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e you the devil in the labyrinth? RAW novel - Chapter 82
야영할 준비가 끝나고서 곧 바로 저녁 식사에 들어갔다.
저녁 식사 준비는 남성들 보다는 여성들의 몫이었다. 셋에게 몰아주는 건 마음에 걸려 유현이 도와주려고 한 적이 있었지만 그녀들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막았다.
어쩐지 그 모습이 필사적으로 보여 유현은 의아한 표정으로 이서연에게 물었다.
“마음은 고맙지만, 오빠 요리는 조금···.”
로렐라이에서 유현의 요리를 맛본 일행은 절대로 유현에게 요리를 맡기지 않겠다고 다짐했다고 한다. 그 소리에 유현은 쓴웃음만 지었다. 자기도 모르게 손을 내려다본다.
생각해보면 요리는 그다지 잘 한편은 아니었다.
미궁을 떠돌 당시에 유현은 맛을 즐기기 위한 요리가 아닌 살기 위한 요리를 했다.
몬스터를 사냥하고 그 육신에서 섭취하면 해로운 독소를 빼내며, 어떻게든 소화할 수 있는 요리를 만드는 것에 노력한 것이다.
그런 요리만을 주로 해왔으니 아이들의 입맛에 맞을 리가 없다.
아무튼, 그렇게 기다려보자 만들어진 요리는 고기를 잘게 잘라 넣은 고기 스프와 나무 꼬치에 꿴 고기 구이였다. 요리에 로렐라이에서 사온 향신료가 소소하게 들어간 걸 확인할 수 있었다.
향신료는 이서연이 반드시 사야한다고 해서 산 물건이었다.
본래 소금 하나만 살려고 했는데 이서연은 다른 것도 필요하다고 강하게 의견을 제시했었다. 그 때 느꼈던 압박은 엄청나서 유현은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여버렸다.
“흐음. 역시 여성분들이 있으니까, 편하군요.”
스프를 한 입 떠먹으며 류트가 말했다. 단순히 아부하기 위한 게 아닌 듯 정말로 웃고 있었다. 어쩌면 당연한 일인가. 그가 있던 소대는 전부 남자였을 것이다. 게다가 류트 또한 요리에 취미가 없어 보인다.
“음···. 조금 싱거울 수도?”
그렇지만 남궁민은 어딘가 아쉬운 듯 조물조물 입을 움직이며 말했다.
“그건 네가 평소에 짜게 먹어서 그렇고. 이것도 소금 엄청 많이 넣은 거야. 오늘 흘린 땀이 많으니까. 솔직히 말해서 나는 이것도 많이 짠데.”
그런 남궁민을 훈계하듯 길유미가 수저를 흔들며 말한다. 남궁민은 그런가, 하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릇을 전부 비웠다. 맛없지는 않은 듯 싶다.
“오빠는 입맛에 맞았어요? 궁민이 말대로 조금 더 짜게 하는 게 좋았을까요?”
식사가 거의 끝나갈 때 쯤 갑자기 이서연이 그런 말을 했다. 식사 도중에 아무 말이 없어 걱정된 듯 싶었다. 유현은 고개를 저었다.
“이 정도면 적당해.”
“그래요? 그럼 다행이네요. 후후”
이서연은 풍만한 가슴에 손을 얹으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요리를 셋이서 만든다고 하지만, 요리를 지휘하는 인물은 하나 있을 수밖에 없다. 그게 바로 이서연이었다.
아마, 그것에 책임감이라도 느끼고 있는 걸까. 어떻게 보면 소심하다고 할 수 있지만, 그 만큼 마음이 여린 것일 수도 있을 것이다.
일행이 자기가 사용한 그릇을 정리하자, 송가연이 물의 정령을 이용해 사용한 그릇을 깨끗하게 만들었다.
정령을 다루는데 익숙해진 송가연은 종종 이런 식으로 정령의 힘을 사용하기도 했다. 덕분에 일행에게 있어서는 상당히 편한 일이었다. 다른 파티는 꿈도 못 꾸는 일이었다.
식사 후 정리가 끝나고서 유현은 지금 위치를 대략이나마 확인하기 위해 지도를 펼쳤다.
그럴 일은 없겠지만 혹시라도 방향을 잘못 잡은 거라면, 지금 수정해야 한다.
조금만 틀어져도 예정 시간과 많이 틀어진다.
그 동안 걸어온 거리를 생각하며 지도를 보고 있을 때였다.
“앞으로 며칠이면 미궁으로 나갈 수 있을까요?”
송가연이 조용히 옆자리에 앉아 그런 걸 물었다. 힐끗 그녀를 쳐다보니, 그녀의 어깨에 물의 정령이 앉아 있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역시, 송가연을 닮았다.
시선을 주자 정령 또한 유현을 쳐다봤다. 푸르게 반짝이는 눈동자는 송가연과는 너무나도 다른 분위기다. 생김새는 비슷해도 분위기 같은 건 많이 차이가 나고 있었다.
