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e you the devil in the labyrinth? RAW novel - Chapter 5
[이름:이유현]
[직업: 무직] [레벨:1] [힘:D107 민첩:D111 체력:D113 마력:0] [보너스능력치: 존재하지 않습니다.] [직업보유능력: 존재하지 않습니다.] [개인보유능력]생존본능D
전투지속D
상황분석D
[특수보유능력: 존재하지 않습니다.]“············”
정신을 차리고서 나는 어느새 제일 먼저 스테이터스창을 확인하고 있었다. 나는 얼마나 기절해 있던 걸까. 한동안 대자로 바닥에 누워 있는 상태로 허공에 둥둥 떠 있는 스테이터스창을 멍하니 응시했다.
정말로 오기는 한 듯하다.
나는 소환에 대한 후유증인지 손실되었던 감각이 점점 돌아오기 시작하자, 몸을 일으켰다. 아직 기계음 소리 같은 게 머릿속을 울리며 짙은 탈력감이 몸을 짓누르지만 참을 만 했다.
지끈거리는 이마를 부여잡은 채 나는 고개를 들었다.
코끝으로 진하게 물 냄새 같은 게 흘러 들어왔다. 나는 멀지 않은 곳에서 거대한 호수를 발견할 수 있었다. 밑바닥이 그대로 보일 정도로 맑고 깨끗한 호수였다.
땅은 녹색으로 뒤덮여있고, 거대한 고대 나무들이 사위를 가득 채우는 곳에서 호수의 수면은 위에서 내려오는 햇볕에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다. 그 모습은 정말로 신비한 장면이었다.
그 순간은 나마저도 호수의 모습을 멍하니 응시하고 있었다. 튜토리얼이 진행되는 장소는 요정들의 던전을 본따 만들어져 있다. 지금 내가 보고 있는 광경도 한 요정의 던전을 그대로 배껴왔을 것이다.
“거대한 호수··· 인가.”
각 요정들마다 던전의 모양새는 많이 다르다. 던전의 생김새는 던전을 관리하는 요정의 취향에 따라 결정된다.
그렇지만 튜토리얼의 환경은 변함이 없는 했다. 눈 앞의 광경은 내가 기억하는 튜토리얼의 풍경과 변한 것 없이 똑같았다.
회귀 전에도 나는 이 호수를 보았다. 하지만 여유가 없던 그 때와 달리 지금의 나는 차분했다. 이 던전의 본래 주인이 어떤 요정일지 쓸데없이 상상하고 있을 정도로 말이다.
“으윽···.”
한 동안 던전의 풍경을 감상하고 있었더니 슬슬 정신을 차린 건지 밑바닥에서 목소리들이 올라왔다. 그 신음소리에 나는 고개를 내려 소리의 주인들을 바라봤다.
‘전부 고등학생인가.’
눈에 들어오는 건 어린 애들뿐이었다.
아무래도 여행기에 타고 있던 사람들 대다수가 수학여행을 위한 꼬마들뿐이었으니 어쩔 수 없다지만 그래도 이건 너무 어린데. 교복을 입고 있는 고등학생들을 보며 나는 혀를 찼다.
앞으로 겪을 일들을 떠올리면 조금이라도 나이가 더 많은 게 좋다. 군대라도 갔다 온 남성들이라면 더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내 눈에 보이는 건 전부 고등학생들 뿐.
아이들은 상황 파악이 안 되는 건지 정신을 차리고도 한 동안 멍하니 주변을 확인하고 있었다. 모두들 벙 찐 얼굴로 입을 벌리는 게 계속해서 보고 있자니 웃음이 나올 정도다.
나는 한 동안 아이들을 지켜보았다. 어떻게 반응할지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예전의 나는 어땠더라. 아무 생각이 없었던 거 같다. 그 때의 나는 퇴원 후 매일 같이 술에 찌들어 있었으니까.
