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sassin necromancer RAW novel - Chapter 37
모습을 드러낸 보스 몬스터에, 헌터들 사이에서는 숨길 수 없는 긴장감이 감돌았다.
“…일단 한데 뭉쳐!”
다시 의태할 여지를 주지 않겠다는 것인지, 자리에 있던 헌터들은 남자의 외침에 한곳으로 모여 방어 태세를 형성했다.
확실히 나쁘지 않은 판단이었다.
“거슬리는군.”
투웅.
콰직!
우드드득!
누워서 스켈레톤 매셔의 무기를 잡고 있던 보스는, 간단한 반동만으로 자리에서 일어나며 순식간에 매셔의 두개골을 쪼개버렸다.
‘…만만치 않은데.’
보스는 확실히 강했다. 선발대의 헌터들이 맥을 못 추고 당한 것도 이해가 갔다.
“이, 이제 어떡하죠?”
“어쩌긴 어째, 싸워야지!”
“하지만, 저게 정말로 도플갱어라면…….”
B5랭크 등급으로 지정된 몬스터. 심지어 도플갱어는 그 특이한 성질로 인해 상황에 따라 더욱 성장이 가능한 특수 개체였다.
“벌써 먹어치운 헌터만 세 명이에요. 사실상 적은 B랭크 중위권의 힘을 가졌다 봐도 무방해요.”
그것은 분명 절망적인 소식이었다.
제아무리 재능을 촉망받는 인재들이라지만, 여기 모인 이들은 고작해야 C랭크다.
B랭크 중위권의 몬스터를 상대로는 수준 차이가 확연했다
침묵을 뚫고, 어느샌가 헌터들 사이로 합류한 전인택이 입을 열었다.
“하지만, 놈이 압도적으로 강했다면 이런 식으로 소모전을 펼치진 않았을 겁니다. 적어도 우리에게 위협을 느꼈다는 것만은 확실합니다.”
즉, 도플갱어의 입장에서는 이쪽 역시도 만만치 않은 전력이라는 얘기.
그 말을 들은 헌터들의 얼굴에 적게나마 자신감이 새겨졌다.
하지만, 그런 우리를 보며 도플갱어는 웃었다.
“…이거 생각 이상으로 멍청한 놈들이었군.”
그리고 이어서 입을 열었다.
“우리는 태어나자마자 우선적으로 의태할 대상을 찾는다. 그것은 본능, 그 행동에 스스로의 뜻은 없다.”
휘익!
빠가각!
도플갱어는 이미 힘을 잃은 스켈레톤 매셔의 시체를 집어던지며 걸음을 옮겨왔다.
“지식을 흡수하고 자아가 확립된 것은 불과 5분 전이다. 바로 그때, 내가 처음으로 떠올린 생각이 무엇이었는지 아나?”
“무슨 소리를…….”
“바로 만족감이었다. 사방에 먹이가 널려있다는 사실에 대해서 말이지.”
기괴하게 미소를 짓는 도플갱어를 향해, 윤솔아가 재빨리 주문을 외웠다.
“윈드 커터!”
촤아악!
서걱!
그러나, 이후 펼쳐진 광경은 충격적이었다.
“마, 말도 안 돼.”
도플갱어는 방어조차 하지 않았다. 그저 태연히 맨몸으로 그것을 받아냈을 뿐이다.
그렇게 입은 피해는, 고작 한 뼘의 길이도 안 되는 생채기가 전부였다.
그에 자리에 있던 모두는 완전히 기가 눌려버렸다.
“이제야 조금 말귀를 알아듣게 된 모양이군.”
“이런 씨발. C랭크 던전에 왜 이딴 놈이 있는 거야…….”
그렇게 기선제압을 마치자, 노인의 모습을 한 도플갱어는 고개를 돌려 나를 응시하기 시작했다.
“우린 해야 할 얘기가 남았지.”
“…….”
상황을 보니 역시 뒤에 있는 디버프 토템들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을 듯했다.
도플갱어는 생각할 시간조차 주지 않고 곧바로 나를 향해 달려들었다.
타악.
“가장 먼저 네 지식과 육체를 빼앗아주마.”
후우웅!
서거억!
조금 전에 던져버린 내 검은 이제 도플갱어의 손에 들린 채 내 목을 노려오고 있었다.
