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 the first day of my life in living alone, a portal opened RAW novel - Chapter 143
143. 오랜만에
휴도는 평온한 곳이다. 낙원이라는 말이 휴도를 위해 만들어진 게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집 앞 선베드에 누워서 가만히 하늘을 올려다보면, 저 멀리 바다를 바라보면, 뒷산의 짙푸름을 눈에 담을 때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때로는 꿈도 꾸지 않고 푹 자는 것 이상으로 평온하다고 느낀다. 가벼운 바람이 지율이의 머리를 넘기고 뺨을 쓰다듬는 걸 볼 때면 무언가 더 필요한 것이 없다.
그런 휴도에 의외인 점이 하나 있다면, 마냥 조용한 곳은 아니다.
조용하기만 한 곳을 찾을 수야 있지만, 내 삶의 반경은 자주 시끄러운 편이다.
무룩이, 곰곰이, 삐삐만 해도 매일 요란하다.
때때로 여기저기서 얼굴을 들이미는 꼭꼭이도 잊을만하면 나타난다. 특유의 목소리는 귓가를 오래 맴돈다.
싹이도 은근히 말이 많다.
―나를 불렀는가?
화분인 채로 있는 싹이꽃이 물었다.
나는 마음속으로 ‘지금 너 부른 거 아니야’라고 중얼거렸다.
이렇게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환경에서 지율이는 편안하게 지내고 있었다.
즉, 사회자의 목소리 때문에 놀랄 리는 없다는 뜻.
지율이의 손에 왜 힘이 들어갔는지 궁금해하는 순간이었다.
불이 꺼지고 음악이 울리며 턱시도 차림의 신랑이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힘 있게 걸음을 옮겼다.
“힘찬 박수로 맞이해 주시길 부탁드리겠습니다.”
사회자가 말하자 지율이는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손에 불이 나라고 열심히 박수를 치는 모습이 왜 이렇게 귀여운지.
곧 신부 입장 차례.
천씨 아저씨가 딸과 손을 잡고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와아아. 언니 예쁘다. 천사 같애.”
지율이가 중얼거렸고, 나는 조용히 머리를 쓰다듬었다.
신부의 얼굴에는 미소가 드리웠다.
천씨 아저씨도 웃고 있었다.
행복해 보이는 부녀였다.
주례 없는 결혼식이었다.
주례 대신 천씨 아저씨가 축사를 했다. 떨리는 손으로 종이 한 장을 펼쳤고, 눈으로 한 글자씩 곱씹는 게 보였다. 하지만 침착한 눈과는 다르게 목소리는 떨렸다.
모두가 천씨 아저씨의 감정에 이입하듯 가만히 듣고 있었다. 천씨 아저씨는 분위기를 무겁게 할 생각이 없다는 걸 강조하듯 농담을 섞었다.
“그래도 평생 아빠랑 살 수는 없으니, 잘 된 것 같다고 생각한다.”
이럴 때는 사람들이 더 너그러워진다. 모두가 웃자 천씨 아저씨도 주름이 퍼지도록 활짝 웃었다. 두 눈은 촉촉했지만, 그 어느 때보다 밝은 미소였다.
가만히 지켜보던 나도 생각이 많아졌다.
내게도 언젠가 이런 순간이 올까.
그렇게 결혼식을 끝까지 봤다.
당연히 사진 촬영은 하지 않았다.
왼손에는 싹이꽃 화분을, 오른손으로는 지율이 손을 꼭 잡고 나왔다.
“이제 밥 먹으러 갈까?”
나의 물음에 지율이는 눈을 반짝거렸다.
“응! 실컷 먹을 수 있는 식당!”
걸음을 옮기는데 마력이 느껴졌다. 거리는 멀었다. 움직이지 않고 휘몰아치는 형태. 아마도 차원문이다.
“흠.”
주변을 둘러봤다. 다들 웃는 얼굴이 가득한 결혼식장.
휴대폰을 확인했다. 어떠한 연락도 없다.
비상사태라면 알림이 떴을 터.
아마 현장이 발생했고, 이미 헌터들이 파견됐을 곳이었다.
“빠아? 왜애? 무슨 일 있어?”
나는 고개를 가로저은 뒤 활짝 웃었다.
“아니. 밥 먹으러 가자.”
식당 입구에서는 식권을 받는 직원이 피곤한 얼굴로 서 있었다.
“지율이가 내볼래?”
“응!”
지율이는 식권을 양손으로 꼭 쥐고 직원에게 내밀었다.
“두 사람이요! 저희 아빠랑 저요!”
그늘져 있던 직원의 얼굴에 볕이 든 듯 미소가 번졌다.
“네에, 확인했습니다아아.”
직원이 밝은 목소리로 답하며 식권을 받아들었다.
“감사합니다아아아.”
지율이가 인사하자 직원은 눈을 마주치면서 고개를 천천히 꾸벅였다.
“네에에, 맛있게 많이 드세요.”
나는 가볍게 목례를 하고는 지율이와 함께 식당에 들어섰다.
* * *
“이런 씨…….”
현장에 도착한 고성우가 인상을 구겼다.