잠시 지도를 보며 고민하던 유현은 말했다.
“몬스터와 얼마나 조우하는지에 따라 다르겠지만 앞으로 3일이면 미궁에 나갈 수 있을 거야.”
“3일이나 걸리는 건가요? 생각보다 거리가 멀군요.”
“단순히 직선거리로 따지면 그다지 멀지는 않을 거야. 다른 던전에 비해 로렐라이의 에이리어는 상당히 작은 편이니까. 로베리아의 크기를 보면 정말로 놀랄 걸?”
에이리어가 넓을수록 모험가들이 인간의 도시를 발견하기 어려워진다. 하지만 다르게 생각하면 인간들도 던전에서 미궁으로 나가기 힘들어진다는 소리였다.
미궁으로 나가기 힘들어질수록 마석 수급에 지장이 생긴다. 에이리어가 넓다고 좋은 것만 있는 건 아니었다. 게다가 에이리어의 안정화 관리도 힘들 테고.
그런 면에서 요정은 자신의 던전에 있는 원정군들의 무력을 잘 이해하고 있을 필요가 있었다. 에이리어의 몬스터가 요정의 한계에서 벗어난 순간 그건 곧 던전의 붕괴였다.
“확실히 로베리아의 에이리어는 로렐라이에 비해 더 크긴 합니다. 그렇지만 원정군들이 주로 쓰는 최단 루트가 있기에 실제로 움직이면 생각보다 오래 걸리진 않습니다.”
목소리의 주인은 류트였다. 슬금슬금 숲의 어둠에서 모습을 드러내며 주변으로 다가왔다. 주변에 정찰이라도 하고 왔나보다. 아니면 가볍게 결계라도 치고 왔거나.
“하지만 지금 로렐라이에는 최단 루트라고 할 만한 길은 없지. 아직 개척도 덜 된 부분이 있으니까.”
“뭐, 그렇기는 합니다.”
유현은 지도를 내려다 봤다. 이 지도는 덜 완성된 지도였다. 로베리아의 원정군들이 미리 탐색을 하고, 단순히 조사만을 위해 간단히 만든 임시 지도.
지금쯤이면 좀 더 제대로 된 지도를 만들기 위해 부지런히 조사하고 있겠지. 하지만 시간은 조금 걸릴 것이다. 작다고는 하지만 로렐라이의 에이리어를 조사하는 게 쉬운 건 아니다.
어쩌면 요정이 모르는 숨겨진 던전 같은 게 있을지도 모른다. 요정이 만든 던전이 아닌 특수한 몬스터들이 우글우글 거리는 자연적인 던전. 에이리어는 완전히 조사 되지 않았다.
“···그럼 지금 우리가 가고 있는 길은 전에 원정군이 움직였던 길인가요?”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송가연이 묻는다.
“그런 거지. 실제로 찾아보면 지금 우리가 가고 있는 길보다 더 짧고, 쉬운 길이 있을 거야.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이게 최선이겠지.”
에이리어의 모양은 제각각이다. 모양새 좋은 원보다는 어린애가 이상한 그림을 그린 듯한 도형 모양이 강했다.
그건 즉 도시를 중심으로 할 때 동서남북으로 하여 어느 방향으로 가느냐에 따라 미궁에 도달하는 시간이 전부 제각각이라는 소리였다.
거기서, 유현은 지도를 접었다.
“이제 슬슬 우리도 자볼까. 내일 아침 빨리 일어나야 하니까. 류트 결계는?”
“방금 전에 치고 왔습니다. 가볍게 정찰도 해보니 다행히 주변에 몬스터 무리는 없는 거 같더군요.
“그런가. 그건 다행이네. 미궁에 도착하기도 전에 피로가 누적되면 곤란하니까.”
“그 동안 일행 분들이 잘 단련되었기를 빌어야겠죠. 아무래도 이번에는 지금껏 겪어 보지 못한 긴 여정이 될 테니까요.”
류트의 말이 맞다. 지금껏 일행이 숲에서 두 번 이상 연속해서 밤을 보낸 적은 없었다. 하지만 유현은 괜찮을 거라고 믿었다.
*
이 틀이 지나고, 사흘이 지나며 유현은 행군 속도를 변함없이 유지했다. 처음에는 별문제 없이 따라왔지만 나흘쯤 되니 일행도 지친 듯 물을 들이켜는 횟수가 늘어났다.
다행히 유현이 걷고 있는 방향으로는 물이 풍부했기에 물이 떨어질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었다. 다만 문제는 미궁이었다. 미궁 안에서 물을 구하는 건 상당히 어려운 일이었다.
미궁에 살아가고 있는 몬스터들도 생명인 이상, 당연히 미궁 안에도 샘물 같은 건 존재했다. 하지만 그것이 찾는다고 쉽게 찾아지는 것이 아니었기에 문제였다.
