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e you the devil in the labyrinth? RAW novel - Chapter 44
비록 모두가 퀘스트 수락을 눌렀지만 곧 바로 원정군이 꾸려진 것은 아니었다.
이틀이 지났음에도 요정들에게 무언가 소식이 없자 퀘스트에 대한 소란은 가라앉았다. 그건 우리도 마찬가지. 비록 약간 말이 많던 원정군 지원이었지만.
“···저기요, 오빠. 퀘스트는 언제 시작되는 거에요?”
길유미가 어딘가 힘 빠진 듯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테이블 위에 얼굴을 눕히며 발을 동동 거리는 모습이 상당히 나태해 보인다. 매끈한 다리를 느긋이 흔들리는 걸 구경하며 나는 잠시 생각해 보기로 했다.
이틀간 긴장의 나날이었다. 아무래도 목숨을 건 싸움을 하게 될 것이니 그에 대한 각오가 필요한 것이었다. 하지만 정작 각오를 했지만 원정군에 대한 소식이 없으니 절로 힘이 빠질 수밖에 없었다.
“글쎄. 좀 더 요정들을 기다려보자.”
나는 송가연이 가져온 책들 중 하나를 읽으며 그녀의 물음에 대답했다. 원정군이 언제 꾸려지는지는 요정들만이 알고 있겠지. 요정들도 살아 돌아온 원정군들에게서 정보를 얻고 있을 것이다.
지금 우리는 태연한 얼굴로 여관에 머물며 빈둥거리고 있는 모습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지난 이틀 동안 놀고만 있던 건 아니었다. 나름대로 준비를 했다.
비록 요정들이 어느 정도 지원을 해주겠지만 부족한 것들은 분명히 존재했다. 애들은 자신들이 뭘 준비해야 할지 모르니, 원정에 대한 준비는 내가 혼자서 전부 하기로 했다.
인원수가 있기에 혼자서 하기에는 조금 귀찮은 일이지만 필요한 일이기에 감수할 만한 일이었다.
그 동안 여관 안에 틀어박히며 다른 플레이어들에 대한 이야기를 엿들어 본 결과, 원정군에 참가하는 이들은 생각보다 적은 듯했다.
“그런 위험한 곳에 왜 들어가?”
그래, 바로 지금 당장만 해도 저런 이야기가 흘러나오고 있으니 참가할 사람은 적을 수밖에 없었다. 날이 선 여성의 소리에 이끌려 시선을 돌려보자 코웃음 치며 대낮부터 술을 마시고 있는 여성 플레이어가 보였다.
일단 신규 플레이어라는 타이틀 아래에 여관에 있는 대부분이 무료로 제공되지만 술은 아니었다. 술은 오락에 있어 중요한 존재지만 살아가는데 필수적인 존재는 아니었다. 초반에 제공되는 건 적응하는데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것들 뿐.
‘벌써부터 돈을 낭비하는 건가.’
한두 번 정도면 가볍게 넘어갈 수 있다. 그 정도야 지친 마음에 술을 마시고 싶어질 수 있으니까. 하지만 문제는 저 여자가 한두 번 그런 게 아니었다는 것. 우리가 1층에 있을 때마다 저 여자는 술을 입에 달고 있었다.
튜토리얼을 통과했으니 기본적으로 주어진 돈이 있겠지만, 그걸 전부 술값으로 날려버리겠다는 건 무척이나 어리석은 생각이었다.
“그러니까 말이야! 보니까 엄청나게 죽어나간 것처럼 보이던데. 미친 거 아니야?”
“그렇지? 꺄하하하”
계속보고 있자니 부정적인 요소들 밖에 발견되지 않기에 똑같이 술에 취한 여성 플레이어를 친구로 두며 껄껄 웃고 있는 그들을 싸늘한 눈길로 쳐다보게 된다.
한쪽은 원정군에 대해 걱정하고, 한쪽은 원정군에 참여한 이들을 비웃는 이야기들이 뒤섞여 있는 상황 속에서, 오늘도 똑같이 요정들이 아무런 말이 없는 건가 싶을 때였다.
[‘원정군에 지원하기’ 퀘스트가 시작되었습니다.] [현재 요정들은 원정군에 참가하는 플레이어들을 위해 광장에서 작은 설명회를 마련했습니다. 살아 돌아온 원정군들을 중심으로 진행되는 설명회는 이번 원정에 참가할 이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메시지 창이 떠올랐다. 그러자 여관의 분위기가 가라앉음을 느낄 수 있었다. 갑작스러운 침묵에 신나게 떠들고 있던 다른 플레이어들도 덩달아 조용해진다.