흰색 차원문이 휘몰아치고 있었다. 그리고 옆에는 일반 차원문이 활동기에 접어들어 휘몰아쳤다.
차원문 두 개가 한자리에 있는 상태.
그때 한 남자가 고성우의 옆으로 달려왔다.
“아이스맨, 아니, 고성우 님!”
“예.”
“저희는 어떻게 해야…….”
“지원 요청은 했어요?”
“네! 했습니다!”
“그럼 됐어요. 일단 뭐… 지원 오기 전에 저것들이 안 나오길 바라는 수밖에 없는데…….”
일반 차원문에서 마수 하나가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시커먼 개와 같은 모습이지만, 몸집은 코끼리만큼 커다랬다. 전신은 마치 숯과 같은 모습에 두 눈은 붉게 물들어 있었다.
헬하운드.
한 번 등장하면 사상자 없이 제압이 불가능한 것으로 악명이 높았다. 그만큼 강력한 마수였다.
“이런…!”
고성우는 모두에게 목소리를 높였다.
“빨리 지원 요청 더해요! 소방서에도 연락하고! 주변에 전부 대피시켜야…….”
그때 흰색 차원문에서도 무언가 흘러나와 인간과 같은 형태를 이루기 시작했다. 몸집도 인간과 크게 차이나지 않았다.
베테랑인 고성우는 차원문과 완전히 분리되지 않은 마수도 보면 안다. 실루엣만으로도 구분을 할 수 있다. 마력 감지에 능하지는 않아도, 경험으로 확인이 가능하다.
하지만 눈앞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것은 생전 처음 봤다.
“저건 또 뭐야…?”
* * *
“우와아아아! 이거 다 먹어도 되는 거야?”
접시를 든 지율이가 눈을 반짝거렸다.
“하하, 그럼. 하지만 다른 사람들도 다 같이 먹는 거니까 먹을 만큼만 적당히 담아야지.”
“응응!”
이렇게 많은 종류의 음식들이 펼쳐져 있는 것은 처음 볼 테니 신이 나겠지.
생각해 보니 나도 이런 식의 뷔페는 처음이었다. 소위 말하는 함바집에나 다녀봤지. 한식 위주로 음식들을 마음껏 먹을 수 있었으니 뷔페라면 뷔페겠지만.
“빠아! 이거!”
지율이가 피자를 가리켰다.
“응, 아빠가 해줄게.”
전부 성인 기준으로 배치돼 있다 보니 지율이가 직접 음식을 뜨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그렇게 지율이와 함께 차례차례 음식을 떠서 자리로 돌아왔다.
“맛있겠다. 그치?”
“응! 맛있게 잘 먹겠습니다!”
지율이가 힘 있게 외치자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웃으며 쳐다봤다. 다들 눈에서 꿀이 뚝뚝 떨어졌다.
존재만으로 사람들을 웃게 하고, 행복한 기분을 들게 하다니.
지율이를 본 사람들은 그날 운이 좋았던 거다. 보는 자체로 행운이다.
내 딸 얘기라서 팔불출 소리를 들을지도 모르지만, 사실은 사실이니까.
“엇! 언니!”
고개를 돌린 지율이는 볼이 불룩 튀어나오도록 음식을 먹으면서 활짝 웃어 보였다. 시선이 닿은 곳에는 아까 함께 사진을 찍었던 여자가 하얀 치아를 드러내며 손을 흔들고 있었다.
“많이 먹어.”
“네에에에.”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번잡하다는 점만 빼면, 이렇게 지율이와 나와서 밥을 먹는 게 좋았다.
그냥 평범한 일상도 특별하게 느껴졌다.
꼭 뭔가 더 특별한 것을 해야 된다는 생각에 사로잡히지 말고, 지율이와 가능한 많은 것들을 놓치지 않고 해야겠다.
한마디로 뭐든지 다 같이 하고 싶다는 뜻이다.
“왜애?”
나의 시선을 느꼈는지 지율이가 고개를 기울이며 물었다.
“그냥.”
“에이이, 뭔데에?”
역시 눈치가 좋다.
“지율이, 아빠랑 계속 놀아줄 거지?”
지율이는 눈을 깜빡거리다 되묻듯 대답했다.
“당연하지?”
“그냥 그 생각했어. 지율이가 아빠랑 언제까지 놀아주려나.”
지율이는 포크로 갈비를 푹 찍으며 말했다.
“평생!”
* * *
헬하운드보다 먼저 눈을 뜬 것은 하얀 차원문에서 나온 정체불명의 존재였다.
고성우는 잠시 과거가 머릿속을 스쳤다.
광인.
수많은 헌터들을 순식간에 증발시켰던 존재.
하지만 지금 눈앞에 있는 존재에게서는 하얀빛이 서서히 사라졌다.
‘광인하고는 다르다. 그렇다고 일반적인 마수도 아닌 것 같지만.’
정체불명의 존재가 눈을 떴다. 새하얀 전신과는 다르게 두 눈은 시커멓게 물들어 있었다.
“흐음…….”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말을 하는 건가?’
