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cension Through Skills RAW novel - Chapter 101
제 101화
101. 베궤세타, 마신의 어린 양 (11)
베궤세타를 수호하는 존재. 용.
가끔 미궁의 모험가들은 태산을 보며 용이냐며 착각했다. 그만한 강함을 가진 존재란 뜻이었다.
그리고 태산은 드디어 그들이 어째서 그리 생각했는지 알게 되었다.
‘신이랑 큰 차이가 없나?’
적어도 겉으로 느껴지는 힘은 그가 본 신들과 격차를 찾기 힘들었다. 필멸의 존재라고는 믿어지지 않는 부드러운 강함이 황금용에게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발베네레스가 태산을 배려하여 힘을 줄이고 있는 것으로 보임에도 이 정도라는 건, 지금의 태산 수백이 달려들어도 이길 수 없다는 의미였다.
잠시 힘을 느끼던 태산이 물었다.
“왜 부른 거야?”
태산이 산에 모습을 보였을 때부터 간질간질 그를 건드리는 힘이 느껴졌다.
“신의 뜻에 따라서 날 죽이려는 이유는 아니겠지?”
[설마요.]용은 미소 지었다.
[저는 지상을 수호하는 역할을 받은 용입니다. 신이 무엇을 바라든 저와는 관계없는 이야기입니다. 그렇기에 제 땅에 자리 잡은 마신의 아이들에게 손을 대지 않았지요.]용이 슬쩍 시선을 돌렸다. 동굴 바깥을 바라본 발베네레스가 중얼거렸다.
[뭐, 그것도 이제 의미 없게 되겠군요. 그대를 부른 이유는 마지막 호기심을 풀기 위해서랍니다.]“호기심?”
[저는 지상을 수호하는 용. 달리 말하면 이 세계에 묶인 존재입니다. 그래서 늘 궁금했거든요. 마법사가 만들고 위대한 신들이 자리 잡은, 거대한 미궁에 대해서 말이에요.]파충류의 눈이 태산을 향한다. 태산을 살피던 발베네레스가 감탄을 숨기지 못한다.
[확실히 대단하군요. 마신이 치욕을 감수한 게 이해가 가요.]마신은 자신의 것이, 마족이 아니면 퀘스트를 주지 않는다. 그런 그녀가 인간인 태산에게 직접 퀘스트를 준 건 자존심을 굽혔다 해도 무방했다.
[그분에게 이 세계에 존재하는 마족들은 그만한 가치가 있으셨다는 뜻이겠죠.]발베네레스가 안타까운 얼굴로 말한다.
[하지만 그것도 이제 끝이군요. 광신에 의해 멸망하게 되다니. 참 서글픈 일이에요.]“끝이라니 무슨 말이야?”
[어린 마신은 분노하고 있습니다.]발베네레스가 담담히 말을 잇는다.
유령이 끼어들었다. 유령은 미궁의 존재로 바깥의 존재는 유령을 느낄 수도 들을 수도 없었다.
하지만 발베네레스는 조용히 물었다.
[무엇이 말이지요. 죽은 자여.] [하몬은 이 세계에서 태어난 신 맞지?] [맞습니다. 백여 년 전 필멸자가 초월자가 되었지요. 그는 하몬이란 이름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그럼 하몬이 막을 수 있잖아?]자신의 영역 내의 신은 무척 강하다. 설령 마신이라도 건드릴 수 없다. 그게 여태까지 유령이 하던 말이었다.
[마신이 분노한다 해도 간섭 이상은 못 할 텐데?]발베네레스는 유령을 보며 웃었다.
[당신, 강한 자로군요.] [제법 강했지.]유령이 으스댔다. 발베네레스가 긍정했다.
[생전의 당신이었다면 저를 쓰러트릴 수 있었겠어요. 하지만 신에 대해서는 알지 못하는군요.] [내가 만난 신이 두 자리는 넘었거든?] [그들의 겉모습만을 봤겠지요.]발베네레스는 담담히 말했다.
[오래지 않아 알게 될 거랍니다.] [흐음.]유령은 그다지 받아들이는 기색은 아니었지만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발베네레스가 다시금 태산을 바라본다.
[당신은 제 호기심을 풀어주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처음으로 만난 필멸자입니다. 그러니, 작은 호의를 베풀겠습니다.]황금의 용은 앞발을 들었다. 발톱 끝자락이 잘려나가 태산에게 날아왔다.
[용의 발톱입니다. 그걸 제련할 수 있는 자가 있다면, 당신에게 나쁘지 않은 도움이 될 겁니다.]“고마워.”
예상외의 보상에 태산이 순순히 받았다.
용의 발톱.
미궁의 대장장이라면 제련이 가능하리라.
[작별입니다. 아마 이게 처음이자 마지막 만남이겠죠. 그럼 저는 이만 준비를 하러 가겠습니다.]“준비?”
용은 앞발을 들었다. 마법의 기운이 서리기 시작했다.
[마지막 발악을 말입니다.]담담한 목소리와 함께 용의 모습이 사라졌다.
