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 the first day of my life in living alone, a portal opened RAW novel - Chapter 108
108. 위화감
순간 심장이 들썩거리는 듯했다.
싹이가 나뭇가지와 덩굴로 만든 욕조에서 얼굴을 드러낸 탓이었다.
나는 애써 침착한 척을 하면서 말했다.
“갑자기 그렇게 얼굴 들이미는 건 안 하면 안 돼?”
“……왜지?”
싹이는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있지만, 가끔 당연한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아니면 이해하고 있으면서 모른 척을 하거나.
“욕조 만든 거야?”
싹이는 나의 물음에 대답하지 않고 모습을 감췄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뒤에서 발걸음 소리와 함께 대답이 울렸다.
“그렇다.”
나는 눈썹을 살짝 찡그리면서 헛웃음을 쳤다.
“처음부터 그냥 와서 얘기하면 안 되는 거야?”
“중심에서 쉬고 있었다.”
“아, 그럼 어쩔 수 없지.”
“그걸 만드느라 체력을 많이 썼거든.”
싹이가 욕조를 가리켰고, 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일부러 생색내는 거지 지금?”
“많은 것을 바라지 않는다. 충분한 영양 공급이면 된다.”
“참나.”
나는 욕조에 손을 걸쳤다.
“그나저나 크고 좋아 보이기는 하는데…….”
“……?”
“물은 안 새나?”
“물?”
“어.”
나는 나뭇가지와 덩굴이 얽힌 틈새들을 가리키며 물었다.
“이런 곳으로 물이 새면 안 되거든.”
“걱정하지 마라. 물은 새지 않는다. 나도 그 정도는 안다.”
“그래?”
욕조 안쪽을 살펴보던 내가 물었다.
“그런데 물은 어디로 빼?”
“물?”
“응. 다 씻고 나서 물을 버려야 되잖아? 그건 어디로 해?”
싹이가 갑자기 시선을 돌렸다.
“생각 안 했구나?”
“그럴 리가 없지.”
“그럼 어디로 빼는데?”
“그게…….”
“응?”
“……안 했다.”
“그냥 처음부터 정직하게 말해.”
“하지만 그걸 만드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래? 어떻게?”
싹이가 손짓을 하자 나뭇가지와 덩굴이 벌어지면서 배수구를 만들었다.
“이렇게.”
“……그건 너만 할 수 있는 거잖아?”
“그렇다.”
“우리도 열고 닫을 수 있게는 안 돼?”
“……불가능하다.”
싹이는 다시 욕조의 배수구를 없애면서 말했다.
“하지만 걱정할 것 없다. 내게 말하면 된다.”
“매번 부탁하라고?”
“그렇다.”
“그건 좀…….”
“나한테 부탁하는 게 싫은가?”
나는 양손을 내저었다.
“아니, 아니지. 그런 게 아니라, 네가 피곤할까 봐.”
“피곤?”
“응. 뭐, 조금 귀찮다거나, 네가 불편할까 봐 그렇지.”
“너희들의 부탁이?”
“어.”
“욕조에 물이 빠질 곳을 만드는 게?”
“응.”
“전혀.”
“그래?”
“그렇다.”
싹이는 너무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
“너희들의 부탁을 들어주는 것인데 불편할 리가 없지 않은가.”
“그렇게 말해주면 다행이긴 한데.”
“그냥 진실을 말하는 것뿐이다.”
싹이도 사람의 마음을 가지는 게 아닌가 싶었던 게 바보처럼 느껴졌다.
사람은 이런 식으로 생각하지 못한다. 모든 일에 계산을 하게 마련이다.
나 역시 그렇다. 그렇게 하지 않으려고 해도 이미 저울질을 하고 만다. 자동으로 저울질이 이뤄진다.
손익을 따지는 게 당연하다. 그걸 묻어두고 하더라도, 뭐가 손익인지를 알고 있다.