가족의 죽음에 내 인생은 망가질 대로 망가졌다. 만약 이곳에 소환되고서 죽음에 대한 공포를 느끼지 못했다면 나라는 인간은 영원히 변함이 없었겠지.
공허했던 내 삶에 생기를 불어 넣은 건 우습게도 죽음을 앞둔 강렬한 생존에 대한 열망이었다. 처음으로 몬스터와 모험가들을 대치했을 때 느꼈던 공포는 절대로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사람의 죽음을 직시하고 나서야 오랫동안 멈춰있던 시간이 흐르기 시작했다. 달달, 딸리는 몸뚱이와 숨이 막혀올 정도의 공포감이 나를 정신 차리게 한 것이다.
처음으로 무언가를 죽였을 때 나는 어떤 표정을 짓고 있었을까. 아쉽게도 그것만큼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 이후로의 기억은 완전히 절단되어 있다.
몇 초의 침묵 끝에 주변을 확인하던 아이들 사이로 드디어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이, 이거 꿈은 아니지? 야, 누가 내 볼 좀 꼬집어 봐.”
“···누가 제발 꿈이라고 해주면 좋겠는데?”
“다른 애들은 어디에 간 거야? 왜 여기에 우리만 있는 거고.”
지금 여기에 있는 사람의 수는 나를 포함해 총 20명이었다. 비행기를 타고 있던 총 인원 수를 생각하면 이상할 정도로 적다.
아마, 비행기 안에 있던 사람들이 서로 일정 수만큼 나뉘어 다른 곳에 소환되었을 것이다.
튜토리얼은 모두에게 똑같은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던전을 침입해 오는 괴물들을 피해 던전 안에 꾸려져 있는 마을을 찾는 것.
나는 주위가 순식간에 소란스럽게 변하는 걸 확인하며 조용히 때를 기다렸다. 지금쯤이면 요정도 우리를 지켜보고 있을 것이다. 튜토리얼 안에서 어떻게 움직일지 궁금한 거겠지.
머지않아 내가 기다렸던 것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튜토리얼에 대해 설명을 시작하겠습니다.]“튜토리얼? 뭐야, 그게···?”
“이 메시지 창은 뭐지. 너희들도 보이지?”
“응 보여.”
“나도 보여.”
아이들은 눈앞에 떠오른 메시지 창이 신기한 건지 메시지 창을 만져보기 위해 손을 뻗어보고 있었다. 하지만 손이 허무하게 허공만 휘젓자 아이들은 헛웃음을 터뜨렸다.
“이거 마치 무슨 게임 같네. 왜 맨날 모바일 게임 처음 할 때 튜토리얼부터 진행하잖아.”
“야, 장난 하지 마. 지금 이게 장난으로 보이냐. 우리 납치된 거라고.”
심각한 얼굴을 하고 있는 애가 있는 반면, 반대로 웃고 있는 녀석도 있었다. 그나마 침착한 얼굴을 하고 있는 애들은 스마트폰을 이용해 열심히 연락을 해보지만 의미 없는 일이었다.
“···전화가 안 돼.”
“여기, 한국은 맞아? 난 우리나라에 이런 곳이 있다는 거 들어본 적도 없어.”
스마트폰을 잡고 있는 손이 희미하게 떨리고 있다. 여러 번 전화를 걸어보지만 소용없는 짓이라는 걸 머지않아 깨닫고 고개를 힘없이 떨구고 만다.
애들이 여러 가지 반응을 보이는 동안에도 메시지 창은 계속해서 떠올랐다.
[튜토리얼에서 여러분들이 해야 할 최종 목표는 던전 안에 숨겨져 있는 마을을 찾는 것입니다.]메시지 창의 문자들은 정갈하고 보기 좋아 차분한 느낌을 준다. 하지만 그걸 읽고 있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혼란스러울 뿐이다. 어느새 모두들 입을 꾹 닫고 메시지 창을 읽는다.
