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cension Through Skills RAW novel - Chapter 309
제 309화
309. 다섯 번째 귀환, 지구 (5)
“젠장.”
화려한 천막 안에서 진룡이 와락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그의 계획은 원래 이게 아니었다. 한국과 일본의 리더를 부르고, 자신의 힘을 보여준다. 겸사겸사 한국에서 가장 강하다고 평가받는 이들을 불러서 그들까지 굴복하게 만든다.
자신이 있었다. 그에겐 그만한 힘이 있으니. 실제로 그렇게 될 뻔했다.
하지만 태산이 그의 계획을 일그러트렸다.
“……그놈도 위대한 존재와 계약했나?”
진룡은 얼굴을 찌푸렸다.
미궁을 내려가던 그에게 한 존재가 찾아왔다.
끝없는 탐욕을 가진 그 존재는 진룡과 계약을 맺었다.
그리고 그는 아주 약간의 대가와 함께 여태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힘을 얻게 되었다.
그는 그 힘을 믿고 미궁을 내려갔다. 몬스터는 그를 막아내지 못했다. 중간에 나타난 길잡이라 자청하는 존재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들의 리더로 보이는 이들도, 진룡을 보고 혀를 차며 물러났다.
‘노예네. 내버려둬.’
그를 본 수뇌부가 한 말이었다.
“흥.”
진룡이 코웃음을 쳤다.
신에게 선택받지 못한 자가 선택받은 그를 향해 보이는 추한 질투. 그는 그리 생각했다.
그들은 분명 진룡보다 강했지만, 그건 그들이 먼저 미궁에 들어왔기 때문이지 결코 자신이 모자라서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하물며 미궁의 존재가 아닌 지구의 존재 중에 자신에게 도달할 자는 없다고 믿었다.
커뮤니티에서 시끄럽게 떠드는 걸 봤을 때도 그의 생각은 달라지지 않았다. 비천한 인간치고 힘을 가진 모양이지만, 그래 봤자 자신에게는 닿지 못한다.
하지만 태산이 보여준 힘은 경악스러운 것이었다.
“감히, 천한 인간 주제에.”
그가 입가를 비틀었다. 그 자신도 알지 못했지만 그에게서 뒤틀린 기운이 스멀스멀 새어 나와 그의 정신을 잠식하고 있었다.
진룡이 천막을 나섰다.
천지의 아래를 바라보자, 그를 본 모든 중국인이 몸을 숙이며 그의 위엄을 칭송하기 시작한다.
진룡은 그들의 모습을 흡족하게 바라봤다.
“그래.”
나는 신이다.
나는, 절대자다.
태산은 분명 강하다. 하지만 상관없다. 그래 봤자 인간에 불과하니.
진룡은 자신이 가진 스킬을 바라봤다.
[생명 포식]이것은 그가 계약을 통해 받아낸 스킬. 그의 가치를 증명하는 스킬.
그는 위대한 자의 사도다. 신이 직접 내려와 선택한, 그의 오른팔이다.
태산도 위대한 자와 계약한 것 같지만 자신과 같은 대접을 받지는 못하리라.
적어도 진룡은 그리 믿었다.
태산의 힘 따위, 다른 플레이어를 포식함으로써 얼마든지 뒤집을 수 있다. 진룡은 만족스레 웃었다.
* * *
“노예라.”
생명을 갈망하는 짐승.
유령 또한 흥미가 생겼는지 중얼거렸다.
[생명을 갈망하는 짐승. 저게 지구의 모험가와 계약을 했어?]“누군지 알고 있나 보네.”
[항상 굶주림에 배를 곯는 짐승. 세상을 먹어치우고 만물을 집어삼켜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내, 그저 압도적인 힘으로 불멸의 자리에 올랐지만 그럼에도 본인의 허기짐을 채우지 못한 짐승.]유령이 나직이 말했다.
[계속해서 생명을 집어삼켜 채워지지 않는 자신의 허기를 채우려고 하지. 필멸의 존재를 먹잇감으로밖에 생각하지 않는 존재야.]“그런 존재가 진룡이란 놈과 계약했다 이거지.”
사라진 북한의 하드 모드 플레이어들. 그리고 진룡이 가진 혼재된 힘들.
짐작이 가는 것은 있지만, 확신할 수는 없었다. 마음 같아서는 힘으로라도 확인해보고 싶지만 이번 퀘스트가 진행되는 동안에는 플레이어 간의 대립이 불가능했다.