발을 둥둥거리며 불만스러운 표정을 짓던 길유미의 얼굴이 살짝 굳는다. 같은 테이블에 있던 다른 애들도 모두들 하고 있던 일을 멈추며 긴장하는 얼굴을 보였다.
정작 시작된다고 하니 모두들 긴장된 듯하다.
“···음. 드디어 시작되나 보네요.”
서로 말이 없자, 그 분위기를 깨고 싶던 건지 제일 나태한 모습을 보여주던 길유미가 힘을 내듯 볼을 긁적이며 그리 말했다. 그 모습이 우스웠던 걸까. 남궁민이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뭐야, 이제 와서 긴장하는 거야?”
“그런 거 아니거든! 멋대로 생각하지 말아줄래?”
남궁민의 말에 새침스러운 표정을 짓는 길유미지만 여전히 표정을 잘 숨기지 못한다. 어쨌든 광장으로 가볼 필요가 있다. 요정들이 오라고 하니까. 나는 곧 바로 광장으로 가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음?”
하지만 내가 일어났음에도 여전히 자리에 앉아 있는 애들의 모습에 나는 의아한 듯 입을 열었다.
“다들 뭐하고 있어. 광장으로 가봐야지. 설명 안 들을 거야? 적어도 우리가 싸워야 할 놈들이 어떤 놈들인지는 알고 가야할거 아니야.”
*
우리는 곧 바로 광장으로 향했다. 그러자 웅성웅성 거리는 소리들과 함께 플레이어들이 모여 있는 걸 확인할 수 있었는데, 모두들 한 곳을 똑같이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이 바라보고 있는 곳을 따라가자 상처 많은 흉갑을 입고 있는 한 남자의 모습이 보였다. 단상 위에 서 있는 그는 우리를 침착한 눈으로 바라보고는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이번 원정군에 참가해주시길 희망해준 여러분들께 먼저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제 이름은 아란스 디페로우. 나흘 전 포탈을 타고 살아 돌아온 원정군들 중 한 명이며, 여러분들께 이번 사건에 대한 설명을 하게 되는 중요한 역할을 맡게 되었습니다.”
무거운 목소리였다. 단순히 의례용으로 감사하다고 말한 게 아닌, 감정이 묻어 나오는 목소리였기에 100명 가까이 모여 있는 광장이지만 조용했다.
“일단 제일 먼저 한 가지 말해드릴 건 이번 원정은 상당히 위험하다는 이야기를 먼저 하고 싶습니다. 이번 우리의 목표는 생존자의 구출이기 때문이죠.”
“구출이요?”
아란스의 말에 누군가 손을 들었다. 짧은 스포츠머리의 검은 머리카락 남자였는데, 한국인 보다는 일본이나 중국 쪽 사람이 아닐까 싶었다.
“생존자의 구출이라는 건, 아직 살아 있는 이들이 있다는 소리군요. 정확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자세히 설명 좀 할 수 있습니까?”
“당연히 설명해드릴 겁니다. 이번 일에 참가해주신 여러분들이라면 당연히 이번 일에 대한 사건 배경을 들어야겠죠. 일단 저번 원정에 대한 모든 이야기를 할 테니 궁금한 게 있더라도 제 말을 계속해서 들어주시면 좋겠습니다.”
아란스의 말에 스포츠머리 남자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손을 내렸다. 자신의 말에 쉽게 따라주자 작게 고개를 숙이며 감사의 표시를 보이던 아란스가 손가락을 튕겼다. 어느새 그의 시선이 구석에 있는 병사에게 향해 있었다.
“그걸 가져오도록.”
그러자 무대 위로 병사가 거대한 지도가 걸려 있는 게시판을 가져오기 시작했다. 아란스는 말이 없었지만 나는 저게 뭔지 대충 예측이 되었다.
‘원정군이 작성한 지도 인가.’
거리가 있는 탓에 자세히 살펴보기 어려웠다. 마력이라도 사용할 수 있으면 좋을텐데.
강화 계열의 마력 사용법으로 신체강화가 가능하다. 그 중에서는 당연스럽지만 시력 강화도 포함되어 있다. 그렇지만 시력 강화는 조심스럽게 사용해야 한다. 잘못하다가는 눈에 문제가 생길 테니까.
과도한 마력을 사용하여 시력을 강화하면 안구가 마력의 힘을 버티지 못하는 경우가 있었고, 최악의 경우 실명까지 이를 수 있다. 하지만 그런 걸 무서워해서는 안된다.
마력은 전투에서 빠질 수 없는 중요한 힘이니까. 종족에 따라 굳이 마력을 사용하지 않아도 초월적인 힘을 다루는 이들이 있지만 인간은 그러지 못했다.