나는 급한 대로 남은 스켈레톤 매셔와 끌고 온 몬스터들의 시체를 돌격시켰다.
[키에엑!] [캭!]스걱!
우드득!
콰직!
그 수는 상당했지만, 도플갱어는 놀라운 신체 능력으로 순식간에 시체들을 하나씩 뭉개버렸다.
‘히, 힘이 안 들어가.’
거리가 조금 벌어져 있긴 했지만, 아무래도 사람이 너무 많았다.
그 시선들이 전부 이쪽으로 쏘아지자 도저히 몸을 제대로 가눌 수가 없었다.
나는 결국 도플갱어의 접근을 막지 못한 채 공격을 허용하고 말았다.
뻐어억!
쩌엉!
쿠당탕!
강렬한 발차기가 내 복부에 적중했고, 무언가 깨지는 소리와 함께 수 미터를 날아가 바닥에 엎어졌다.
서하가 준비해 준 보호막 아티팩트 덕에 충격은 적었지만, 그것도 이번 한 번뿐이었다. 재차 공격을 허용한다면 무사하지 못할 것이다.
‘…이게 진짜.’
고작 저딴 유사 지적 생명체에게 이런 수치를 당하다니, 용납할 수가 없다.
하지만 별다른 방법이 없었다. 나는 지금도 속이 울렁거리고 머리가 빙빙 돌아 미쳐버릴 지경이었으니까.
‘우으읍. 도움도 안 되는 버러지들…….’
저 쓸모없는 디버프 토템들만 치워버린다면.
나는 그러한 염원을 담아 필사적으로 김승민을 바라보았다.
그것을 마주한 김승민은, 영문모를 표정을 짓더니 무언가 깨달은 듯 방패를 들어 올리며 입을 열었다.
“제가 앞을 막겠습니다! 모두 뒤로 물러나세요!”
“뭐? 어차피 밖으로 나가지도 못하는데 그게 무슨 소리야?”
“수가 있습니다! 적과 가능한 거리를 벌리는 겁니다!”
그동안 게임에서 호흡을 맞춘 것이 헛되지는 않았는지, 김승민은 빠르게 상황을 파악하고 내 의도를 읽어냈다.
역시 진짜배기 챌린저의 판단력은 뭐가 달라도 달랐다. 나는 반색하며 맹렬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쓸데없는 짓을 하는군.”
화르륵!
도플갱어가 팔을 휘적거리자, 그의 손 위로 거대한 화염구가 생성되기 시작했다. 화염 마법사였던 박영길의 스킬이었다.
쐐애액!
퍼어엉─!
콰가각!
방패를 들어 화염구를 막아낸 김승민이 땅에 자국을 새기며 뒤로 밀려났다.
“오래 못 버팁니다!”
“어차피 별다른 수가 없어요! 일단 따르기로 해요.”
“제기랄, 알겠다고!”
마침내 의견이 일치하고, 눈치를 보던 윤솔아가 버프를 걸어 일행의 스피드를 증가시켰다.
“바람 요정의 숨결!”
행동은 빨랐다. 일행은 진형을 유지하며 순식간에 도플갱어로부터 멀어져갔다.
“…하찮은 벌레들이 헛짓거리를.”
이렇게 되면 표적이 되는 것은 당연히 김승민이었다. 도플갱어가 눈에 잘 보이지도 않는 속도로 김승민을 향해 돌격했고, 곧 충돌이 벌어졌다.
콰아앙─!
“정 그렇다면, 네가 먼저 죽어라.”
촤아악!
그렇게 김승민의 목덜미에 칼날이 꽂힐 찰나, 타이밍을 기다리던 김승민이 내 쪽으로 시선을 옮기며 스킬을 발동했다.
“카운터 쇼크(counter shock)!”
투콰악!
강렬한 충격과 함께, 도플갱어는 그대로 먼 거리까지 튕겨 나갔다. 대충 보아하니 아까 전 화염구와 이번 일격의 데미지를 그대로 반사한듯했다.
“이런 잡기술을…….”
“그걸로 됐습니까?”
도플갱어를 무시한 채 입을 연 김승민의 물음에,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제서야 이쪽을 인식한 도플갱어.
허나 이미 때는 늦었다.