게다가 찾는다고 하더라도 물을 마시기 위해 몰려드는 몬스터들도 다수 있으니 위험한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었다. 어쨌든, 그것도 미궁에 진입해야 할 수 있는 걱정이다.
“이서연! 방패 똑바로 안 들어!?”
회색빛 늑대가 달려들고 있음에도 방패의 높이가 낮아져 있는 이서연의 모습에 유현이 소리쳤다. 고성에 놀란 듯 이서연이 번뜩 정신을 차리며 자세를 바로 잡았다.
콰앙!
늑대의 질량에 밀려 이서연이 뒤로 밀려난다. 그렇지만 어떻게든 힘을 빗겨내며 버티는데 성공, 그 후로 방패로 늑대를 밀쳐내며 다른 손에 들고 있던 메이스를 휘둘렀다.
훈련은 되어 있다. 무기를 휘두르는 훈련은 훈련소에서 지겹도록 했을 것이다. 비록 좋은 성적은 아니라고 들었지만 기초 정도는 다루기에 충분한 시간.
깨갱!
보기 좋게 휘둘러진 둔탁한 일격이 그대로 늑대의 두개골을 파고들었다. 그렇지만 늑대를 죽이기에는 힘이 부족했나보다. 늑대의 눈은 여전히 살기로 번들거린다.
“죽엇!”
늑대가 바닥을 여러 번 구르며 반격하기 위해 몸을 일으키려고 하자 이서연을 돕기 위해 황급히 달려온 길유미가 창으로 찔러 죽인다. 늑대는 한 동안 가냘픈 소리를 반복하며 몸부림치고는 숨이 끊겼다.
“하아, 하아···.”
거친 숨소리가 주위로 반복된다. 유현은 전투가 끝났음을 알리듯 곡도를 허리춤에 걸었다.
유현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방금 전 전투로 죽인 늑대의 수가 10마리 정도는 되어 보인다.
꽤나 많은 숫자였는지라 모두들 지친 듯싶다. 앞뒤로 포위하듯 달려드는 늑대는 결코 가벼운 상대가 아니었다. 난투에 가까운 싸움이었다. 본래라면 유지해야 할 진형도 손쉽게 흐트러졌다.
“···에이리어의 끝자락쯤에 나오니 덤벼드는 몬스터들의 수도 많네요.”
“어쩔 수 없지. 플레이어들이 여기까지 사냥을 나오지는 않으니까.”
송가연의 얼굴에 혈색이 없다. 마력 탈진의 증조다. 실제로 현기증을 느끼는 건지 비틀거리는 몸을 유현이 붙잡는다. 송가연이 쓰게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고마워요.”
“아직 조절이 부족해. 정령의 힘은 강력한 대신 많은 마력을 사용하지. 게다가 아직 마력이 부족한 너로서는 한 번에 죽이도록 노력해야 해. 저길 봐.”
유현은 바닥에 널려 있는 늑대의 시체를 가리켰다.
솔직히 말해 흉측했다. 팔과 다리가 깔끔하게 잘려나가 바닥에 뒹군다. 송가연이 만든 결과물이었다. 당연스럽지만 검으로 벤 건 아니었다. 정령의 힘이었다.
물을 압축하여, 칼날처럼 만든 다음에 휘두른 것이다. 그 힘은 늑대의 가죽과 뼈를 한 번에 가를 만큼 강력했다. 다만, 마력을 많이 잡아먹어서 문제지.
“···다음에는 노력해 볼게요.”
자기가 만든 결과물을 복잡한 눈초리로 관찰하던 송가연이 마른 미소를 보인다. 유현은 힘내라는 의미로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주고는 고개를 돌렸다.
헐떡이는 일행을 보고 있자니, 뭔가 힘을 내게 만들어 줄 필요를 느꼈다.
“좋은 소식 하나 알려줄 게.”
“하아.. 하아.. 좋은 소식이요?”
핏물에 젖은 머리카락을 조심스레 쓸어 넘기며 길유미가 의아한 듯 고개를 갸웃거린다.
“로렐라이에는 늑대들이 서식하지 않아. 지금까지 늑대가 발견되었다는 보고는 없었어.”
“그게 무슨···.”
길유미가 이해하지 못하는 듯한 얼굴을 하자 잠시 생각에 잠기던 송가연이 답했다.
“···다른 곳에서 넘어온 늑대들이라는 거군요.”
그녀의 대답에 유현은 웃었다. 나무 그늘에 쉬고 있던 류트도 씨익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류트라면 이미 눈치채고 있었을 것이다. 이 늑대들이-.
“즉, 이 늑대들은 미궁에서 왔다는···.”
“그래, 정답이다.”
유현의 일행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멍한 얼굴을 하더니 이윽고 몇 초 지나지 않아 환호성을 터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