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the supporters are hammocked RAW novel - Chapter 78
78화 5주 차 멘토링, 대인전 (1)
무기를 제작할 금속을 얻었으니 지체할 이유가 없었다.
그래서 내 다음 행선지는 대장장이 공방이었다.
깡! 깡! 하고 철 두드리는 소리가 규칙적으로 울리고, 이따금씩 후끈한 열기가 몰아친다.
안에서 수많은 학생이 바쁘게 작업 중임이 분명했으나 묘하게도 사람 목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모두 말 한마디 할 시간도 아까울 만큼 집중하고 있다는 뜻이리라.
그렇게 온 정신을 집중하는 와중 외부인인 내가 공방 이곳저곳을 헤집고 돌아다니면 매우 거슬릴 것이기에, 나는 문가에 멀거니 서서 누군가 나오기를 기다렸다.
철 두드리는 소리에 마음속으로 박자를 맞추고 있자니 근육이 울끈불끈한 사내가 나를 맞이했다.
교복을 반쯤 풀어 헤쳐서 넥타이핀은 보이지 않지만 높은 확률로 선배일 것이다.
얼굴이 도저히 신입생의 그것으로는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액면가가 3학년이니 3학년 선배로 치자.
반면 대장장이 선배는 내 가슴께의 넥타이핀만 쓱 확인하면 되었다.
“1학년? 무슨 볼일이야.”
“제작 의뢰를 하고 싶어서 왔습니다.”
나처럼 찾아오는 사람이 한둘이 아닌지, 3학년 선배가 조금 귀찮다는 듯 등허리를 긁적거리며 답했다.
“미안한데, 이번 학기 대기열은 다 찼다. 지금 의뢰 넣으면 다음 학기 초에나 끝날걸?”
“부장님을 뵈어도 될까요?”
나 같은 요구를 하는 사람도 한둘이 아닌지, 선배는 내 속이 훤히 보인다는 태도였다.
보나 마나 부장한테 아이템 하나 쥐여 주고 개인적으로 부탁하리라 생각하는 거겠지.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다. 네가 어디 명문가 직계쯤 돼도 안 해 주니까, 쓸데없이 시간 낭비하지 말고 그냥 가.”
“명문가 직계는 아니고, 이런 건 있습니다.”
품 안에서 자그마한 티켓 한 장을 꺼내 들었다.
그것을 보자 심드렁하기만 하던 3학년 선배의 눈이 휘둥그레 치켜 떠졌다.
[제작 VIP 티켓]“아니, 1학년이 이걸 어디서…….”
어디긴, 다른 동아리에서 뜯어 왔지.
에메랄드 마탑과의 결투에서 승리 보상으로 걸렸던 건데, 곽지철을 바닥에 마구 패대기치면서 내 것이 되었다.
그리고 몇 주간 인벤토리에 고이 모셔 두었다가 이제야 빛을 발하게 된 것이다.
나는 빙긋 웃으며 다시 물었다.
“부장님을 뵈어도 될까요?”
“어……. 어, 그래. 잠깐만.”
3학년 선배가 허겁지겁 안쪽으로 뛰어 들어가고, 잠시 뒤 다른 근육질 사내가 대신 나왔다.
대장장이 동아리 부장은 방금 나를 맞이한 선배보다 더욱 나이 들어 보였다.
분명 3학년일 텐데 도저히 3학년 같지 않았다.
돌이켜 보면 내가 옛날에 키웠던 대장장이들도 하나같이 우락부락하고 삭아 보였던 것 같다.
사람은 망치를 들면 늙는 것일까?
내가 그런 무례한 가설을 세우는 한편, 대장장이 동아리 부장은 나에게 터벅터벅 다가오더니 대뜸 한 마디 내뱉었다.
“티켓.”
“예.”
VIP 티켓을 보이자 진품인지 쓱 확인만 하고, 아직 받지는 않는다.
VIP 티켓은 대기열을 최우선으로 앞당기는 역할을 하기는 하지만, 의뢰를 받고 말고는 장인 마음이다.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 보고 결정하겠다는 뜻이다.
“뭐 만들려고.”
“직접 보시는 게 더 빠를 것 같습니다.”
미리 그려 온 설계도를 부장에게 건넸다.
사람 팔뚝보다 조금 길쭉한 봉.
조립이 가능하도록 설계되었다.
대장장이 부장이 설계도를 찬찬히 훑어보았다.
“보통 봉은 아니군. 형태도 특이하고, 부품도 장착하게 해 놨고, 꽤 정교해. 마법공학 장비인가?”
“바로 보셨습니다.”
나는 참고용으로 쓰라고 이전에 만들어 두었던 E급 [부유의 철봉]을 넘겼다.
물론 핵심 부품은 분리해 두었다.
부장은 철봉을 이리저리 돌려가며 뜯어보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재미있어 보이는군. 평소 같았으면 마법공학 장비는 안 만들었겠지만 이번에는 예외로 치지.”
대장장이들은 대개 마법공학 부품을 만드는 걸 선호하지 않는데,
자그마한 부품 여러 개를 깨작거리기보다는 크고 묵직한 철 덩어리를 통째로 가공해 휘두르는 게 더욱 사나이답지 않냐는 마초적인 이유에서다.