우선은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그동안 한국과 일본의 플레이어들은 중국의 플레이어들을 관찰하며 분석했다.
그들은 대화를 거부했지만, 말뿐 아닌 표정, 태도, 시선으로도 그들의 생각과 감정을 어느 정도 읽어낼 수 있었다. 그렇게 하루 정도 중국의 플레이어들을 관찰하자 무언가 이상한 점을 찾을 수 있었다.
중국은 노비, 평민, 귀족. 그리고 황제인 진룡. 총 네 개의 계급으로 분리되어 있었다.
노비는 이지 모드 플레이어들로, 다른 집단을 시중들며 허드렛일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평민으로 보이는 노말 모드 플레이어들. 그들은 자신이 해야 할 일들을 하면서 살아갔다. 하지만 그들은 노비들을 멸시하고 경멸의 시선을 보냈다.
귀족은 하드 모드 플레이어였다.
계급 간의 격차는 무엇보다 확실해 보였다. 노비는 평민이 무엇을 해도 반항하지 못했고, 평민은 귀족이 무엇을 해도 반항하지 못했다.
서로 범접할 수 없는 규율로 묶여 있었다.
여기까지는 이해할 수 있었다. 당장 한국도 난이도 별로 분리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던 서장산이 있었으니.
하지만 그들은 너무나도 과격했다.
평민은 간소하게 거처를 만들 수 있지만, 노비는 그냥 땅바닥에서 잠을 자야 했다. 어기는 자는 그대로 끌려간 뒤 돌아오지 않았다.
장소 또한 마찬가지였다. 이지와 노말, 하드는 서로 완벽하게 분리되어 있었다. 이지 모드는 괴물이 자주 들이닥치는 외곽 쪽에 자리 잡았고, 하드 모드는 안전한 안쪽에 자리 잡았다.
그리고 그들은 괴물에게 쫓겨 다니는 이지 모드들을 보고 낄낄거렸다.
한국과 일본의 플레이어들이 도우지 않았다면 정말 죽는 이가 나왔으리라.
무척이나 이상한 일이었다. 모드 별로 분리를 한다 해도 완벽하게는 불가능했다. 한 가족이 하드 모드와 이지 모드로 나뉘어진 경우 또한 충분히 많았다.
하지만 중국의 플레이어들에게는 그런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대체 뭘까요.”
김휘연이 한숨을 내쉬었다. 협력이 필요하지만, 저들은 협력을 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너무나도 답답했다.
“밥이나 먹을까요.”
슬슬 식사 시간이었다. 김휘연이 옥수수를 꺼냈다.
일본의 플레이어들이 눈을 빛내며 슬금슬금 찾아왔다.
“저…….”
“편하게 오세요. 어차피 남는 게 식량이거든요.”
“아하하.”
에이카가 머리를 긁으며 다가왔다. 그녀가 바닥에 널브러진 채소들을 보며 탄성을 금치 못했다.
“정말…… 대단하네요.”
미궁의 보존 식량이 존재하지만, 그 맛은 별 볼 일 없었다. 거기에 가격도 비싸 퀘스트가 길어질 기미라도 보이면 함부로 먹기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한국의 플레이어들은 식량의 문제가 전혀 없었다.
그들은 각종 채소를 마련해놓고 여유롭게 먹고 있었다. 제대로 된 요리를 먹어본 지가 오래된 일본의 플레이어들로서는 부럽기 그지없었다.
한국의 플레이어들은 그런 일본의 플레이어들을 초대했다.
덕분에 싱싱한 채소를 먹게 된 일본의 플레이어들은 무척이나 기뻐했다.
“간이 재배라고 하셨나요? 정말 대단한 스킬이네요.”
“그쵸.”
김휘연이 옥수수를 삶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상 무한에 가까운 식량이나 다름없었다. 퀘스트가 아무리 길게 진행돼도 그들이 굶을 일은 없었다.
“저희가 드린 씨앗으로 키우고 계시죠?”
“아. 네.”
“천천히 키워보세요. 싹만 나면 되니까요.”
“감사합니다…….”
에이카가 마음 깊이 감사를 말했다.
간이 재배 같은 스킬을 아무런 대가 없이 알려주다니. 김휘연은 고개를 저었다.
“저도 받은 거니까요.”
