한 연구를 하고 있지만 그 연구 결과의 대부분은 그걸 연구한 이들 조차도 수혜의 대상이 되지 못한다. 그거 연구로 끝나는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연구자들에게 온갖 편의를 제공하면 그 결과는 언제나 좋지 못한 결과를 가지고 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몇몇 열정적인 이들을 뺀 나머지 연구자들은 더 이상 연구에 매달리지 않는 것이다. 충분히 누릴 것을 누리는 입장에서 아쉬운 것이 없으니 연구 따위를 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그런 식으로 번번이 인류의 한계를 드러내는 실험 결과가 나오자, 결국 일정 수준 이상의 기술은 제공하지 않기로 한 거다. 아니 수준 이상의 기술은 도리어 제약을 받게 되었다는 말이 맞다. 세상에서 지워지는 것이다.
결국 문제는 인류의 정신 수준이 너무 낮은 것이 문제란 소리다. 그런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