그럼에도 내가 보여 준 설계도는 대장장이 동아리 부장의 흥미를 끌기에 충분했나 보다.
부장은 다음 질문으로 넘어갔다.
“재료는?”
“이걸 주재료로 사용해 주세요.”
만년한철 주괴를 꺼내자 대장장이 부장의 안색이 조금 변했다.
여태까지는 나한테 관심도 없다는 듯 시선도 주지 않았는데, 지금 막 생기기 시작했는지 처음으로 얼굴을 마주 본다.
“재미있는 1학년이야. 만들어 달라는 것도 특이하고, VIP 티켓에 만년한철까지.”
“이래저래 운이 좋았죠.”
“운만 좋다고 얻을 수 있는 것들은 아닌데……. 일단 그렇다 치지. 만년한철이 주재료면, 부재료는 뭘 추가하나?”
“부재료는 이걸 쓰려고 합니다.”
착용하고 있던 [블랙 미스릴 밴드],
그리고 [제사장의 검은 팔찌]도 벗어서 넘겼다.
둘 다 [블랙 미스릴]이라는 금속이 주를 이룬다.
블랙 미스릴의 첫 번째 강점은 매우 마나 전도율이 높다는 것, 두 번째는 장신구를 만드는 적은 양으로도 효과를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부장은 내 의도를 파악했는지 눈빛을 날카롭게 빛냈다.
“만년한철에 블랙 미스릴 합금……. 잘하면 두 금속의 장점만 취할 수 있겠군.”
“바로 그렇습니다.”
“다뤄 본 적 없는 조합이지만 어려울 건 없겠지. 어림잡아 일주일은 걸릴 거다. 완성되면 연락 주마.”
그러나 나는 확신했다.
일주일이 아니라, 불과 며칠도 안 돼서 대장장이 동아리 부장의 연락을 받으리라는 사실을.
어려울 건 없다?
생각처럼 쉽게 풀리지는 않을걸.
* * *
5주 차.
월요일.
누군가에게는 여느 때와 다름없는 대인전 주간이었지만,
누군가에게는 조금 더 큰 의미가 있는 주간이었다.
이번 주부터 멘토링이 시작되기 때문에.
학사 일정에는 변동이 없고, 멘토링을 신청한 사람에 한해서 둘을 병행하게 된다.
이수독이 수업을 마치며 공지 사항을 전달했다.
“1차 멘토링에 참가하는 학생들은 지금 즉시 아레나로 이동한다. 정확한 장소는 학생증 뒷면을 확인하도록.”
절반이 조금 안 되는 학생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대로 앉아 있는 이들은 여러 가지 이유로 이번 멘토링을 신청하지 않았겠지만, 한 달쯤 지나서 신청한 학생들과 격차가 벌어지기 시작하면 생각이 바뀔 거다.
2차 멘토링부터는 참여율이 껑충 뛸 테고.
고현우, 서예인과 함께 느긋하게 아레나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목적지가 ‘아레나’인 것은 모두 같다.
어차피 멘토링을 받으면서 대인전도 같이 치를 예정이라, 학사 측에서 아예 아레나를 약속 장소로 정해 버린 것이다.
하지만 정확히 ‘아레나 어디’로 가는가는 제각각이다.
이수독의 말대로 학생증 뒷면을 확인해 보면,
[163-H]관중석의 좌석 번호를 받았다.
고현우와 서예인이 받은 좌석 번호는 또 다르고.
이렇게 지정된 좌석에서 각자의 멘토를 만나게 된다.
고현우가 무언가 떠올랐는지 나에게 물었다.
“그러고 보니, 본인 말고도 그 멘토라는 분에게 가르침을 받는 자들이 있지 않소?”
“당연히 있지. 한 서너 명 정도.”
“그들도 본인과 같은 검사들이오?”
“정말 특수한 경우가 아니면. 그러려고 신청서를 까다롭게 써서 낸 거니까.”
가르치는 사람과 배우는 사람의 클래스가 최대한 비슷하도록 좁혔으니, 결과적으로 배우는 사람들의 클래스도 비슷해질 수밖에 없다.
고현우 말고 다른 멘티가 네 명이라면, 네 명 모두 검사일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다.
고현우의 얼굴에 더욱 기대감이 차올랐다.
“선배 고수뿐만 아니라 다른 분들의 솜씨까지 볼 수 있다니, 과연 멘토링에 참여하길 잘한 것 같소.”
“기회 봐서 대련도 하고 그래.”
“물론 그럴 생각이오.”
다만 고현우와 대련을 할 만한 실력의 검사가 그의 조에 포함되어 있을지는 가 봐야 안다.
멘토를 기준으로 매칭되기 때문에 조의 구성원은 완전히 무작위니까.
생각보다 별 볼 일 없어서 실망할지도 모르지.
그때, 어깨너머에서 질문이 날아왔다.
“너희도 멘토링 신청했어?”
시선을 돌려 보니 어느새 한소미가 근처에서 보조를 맞춰 걷고 있다.