[마을을 찾기 위해서는 특별한 힘을 지닌 나침반과 길을 안내해줄 지도가 필요하며 이러한 두 물건은 숲에서 찾을 수 있는 죽은 원정군의 시체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 [던전에 침입한 모험가들은 던전에 있는 여러분들을 죽이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빠른 시간 안으로 던전에 숨겨져 있는 마을을 발견하십시오]“무슨 개소리를 하고 있는 거야···.”
“우리를 죽, 죽인다고?”
“농담··· 이지?”
누군가 중얼거린다. 하지만 그 말에 그 누구도 호응 해주지 않고 소리는 흩어져만 갔다.
[일정 단계의 웨이브 마다 침입해 오는 모험가들의 수는 증가합니다.] [공격은 언제 이루어질지 알 수 없으며 다양한 공격을 해올 것입니다.] [시작에 앞서 여러분들에게 무기를 지급하겠습니다.]바닥에 무거운 쇳소리가 울린다. 그건 갑자기 허공에서 생겨나 바닥에 내뒹굴었다. 차갑고 무거운 금속음에 모두들 깜짝 놀라 바닥을 내려다 봤다.
다양한 무기들이 바닥에 떨어져 있다.
마치 개개인의 취향을 모두 존중이라도 해주겠다는 건지, 이름도 모를 형태의 냉병기들이 거기에 있었다.
모두들 아연한 얼굴로 눈앞에 생겨난 것들을 보고만 있을 때 한 여학생이 앞으로 나와 바닥에 떨어져 있는 검을 조심스레 들어본다. 검을 들고서 그녀는 몸을 떨었다.
“이거···. 진짜야”
검의 예기에 놀란 걸까, 아니면 생각 이상의 차가움에 놀란 걸까. 그녀는 검을 쥐고서 작게 몸을 떨고는 입가를 일그러뜨렸다. 검을 들고 있는 그녀의 손이 떨리고 있다.
분위기를 읽지 못하고 깔깔 웃고 있던 녀석도 이젠 새파랗게 지린 얼굴을 하고 있었다.
[살기 위해 전력을 다해 움직이십시오.]무겁게 가라앉은 분위기 속에서 메시지 창은 자기 할 일을 다 했다는 것처럼 모습을 감추었다. 알 수 없는 한기가 주위를 맴돈다. 모두들 얼어붙어 있다.
시간마저 얼어붙은 것같은 광경 속에서 나는 바닥에 떨어져 있는 검들 중 마음에 드는 걸 손에 집었다. 꽤나 많은 무기가 떨어져 있지만 마음에 무기는 몇 개 없다.
어지간한 무기는 전부 다룰 수 있지만 그래도 검이 제일 편했다. 나름 손에 익은 느낌을 주자 그 다음으로는 방패를 골랐다. 움직임에 지장을 주지 않을 정도의 방패는 전투에서 큰 도움이 된다.
“저, 저기요···. 뭐, 뭐하고 있는 거예요?”
내가 무기를 들고서 감을 잡기 위해 기세 좋게 몇 번 검을 휘두르자 아이들의 시선이 모여들었다. 모두들 뭐하고 있냐는 형식의 눈빛이었다. 나는 대답 없이 고개를 돌렸다.
녀석들이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다.
메시지 창이 사라진 순간부터 튜토리얼은 시작된 것이다.
말없이 내가 한 곳을 응시하자, 애들도 눈치는 있는지 내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아직은 웨이브 1단계다.
초보 고블린 모험가 LV.1
녀석들은 그러한 걸 꼬리표 마냥 머리에 매달고 있었다.
그러니 우리가 처음 상대할 녀석들도 아직까지는 수준이 낮다.
저 엉성한 꼴을 보아라.
방어구 따위는 없이 낡은 천 옷 쪼가리를 달랑 입은 채 손에 쥐어져 있는 건 과일이나 깎을 법한 모양새의 단검뿐이었다. 형편없는 장비로 녀석들은 여기로 기세 좋게 달려오고 있었다.
