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 the first day of my life in living alone, a portal opened RAW novel - Chapter 104
104. 흰색 차원문 (3)
타이밍에 대해 생각하게 될 때는 대개 두 가지 경우 중 하나다.
머피의 법칙처럼 하필 이때 이러나 싶을 때 혹은 기가 막히게 절호(絕好)이거나.
“벌써?”
차원문의 기운을 느낀 조여진이 화색을 띠었다.
“잘됐네요. 그쵸?”
나는 어색하게 웃어 보였다.
조금 전에 생성된 차원문이 곧바로 활동기에 들어갔다는 것은 좋은 일이 아니었다. 그만큼 발견도, 대비도 빨라야 된다는 뜻이었으니까.
만약 이렇게 빠른 활동을 보이는 차원문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난다면? 이에 대처할 헌터들의 수가 부족하다면?
엄청난 사상자들이 발생할 수도 있다.
그런 무시무시한 상황이지만, 자신의 실력에 꽤 자신이 있는 듯한 조여진은 그저 스스로를 증명할 기회라고 여기는지 해맑은 미소를 지었다.
사실 중요한 문제이기는 했다.
조민택의 친척이라고 하니 어느 정도 신뢰할 수 있었으니, 실력만 확실하다면 함께 일을 진행해도 되겠다 싶었다.
“가볼까요?”
조여진의 물음에 나는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그러죠.”
* * *
“같이 갔으면 좋겠는데.”
지율이가 조금 시무룩한 얼굴을 했다.
차원문이 생성되는 곳에 지율이까지 함께 갈 수는 없었다.
위험할 수도 있었으니까.
드래곤인 현백이가 함께이니 웬만해서는 문제가 생기지 않을 듯했지만, 강력한 힘을 보유하고 있더라도 아이들에게 그런 경험을 안겨주고 싶지는 않았다.
아기 고양이를 품에 안고 있는 현백이와 눈이 마주쳤다. 나는 입가에 미소를 머금어 보였고, 현백이도 부드럽게 웃었다.
그래, 아이들은 저렇게 귀여운 고양이랑 같이 노는 모습이 가장 잘 어울린다.
나는 달래고자 지율이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으며 눈높이를 맞췄다.
“지율이 눈썹 무룩이처럼 됐네?”
“엇!?”
지율이가 황급히 양손을 자신의 눈썹으로 가져갔다.
“진짜로? 무룩이처럼 됐어?”
“무룩이처럼 되는 거 싫어?”
나는 실실 웃으며 물었지만, 여전히 눈썹을 손으로 가리고 있는 지율이는 꽤나 심각했다.
“무룩이는 너무너무 좋지만, 무룩이랑 똑같은 눈썹은 싫어.”
“그래? 그럼 웃어봐.”
“지금 하나도 안 웃긴데…….”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는 보이지 않도록 양손으로 얼굴 양옆에 벽을 만들었다. 그리고 지율이를 향해 웃긴 표정을 지어 보였다.
동공을 위로 올리고 인중을 아래로 당기거나 혀를 내밀어 보이는 정도가 한계였지만, 지율이는 까르르 웃음을 터트렸다.
“어? 웃으니까 무룩이 눈썹 아니네.”
“진짜?”
“응.”
“그럼 계속 웃어야겠네.”
그렇게만 된다면 더 바랄 게 없다.
“그렇네. 계속 웃어야겠다.”
어느새 기분이 풀린 지율이는 밝은 목소리로 물었다.
“언제쯤 올 건데?”
“최대한 빨리.”
“진짜? 약속.”
“그럼. 아빠 오기 전에 현백이하고 같이 놀고 있으면 되지.”
“알았어!”
지율이와 현백이는 JMT 글로벌 꼭대기층에서 기다리고 있을 예정이었다. 조민택은 나름대로 제법 덩치가 있는 기업의 대표임에도 기꺼이 아이들을 맡겠다고. 어린이집 시설이 있는데도 자신이 맡으려 했다.
강척 드래곤 연구소에서도 사람이 하나 나올 예정이었다.
사람의 모습으로 인간사회에 섞여서 사는 드래곤들은 제법 있기에 무조건적으로 위험하지는 않다.
하지만 현백이는 최초로 인간과 가까이 지내고 있는 마블 드래곤인지라 더 신경을 쓰는 중이었다.
다행히 아직까지 우려해야 될 일이 생기지는 않았지만.
“그럼 이따 봐.”
나는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들었다.
현백이는 고개를 꾸벅였고, 지율이는 머리 위로 손을 크게 저어 보였다.
* * *
JMT 글로벌 대표실.
조민택은 콧수염이 기러기처럼 날갯짓을 하도록 입을 씰룩거렸다. 눈앞에 있는 지율이와 현백이 그리고 아기 고양이가 너무 귀여운 탓이었다.
“……안녕하세요.”
품에 아기 고양이를 안은 현백이가 먼저 고개를 꾸벅이며 인사를 건넸다.
“그래, 반가워. 아저씨는 조민택이라고 해.”
조민택이 말하자 지율이는 활짝 웃으며 말을 거들었다.
