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ocalypse became the strongest Alba RAW novel - Chapter 77
77화-전과는 다른데
“너, 넌 여기 왜 있냐?”
분명 내 가까이에 아무도 없었는데 어느 사이에 안성희가 옆에 와서 서 있다.
“저 앞에서부터 천천히 왔어.”
반년 만에 본 안성희는 레벨이 더 오른 모양이다.
존재감이 더 흐릿해졌다.
빈말이 아니라 정말 의식하고 있지 않으면 다가온 지도 모르게 공격당할 정도다.
서포터 계열의 각성자 중에 안성희만큼 강한 친구도 드물 거다.
“잘 지냈냐? 대전에 들렀다 왔는데 아무도 없더라?”
“며칠만 자리를 비울 생각이었는데 겨울에 사람들까지 다 옮겼어. 나는 좀 바빴고.”
“어디로 갔는데?”
“세종시. 큰 그룹 아래로 들어갔어. 우리 아파트는 지킬 데가 너무 많아서 힘들더라고.”
안성희의 그룹도 다른 그룹들처럼 겨울을 지내기 위해 더 큰 그룹에 합류했다.
더 바빠지겠지만 더 안전해진다면 감수할 만하다.
“옮겨간 데는 지낼만하고?”
“응, 우린 비 각성자가 많았던 그룹이라 각성자들이 좀 힘을 덜었지. 비 각성자들도 좋아하고. 농사지을 수 있는 땅이 있어서 할머니들이 좋아하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전에도 각성자 비 각성자 구분하지 않고 텃밭을 만들 정도로 농사에 관심이 많았던 사람들이다.
이제 농사는 취미가 아니라 꼭 필요한 일이 되었고 거기에 집중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는 건 그룹에서도 반길 만한 일이다.
“다행이네. 게이트는 네가 찾았냐?”
“게이트를 찾은 게 아니라 좀비들을 찾은 거야. 저 군청은 고립되어 있었는데 이상하게 계속 좀비가 늘어났거든, 나는 그걸 찾아낸 거고.”
“너는 게이트를 찾아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그건 안되는 모양이네?”
“저 안에 있는 게이트도 눈에는 보이는데 지도는 표시 안 돼. 따로 찾는 방법이 있을 것 같은데 나는 모르겠더라.”
안성희가 자기 능력으로 게이트를 찾아낸 게 아니라는 말에 실망했다.
“내가 알고 있는 사람 중에 네가 가장 게이트를 찾아낼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했는데 이러면 방법이 없네.”
“별의별 능력자들이 많으니까 어디선가 나올 거야.”
“그래야지.”
안성희 말대로 다른 능력을 지닌 각성자들 찾거나 그럴 가능성 있는 사람들이 능력을 강화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안성희가 손짓하며 나를 안내했다.
“여기 책임자를 만나러 왔지? 소개해 줄게.”
“누구야? 너희가 들어갔다던 세종시 그룹 사람이야?”
“그건 아니고 대화그룹의 후계자. 저기 엑소슈트 입은 사람들이 그 사람 부하야. 대화그룹하고 우리 쪽이 교류가 좀 있었나 봐.”
대화그룹이 인근에 공장이나 자회사, 연구소가 있었으니까 교류가 있을 만하다.
“네 능력은 얼마나 알아?”
“초창기 능력 정도로 알고 있지. 내가 그 능력보다는 무력을 강화했다고 말을 했거든.”
“하긴, 너 정도면 서포터가 아니라 전사나 암살자 계열로 봐도 될 정도니까.”
안성희가 가졌던 좀비 사태 초기의 능력만 하더라도 어느 그룹에서나 모셔갈 정도의 능력이다.
그런 능력을 지닌 것만 해도 대단한데 무력까지 출중하니 당연한 일이다.
안성희는 나를 커다란 천막으로 이끌었다.
“가자.”
***
“은성민입니다.”
“진웅입니다.”
나와 악수하는 은성민은 큰 덩치에 단단해 보이는 체형과 이미지의 30대 중반의 남자다.
어디 잡지나 인터넷 기사에서 얼굴을 본 것인지 익숙하기는 했지만, 알아보지는 못했다.
대화그룹 로고가 새겨진 점프슈트에 방탄복을 입었다.
천막 밖에서 본 사람들도 같은 복장을 하고 돌아다니는 걸 보면 저 작업복이 많은 모양이다.
