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e you the devil in the labyrinth? RAW novel - Chapter 74
시간이 지날수록 플레이어들은 빠르게 강해졌다. 그래도 가끔씩 미궁의 몬스터들에 대해 배우면 배울수록 거짓말이 아닐까, 의심하는 이들이 있었지만 소수였다.
교육 중에는 역사에 관한 교육도 있었는데, 그 내용의 핵심들은 주로 인간이 미궁 안에 살게 된 이유를 설명하기 위한 내용들뿐이었다. 자신들이 있는 이곳의 정체를 플레이어들은 잘 믿지 못하는 눈치였다.
그 동안 보낸 시간 동안 플레이어들이 이곳이 어떤 곳인지에 대해 접할 방법은 많이 없었다. 덕분에 자신들이 있는 곳이 미궁 속이라는 것도 모르는 이들이 대다수였다.
충격에 빠진 그 얼굴들이란, 꽤나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광경이었다. 그럼 일행들은 어떤 표정을 하고 있을까. 송가연이 이것저것 책을 읽으며 이야기를 해둔 게 있기에 다른 쪽보다는 나을 것이다.
“그러면 앞으로 만나게 될 모든 이종족들은 저희의 적으로 봐도 좋다는 겁니까?”
한 플레이어가 손을 들며 묻는다. 교관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렇다. 이종족들은 모두 우리의 적이다. 그들에게 있어 미궁의 인간은 몬스터들과 다를 것 없는 존재다. 만약 믿지 못하겠다면 나중에 만날 때 인사라도 해보도록. 그럼 상대에게서 반갑다는 인사 대신 화살부터 날아올 테니. 껄껄.”
목 밑에 섬뜩한 흉터를 가진 교관은 과거의 일을 떠올리기라도 하는지, 흉터를 매만지며 웃었다. 먼 기억을 회상하는 듯한 그의 눈빛에 모두들 아연한 표정을 짓는다.
유현은 거기서 이 교육의 목적을 대충이나마 이해할 것 같았다.
이곳에 대해 알려주기 위한 것도 있겠지만, 이 교육은 플레이어들에게 자신들과 싸워서는 좋을 게 없다는 걸 알려주고 싶을 것이다. 직접적으로 그리 하지는 않겠지만 생각 있는 이들이라면 모두 알게 될 현실.
요정들과 싸워 나간다고 하더라도 그런 인간을 받아줄 곳은 없다. 인간이 있을 곳은 오로지 요정들이 만들어 놓은 던전이었다. 지상으로 나가면 기다리는 건 차갑기 짝이 없는-.
“오빠. 수업이 끝났어요.”
정신을 차리고 보니 길유미가 말을 걸고 있었다. 유현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느새 다른 플레이어들도 모두 교실에서 나간 상태였다.
“음, 오빠는 조금 그립지 않아요?”
식사 배급이 되는 시간이 되었기에 복도를 걷고 있었는데 길유미가 웃으며 말해왔다. 유현은 그녀의 물음이 뭘 의미하는 건지 이해할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
“뭐가?”
“뭔가 학생 시절로 돌아온 것 같지 않아요? 저는 그런 거 같은데. 물론 지금은 같은 교실에 오빠, 언니들이 엄청 많아져 있지만.”
“글쎄다. 여기에 오기 전에 학생이었던 너와 달리 나는 학생 시절이 너무 오래 돼서 잘 모르겠네.”
그립다, 그런 걸 느끼기에는 너무 희미해진 기억이었다. 대학교 생활 또한 교통사고 이후로 엉망이 되었으니 무언가 추억이라고 할 것도 없는 상태였다.
“음. 저는 솔직히 말해서 나름 즐거운 거 같아요. 힘든 생활도 많지만 밤에는 애들이랑 즐겁게 떠들 수도 있으니, 재미있고. 아, 전에 말했나요? 저희랑 같은 방 쓰는 사람이요.”
“기억은 하고 있지. 이름이 소피라고 했던가.”
“역시 오빠 기억력은 좋네요.”
길유미, 송가연, 이서연 셋은 같은 방을 쓰고 있었다. 다만 그 쪽도 4명이 정원이었는데 당연스럽게 모르는 사람 1명이 낄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그래도 다행히 잘 지내는 듯하다.
