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 the first day of my life in living alone, a portal opened RAW novel - Chapter 178
178. 연휴 (1)
“으음…….”
잠에서 깼다. 하지만 아직 눈은 뜨지 않았다. 나는 이걸 반쯤 깼다고 표현한다. 이때가 은근히 기분 좋다. 슬슬 피로도 가시고, 눈을 뜨기 전에 잠시 뒤척거리는 지금.
예전에는 이럴 시간이 없었다. 그냥 의식이 들면, 그대로 눈을 떴다. 무거운 몸을 억지로 움직여 일어났다. 가끔은 앉은 상태에서 다시 졸고 싶었지만, 결국에는 일어났다.
이제는 누워서 뒤척거리다 피로가 완전히 가시면 눈을 뜬다. 사실 피로는 없다. 한두 시간만 자도 웬만큼 정신이 든다. 대여섯 시간을 자면 몸이 날아갈 것처럼 가볍고.
내 체질이 바뀌기도 했고, 휴도 자체의 치유력이기도 하다.
슬슬 일어날까? 맞다, 오늘 설날이지. 차릴 게 많다. 사람 형태를 유지해도 레오와 현백이는 원래 드래곤인지라 먹는 양이 상당하다. 잘 먹어서 좋지만.
눈을 뜨려는데 뭔가 이상하다.
“……?”
천천히 눈을 떴다.
커다란 눈 네 개가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우왓……!?”
내가 놀라서 목소리를 내자 얼굴을 들이밀고 쳐다보고 있던 지율이와 현백이가 까르르 웃었다.
“아하하하하핫! 아빠 놀랐다!”
“후후훗, 죄송해요, 후훗.”
나는 헛웃음을 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뭐야, 지금. 나 놀래키려고 기다린 거야?”
지율이가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응!”
“얼마나 기다렸는데?”
“조금! 아빠가 금방 일어났어!”
“하하, 참.”
싱글벙글 웃고 있는 현백이가 눈에 들어왔다. 지율이와 만날 때면 항상 웃고 있기는 했지만, 이렇게 해맑게 웃는 모습은 처음 보는 듯했다.
휴도에 와서 더 밝아진 느낌이었다. 지율이와 하루 종일 붙어서 노니까 마음이 더 편해진 걸까.
하긴, 아이들은 친구 집에서 외박하는 날이 가장 신난다고 하던데.
첫 외박이니 들뜰 만도 하다.
항상 의젓한 모습을 보이는 것도 좋지만, 애는 애답게 장난도 치고 뛰어놀아야지.
기분 좋은 아침이었다.
* * *
별장에서 자고 있던 레오.
“크흠…….”
닫힌 눈꺼풀 아래로 눈알이 움직였다.
잠에서 깬 레오는 편안함을 느꼈다.
드래곤 연구소의 침실도 5성급 호텔 이상으로 잘 꾸며져 있었다.
하지만 그것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컨디션이 좋았다.
‘환경이 좋은 탓인가.’
단순히 환경이 전부는 아니었다.
싹이가 만든 자연 친화적인 침대는 이상하게도 편했다.
‘누워 있는 자체로 몸을 회복시키는 것 같군.’
레오는 눈을 뜨지 않은 채 천천히 침대 위를 굴렀다. 그리고 싹이를 떠올리며 입가에 미소를 머금었다.
‘역시 그 풀떼기 녀석도 필수겠어. 고향에 데려가 녹지를 형성하고 집을 짓게 하면…….’
침대 위를 구르던 레오는 무언가에 막혔다.
‘음?’
뭔가 이상했다.
‘뭐지?’
왠지 모르게 불길한 예감.
“으음…….”
낯선 이의 목소리.
레오가 눈을 떴다.
그 순간 침대 위를 구르던 레오를 가로막은 이도 눈을 떴다.
간밤에 들어온 고성우였다.
“크와아아아아아악!”
“뭐, 뭐야!?”
레오와 고성우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를 밀쳤다.
텅! 쾅!
레오는 벽에 등을 부딪혔고, 고성우는 침대 밖으로 튕겨져 나가 현관문 앞으로 굴렀다.
“뭐냐! 네놈이 왜 여기 있지?”
레오가 고함을 치자 고성우가 인상을 팍 구겼다.
“뭐기는, 여기가 내 별장이니까 그렇지.”
“뭐라……?”
“여긴 내 별장이라고. 넌 왜 여기 있어? 집 나왔어?”
“집을 나오다니, 그게 무슨 소리냐? 그리고 내 집이 어디라는 거지?”
“드래곤 연구소?”
레오가 송곳니를 드러내며 인상을 찡그렸다.
“나는 손님으로서 대접을 받고 있는 것이다.”
“그래?”
고성우는 그런 것에는 관심이 없다는 듯 시큰둥하게 말했다.