손익을 알더라도 베푼다면 대단하다. 세상 어딘가에는 손익을 따지지 않고 그저 베풀기만 하는 사람도 소수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드물다. 어마어마하게.
싹이는 모든 게 너무 당연하다는 듯이 말한다.
사람, 아니, 인간이 아니라서 가능한 일이다.
“고맙다. 그럼 앞으로 잘 부탁할게.”
나의 말을 들은 싹이는 무덤덤하게 말했다.
“당연하다.”
그때 네모집 2층 창문으로 지율이가 몸을 내밀었다.
“빠아아아아아! 싹아아아아아!”
지율이가 오른손을 크게 흔들었다.
“지율아, 위험하니까 몸 너무 앞으로 빼지 마.”
나의 당부에 지율이는 곧바로 몸을 살짝 뒤로했다.
“응!”
말도 잘 듣는다.
“엇!?”
지율이는 욕조에 관심을 보였다.
“그건 뭐야?”
“새 욕조야! 싹이가 만들어줬어!”
“우와! 나 바로 내려갈게!?”
지율이와 아이들이 내려오는 소리가 울렸다.
조금은 시끄러운 아침이 즐거웠다.
* * *
아침은 햄과 치즈를 끼운 샌드위치와 양송이 수프였다.
가끔은 이런 간단한 음식이 끌렸다.
지율이는 샌드위치를 먹으면서도 계속해서 욕조에 눈이 갔다.
“하하하, 다 먹으면 들어갈 거야.”
“응! 꼭 들어갈 거야!”
아침부터 반신욕을 하게 됐고, 덕분에 아침부터 격한 노동을 했다.
사소하다면 사소한 문제가 있었다.
물.
이 대형욕조에 물을 꽉 채우려면 상당한 시간이 필요했다. 지하수가 콸콸 나오니 물을 채우는 거야 미리 하기만 하면 됐다.
문제는 이 물을 데우는 게 문제였다.
싹이가 만들어준 친환경 욕조에 히터 기능이 달렸을 리가 만무했다.
결국 물을 퍼서 일일이 끓인 뒤에 부어야 됐다.
일자로 길게 불을 피워서 온갖 냄비와 솥을 동원했다. 계속해서 반복하면 그럭저럭 따뜻한 물을 만드는 게 가능할 것 같았다.
하지만 반신욕을 하자고 매번 이렇게 하는 것은 무리였다.
뭔가 방법이 있기는 할 텐데.
문득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수비드.
수비드(sous-vide).
밀봉된 봉지에 담긴 음식물을 정확히 계산된 온도의 물로 천천히 가열하는 조리법.
당연히 요리를 할 생각은 아니었고, 수비드를 할 때의 원리처럼 물을 데울 수 있는 히터가 있으면 해결되는 일이었다.
아마 가성비가 떨어져서 그렇지, 욕조의 물을 데우는 히터도 있을 거라 확신했다.
휴도에서의 월동준비는 도시에서보다 준비할 게 많았다.
* * *
점심이 되어서야 충분히 따뜻한 물로 욕조를 채울 수 있었다.
지율이는 찬물에라도 들어가겠다고 했지만, 내가 겨우겨우 말렸다.
“좋다아아아아아.”
수영복을 입고 욕조에 몸을 담근 지율이는 싱글벙글 웃고 있었다. 하지만 욕조가 크고 깊은 탓에 계속 서 있어야 했다.
“싹아, 혹시 높이는 어떻게 좀 안 되나?”
나의 물음에 싹이가 가볍게 손짓을 했다.
욕조 벽면에 턱이 생기면서 걸터앉을 곳이 생겼다.
“고옴!”
“삐삐이!”
“냐앙.”
무룩이, 곰곰이, 삐삐도 욕조에 들어섰다.
싹이는 아이들을 위해 높은 턱도 따로 만들었다.
“아빠도 들어와!”
지율이가 손짓을 했다.
“아빠는 괜찮아!”
“아니야! 안 괜찮아!”
“어?”
“얼른 들어와!”
내가 괜찮다는데, 본인이 안 괜찮단다.