옆에서 밝은 목소리로 재잘재잘 거리는 길유미를 옆에 둔 채 식당에 도착했을 때였다.
“이제 왔네요.”
“음? 왔네?”
일행이 이미 기다리고 있었다. 다행히 식사 전인 듯하다. 유현은 일행이 있는 테이블을 확인하고는 식판을 들고 줄에 섰다.
천천히 줄어드는 줄을 확인하면서 앞으로 나아가고 있을 때였다. 어쩐지 주변이 소란스럽게 변하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유현은 또, 인가 생각하며 고개를 돌렸다.
거기에는 두 집단이 대립하고 있는 중이었다.
“···요정 녀석들에게 빌어먹는 개들이.”
“흠. 현실을 제대로 직시하지 못하는 너희들도 정상은 아닌 거 같은데.”
익숙한 광경이다. 8주 차에 들어서 플레이어들에게 선택지가 생기기 시작했다. 12주 차를 끝으로 종료되는 훈련 후에 요정의 군에 들어올 것인지, 자유롭게 파티를 꾸릴 것인 지였다.
싸움의 이유는 간단했다.
요정의 군에 들어가기로 결정한 플레이어들과 그렇지 않은 이들 사이에서 싸움이 생긴 것이다. 싸움은 10주차에 들어선 지금도 변함없이 계속되는 중이었다.
요정들은 이걸 보며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훈련을 책임지고 있는 교관들도 이 상황을 알고 있지만 그들은 가만히 지켜보고 있을 뿐이었다.
어줍잖게 건드려봤자 좋을 것 없다는 걸 그들도 알고 있는 거겠지. 플레이어들도 그런 교관들의 생각을 눈치 챘는지 서로 시비를 터는 주기는 점점 짧아지고 있다.
“에고고···. 또 싸우네.”
식판을 들고 일행이 있는 자리로 돌아가는 중에 길유미가 쓴웃음 지으며 말했다. 아무래도 플레이어들 사이에 생겨나는 균열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 듯하다.
예전에 그녀에게 요정들과 플레이어 사이에서 싸움이 나면 어떻게 할 거냐고, 물어본 적이 있는데 돌아온 대답은 ‘잘 모르겠어요’ 이었다.
많은 사람이 죽는 게 싫다. 그녀가 그런 말을 덧붙이기는 했다.
*
12주차, 마지막 날에 들어섰다.
이제 훈련은 하늘이 어두워지기 직전에 바로 끝나는 편이었다. 전에 비해 자유 시간이 늘었다고 볼 수도 있었다. 딱히 오락거리가 없는 이곳에서 플레이어들이 할 것은 사람을 만나는 것이었다. 어떻게 보면 남은 시간은 인연을 쌓기 위한 시간이었다.
요정의 원정군에 들어가기로 한 이들은 교관들과 친분을 나누었고, 그렇지 않은 이들은 미궁을 같이 탐험할 일행을 모아야만 했다.
나중에 가면 늦는다. 훈련소를 졸업한 이들은 지극히 한정적이었고, 졸업하지 않은 이들에게서 신뢰할 만한 능력을 기대하기란 어려운 일이라는 걸 모두들 알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늦기 전에 동료를 모으기 위해 부지런히 움직이는 사람들이 종종 눈에 들어온다. 재미있는 건 훈련소 안에서도 남녀 간의 정이 쌓이는 모습이었다.
지금 순간에도 어디선가 헐떡이는 소리가 퍼지고 있을 것이다. 교관들에게 들킬 경우 큰 벌이 내려진다고 하지만, 지금까지 그런 경우는 없었다. 들키지만 마라. 암묵적인 룰이다.
슬슬 밤이 추워지자 플레이어들이 방으로 돌아간 시간에도 유현은 훈련장에서 하염없이 시간을 보냈다. 누구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다. 무시할까, 했지만 그래도 들어보는 건 나쁘지 않겠지.
약속된 시간에서 5분 정도를 앞두고 있는 중이었는데 조금 거리가 떨어진 곳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야, 오랜만입니다. 다행히 나와주셨군요.”
