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e you the devil in the labyrinth? RAW novel - Chapter 387
그건 너무나도 갑작스러운 일이었다.
그 누구도 예즉하지 못한 일.
···거대한 빛이 창날이 되어 하늘을 꿰뚫었다.
에리스는 그것을 보며 숨을 들이켰다.
저것이 무엇인지 그녀는 알고 있었다.
그 날, 분명 그녀 또한 그 자리에 있었다.
폭발하는 신전과 치솟는 빛의 기둥-.
데페르라에서 보았던 그 광경과 똑같았다.
지금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괴물로 변한 이종족들이 도시를 휩쓴다.
저편에서는 데페르라의 악몽이 재현되고 있었다.
뿜어지는 보랏빛 섬광은 죽음을 안내하는 통로와도 같았다. 저것이 한 번 흩뿌려진 이상 이 도시가 어떻게 될지는 뻔한 일.
마소가 침식해 온 대지는 더 이상 생물체가 살 수 없는 지옥이 되어 버린다.
빛기둥이 치솟고 얼마나 지났을까.
에리스는 괴물을 보았다.
지옥에서부터 밀고 올라온 듯한 거대한 괴물은 하늘을 향해 날아오르고 있었다.
멀리서 보더라도 그 형체가 뚜렷하게 보인다.
드래곤인가?
에리스는 전설 속에서만 보았던 드래곤을 떠올렸다.
전신을 마력의 아지랑이로 보호한 채 파충류의 머리를 가지고 있는 그건 드래곤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등줄기로 뻗어 있는 날개는 어딘가 축 늘어져 보였지만 위압감은 엄청났다.
멀리서 보는 것만으로도 괴물이 흘리는 힘에 심장이 조여 온다.
도망치 던 사람들도, 싸우던 모험가들도 모두 그 순간은 마법에 걸린 것처럼 하늘을 보았다.
괴물의 포효가 모두를 얼어붙게 만들었다.
천둥처럼 울리는 소리는 아무리 경험 많은 베테랑 모험가라 할지라도 저릿하게 몸의 모든 부위를 딱딱하게 마비시켰다.
그것은 저주였다. 공기를 타고, 소리가 되어 모두를 돌로 만드는 석화의 저주.
아무리 뛰어난 마법사라도.
아무리 뛰어난 전사라도 저 저주 앞에서는 한낱 피식자처럼 무력해질 수밖에 없었다.
마스터를 앞둔 검사의 눈은 어두운 밤하늘 아래에서도 괴물의 모습이 코앞에 있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녀가 보는 건 괴물이 아니다.
호수처럼 맑은 눈이 보는 건 다른 것이었다.
“아······.“
괴물의 등줄기에 달라붙어 있는, 그 작은 인영을 그녀는 놓치지 않았다.
그건 분명 에반이었다.
무슨 짓을 했는지 모르지만 하늘을 날던 괴물은 갑자기 추락했다.
추락한 지점을 향해 모험가들이 움직인다.
그들은 지금 이 일을 인간들의 짓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 말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 에리스는 모험가들의 뒤를 따라갔다.
얼마나 달렸을까.
그녀는 갑자기 앞에서 들려오는 비명소리와 함께 도시를 가르는 빛을 보았다.
그것이 검기라는 걸 그녀가 눈치 채는 건 한참 뒤였다.
***
순식간에 수십명을 일소시킨 일격을 맞고서 시작된 싸움은 유현의 일방적인 학살이었다.
싸우면서도 유현이 놀랄 정도로 모험가들은 무력하게 학살당했다. 정확히는 유현이 강해졌다고 할 수 있었다.
회귀 전에도 이 정도 힘은 다루어본 적이 없었다.
공격 하나하나가 전부 필사의 일격-.
마법과 오러를 깨부수는 유현의 검기에 모험가들은 아무런 저항을 할 수 없었다. 방어도 공격도 의미가 없다.
압도적인 공격에 모든 것이 무력해진다.
”크흑···. 이 악마 같은 놈!”
마지막으로 살아남아 있던 모험가는 몸을 떨며 소리쳤다. 눈앞에 있는 건 악마였다. 공격해도 죽지를 않는다.
아무리 상처를 입혀도, 그 상처는 빠르게 회복되고 있었다. 갑옷이 넝마가 되었음에도 인간은 멀쩡 했다. 드러난 육신에 그 어떤 상처도 확인할 수가 없다.
눈앞에 있는 건 상식에서 벗어난 괴물이었다.
도대체 얼마나 많은 모험가가 녀석에게 죽은 거지-!
”지금 우리는 이렇게 패배했지만, 반드시, 크헉-!”
그것이 모험가의 마지막 유언이었다.
말하던 모험가의 가슴에 유현의 검이 꽂혔다.
갑옷을 입고 있었음에도, 유현의 검기는 아무렇지 않게 모험가의 가슴을 꿰뚫었다.