“그럼 휴도에는 놀러 온 거야?”
“놀러……! 내가 그렇게 한가해 보이나?”
“……그렇지 않나?”
“…….”
“네가 뭐 회사에 다니는 것도 아니고, 차원문 사태에 힘을 보태는 것도 아니고, 뭐, 그냥 현백이 감시하겠답시고 그냥 잘 먹고 잘살고 있는 것뿐이잖아.”
레오는 미간을 잔뜩 구기고 말을 돌렸다.
“시끄럽다! 이곳이 네 별장이라도, 오늘은 내가 손님으로서 이용하기로 돼 있었다. 어째서 내 옆에서 자고 있던 것이냐?”
“말했잖아. 내 별장이라서…….”
“그건 이미 말하지 않았는가! 내 말은, 내가 이곳에서 먼저 자고 있었으면, 그걸 봤으면 다른 데로 가는 게 정상 아닌가?”
“아니, 나도 몰랐지.”
“모르다니?”
“어제 전투가 꽤 고단했거든. 그래서 그냥 불도 안 켜고 여기 오자마자 침대에 누워서 잤어. 네가 있는지도 몰랐다고.”
레오가 경악하듯 고개를 뒤로 뺐다.
“전투를 하고 나서도 씻지 않았다고? 인간들은 그런 식인가?”
“다 씻었지. 세탁도 했고. 나는 스스로를 얼려서 털어내면 거의 완벽하게 정화된다고. 내 속까지 얼려 버리니까.”
“흐으으으으음…….”
“진짜라니까?”
“아무리 그래도 내가 있었는데 그걸 몰랐다고?”
“어두웠으니까. 딱히 마력을 감지하지도 않았고. 그리고 그건 너도 마찬가지잖아. 드래곤이면서 내가 옆에 와서 자는 것도 몰랐네?”
“침대가 컸던 탓이다! 멀지 않았든가! 그리고 흔들림이 없었다!”
고성우가 공감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그래. 흔들림이 없어. 과학이야 완전.”
“맞는 말이다.”
싹이가 완벽에 가까운 침대를 만든 탓이었다. 침대 자체도 살아 있는 것이나 다름없었고, 사용하는 사람에게 맞추니 편안할 수밖에.
마력 감지가 무뎌지는 것도 싹이의 영향이 컸다. 매일매일 무럭무럭 자라는 싹나무의 영향력은 갈수록 커졌고, 휴도 전체가 마력으로 충만했다.
작정하고 감지하려면야 감지할 수 있지만, 휴도 자체가 안전한 곳인지라 긴장이 느슨해지기 마련이었다.
뜨뜻한 온탕에 들어가 몸에 힘을 주고 긴장하려는 사람이 없듯이.
“아무튼…… 새해 복 많이 받아라?”
고성우의 말에 레오가 인상을 찡그렸다.
“……뭐라?”
“너도 나이 먹을 만큼 먹었고, 한국에 있으면 이 정도는 알지 않냐? 새해 인사해야지.”
“…….”
“안 할 거야? 아니면 몰라서 그래? 설날 설명해 줘?”
“……복 많이 받아라.”
“얼씨구? 한국 사람처럼 말하네?”
“시끄럽다.”
고성우는 피식 웃으며 현관문을 열었다.
“가자. 밥 먹으러.”
* * *
나, 지율이, 현백이, 무룩이, 곰곰이, 삐삐, 핫도그, 싹이는 해가 뜨는 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신선한 노른자처럼 주황빛 해가 예뻤다.
푸른 하늘 전체가 서서히 햇빛으로 물들어갔다.
“다들 모여 있네?”
뒤에서 울린 익숙한 목소리.
고개를 홱 돌린 지율이가 소리쳤다.
“삼초오오오오온!”
지율이가 달려가자 고성우는 활짝 웃으며 양팔을 벌렸다.
“그래, 지율아!”
지율이는 그대로 고성우에게 와락 안겼다.
텅!
묵직한 소리가 울렸다.
“컥……!”
고성우는 그대로 나자빠졌고, 지율이는 민망한지 괜히 검지로 뺨을 긁적거렸다.
“삼촌……?”
“괘, 괜찮아. 삼촌 괜찮아.”
고성우는 손을 뻗으며 일어났는데, 수차례 기침을 했다.
옆에서 지켜보던 레오는 경악을 금치 못하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떻게 둘이 오는 거야?”
나의 물음에 고성우는 지율이의 머리를 쓰다듬다가 말했다.
“아, 내가 새벽에 저쪽 집으로 와서 잤거든.”
“그랬어?”
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다시 물었다.
“그럼 둘이 같이 잔 거야?”
그 순간 가장 놀란 것은 현백이었다.
“둘이……? 같이……?”