피 냄새가 난다. 도착하자마자 피냄새를 아낌없이 흘리는 녀석을 유현은 차갑게 응시했다.
사람의 피는 아니었다. 몬스터의 피다. 아무래도 원정군의 일을 끝내고 곧 바로 달려온 듯 했다 .
“오랜만이네. 류트.”
“예. 오랜만입니다.”
“그래서 볼 일은? 이유 없이 불렀을 리는 없을 테고.”
변함없는 유현의 모습에 류트는 쓴웃음을 짓고는 말했다.
“이제 곧 훈련소를 졸업하시는 군요. 축하합니다.”
“···겨우 그거 말하자고 온 건 아닐 텐데?”
류트는 교관이 아니었다. 당장 방금 전까지도 몬스터들과 투닥거리고 온 녀석이 아닌가.
“뭐, 그럼 빠르게 본론으로 들어가죠. 지금도 저희의 원정군에 들어올 생각은 없는 겁니까?”
경박한 목소리가 아닌 정중한 목소리. 조금이라도 다시 생각해보라는 어조의 말에도 유현은 고민할 것도 없이 대답했다.
“지금도 생각은 변함없어.”
“일행들도 모두 같은 생각입니까?”
“그렇지.”
“흐으음···. 그건 좀 아쉽군요.”
류트가 나직이 한숨을 흘린다. 아직 손톱에 몬스터들의 피가 엉겨 붙어 있음에도 거리낌 없이 곤란한 듯 머리를 긁적이다가 씨익 웃었다. 그 표정 변화에 유현의 눈썹이 찌푸려졌다.
기분이 나빠졌다. 뭔가 이상한 소리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혹시 그 쪽에 자리 하나 빕니까?”
“···무슨 자리를 말하는 거지?”
“눈치 빠른 분이 너무 그러지 맙시다. 제가 말하는 자리가 뭐겠습니까?”
그 정도로 예상치 못한 소리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꾸릴 파티에 빈 자리가 있는지 묻고 있는 거겠지?”
“예. 정답입니다. 혹시 전에 있었던 일행들 말고도 새롭게 추가된 인원이 있습니까?”
“아니, 없어. 인원은 그대로다.”
“그렇습니까? 다행이군요. 그럼 모두 아는 얼굴이니.”
“나는 아직 받아준다고 말한 적이 없는 걸로 아는데.”
후후, 하고 류트가 웃음을 흘린다.
“저는 꽤나 쓸만한 놈입니다. 적어도 유현의 파티에 폐를 끼칠 일은 없겠죠.”
유현은 딱히 부정하진 않았다. 류트의 말은 사실이니까. 그의 실력이라면 오히려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일행들도 그에게서 뭔가 많이 배울 수 있을 테고.
그리고 무엇보다 연령대가 같으니 쉽게 친분도 쌓을 것이다. 안 그래도 능구렁이 같은 녀석이니 싫은 인간도 알아서 잘 친분을 쌓을 놈이다.
그렇지만,
“스스로 그렇게 말하면 부끄럽지 않아?”
“···하하, 뭐 조금 부끄럽습니다. 그렇지만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되서 말입니다.”
“그렇겠지. 본래 있던 소속을 버리고 내가 만든 파티에 온다는 건 솔직히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거든. 요정이 시켰나? 네가 이렇게 나올 이유는 그것밖에 없는데.”
“뭐, 그렇습니다. 그래서 저는 꼭 당신의 파티에 들어가야 합니다.”
부정하지 않고 오히려 당당하게 말하는 류트의 모습에 유현은 피식 웃고는 대답했다.
“위험에 빠져도 구해주지 않을 거다.”
“음, 그건 조금···.”
“너는 뒤가 음흉한 녀석이니, 그 정도 각오는 해두는 게 좋아. 쓸모없다고 여겨지는 내가 어떻게 나올지는 알고 있겠지.”
왜 류트를 보낸 거지. 요정이 무슨 생각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렇지만 음흉한 짓을 계획 한다고 할 때 류트가 이런 식으로 접근해 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가볍게 접근해도 상관없는 수준의 목적.
그 정도라면, 류트의 능력을 생각할 때 충분히 받아들일 만했다. 마법사가 있다면 미궁에서 상당한 도움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