심장이 꿰뚫린 모험가는 그렇게 말을 하던 도중 즉사했다. 검을 뽑아내자 축 늘어진 채 모험가는 쓰러졌다.
···이걸로 끝이겠지.
이걸로 몰려든 모든 모험가들은 죽였다.
그렇게 판단할 때였다.
여기로 달려오는 발소리를 하나 들었다.
적의는 없다. 그렇기에 유현은 뭔가 싶었다.
“···에반님?“
거기에는 에리스가 있었다.
눈앞의 광경을 믿기 어려운지 얼굴이 새하얗다.
안 그래도 새하얀 피부는 더욱 혈색이 없어졌다.
저걸 어떻게 할까.
그런 걸 잠시 생각하던 유현은 그대로 그녀의 옆을 지나쳤다. 굳이 죽일 필요까지는 못 느꼈다.
엎을 지나치는 유현을 보고서 에리스는 입술을 달싹였다. 뭐라고 말해야할지 모르겠다.
그녀는 그저 몸을 떨었다.
그렇게 멀어지는 그를 붙잡는 건 바보 같은 한마디였다.
“인간이셨군요.”
“그렇지.”
순순히 인정하는 유현을 보며 에리스는 어떤 표정을 해야 할지 몰랐다. 단지 천천히 고개를 돌려 그를 봤다.
유현은 멀어지고 있다.
멀어지는 그의 발걸음은 무심했다.
하지만 그런 그의 앞을 무언가가 막아섰다.
대기를 가르는 4개의 화살.
쏘아진 은빛은 유현의 발밑에 다닥다닥 꽂혔다.
유현의 걸음이 멈춘다.
고개를 들어 상대를 확인했다.
덩달아 에리스도 화살의 주인을 확인했다.
눈에 익은 화살이었다.
“···언니. 그 남자는 적입니다. 그 인간은 이번 사태의 범인이라고요. 이대로 보내서는 안돼요!“
분노에 젖어 있는 목소리는 에리스가 아는 사람이었다.
여동생 이리스다.
그녀는 지붕 위에서 시위를 당기고 있었다.
다시 한 번 시위를 당기는 손짓에 망설임은 없다.
암석마저도 어렵지 않게 관통할 화살이 대기를 가른다.
그것에 유현의 눈이 가늘게 변한다.
무언가 생각날 듯 말 듯 한 것이 신경 쓰이게 하고 있다. 이리스를 보면서 무언가 잊고 있던 것이 생각나려고 한다. 조금만 더 여유로웠다면 괜찮았겠지만.
일단 화살을 막는 게 먼저다.
그런데 유현의 검이 움직이기도 전에 에리스가 갑자기 튀어나왔다. 그 움직임에 유현은 멈칫했다. 설마, 싶은 순간이었다.
에리스의 대검이 뽑힌다.
뽑힌 대검은 유려한 움직임으로 화살을 쳐냈다.
암석도 꿰뚫을 화살이 검에 튕겨나가 바닥을 굴렀다.
이리스가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언니···? 지금 도대체···.”
방금 언니의 행동은 남자를 지키기 위한, 그렇기에 그녀는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남자도 놀랐는지 차가운 표정에 변화가 있다.
“그러니까. 이게···.”
“언니! 그사람은 적이야!“
이리스가 목소리를 높인다. 에리스는 눈을 질끈 감았다.
여동생이 분노하는 이유는 이해한다.
그건 알고 있지만 몸이 선뜻 움직여 버렸다.
다시 화살이 쏘아졌다.
하지만 에리스는 대검을 움직여 방금 전 같은 광경을 만들어냈다. 대검 앞에 틀어 막힌 화살들이 쓸 쓸히 바닥을 구른다.
그걸 바라본 이리스의 눈빛에 싸늘한 색이 맺혔다.
두 사이에 맴도는 기묘한 기류.
유현은 웃어야 할지 슬퍼해야 할지 모르게 되었다.
에리스는 인간을 지키기 위해 싸우고, 이리스는 인간을 죽이기 위해 싸운다. 상반된 두 엘프의 입장. 보는 입장에서는 재미있는 구경거리였다.
“언니···. 지금 나한테서 검을 든거야?”
슬프듯이 이리스가 중얼거렸고, 에리스가 몸을 떨었다.
떨리는 언니의 눈동자를 보고서 이리스는 입술을 바득 깨물었다.
차라리 흑마법에 걸린 거면 좋을 텐데.
하지만 에리스의 눈은 흑마법에 걸린 자의 것이 아니었다. 평소와 다름없는 투명한 하늘색. 모든 건 그녀의 의지다. 그래서 슬프고, 화가났다.
안절부절 못하는 에리스의 행동을 뒤에서 지켜보던 유현은 한숨을 쉬었다.
유현은 손을 뻗어 에리스의 뒷목을 잡았다.
그대로 에리스는 힘없이 쓰러졌다.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얼마나 방심하고 있었으면 이렇게 손쉽게 기절할까.