“태산 씨가 가르쳐 주셨다고 하셨죠…… 그분은 대체.”
“글쎄요.”
김휘연이 쓴웃음을 지었다.
태산의 힘은 그들에게도 미지수 그 자체였다.
그들이 천천히 배를 채우기 시작했다. 조미료는 없었지만, 싱싱한 채소만으로 만족스러운 식사였다.
식사를 계속하던 중 김휘연은 저 멀찍이서 시선을 느꼈다.
“……저거 중국 플레이어 아니에요?”
“응? 여기에 왜 왔대요?”
한국과 일본 플레이어는 백두산 근처의 영역에 자리 잡았다. 그리고 중국인들은 곁에 있기도 싫다는 듯이 그 근처에 찾아오지도 않았다.
그런데 지금 조금 떨어진 곳에서 아이로 보이는 중국인이 홀린 듯이 그들의 식사를 바라보고 있었다.
“저기…….”
김휘연이 무어라 말을 걸려고 하자 아이가 화들짝 놀라 뒷걸음질 쳤다.
하지만 도망가지는 않았다.
그저 강렬한 시선으로 김휘연의 손에 들린 옥수수를 바라봤다.
“……식사 슬슬 끝낼까요? 뒷정리는 하지 말죠.”
“네? 아. 네.”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이고 떠나갔다.
그들이 자리를 비운 뒤 아이가 슬금슬금 다가왔다.
* * *
그 뒤로 아이는 계속해서 찾아왔다.
그때마다 김휘연은 식사를 끝내고 뒷정리를 하지 않았다.
아이는 식사가 거듭될수록 점점 가까이 다가왔다. 이제는 손만 뻗으면 닿을만한 거리였다.
“자. 먹으렴.”
아이가 허겁지겁 옥수수를 먹어치운다.
“고, 고맙습니다…….”
사흘이란 시간이 지난 뒤에야 아이는 입을 열었다.
그들이 중국인에게 들은 최초의 대답이었다.
그 뒤로 아이는 점점 말문을 텄다. 그들은 아이가 부모를 잃은 이지 모드의 플레이어란 사실을 알아냈다.
김휘연이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물었다.
“식량을 구할 골드를 충분히 구하지 못했니?”
“아, 아뇨. 골드는 있어요. 하지만 노비는 이틀에 한 끼만 먹어야 해서…….”
아이의 대답에 그들이 입을 다물었다.
아이가 음울하게 말했다.
“사, 사실 여러분에게 말을 걸면 안 돼요. 폐하의 명령이거든요. 이, 이게 알려지면 저는…….”
아이가 사시나무 떨듯이 몸을 떤다.
김휘연이 아이를 다독인다.
“괜찮아. 여차하면 우리가 너를 지켜줄게.”
아이의 떨림이 천천히 줄어든다.
김휘연이 차분한 목소리로 묻는다.
“말해줄 수 있니? 중국은 어떻게 변했는지.”
아이는 더듬더듬 입을 열었다.
진룡은 얼론 모드 플레이어였다.
그는 재능이 있었다. 얼론 모드의 초입에서 막히는 것이 아닌, 미궁을 공략하며 유의미하게 층을 내려갔다.
하지만 태산이나 아멜리아 같은 일당백의 힘을 가진 정도는 아니었다.
분명 재능이 있고 강했지만, 다수의 하드 모드 플레이어를 이겨낼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사람들을 이끌 카리스마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중국이란 거대한 나라에서 그는 조금 특출난 얼론 모드 플레이어에 불과했다.
“하지만 세 번째 귀환 때, 갑자기 강해져서 돌아왔어요.”
진룡은 말 그대로 그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힘을 가지고 지구로 귀환했다.
그리고는 그 압도적인 힘으로 중국을 제패하기 시작했다.
나타나는 괴물들을 전부 죽여버리고 자신의 명령에 반하는 자들은 그 가족과 지인들까지 모두 하나하나 뿌리째 뽑아버렸다.
중국에도 물론 지역마다 리더가 있었지만 진룡은 그들 모두를 전부 죽여버렸다. 감히 중국의 주인인 척했다는 이유였다.
저항하는 자는 있었다. 반발하며 일어나려는 자 또한 있었다.
하지만 그들 모두 죽었다.
피와 공포에 물든 통치가 완성되었다.
이야기를 듣던 사람들은 큰 충격에 빠졌다. 아이는 조용히 말을 이었다.