“이 회사가 콧수염 아저씨 거래!”
“……아.”
현백이는 괜히 조민택을 힐끗 보며 고개를 꾸벅였다.
조민택은 어색하게 하하 웃었다.
“그렇긴 하지. 아저씨 거 맞아. 반 정도는 은행 거지만, 그래도.”
“아저씨 거가 아니에요?”
“아니야, 내 거 맞아.”
“방금 반은 은행 거라고 했잖아요. 그럼 같이 거잖아요.”
“당장 은행에서 빌린 돈을 다 주고 아저씨 걸로 할 수도 있어.”
지율이는 이해가 안 된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럼 왜 그렇게 안 해요?”
“으음, 그게 말이지…… 그게 더 이득이거든.”
“회사를 나눠서 갖는 게요?”
“회사는 아니고 건물, 이 건물만.”
“으음.”
“그게 빌린 거는 나중에 갚는 대신에 지금 가지고 있는 돈을 다른 곳에 쓰는 거거든. 그렇게 해서 돈도 더 벌 수 있고…….”
얘기를 듣는 지율이의 눈에는 의심이, 전반적인 얼굴 표정에는 지루함이 묻어났다.
“별로 중요한 건 아니란다.”
조민택의 말에 지율이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래요?”
“그럼!”
조민택은 일부러 양팔과 다리를 넓게 벌리며 이상한 포즈를 취했다.
“짜잔! 별거 아니었습니다!”
짧은 정적.
조민택은 순간적으로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애들 앞에서 이게 무슨……. 괜한 짓을 했네. 괜한 짓을 했어.’
민망함이 곧 후회로 바뀌려는 찰나,
“별거 아니었네!”
지율이도 웃으며 조민택의 포즈를 따라 했다.
“그, 그렇지! 별거 아니었어!”
조민택이 양쪽 손끝을 오른쪽으로 뻗으며 자세를 틀었고, 지율이도 그대로 따라 했다. 그렇게 두 사람은 양쪽으로 양팔을 번갈아 뻗으며 이상한 춤을 췄다.
지켜보던 현백이는 수줍게 웃었는데, 조민택이 재촉했다.
“현백이도 해야지.”
지율이도 곧바로 말을 보탰다.
“현백아, 같이 해!”
당황한 현백이는 주춤거리며 몸을 뒤로 뺐다.
“어? 아, 그건 좀…….”
하지만 조민택과 지율이는 물러서지 않았다.
“현백아 같이 하자! 춤추자!”
“같이! 같이 해!”
현백이는 마음속으로 외쳤다.
‘하지만 그 춤은 너무 창피해요!’
차마 입 밖으로 내지는 못했고, 결국 핑곗거리를 찾았다.
“지금 이렇게 고양이를 안고 있잖아요. 그래서…….”
그때 현백이의 품에 안겨 있던 아기 고양이가 몸을 비틀었다. 점프를 해서 뛰어내리려 했고, 당황한 현백이가 조심스레 소파 위에 내려놓았다.
“미야앙.”
아기 고양이는 푹신한 소파에 올라가보고 싶었는지 만족스러운 듯이 목소리를 냈다.
“고양이도 내려갔네! 자, 춤추자!”
조민택이 또다시 양팔을 양옆으로 번갈아 흔들었고, 지율이도 웃으면서 춤을 췄다.
“아하하하핫! 현백아! 빨리! 같이 해!”
이내 현백이는 고개를 푹 숙인 채 소심하게 팔을 움직였다.
* * *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갑작스레 생겨났고, 금세 활동기까지 접어든 것은 흰색 차원문이었다.
아직까지 흰색 차원문의 발생 비율은 전체 차원문에서 약 0.3% 수준.
일반적인 차원문과 확연히 다르게 발생하여 대처도 완벽하게 되고 있었다.
하지만 내 예상처럼 흰색 차원문이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하면 문제가 많아질 터.
“결계 만드실 수 있다고 했죠? 부탁드릴게요?”
조여진이 말하자 구정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 결계치고 저도 거들겠습니다.”
“아니에요, 괜찮아요.”
“예? 그래도…….”
“제 능력을 검증받아야 되는 자리라서요.”
흰색 차원문이 더 빠르게 휘몰아치면서 중앙이 열리기 시작했다.
곧 모습을 드러낸 마수들.
크로커독.
악어와 흡사한 생김새를 가졌지만, 몸의 형태는 개에 가깝다. 크기는 송아지 정도로 그리 크지는 않았다.
식용으로 쓰이기도 하는 마수인데, 생김새 탓에 국내에서는 먹지 않는다.
먹어본 사람들의 말로는 닭고기와 비슷하다고.
가죽은 꽤 값어치가 있다. 성질이 사나운 마수들이라 가죽을 온전하게 사냥하기 어려운 덕에 더욱 그렇다.
차원문에서 크로커독들이 쏟아지기 전, 이미 주변 지역의 사람들은 대피한 상태.
차원문 현장 관련 인력들이 배치되어 도로를 통제했다.