스타몰 재난 물자에서 챙긴 전투복만 계속 입고 다녔는데 저런 작업복도 편하게 입기엔 나쁘지 않아 보였다.
“윤재한테 많이 들었습니다. 이제야 만나는군요.”
“그러셨습니까?”
“윤재는 제 이야기하지 않죠?”
“예, 듣지 못했습니다.”
은성민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피식 웃었다.
“윤재가 예전부터 사람 욕심이 많아서 그래요. 진웅 씨 한번 만나보려고 했는데 그렇게 막더군요.”
“그 이야기도 듣지 못했습니다.”
듣지 못했지만 들었더라도 만날 이유가 없어 만나지 못했을 거다.
서윤재가 사람 욕심이 많아서 그런 게 아니다.
내가 서윤재 사람도 아니고 이유 없이 사람 만나지 않는다는 걸 서윤재가 파악하고 말을 전하지 않은 거다.
“이렇게 만났으니 더 말할 필요 없겠죠. 그런데 게이트를 찾았다는 소식을 보낸 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는데 빨리 오셨습니다.”
“가까운 곳에서 소식을 들었습니다.”
“다행이네요. 간단하게 설명하겠습니다. 1층에 게이트가 있습니다. 그런데 정확히는 1층 바닥에 일부가 파묻힌 상태로 열립니다.”
강원도에서 본 게이트와 같다.
불 완전한 게이트인 거다.
“불완전한 게이트네요.”
“예. 그래서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아직도 완전한 게이트를 찾는 방법은 찾지 못했습니다.”
“그렇다고 들었습니다.”
“저희 직원들이 게이트에 접근하려고 했지만 모두 실패했습니다. 게이트 근처에 압력이 비정상적으로 높더군요.”
“예, 위험했습니다.”
분홍색 인형 탈은 천으로 된 인형 옷으로 보이지만 엄연히 아이템인 갑옷 일부이다.
그건 방어력의 영향을 받는다는 말이고 신체가 노출된 다른 엑소슈트 착용자들과는 달리 압력을 더 잘 견딜 수 있다.
물론 레벨의 차이도 크기 때문에 더 그럴 거다.
“내일 아침에 한 번 시도해 보는 게 좋겠습니다.”
“좋습니다.”
“그리고, 불 완전한 게이트지만 그 게이트를 통해 좀비들이 나옵니다. 저희 직원들이 최대한 처리할 테지만 압력에 좀비들까지 더해지면 위험할 겁니다.”
“음, 알겠습니다.”
천막을 나오자 안성희가 내가 지낼 천막으로 안내해 주었다.
안성희는 천막에서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이야기했다.
새로 들어갔다는 세종시의 그룹은 경찰들이 중심이 돼서 만들어졌다.
군대로 치자면 대령 정도의 계급인 총경이 수장이고 경찰과 공무원들이 민간인들을 받아들이면서 크기가 커졌다.
그래서 안성희의 그룹같이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그룹도 흡수해서 세를 불리고 있었다.
지금은 군대나 경찰공무원 그리고 재벌들이 세력을 만들거나 유지하고 있는 상태다.
거기에 새로운 세력은 일광교 정도에 불과했다.
그나마 지금이야 이 정도로 유지가 되는 거지, 여기서 더 강력한 괴물들이 튀어나오거나 식량 수급에 차질이 생긴다면 이 정도 규모의 그룹이 유지될 수가 없다.
지금 각 세력이 사람들을 더 받아들이고 세력을 불리는 이유는 식량을 생산하기 위해서였다.
강한 전사들도 필요했지만 유능한 농사꾼도 필요했다.
‘이런 세상에서 세력 없이 무력만 강한 나 같은 사람은 이렇게 게이트나 파괴하고 다니는 게 맞는 일 같기도 하네.’
나는 세력을 만들 생각도 없고 농사를 지을 재주도 없으니 할 수 있는 생각이기도 하다.
“서울에 들르면 아이템 강화하던 북한산 카페 건물로 와.”
“왜? 요새 거기 있어?”
“응, 그 카페하고 그 근처 땅이 내 거야.”
내 말에 안성희의 눈이 동그래졌다.
“네 거라고? 땅을 샀어?”
“남아 있는 세 개 그룹에 소유권과 불가침 구역으로 인정해 달라고 했어.”