마스터를 앞둔 여검사라고 믿기에는 어려운 일.
“지금 언니에게 뭔 짓을···!?”
“기절만 시켰어. 그러니까 안심해. 게다가 너도 에리스랑 싸우기는 싫을 거 아니야.“
당겨지려는 활시위를 유현은 담담히 응시했다.
만약 이번에도 그녀가 화살을 쏜다면, 죽일 생각이었다.
지붕 위에 있어도 거기는 유현의 공격 범위 안이었다.
“크윽···!“
이리스는 차마 시위를 당기지 못했다.
팔에 힘이 풀리듯 활이 아래로 향했다.
그녀도 알고 있었다.
눈앞에 있는 남자를 죽이는 건 불가능하다는 걸.
이렇게 자비를 베푸는 걸 감사해야했다.
주위로 널려 있는 무수한 시체들.
기분 나쁜 악몽이 라도 꾸고 있는 것만 같다.
시체가 쌓여있다. 너무나도 많은 시체들이.
믿기 어려운 건 그것이 전부 한 사람이 했다는 거겠지.
그 동안 봐왔던 모든 것은 거짓.
이리스는 악마를 보는 것만 같았다.
발치에 힘이 풀려 그녀는 지붕 위에서 주저앉았다.
그리고 그것이 그녀의 목숨을 살렸다.
망연한 얼굴을 하는 그녀를 뒤로한 채 유현은 움직였다. 때 마침 송가연의 정령이 찾아왔다.
-페르네를 찾았어요.
”그래? 그거 다행이네.”
대략적인 위치를 알려주었을 뿐인데 잘도 발견했다.
***
···지진이라도 나는걸까.
지반이 흔들리는 진동을 어렴풋이 느끼며 페르네는 눈을 부릅떴다. 고통에 허덕이는 붉은 눈동자.
”하악···. 하악···.”
죽음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영혼이 육신의 숨통을 조이고 있다. 숨이 컥컥 막혀온다.
잠들어 있던 폐는 제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경련을 일으키고 있었다. 몸안이 아프다.
심장이 터질 것처럼 두근두근 뛰는 게 느껴진다.
괴롭다. 고통스럽다.
이를 억누르기 위해 심호흡한다.
하지만 고통은 줄어들지 않고 높아져만 갔다.
영흔을 따라 들어오는 죽음의 손길을 튕겨내듯 새로운 몸이 가진 심장은 미친 듯이 펌프질을 반복했다.
하지만 살기 위한 몸의 본능적인 행동이 오히려 페르네를 괴롭게 만들었다.
“끄으윽···.”
처음부터 각오는 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각오를 해도 이 고통은 참아낼 수가 없다.
게다가 거기서 맞이했던 죽음은 그 어떤 죽음보다도 처참했다.
발밑부터 천천히 몸이 분해되어 가는 모습을 보는 건 페르네라도 견디기 어려운 광경이었다. 세포단계로 무너지는 고통은 새로운 육신을 부여받은 지금도 느껴지고 있었다.
영혼을 따라 들어온 고통에 페르네는 알아듣기 힘든 신음을 흘려댔다.
깨끗했던 눈가에 눈물이 흐르고, 입가로는 침이 줄줄 샌다. 페르네는 그대로 울고, 울부짖기를 반복 했다.
짐승처럼 바닥을 기며 고통을 호소한다.
그러면서도 페르네는 쿡쿡 웃었다.
고통에 비명을 지르며, 미친년처럼 웃는다.
고개를 들며 번뜩이는 붉은 눈동자는 지금 여기에 없는 남자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 남자는 반드시 죽는다.
그 괴물에게서 살아남는 건 불가능하다.
아아, 그것만으로도 지금의 이 고통은 중분히 가치 있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그녀는 기분 좋게 웃었다.
지금쯤이면 괴물의 힘 앞에서 죽음을 맞이하고 있겠지.
영흔을 찢는 듯한 고통은 어느새 줄어들었고, 페르네는 여유를 되찾을 수 있었다.
흐트러진 옷을 맵시 있게 정리하며, 그녀는 언제나 늘 그랬던 것처럼 요염한 미소를 흘렸다. 그것은 방금 전 죽음의 경계선 앞에 한발자국 내딛었던 모습이라고 떠오르기 힘들었다.
하지만 그런 그녀의 미소도-.
“깨어났어? 사랑스러운 내 여동생.“
등 뒤에서 들려온, 꿈에 그리던 여인의 목소리에 딱딱하게 얼어붙어 버렸다.
무엇일까.
이건 꿈인 걸까.
아직 제대로 정신을 못차린 건가.
페르네는 심장이 정지하는 걸 느끼며 천천히 뒤를 돌았다. 그러자 그녀가 보였다.
어두운 곳에서도 페르네와 똑같은 아름다운 붉은 눈이 형형히 빛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