당연스럽지만 나 또한 마력 사용법을 익혔다. 그렇지만 지금은 사용이 불가능했다. 마력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직업을 얻어야 했다. 그래야 직업보유능력을 얻을 수 있으니까. 직업보유능력 중에서 〈마력 개방〉이라는 능력이 있다.
사실 마력을 사용할 수 있는 것 말고도 직업이 가진 다양한 직업보유능력 때문에 직업을 빠르게 얻는 건 상당히 도움이 되는 일이지만, 그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직업을 얻기 위해서는 최소 레벨이 ‘5’가 넘어야 했고, 그 동안 플레이어가 쌓아온 로그를 통해 신전 안에 있는 영웅들의 안식처에서 평가를 받아야 했다. 일명 활동 점수라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튜토리얼 보상을 받을 때 아이리스에게 이것에 대한 걸 묻고 싶었지만 기회가 되지 않았다. 더욱이 그 이후로도 원정군 문제로 아이리스에게 물어볼 틈이 없었다.
‘튜토리얼 안에서 쌓은 업적을 생각하면 바로 직업을 얻을 수 있을 것 같기도 한데.’
상념에 잠기며 지도를 바라보고 있던 중 아란스가 준비가 끝났는지 입을 열었다.
“벌써부터 예상하고 있는 분들이 있는 것 같지만, 이건 저희 원정군이 그 동안 토벌을 계획했던 에이리어의 지형을 작성한 지도입니다. 도적과 궁수 계열의 분들이 많은 고생을 하여 작성한 귀중한 지도이지요.”
〈직업보유능력〉 중에서 지도 작성이라는 게 있다. 개인보유능력으로도 소지가 가능하지만 대부분이 직업보유능력에서 터득하게 된다. 개인보유능력으로 능력을 터득했다는 건 정말로 그 인간이 그에 대한 재능을 가지고 있다는 증거다. 직업보유능력은 가공된 능력이었다.
“솔직히 말해서 에이리어에 대한 대부분의 지형은 이 지도에 담겨 있다고 보셔도 됩니다. 실제로 저희는 에이리어의 주인의 위치까지 발견한 상태였죠. 즉, 토벌만 남은 상태였다는 겁니다.”
에이리어의 주인. 그건 미로와도 같은 미궁에서 에이리어라 불리는 기형적인 환경을 조성해낸 특수한 몬스터라고 보면 되었다.
미궁에 조성된 에이리어의 크기가 클수록 강력한 개체일 확률이 크며, 마력 지맥의 흐름에 따라 에이리어의 주인의 힘과 관계없이 비정상적인 환경이 조성되기도 한다.
단순히 말해 에이리어의 주인이라는 건 그 지역의 보스 몬스터라고 보면 되었다. 에이리어의 조성이 어떤 원리로 이루어지는 건지 나는 마법사가 아니었기에 잘 알 수가 없다. 하지만 분명 신기한 힘이라는 건 분명했다.
지하 속에서 숲을 조성하고, 들판을 조성하며, 산까지 만들어내는 그건 정말로 대단한 힘이라고 밖에 볼 수 없으니까. 조금 오버해서 표현하면 에이리어는 미궁 안에 생겨난 또 다른 세계라고 보면 되었다. 던전은 그런 에이리어에 생겨난 인공적인 공간이었다.
더욱이 그 중에서 요정들의 던전은 특별했다. 인위적으로 에이리어를 형성하거나 기존에 만들어져 있는 에이리어에 기생하는 형태로 침입자의 접근을 방해하는 것이다.
‘무슨 일이 있던 거지.’
아란스의 설명을 들으며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의 말만 들으면 원정은 순조롭게 진행된 듯했다. 에이리어 개척도 대부분 이루어졌고. 분명 주인만 잡아내면 되는 단계가 아니었는가.
내가 그런 의문을 느낄 때 갑작스럽게 아란스가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는 듯 분노에 온몸을 떨며 주먹을 쥔 채 입을 열었다.
“···그런데 저희는 마지막에 예상치 못한 소식을 전해 받아야 했습니다. 저희에게 보급 문제를 해결해주기로 했던 로렐라이님의 던전이 모험가들에게 공격받고 있다는 이야기였죠.”
‘과연. 그런 건가.’
이제 완전히 사태가 파악이 되자 가슴을 답답하게 했던 게 전부 풀려나는 걸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시원스러운 표정을 짓는 나와 달리 아란스는 분노에 이를 갈며 말을 이었다.
“우리는 진행하고 있던 토벌을 멈추고 로렐라이님을 돕기 위해 나섰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