고성우는 숨을 죽이고 언제든지 마력을 쓸 준비를 했다. 주변의 다른 헌터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정체불명의 존재는 스스로를 나타냈다.
화블.
그렇게 자신의 이름을 주변에 있는 이들에게 각인시켰다.
마력을 통해 정보를 퍼트린 것이었다. 서로 다른 언어를 말해도 자동으로 통역되어 이해하는 것이 가능했다.
‘어떤 종이나 그런 게 아니라, 자신의 이름을 말한 거다.’
고성우는 헬하운드 쪽을 살폈다. 아직 차원문과 완전히 분리되지 않은 상태. 불행 중 다행이었다.
화블과 흰색 차원문은 분리를 거의 다 마친 상태였는데, 그럴수록 고성우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마력이…….’
이윽고 흰색 차원문이 사라졌고, 하얗게 불타오르는 인간 같은 모습에 검은 눈을 가진 화블이 헌터들을 노려봤다.
의외로 마력은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이상할 정도로 무시무시한 살기와 압박감이 전해졌다.
생물로서의 본능을 건드리는 감각. 그 중압감에 몇몇 헌터들은 다리가 풀리거나, 식은땀을 흘리기 시작했다. 심장이 터질 것처럼 뛰었고, 이미 전투는 불가능한 상태로 접어들었다.
고성우는 과거에 광인과 마주했을 때를 다시 떠올리며 불쾌함을 느꼈다.
“네놈인가?”
화블이 고성우를 보며 물었다.
“뭐?”
“네놈이 이곳의 대표인가?”
“뭐라는 거야?”
고성우는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뭐, 이곳 대표로 널 조지러 오긴 했다만.”
그 순간 화블이 오른손을 들어 올렸다.
화르르르르르륵!
새하얀 불길이 뿜어져 나왔다.
“흠!”
고성우는 양손을 뻗어 얼음을 뿜어냈다.
퍼어어어어어어엉!
순식간에 얼음이 증발하며 폭발했고, 엄청난 양의 수증기가 퍼졌다. 아스팔트가 검게 젖었고, 뜨끈뜨끈한 열기가 피어올랐다.
타탁!
그 사이 고성우는 수증기를 가르며 화블에게 달려들었다.
뿌드득.
고성우가 얼음으로 감싼 주먹을 휘둘렀다.
빠각!
화블은 뻣뻣하게 선 채로 안면을 얻어맞고는 뒤로 쭉 미끄러졌다. 놈의 안면 일부가 석고상처럼 부서져 파편들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단단하다. 대체 정체가 뭐야 저놈?’
고성우는 움직임을 멈추지 않았다.
쩡! 쩡! 쩡! 쩡!
여기저기서 얼음기둥이 사선으로 솟았고, 고성우는 그것들을 박차며 이리저리 튕기듯 움직여 거리를 좁혔다. 그리고 양손을 얼려서 화블의 머리를 후려쳤다.
쿠웅!
화블이 옆으로 홱 넘어가 머리부터 바닥에 처박혔는데, 그 와중에도 고성우를 향해 손은 뻗고 있었다.
화륵!
불이 뿜어져 나오는 순간, 고성우는 황급히 얼음을 뿜었다.
퍼어어어어엉!
폭발이 일어나며 고성우가 뒤로 멀리 튕겨져 나갔다.
“크으…!”
고성우는 날아가면서 소리쳤다.
“자신 있는 사람들 빼고 전부 도망쳐요! 주변 대피시키고! 지원 요청 받은 헌터들은 빨리 좀 오라고…!”
화르르르르르르륵!
그때 튀어오른 화블이 고성우에게 따라붙었다.
화르륵!
화블이 하얀 불길을 머금은 양손을 들어 올렸고, 고성우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 * *
“안내 말씀드립니다. 인근에 차원문이 발생하여 대피령이 떨어졌습니다. 모든 고객분들은 지원들의 안내에 따라 속히 대피해주시길 바랍니다. 다시 한 번 알려드립니다.”
결혼식장에 대피령이 떨어졌다.
아까 느꼈던 차원문 현장에 문제가 생긴 건가?
“일단 일어나자 지율아. 가야겠다.”
“무슨 일 있는 거야?”
“나쁜 마수들이 있나 봐.”
지율이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나쁜 마수 때문에 아니야.”
“응?”
흘려들을 수 없었다. 지율이의 감각은 특별하니까.
“그럼?”
“나도 잘은 모르는데, 나쁜 마수 때문은 아니야.”
뭔가 있긴 있는 모양이다.
꽤 강렬한 마력이 느껴지긴 하는데.
가서 살펴봐야 할 것 같았는데 지율이를 데려가는 게 맞는지 고민됐다.
그때 지율이와 사진을 찍었던 여자와 눈이 마주쳤다.
맡기고 갈까 고민하는 순간이었다.
“빠아.”
“응?”
지율이가 나와 손을 꼭 잡았다가 놓았다.
“응? 갑자기 왜… 어?”
손아귀에 새까만 조각이 쥐어져 있었다.
오랜만이었다.
지율이의 알껍데기 조각.
나는 지율이를 안아올렸다.
“같이 가자.”
귀촌 첫날 차원문이 생겼다 144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