“하지만…… 죽은 사람은 오히려 줄어들었어요.”
역설적이게도 압도적인 힘을 가진 자가 등장했기에 분란으로 죽어가는 자는 오히려 적었다. 괴물들조차 진룡의 압도적인 힘을 넘어설 수 없었다. 홀로 웨이브 자체를 정리했기에 괴물에게 죽어 나가는 일은 거의 없었다.
압도적인 힘의 주인. 대항은 불가능했다.
중국의 플레이어들은 그를 숭앙하기 시작했다.
그를 신이라고, 용의 화신이라고 믿었다.
“마치 태산 씨처럼 말이에요.”
아이가 한 이야기를 태산에게 전달한 김휘연이 말을 이었다.
진룡 또한 당연하다는 듯 사람들의 신앙을 받아들였다.
그는 서열을 만들었다. 설령 가족이라도, 계급의 차이가 나면 무조건 규율을 지키게 만들었다.
저항하거나 껄끄러워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전부 진룡의 손에 의해 사라졌다.
사람들은 점점 자신과 다른 집단의 사람을 핍박하는 데에 익숙해졌다.
노비는 사람으로 대우받지 못했고 그들 자신도 그런 취급을 당연하게 여기기 시작했다.
단 한 명을 위한 집단이 그렇게 만들어졌다.
“지금의 세상은 그게 가능하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야기를 마친 김휘연이 살짝 몸을 떨었다. 태산 또한 지금 진룡이 하는 짓을 그대로 할 수 있었다. 태산이 가진 힘은 그만한 것이었다.
하지만 태산은 모든 권한을 그녀에게 양도하고, 그러고 그들의 생존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
중국 덕분에 태산이란 사람이 얼마나 이타적인지 다시금 깨달을 수 있었다.
“흐음.”
이야기를 들은 태산이 조용히 정리했다.
정말로 불멸자와 계약을 맺었다면, 평범한 플레이어는 항거할 수 없다.
“결국 힘에 의한 지배라 이건가?”
김휘연을 돌려보낸 태산이 흥미가 식은 얼굴로 중얼거렸다.
“별거 없군.”
정신 지배. 아니면 사상의 오염.
그런 쪽을 예상했는데 겨우 힘에 의한 숭배라니. 그 정도의 얄팍한 힘을 믿고 사람들을 지배하고 있다니.
대략 어떻게 된 일인지 알 수 있었다.
진룡은 얼론 모드를 내려가다가 한계에 부딪히고, 그런 그에게 생명을 갈망하는 짐승이 접근했을 것이다.
어째서 진룡을 골랐는지는 알 수 없다. 불멸자의 심리란 것은 이해하기 쉬운 일이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확실한 건 그가 계약을 통해 사람의 생명을 바치고, 대가로 힘을 얻어냈다는 것이었다.
‘생명을 갈망하는 짐승.’
그리고 진룡이 가진 뒤섞인, 무수히 많은 것이 혼재된 힘.
김휘연은 중국으로 간 북한의 플레이어들을 찾을 수 없다고 말했다. 그들 전부 진룡에게 죽었겠지. 그게 전부가 아니리라. 죽은 중국의 플레이어 중 적지 않은 자들이 불멸자에게 제물로 바쳐졌으리라.
“전생에는 없었던 걸 봐서는 나의 존재 때문에 불멸자가 간섭할 수 있게 된 건가?”
고신의 시선은 태산 하나에 집중되고 있었다. 그리고 그만큼 다른 나라들은 고신의 영향을 피해갈 수 있었다.
생명을 노리는 부정한 불멸자가 개입할 수 있는 최상의 상황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신앙이라.”
태산은 천지에 있는 진룡의 거처를 바라봤다.
신성을 가진 태산은 볼 수 있었다. 그곳으로 모이는 거대한, 억에 달하는 숫자가 가지는 믿음의 힘을.
그 믿음에 담긴 힘은 태산이 받고 있는 신앙을 뛰어넘는 것이었다.
하지만 믿음의 힘은 오갈 곳 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진룡은 저 신앙을 받아들일 그릇이 되지 않기 때문이었다.
저 신앙은 주인 없는 힘이었다.
진룡은 힘에 의한 숭배를 받고 있었다.
진룡보다 더한 강자가 있다면 그 숭배의 대상이 바뀔 수 있다는 의미였다.
“해볼 가치는 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