구정석의 결계가 완성되었기에 밖으로 피해가 생길 일은 없었다. 구정석에게 무슨 일이 생기지 않는 한 그랬다.
“크로커독이네요. 수가 꽤 많은 것 같습니다. 도와야겠어요.”
결계 생성을 마친 구정석이 걸음을 떼려는데 조여진이 멈추라는 듯 손을 뻗어 보였다.
“말씀드렸잖아요, 제 능력을 검증해야 하는 자리라고. 지켜보고 계세요.”
그녀는 자신만만한 얼굴을 하고는 앞으로 나섰다.
차원문에서 크로커독들이 쏟아지기 직전.
그러고 보니 차원문에서 마수들이 쏟아지는 상황을 지켜보고 있는데 나는 참으로 평온했다.
차원문 현장에서 오래 굴렀지만, 살아 있는 마수에 익숙하지는 않았다.
일반인이었으니 당연했다.
크로커독은 만만한 마수가 아니었다.
그런데도 나는 평온함을 유지했다.
크로커독 정도는 위협이 될 수 없음을 확신한 탓이었다.
하긴, 매일 같이 지내는 게 허니베어인 곰곰이와 달토끼인 삐삐였다. 둘은 허니베어와 달토끼 중에서도 특별했고. 녀석들에게 익숙한 나에게 크로커독 정도는 우스울 수밖에.
“카르륵! 카르르륵!”
“카르르륵!”
크로커독이 하나둘씩 차원문에서 나와 지면에 발을 내디디기 시작했다.
마치 차원문의 일부가 녹아내려 둘러싸고 있는 듯한 상태.
아직 완전히 우리의 차원으로 오지 않은 것이다.
차원의 일렁임이 완전히 걷히기 전에는 건너온 것이 아니다.
최근에는 차원끼리 겹쳐 교집합만 일어난 상태로 본다.
즉, 서로의 눈에 보이더라도 영향을 끼칠 수는 없다.
크로커독들도 본능적으로 그 사실을 인지하고 있는지 으르렁거리기만 할 뿐, 움직이지는 않았다.
“진짜 안 도와줘도 괜찮아요? 벌써 아홉 마립니다. 저 정도는 혼자서 처리 못 하는 게 정상이에요. 지원 요청을 해야 되는 상황이 아닌가 싶은데…….”
구정석이 말하자 조여진이 마력을 끌어올리며 웃음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같은 소리 여러 번 하게 만들지 마요.”
“네? 아, 죄송합니다.”
“죄송하라고 드린 말씀은 아니에요.”
조여진의 웃음 섞인 목소리가 울린 순간, 크로커독 열한 마리에게서 차원의 일렁거림이 사라졌다.
흰색 차원문도 그대로 소멸했고, 크로커독들이 사나운 울음소리를 냈다.
“만나서.”
조여진의 목소리에 여유가 묻어났다.
“카르르륵!”
“카르륵!”
크로커독들이 몰려왔다.
“반가웠고.”
조여진이 양팔을 넓게 벌리며 손바닥을 펼치자 마력이 쏟아졌다.
“잘 가렴.”
그녀가 양손을 모으는 순간, 넓게 퍼진 마력이 뭉치며 크로커독들을 한곳으로 몰았다.
쿵!
마치 도넛과 같은 마력의 고리가 크로커독들을 하나로 묶었다.
“카르르륵!”
“카륵!”
“카르륵!”
크로커독들은 위협적으로 소리를 냈지만, 조여진이 만들어낸 마력의 고리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와……. 단번에…….”
구정석이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확실히 조여진의 실력은 뛰어났다.
마력의 고리를 깰 힘이 없다면 절대적인 셈이었다.
“어때요?”
조여진이 나를 보며 생긋 웃었다.
“합격인가요?”
나는 고개를 가볍게 끄덕거렸다.
“네. 그럼요.”
조여진은 크로커독들을 묶어둔 채 내게로 와서 손을 내밀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나는 조여진과 손을 맞잡고 가볍게 악수하는 것으로 말을 대신했다.
* * *
“이게 그만이에요?”
지율이는 소파에 앉아 숨을 헐떡이는 조민택을 보며 물었다.
“그, 그래…… 이제 그만…….”
조민택은 손수건으로 이마의 땀을 닦아냈다.
“아저씨 살려줘…….”
“죽지 마요. 죽으면 안 돼요.”
지율이가 시무룩한 목소리를 내자 당황한 조민택이 하하 웃으며 몸을 벌떡 일으켰다.
“하, 하하! 아저씨 안 죽어! 아저씨가 왜 죽어?”
“앗! 살아났다! 그럼 춤 더 춰요!”
“아니, 그건…….”
은근히 부끄러워하던 현백이도 재미가 들렸는지 팔을 들어 올릴 준비를 했다.
‘얘네들은 지치지도 않나?’
조민택은 가슴에 손을 얹었다. 아직도 심장이 쿵쾅거렸다.
‘이, 이대로 가다간 진짜로 죽는다.’
그는 자신이 시작한 춤의 지옥에서 빠져나갈 방법을 궁리하기 시작했다.
귀촌 첫날 차원문이 생겼다 105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