거대한 동굴은 텅 비어 태산 홀로 남았다.
태산이 밖으로 나왔다.
그는 발톱을 인벤토리에 집어넣고 다시 산에서 내려왔다. 마을에 도착하자 당황해하던 아넷샤가 보였다.
“왜 그래?”
“어, 태산 님!”
태산을 발견한 아넷샤의 얼굴이 확 밝아졌다.
“어디 가셨던 거에요!”
“잠깐 만날 사람이 있었거든.”
“사람이요?”
아넷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태산은 그녀의 곁에 머물면서 단 한 번도 누군가와의 친분에 관해서 이야기한 적이 없기 때문이었다.
뒤늦게 아트네키아라 불린 마족 또한 나타났다.
“어, 어어. 가신 거 아니셨습니까?”
아트네키아는 태산을 보고 눈에 띄게 당황했다. 아넷샤 또한 서운한 얼굴로 말했다.
“저도 말없이 가신 줄 알았어요…….”
“말은 하고 갈 거야.”
“아…… 당분간 머무시는 겁니까?”
“아마 그럴걸.”
퀘스트가 언제 완료될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당장 될 분위기는 아니었다.
태산의 대답에 아트네키아는 더더욱 당황했다. 동요가 눈동자 사이에 보였다.
자신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태산에 아트네키아가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목을 가다듬었다.
“그럼 방을 마련해드리겠습니다. 공주님을 구해주신 분이니 확실히 대접을 해드려야겠죠.”
태산은 그 눈동자 속에서 동요와 결심을 읽을 수 있었다.
* * *
제공받은 방에 누운 태산이 천장을 바라봤다.
천장 너머에서 보이지 않아야 할 햇빛이 보였다. 다듬어지지 않은 나무 바닥은 딱딱하고 울퉁불퉁해 등을 아프게 찔렀고, 힐끔 고개를 돌리면 벌레 몇 마리가 벽을 타고 기어가고 있었다.
“이럴 바에는 나무 위가 더 편하겠네.”
집이 집의 역할을 하고 있지 못했다.
그래도 불평할 생각은 없었다. 천장이 반쯤 뚫린 집들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괜찮은 집인 건 맞았으니까.
똑. 똑.
문을 두들기는 소리가 울렸다. 태산이 일어나 문을 열었다.
“뭐야?”
“아, 태산 님 혹시 괜찮으세요?”
아넷샤가 머쓱한 얼굴로 나무 병 하나를 흔들었다.
“괜찮으시다면 한잔할까 해서요.”
“웬 술이야?”
“마을에서 이런저런 시행착오 끝에 만든 술이라 하더라고요. 졸라서 하나 받았죠.”
그녀가 작게 웃었다. 보금자리를 찾아서 그런지 이전보다 밝은 모습이었다.
태산이 몸을 비켰다.
“들어오려면 들어와.”
“감사합니다.”
그녀가 나무 잔 두 개를 꺼냈다.
태산은 그녀가 따른 술을 마셨다.
[중독 판정 중…….] [판정 실패. 당신은 은밀한 중독 상태가 되었다. 매 초마다 체력 5가 감소한다.]“괜찮으세요?”
그녀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태산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쁘지 않아.”
“헤헤. 다행이다.”
그녀도 자신의 잔에 술을 따라 마셨다.
태산이 그녀의 얼굴을 살폈지만 별다른 영향을 받은 얼굴은 아니었다.
‘인간에게만 통하는 독인가?’
태산이 술을 삼키며 입을 열었다.
“마을 몰골은 처참하던데.”
“좀 그렇죠.”
아넷샤가 씁쓰름한 얼굴을 했다.
마족들은 도망쳐 나오며 변변찮은 도구도 제대로 가져오지 못했다고 했다. 아무것도 없이 맨땅에서 마을을 만드니 제대로 될 리가 없었다.
그 결과가 이런 되다만 집들이었다.
‘원래는 이백 명이었다고 했었나.’
오 년 동안 견디지 못하고 죽어서 오십 명만이 남았다.
“하지만…… 그래도 제 동족들이 살아가는 마을이에요.”
아넷샤가 결의에 찬 얼굴로 말했다.
“저도 이곳에서 살아가면서, 모두를 도울 거에요. 그래도 힘껏 살아보다 보면 언젠가 쉴 수 있는 날이 오겠죠.”
웃으며 말하던 그녀가 표정을 다잡았다. 아넷샤가 정중히 머리를 숙였다.
“다시 한 번 감사드려요. 태산 님 덕분에…… 저는 제 동족들을 다시 만날 수 있게 되었어요.”
그녀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넷샤는 자신이 영원히 쫓기다가 언젠가 붙잡혀서 죽을 줄 알았다. 이렇게 죽은 줄 알았던 옛 인연들을 다시 만나는 건 꿈에도 상상 못 한 일이었다.
그 모든 일이 태산이 있기에 일어난 일이다.
아넷샤에게 있어서는 어떠한 말로 감사를 표현해도 부족했다.