지율이의 귀여운 억지에 나는 수영복을 입고 욕조에 들어섰다.
“아, 좋긴 좋네.”
그때 싹이도 성큼성큼 욕조 안으로 들어왔다.
“……이것도 나름대로 나쁘지 않군.”
기본적으로 식물인 싹이에게 높은 온도의 물은 평소 멀리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냥 식물이 아닌 싹이는 여러모로 적응을 해냈다.
사람처럼 식사하는 것도 즐겼고, 이제는 반신욕까지 했다.
조금 번거롭더라도 다 같이 즐기는 반신욕은 포기 못 할 것 같았다.
강척에 가서 꼭 히터를 사 와야지.
* * *
“그래, 그래. 거기 서봐 삐삐야.”
밀크본 열매의 광고 촬영.
허니포켓은 허니베어인 곰곰이가 열연했다.
이번에는 삐삐에게 부탁할 생각이었다.
“삐이?”
삐삐는 달토끼인 원래 모습이 아니라, 인형 같은 지금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렇지. 거기서 열매를 양손으로 잡아.”
토끼 인형이 살아 움직이면서 밀크본 열매를 먹는 모습은 귀여울 수밖에 없었다. 아마 사람들은 전부 CG로 찍었을 거라 생각하겠지.
나는 삐삐에게 어떻게 촬영할지 동작을 하나하나 알려줬고, 그다음 촬영을 시작했다.
삐삐가 아장아장 걸음을 옮겨서 밀크본 열매의 뚜껑을 열고, 그곳에 빨대를 꽂은 뒤 직접 마시는 게 전부였다.
곰곰이 때가 어그로는 더 강했지만, 이번에는 확실한 귀여움이 있었다.
별 내용이 없어도 귀여우면 보게 마련.
특히 어린아이들과 귀여운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어필이 될 거라 확신했다.
마침 밀크본 열매는 누구에게나 건강에 좋기도 했고.
* * *
수화기 너머로 조민택의 웃음 섞인 목소리가 들렸다.
―이렇게 빨리 보내주실 줄은 몰랐네요.
“어떤 것 같습니까?”
―좋은데요? 귀여워요. 사실 본격적인 광고 느낌은 좀 아닌데, 또 그게 아니라기에 CG 퀄리티는 엄청나서 신기하네요.
조민택은 습―하고 소리를 내더니 말했다.
―CG가 아닌가요? 염동력 능력이 있는 각성자 솜씨인가요? 그렇다기에는 또 움직임이 하나하나 너무 자연스러운데.
“그렇습니까?”
―예, CG가 아닌 거 같네요? 제 말 맞죠? 이번에는 또 무슨 마법을 부리신 겁니까? 김 대표님도 참, 하하!
생각지도 않은 부분에서 어그로가 끌릴 듯했다.
밀크본 열매 역시 대박 예감이었다.
* * *
날씨가 쌀쌀하니 뜨끈한 게 떠올랐다.
“아하하하핫!”
“삐이삐이!”
“고오오옴!”
지율이와 곰곰이, 삐삐는 추위를 아예 못 느끼는 것 같았다.
“지율아! 이거 입고 놀아!”
나는 자그마한 조끼 하나를 들어 보였다.
“안 추워! 괜찮아!”
“그래도!”
“알았어!”
지율이는 쪼르르 달려와서는 팔을 살짝 들었다.
나는 피식 웃으며 조끼를 입혔다.
지율이는 조끼를 입자마자 다시 곰곰이와 삐삐가 있는 쪽으로 달려갔다.
매일 같이 있으면서도 뭐가 그렇게 할 게 많은지.
무룩이는 모닥불 앞에서 식빵처럼 몸을 웅크린 채 눈을 감고 있었다. 반쯤 자고 있는 듯했다.
“식빵을 굽는구나, 식빵을 구워.”
나는 피식 웃으며 쳐다보는데 무룩이의 머리에서 연한 회색 연기가 피어올랐다.