나는 사기를 가득 담아 언령을 내뱉었다.
“죽음의 서.”
푸확!
때마침 저런 예의 없는 녀석에게 딱 어울리는 하수인이 있다.
플랜트전에서 2레벨, 그리고 보스룸까지 진격하며 올린 1레벨.
그 덕에 22레벨을 달성한 나는 그대로 책을 잡아 들고 새로운 페이지를 펼쳐냈다.
촤라락!
“추출(extraction).”
페이지는 열한 번째 장.
그곳에 새겨져 있는 것은 목 없는 기사이자 죽지 않는 불사병, 한스의 두개골.
“구체화(materialization).”
푸화악!
스르륵.
터억.
뻗어진 오른손 위에서부터 검은 안개가 흘러나오고, 곧 쪼개지고 갈라진 누군가의 두개골이 모습을 드러냈다.
“허튼짓을!”
스거억!
푸욱!
불길함을 느낀 도플갱어가 곧바로 검을 휘둘러왔지만, 어느샌가 튀어나온 언데드 하나가 그것을 간신히 막아냈다.
전신이 갑옷에 둘러싸여 있고, 머리가 비어 있는 언데드, 바로 아까 전 플랜트를 지키던 경계병이었다.
그 순간, 나는 오른손에 올려진 묵직한 두개골을 경계병의 목 위로 꽂아버리며 주문을 외웠다.
후우웅.
“언데드 콜(Undead call).”
일찍이 테헤론 지방의 불가사의로 여겨졌던, 이름 없는 성의 듀라한 좀비.
“한스(Hans).”
푸화악!
그의 영혼이, 한순간에 경계병의 육체를 잠식했다.
“그, 각, 그극.”
잔뜩 금이 간 두개골 사이사이로 검은 안개가 흘러나왔고, 그곳이 살점으로 뒤덮이며 사람의 형체가 만들어져갔다.
휘릭.
휘리릭.
어느샌가 안구에 생성된 눈동자가 쉼 없이 사방을 훑었고, 반쯤 만들어진 입이 연신 움찔거리며 제 존재를 알려나갔다.
그렇게 완성된 것은, 색이 바랜 머리카락과 창백한 피부를 가진 미형의 얼굴이었다.
뚜두둑.
마침내 소환된 한스가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이상한 광경을 보았다는 듯 아리송한 표정을 지었다.
“에게.”
“…….”
나는 어쩐지 화가 치밀어오르는 것을 느끼며 손가락으로 앞을 가리켰다.
한스는 그제야 당황하고 있는 도플갱어를 바라본 채 입을 놀렸다.
“칼 좀 치우지?”
꽈악.
우드드득!
“크아악!”
한스에게 안면을 잡힌 도플갱어가 고통스런 비명을 지르며 손을 휘둘렀다.
서거억!
철퍽!
그 공격에 한스의 팔이 잘렸고, 도플갱어는 펄쩍 뛰어오른 채 뒤로 물러나 상처를 회복하기 시작했다.
치이익.
“네놈은, 대체…….”
“흐음.”
한스는 마치 견적을 내듯 도플갱어를 바라보며 남은 한 손으로 허리춤에 박힌 칼을 뽑아 들었다.
촤악!
그리곤 전혀 흥미가 생기지 않는다는 듯 무시하고 뒤로 돌아 나를 응시하기 시작했다.
“…왜, 왜?”
“허, 반응을 보니 분명하긴 한데.”
“…….”
왠지 모르게 불길한 감각이 느껴졌다.
한스는 그대로 성큼성큼 다가와 고개를 들이밀고 나를 내려다보며 비웃음 담긴 미소를 지었다.
“…군주님, 상당히 약해지셨네?”
지금 이 허접스러운 새끼가 뭐라는 거지?
나는 황당함에 눈동자를 굴리며 한스에게 말했다.
“헛소리 말고 빨리 가서 저거나 치워.”
그런 내 말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린 채, 한스는 무언가를 가늠하듯 내 눈동자를 바라보더니 입을 열었다.
“…지금이라면.”
“뭐?”
“이 한 손으로도, 그 전신을 구겨버릴 수 있을 것 같은데.”
그 시선에서는, 미처 다 감춰내지 못한 섬뜩한 기운이 흘러나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