안성희는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문서 같은 건 이제 의미가 없고 힘이 있고 주변에 힘 있는 세력에 인정받아야 한다.
“음, 땅문서보다 주변 세력들에게 인정받는 게 더 확실하긴 하지.”
“그래서 요새 그 근처에 서포터 계열의 각성자들이 모이고 있어. 진짜 쇠를 두드리는 대장장이도 있더라고.”
쇠를 두드리는 대장장이라는 말에 안성희가 흥미를 보였다.
“진짜 대장장이라고?”
“직접 가보지는 못했는데, 듣기로는 우리처럼 고유무기가 없는 사람들 무기 만들어 준다고 하더라. 아이템은 아니지만 조금 더 단단한 빠루로 만들어 주는 식인가 봐. 뭐 농기구 만든다거나 조금 더 강화하는 것도 가능하겠지.”
세력마다 농사를 시도하고 있다.
농사에도 기계를 이용하는 시대인데 그 기계를 못 쓰게 됐으니 농사가 어려워졌다.
농기구 자체를 구하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구한다고 해도 이미 만들어진 재고 이외에 새로운 농기구를 만들 수가 없기도 하다.
그런 상황에 대장장이라니 흥미롭지 않을 수가 없다.
“아빠한테 이야기하고 나중에 한 번 꼭 들려야겠다.”
“그래, 들리라고.”
조금 더 이야기하다 안성희는 떠났고 나는 천막에서 쉬었다.
***
전기가 없어진 이후로는 사람 대부분이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바른 생활하게 됐다.
그래서인지 나도 해만 넘어가면 금방 졸리고 일출이 시작될 때쯤 일어난다.
천막 안에서 자연스럽게 눈을 뜨고 밖에 나와 보니 이제 저 멀리에서 해가 떠오르고 있다.
좀비 사태 이후로 일 년 넘게 매연이 없어지니 하늘이 맑아졌다.
그래서 일출이나 일몰의 풍경들이 좋았다.
가끔은 정말 그림 같은 풍경을 사진에 담아 두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기도 했지만, 핸드폰은 안 켜지고 필름 카메라는 없다.
카메라가 있다고 하더라도 필름이 아직 존재하는지도 모르겠고 그것마저 있다고 해도 사진을 어떻게 현상하는지 모른다.
편리한 세상에 살다가 갑자기 그런 문명의 이기들을 사용하지 못하게 되니 너무 불편한 게 많았다.
공기가 좋고 풍경이 멋있다는 생각은 늘 이렇게 불편한 게 많다는 결론으로 도달한다.
‘실제로 그러니까. 풍경이 밥 먹여주는 게 아니잖아.’
천막으로 돌아와 간단하게 아침을 먹고 밖으로 나왔다.
여기 사람들은 군인들처럼 점호는 하지 않는 것 같았다.
아침점호는 소속감을 살려주는 데는 좋지만, 나 같은 외부인들이 보기엔 지금 같은 세상에 뭐 하는 짓인가 싶은 점이 있었다.
다들 식사를 마치고 군청 건물 입구에 섰다.
입는 데 시간이 걸리는 엑소슈트를 착용한 사람들이 한쪽에 줄지어 서 있다.
저 출력강화형 엑소슈트는 나와는 다르게 어깨부터 유압장치가 더 크고, 양손 부분이 지게차의 포크처럼 길고 뾰족한 두 개의 손가락이 있다.
저 손으로 무거운 짐을 양손으로 들어 올린다.
좀비들과 싸울 때는 잡기보다는 찌르거나 휘두르는 용도를 쓸 것으로 보였다.
다른 한쪽엔 권총과 진압 방패를 든 경찰이 서 있다.
공주에서 같이 넘어온 안 경사 일행들도 섞여 있어서 서로 고개를 까딱하며 인사했다.
안성희도 어느샌가 나와서 내 옆에 섰다.
기척을 못 느끼게 다가오니 깜짝깜짝 놀란다.
나만 그런 게 아니라 다른 사람도 그런 듯 안성희를 발견하고 움찔거렸다.
안 그래도 되는데 저러는 걸 보면 저런 식으로 존재감을 드러내는 것 같다.
아니면 그냥 사람들 놀라는 게 좋은 걸 수도 있다.
잠시 후 은성민이 나타났다.
뒤에 같은 복장의 직원들이 좌르륵 뒤를 따르는 게 재미있었다.