체격은 초등학생 정도일까, 앙상한 팔과 다리, 길게 째진 눈과 뾰족한 귀. 자글자글한 피부는 기분 나쁜 녹색을 가지고 있었다. 종족 자체가 저런 존재들.
분명 몸집만 봐서도 별 거 없을 녀석들처럼 느껴질 그런 놈들이다.
하지만 살기로 번들거리는 녀석들의 눈동자 때문일까.
“씨, 씨발! 도망쳐!”
이번 여행을 위해 머리에 잔뜩 힘을 주었던 한 남학생이 크게 소리치며 제일 먼저 등을 돌렸다. 설마 싶었지만 무기도 쥐지 않고 도망가고 있다. 무기라도 가져갈 것이지.
헐레벌떡 도망치기 시작하는 아이들의 뒷모습을 나는 멍하니 서 있는 상태로 바라보다가 등을 돌렸다. 등 뒤로 아이들의 인기척이 멀어져만 간다.
···뭐, 상관 없는 일이다.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검을 고쳐 잡고는 달려오고 있는 고블린들을 향해 유유히 걸어나갔다.
*
싸움은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아마, 10분도 안 걸렸을 것이다. 무작정 달려드는 고블린들을 베고, 또 베었을 때 어느 순간인가 주변에는 시체만 가득했다.
“이, 인간! 살려줘! 다시는 던전에 침입하지 않을 테니···. 커헉!”
[레벨이 상승하셨습니다.]나는 살려달라고 빌고 있던 고블린의 안면에 망설임 없이 검을 박아 넣었다. 고블린에게는 아쉬울테지만 나는 살려달라고 살려주는 그런 멍청한 호인은 아니다.
이런 걸 보면 요정들이 꽤나 튜토리얼을 정성들여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이 고블린들은 해봤자 모두 요정들이 만들어낸 가상의 존재일텐데.
방금 녀석이 보이던 표정에서는 정말로 감정이라는 게 느껴졌다.
주위를 맴도는 비릿한 피 냄새를 맡으며 나는 턱 선을 따라 흐르는 땀을 닦았다. 싸움이 끝났을 때는 주위에 아무것도 없었다.
보이는 건 고블린들의 시체들 뿐이다.
아이들은 이미 멀리 도망친지 오래였고, 그걸 쫓으려던 고블린들은 모두 나에게 죽었다. 딱히 아이들을 구하기 위해서 한 행위는 아니었다.
그냥 시험해보고 싶었다.
여기서 나라는 인간이 얼마나 할 수 있는지. 단순히 그걸 알아보고 싶었을 뿐이었다. 솔직히 말해서 이렇게 약해 빠진 고블린으로는 제대로 측정이 안된다. 좀 더 강한 상대가 필요했다. 전력을 다할 수 있는 괴물이. 모험가가.
“···하지만 그런 게 여기에 있을까.”
그래도 그나마 이번 싸움으로 알 수 있는 건 전투 지식은 전혀 사라지지 않고 남아있다는 것이다. 몸은 아직 익숙하지 않은 듯하지만 점점 익숙해질 것이다.
여전히 기억은 중간중간 끊겨 있지만, 싸움에는 지장이 없다.
한 동안 휴식을 취하던 나는 움직이기로 했다. 처음에 어디를 갈까 잠시 고민했지만 일단 도망친 아이들을 찾아보기로 했다. 아이들은 흔적을 잔뜩 남긴 상태였다.
애초에 무작정 도망치던 놈들이니 어쩔 수 없겠지만-.
이윽고, 그들의 흔적을 쫓아 중간에 발견한 것은 이세계의 원주민으로 생각되는 인간들의 시체들이었다. 꽤나 운이 좋은 놈들이다. 도망치면서 이걸 발견하다니.
튜토리얼 클리어를 위해서는 반드시 찾아야 할 흔적이며.
튜토리얼에서 플레이어들에게 이 세계의 현실을 보여주는 하나의 장치.
게임으로 말하면 스토리 이벤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