“어? 어어? 무룩아!”
황급히 달려가서 무룩이를 안아 올렸다. 모닥불에 너무 가까이 있던 탓에 수염이 구불구불 찌그러져 있었다.
“야, 타잖아!”
“냐아앙?”
“너 익고 있었다고.”
“괜찮다냐아아앙.”
방금 구운 식빵처럼 뜨끈뜨끈한 무룩이는 눈도 게슴츠레 떠서는 완전히 풀어져 있었다.
“모닥불 쬐는 건 좋은데, 적당히 거리를 둬야지.”
“알겠다옹…….”
나는 조금 떨어진 곳에 무룩이를 내려놓고는 식사 준비를 했다.
뽀얀 쌀밥에 기본 반찬들 그리고 메인은 어묵국.
뜨끈한 국물을 마시면 속이 확 풀릴 것 같았다.
얼려둔 은문어 다리 하나와 납작하게 썬 무를 넣어 육수를 냈다. 간은 국간장과 소금으로. 적당한 크기로 썬 어묵들을 넣고 팔팔 끓이다가 송송 썬 파도 넣는다. 마무리로는 후추를 조금 뿌린다.
“맛있는 냄새!”
어느새 옆으로 다가온 지율이가 눈을 반짝거렸다.
“이건 뭐야?”
“어묵국이야. 맛있겠지?”
“응!”
“앉아 있어. 다 됐으니까.”
그릇에 어묵국을 덜었다.
내가 먹을 어묵국에는 고춧가루도 톡톡 뿌렸다.
어묵을 찍어 먹을 간장에는 참깨를 살짝 올려서 마무리.
“자, 먹자!”
“잘 먹겠습니다!”
“고오옴!”
“삐이이!”
“냐아앙.”
어느새 모두 당연하다는 듯이 손을 모으고 기도를 했다.
나와 지율이야 그렇다 치고 무룩이와 곰곰이, 삐삐는 무슨 생각으로 하는 걸까?
“무룩아, 곰곰아, 삐삐야.”
내가 목소리를 내자 아이들이 시선을 모았다.
“밥 먹기 전에 뭐 하는 거야?”
“고오오옴. 고옴, 고오옴.”
곰곰이는 이리저리 앞발을 움직이며 열심히 설명했지만, 나로서는 완벽히 알아들을 수 없었다.
“우리 따라서 하는 건데 감사 표시를 하는 거래.”
지율이가 대신 통역을 했다.
“삐삐삐삐삐!”
삐삐의 말도 곰곰이가 한 말과 똑같은 내용이라고 지율이가 통역했다.
“무룩이 너는?”
“이렇게 뜸을 들이면 더 맛있어진다냥.”
“아, 그래…….”
알아갈수록 어이가 없는 녀석이다.
“자, 먹자.”
그렇게 즐거운 식사가 시작됐다.
구수하면서도 칼칼한 국물을 한 술 먹자마자 소주 생각이 났다. 심지어 나는 평소에 소주를 먹지도 않는데 그랬다.
“크으, 맛있다.”
내가 목소리를 내자 지율이가 엄지를 들어 보였다.
“최고야!”
“많이 먹어.”
다 같이 즐겁게 식사를 하던 중이었다.
싹이는 밥 먹었나?
사실 햇빛이나 물, 땅의 양분으로도 식사를 대체하기에 조금 애매한 부분이 있기는 했다.
그래도 신경이 쓰였다.
이제는 다 같이 식탁을 가운데 두고 둘러앉아서 밥을 먹어야 진짜 먹은 느낌이었다.
싹이를 부를까 고민하는 찰나였다.
멀리서 싹이가 달려왔다.
“양반은 못 되는…….”
웃으며 중얼거리던 나는 위화감을 느꼈다.
뭐가 이상한 걸까 생각했다.
싹이가 달려오고 있었다.
“어……?”
지금까지 싹이가 달린 적이 있었나?
귀촌 첫날 차원문이 생겼다 109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