은성민은 주머니에서 회중시계를 꺼내 시간을 봤다.
정말 나도 시계 하나 구해야겠다.
“8시 55분입니다!”
은성민의 외침에 다들 긴장하기 시작했고 나는 갑옷을 소환했다.
“갑옷소환-!”
내 갑옷을 처음 본 사람들이 흥미를 보였고, 특히 다른 엑소슈트 입은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그냥 놀이공원에서나 쓰는 모델이잖아?”
“그러게. 저게 그렇게 강하다고?”
“저런 싸구려 털 옷이 어떻게 그 압력을 이겨내?”
“파괴했다던 게이트가 다른 거 아니야?”
“모르겠네. 겉으로 보기엔 우리보다 나은 게 보이지 않아.”
“지켜보자고.”
사람들이 떠들든 말든 천천히 걸었다.
엑소슈트 하나가 입구를 막은 두꺼운 철문을 들어 올렸다.
그그긍!
커다란 입구가 열렸다.
안에는 벽과 바닥이 움푹 파여 좀비들과 싸운 흔적들이 조금 보였다.
등 뒤에서 은성민의 외침이 들렸다.
“8시 59분!”
나는 안으로 쑥 들어갔다.
곧 1층 끝 쪽에 작은 빛이 원을 그리더니 그 원이 그대로 커졌다.
후아아악-!
강원도에서 본 것과 같이 5m 정도의 빛으로 된 원이 생겼다.
하지만 아래 삼분의 일 정도가 바닥 안으로 들어갔다.
‘무슨 이유로 이런 불완전한 게이트가 생기는지 알아야 해. 그래야 완전한 게이트도 찾을 방법도 알아낼 수 있을 거야.’
원 안이 시커먼 색으로 변하더니 좀비의 형체가 보이며 원 밖으로 나오려고 했다.
쿠오오오오-!
밀려오는 좀비 중 앞쪽의 녀석들은 하체 없이 상체만 잘려서 바닥을 기기 시작했다.
“쿠웨에엑-!”
뒤쪽의 녀석들은 나오자마자 죽은 녀석들을 타고 기어올라 원을 통과해서 넘어왔다.
“키이익-!”
나는 게이트를 향해 계속 걸었다.
쿵! 쿵! 쿵!
서서히 압력이 느껴졌다.
아직은 버틸만했다.
내 뒤를 따르는 다른 엑소슈트와 경찰들도 여기까지는 잘 따라왔다.
쿵! 쿵! 쿵!
몇 걸음 더 걸어가자 압력이 심해졌고 경찰들이 멈추어 섰다.
쿵! 쿵! 쿵!
다시 몇 걸음 더 나아가자 엑소슈트들이 멈췄다.
앞쪽에서 상체만 남은 채 팔로 기어 오는 좀비들은 이 압력을 느끼지 않는 것 같았다.
저 게이트에 접근 못 하게 하는 장치 중 하나가 이 압력인 것 같다.
하지만 지난번 보다 나는 강해졌다.
사방에서 압박해 오는 압력을 이겨내며 계속 걸었다.
쿵! 쿵! 쿵! 쿵!
기어 오는 좀비들을 밟고 걸었다.
멀쩡한 좀비들이 달라붙었지만 맨 앞의 놈을 손톱에 끼워 넣고 밀어내며 앞으로 걸어갔다.
“끼에엑-!”
쿵! 쿵! 쿵! 쿵!
압력이 거세지고 좀비들이 들러붙어 발길을 막았지만 계속 앞으로 나갔다.
뒤쪽의 엑소슈트들은 내게서 밀려난 좀비들을 유인하느라 발을 굴렀고.
쿵! 쿵! 쿵!
그 뒤의 경찰들은 총을 쏘았다.
탕! 탕! 탕!
몇 마리는 소리에 이끌려 앞으로 걸어갔다.
‘이 정도쯤에서 코피가 났던 것 같은데?’
게이트를 몇 걸음 앞에 두고 힘겹게 걸었지만, 코피가 날 정도는 아니다.
다시 한번을 더 걸으면서 손톱에 끼운 좀비를 찢어 버렸다.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며 손톱으로 게이트를 잘랐다.
슈카카카카칵-!
원형의 빛이 손톱에 잘리며 확 터져나갔다.
쿠와아아아악-!
‘어? 전과는 다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