아무래도 같은 반이다 보니 다 같이 걷게 될 수밖에 없었다.
한소미와 단짝처럼 붙어 다니는 송천혜도 있었는데, 한소미가 나에게 말을 건 시점에서 조금 거리를 벌리고 애써 우리를 외면하는 중이었다.
나는 대수롭지 않게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기회잖아. 안 할 이유가 없지.”
“너, 캐스터 계열이지?”
“어.”
“배틀 메이지 맞아? 올라운더.”
“맞는데, 그건 왜?”
내가 되묻자 한소미가 송천혜를 척 가리키며 답했다.
마치 짜잔! 하는 효과음이 들리는 것 같다.
“천혜도 올라운더로 신청했거든! 잘하면 둘이 같이 멘토링 받을 수도 있겠다!”
그 말에 먼 곳에 관심을 두는 척하던 송천혜가 질색 팔색을 했다.
“이상한 소리 좀 하지 마, 진짜!”
“잉? 왜 이상한데?”
“그건…….”
한소미가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리자 송천혜는 말문이 막힌 듯했다.
인페르노 피스트나 지하층 침입 등, 나에 대한 의혹들을 다 털어놓지는 않은 모양이다.
아직 뚜렷하게 확정된 것이 없기도 하고, 2, 3학년 선도부들이 입단속을 시켰을 수도 있고.
입을 몇 번 벙긋거리다가 결국 말하지 않기로 한 듯했다.
“……그런 게 있어!”
얼버무리기와 쏘아붙이기의 중간쯤이었다.
홱 몸을 돌려 빠른 걸음으로 앞서 나가다가,
“으힉.”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발을 헛디디고 비틀거린다.
가까스로 균형을 잡고 나서 우리 쪽을 째릿 쏘아보곤 두 배는 빠른 걸음으로 멀어져 간다.
나는 한소미에게 물었다.
“쟤 자주 저러냐?”
“응, 맨날 저래.”
맨날 저러는구나.
전에도 느낀 거지만 생각보다 맹한 구석이 있었다.
몇 가지 사소한 대화를 나누다 보니 아레나가 코앞이었다.
우리도 각자의 좌석을 찾아 흩어지기로 했다.
“멘토링, 대인전 다 잘들 하고, 나중에 봅시다.”
“응! 안뇽!”
“김 형에게도 무운이 함께하길 바라겠소.”
“…….”
한소미가 해맑게 인사하고 떠나고, 고현우도 빙긋 웃더니 한소미와 같은 방향으로 걸어갔다.
서예인도 나른한 눈으로 손을 살랑살랑 흔들어 인사하고 제 갈 길을 나섰다.
관중석 곳곳에서 3학년 혹은 졸업생 멘토들은 자리를 잡고 대기하다가, 1학년들이 머뭇거리며 다가오면 반갑게 맞이했다.
일부는 벌써 모든 인원이 다 모인 것 같았는데, 멘토 주위로 네다섯 명 정도가 둘러앉아 설명을 듣고 있었다.
나도 내 자리를 찾아 좌석 배치도를 확인했다.
‘163-H는 저쯤이겠네.’
위쪽 자리여서 제법 시선을 들어 올려야 했다.
그 부근이 텅 빈 걸 보면 우리 멘토는 아직 안 왔나 보다.
먼저 가서 기다리자는 마음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막 계단에 첫발을 올리려는데,
“…….”
조금 앞서 올라가던 송천혜가 인기척을 느끼고 뒤를 돌아보았다.
시선이 마주치자 표정이 대번에 못마땅해진다.
“왜 따라와요.”
“너 따라가는 거 아닌데.”
“그럼 먼저 지나가세요.”
“그러지 뭐.”
나는 멈춰선 송천혜를 지나쳐 163-H 좌석까지 터벅터벅 걸어 올라갔다.
그리고 아주 편한 자세로 걸터앉았다.
송천혜는 내가 자리를 잡는 걸 확인한 후에야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는데.
……그렇게 다시 움직여서 걸음을 멈춘 곳이 내 바로 앞이었다.
불신이 가득 차오른 얼굴로 자기 학생증과 좌석 번호를 번갈아 확인한다.
“설마…….”
“너도 163-H니?”
“이게 어떻게 된 거죠?”
“그걸 저한테 물어보시면 어떡해요.”
내가 돌려줄 반응은 어깨를 으쓱하는 것뿐이었다.
나라고 이렇게 될 줄 알았나?
“하…….”
송천혜는 한숨을 푹 쉬더니 조금 떨어진 곳에 서서 팔짱을 끼고 눈을 감았다.
물론 감은 척만 했을 뿐, 이따금씩 실눈을 뜨고 나를 몰래 훔쳐보는 티가 난다.
그러든가 말든가, 나는 느긋하게 다음 사람들을 기다렸다.
같이 멘토링을 받는 게 송천혜 하나일 리가 없다.
또 누가 올라올까?
흥미진진한 심정으로 아래쪽을 내려다보고 있자니.
‘다 아는 얼굴들이구만.’
서포터가 다 해먹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