“설령 당신이 충분한 보상을 받았다 해도 제 마음이 편치 않아요. 그러니까…….”
아넷샤가 입술을 깨물었다. 그녀가 붉어진 얼굴로 눈을 질끈 감았다.
“태산 님이 원하신다면, 저와 함께 이곳에서…….”
“됐어.”
태산이 그녀의 머리를 밀었다. 뒤로 넘어진 그녀가 이마를 잡으며 멍하니 태산을 올려다봤다.
“멍청한 소리 하지 마. 넌 여기서 살아갈 거야. 그리고 난 떠날 거고.”
아넷샤가 입술을 깨문다.
“미궁으로…… 돌아가시는 건가요?”
“내가 갈 곳은 거기뿐이야.”
베궤세타는 결국 퀘스트로 스쳐 지나가는 장소일 뿐이다.
그가 누구를 만나고 어떤 관계를 맺든 퀘스트가 완료되면 전부 사라진다.
아넷샤가 포기하지 않고 일어선다.
“이곳에서 평화로운 삶도…….”
“그건 내가 바라는 게 아니거든.”
태산이 고개를 저었다.
평화로운 삶을 위해 얼론 모드를 고른 게 아니었다.
“넌 아직 어려. 이곳에서 살아가면서, 나이를 먹고, 그리고 결혼을 해. 그게 네가 나한테 할 보상이야.”
그 말과 함께 태산은 방을 나왔다.
아넷샤가 반사적으로 손을 뻗었지만 태산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였다.
“…….”
아넷샤가 고개를 떨궜다.
태산은 숲으로 들어갔다. 조용히 있던 유령이 입을 열었다.
[안타깝지?]“시끄러워.”
[난 그런 삶도 괜찮다고 봐. 네가 뛰어난 건 맞지만…… 미궁은 그런 자도 죽는 곳이니까.]“상관없어.”
이제 와서 죽음에 대한 공포에 질리지는 않는다.
“그리고 칼같이 자르는 게 그녀에게도 좋아.”
유령은 깨달았다.
[이전에도 느꼈지만, 생각보다 마음이 약하구먼.]“시끄럽다니까.”
태산이 거부한 건 개인적인 이유만이 아니었다.
[괜찮냐?]태산이 힐끔 체력을 확인했다.
[보호막 : 42/192] [체력 : 2250/2250]“문제는 없어.”
하지만 보호막 150이 깎였다. 상당히 강한 독이었다는 의미였다.
태산이 소드마스터를 죽였다는 소식을 듣고 더 강한 걸 준비한 거겠지. 태산이 평범한 이 세계의 주민이었다면 아마 타격을 입었으리라.
“이렇게 끝날 리가 없지.”
[이거 보상 더 받아야겠는걸.]마신의 의뢰는 아넷샤를 안전한 곳으로 데려가라는 의뢰였다.
안전한 곳이 어디냐에 따라서 의미가 많이 달라지는 퀘스트다. 태산은 여태 마족들이 도망쳐 자리 잡은 곳을 퀘스트의 목적지라 생각했으며, 아넷샤 또한 그렇게 믿고 있었다.
하지만 퀘스트는 클리어 되지 않았다.
즉 이곳은 아넷샤에게 전혀 안전한 장소가 아니란 의미였다.
쿠웅!
숲 너머에서 굉음이 울린다.
강대한 존재가 이곳으로 가까워진다. 그 힘의 총량도 총량이지만, 느껴지는 종류 자체가 평범한 모험가나 몬스터와는 궤를 달리했다.
여태 봐와 온 신의 힘에 가까웠다.
콰앙!
나무들이 뿌리째 뽑혀나가며 퇴적물이 해일처럼 태산을 덮친다.
[당신은 반발을 발동했다.]태산을 집어삼키려고 달려들던 퇴적물이 튕겨 나간다.
반발로 튕겨 나간 퇴적물과 쏟아지는 퇴적물이 서로 충돌해 흩날린다. 사방팔방 튀는 흙들을 향해 태산이 주먹을 날린다. 파공음과 함께 정면이 뚫린다.
“요란스럽기도 해라.”
흙 사이로 황금색 빛이 보인다. 무수히 흩어지는 갈색 속에서 한점의 먼지도 묻지 않은 날개가 있다.
여덟 날개를 가진 아름다운 천사가 모습을 드러낸다. 무척 거대해 사람의 몇 배나 되는 크기다.
[당신은 하몬의 천사와 조우했다.]“네가 마지막이겠지.”
아마 이게 하몬의 마지막 발악이리라.
마족을 용서하지 못한 그가 넘는 선일 테지.
무표정한 천사가 황금의 검을 든다.
[상대는 승리가 매우 어려운 적이다.]오랜만의 어려운 적 판정. 거기에 매우가 붙었다.
불가능한 적 바로 아래 단계라는 의미였다.
태산이 쌍검을 꺼내고 전신에 힘을 줬다.
“그럼 해보자고.”
태산이 발을 박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