아무래도 항상 독단적인 레오가 인간인 고성우와 함께 있었다는 게 놀랍겠지.
레오는 인상을 구기며 강하게 부정했다.
“그런 게 아니다!”
내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별장에서 잤다며?”
“그렇다.”
“성우가 새벽에 별장으로 갔고.”
“……그렇다.”
“그럼 같이 잤다는 거 아니야?”
“인간들은 말이 안 통하는군……!”
“그냥 별장을 같이 썼냐고 묻는 건데 갑자기 웬 인간 타령이야. 드래곤이야말로 말이 잘 안 통하네.”
옆에서 듣고 있던 현백이가 말했다.
“모든 드래곤이 그렇지는 않아요.”
나는 씩 웃으며 고개를 크게 끄덕거렸다.
“그건 그렇네. 맞아. 쟤만 문제지.”
내가 레오를 향해 삿대질을 했고, 고성우도 공감한다는 듯이 하하 웃었다.
“고집이 세긴 하더라. 이상한 데서 성질내더라고.”
레오의 눈썹이 물결치듯 일그러졌다.
“인간들이란……!”
“화내지 마.”
그때 지율이가 레오의 오른쪽 허벅지 뒤쪽을 손바닥으로 찰싹 때렸다. 아니, 찰싹 때리려는 의도로 손을 휘둘렀다.
쩍!
레오의 오른쪽 다리가 앞으로 확 들렸다.
“웃……!”
레오는 그대로 바닥에 등으로 떨어지는가 싶었는데,
휘이이이잉……!
바람을 일으켜 등이 바닥에 닿지는 않았다.
“크후후후후……! 어떠냐……!”
일명 매트릭스 자세로 멈춘 레오가 여유 있게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천천히 들려 있던 오른발을 다시 바닥에 디디며 상체를 세우려는 찰나였다.
“멋지다아아아! 그대로 버틸 수 있어?”
“버틸 수 있냐고? 그걸 말이라고 하는가? 물론이다!”
“그럼 날아다니는 양탄자처럼 탈 수 있어?”
“가능하다.”
지율이의 얼굴에 미소가 확 번지는 찰나였다.
“하지만 내가 널 태워줄 생각은 없다.”
레오가 딱 잘라 말하자 지율이가 조금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안 돼……?”
“그렇다.”
그때 팔짱을 끼고 지켜보던 고성우가 대화에 끼어들었다.
“지율아, 타지 마, 더럽고 치사해서 참나. 삼촌이 얼음 썰매 태워줄게.”
“얼음 썰매!?”
“응! 저런 거보다 훨씬 신나지.”
“우와아아아아…….”
지율이는 함박웃음을 지다가 아직도 자세를 유지하고 있는 레오를 힐끗 쳐다봤다.
“하지만 둘 다 타고 싶은데…….”
그때 내가 씩 웃으며 말했다.
“지율아, 안 돼.”
“응?”
“레오는 못 버텨. 그 정도 힘이 안 되거든. 그래서 그런 거야.”
“아, 그렇구나.”
“레오를 너무 힘들게 하면 안 되잖아. 그치?”
“맞아.”
나의 도발에 레오가 반응했다.
“웃기지도 않는 짓거리를……! 내 지능이 그렇게 낮아 보이는가? 말했지? 내게 그런 같잖은 말은 통하지 않는다고 몇 번을 말해야……!”
“그럼 해서 증명하면 되잖아.”
“증명할 필요 없다. 나는 가능하니까.”
“그럼 그러든가.”
“내가 그런다고 휘말릴 줄 아는가?”
“당연히 안 되지는 않겠지. 드래곤인데. 아닌가? 사람 형태에서는 힘을 잘 못 쓰나?”
“이 상태에서도 이곳쯤은……!”
휴도를 위협하려는 찰나, 아주 차가운 냉기가 서렸다.
처음에는 고성우가 냉기를 사용했나 싶었는데, 싹이의 기운이었다.
싹이가 차갑게 째려봤고, 레오는 말을 아꼈다.
나는 분위기를 환기시키고자 다시 입을 뗐다.
“하긴, 솔직히 힘의 문제는 아니겠지. 속의 문제지.”
“무슨 뜻이냐……?”
“드래곤은 커다란 덩치에 안 맞게, 아니, 드래곤이 아니지. 현백이는 마음이 넓으니까.”
“……?”
“레오, 너는 속이 좁다고.”
“……네놈!”
“그러니까 별것도 아닌데 치사하게 굴지 마. 이따 밥도 같이 먹을 거잖아.”
“요리사 고용비를 지불한다고 생각하라 이건가?”
요리사? 나를 요리사로 생각하고 있던 건가?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흘렀다. 아무래도 좋았다.
“그런 셈이지.”
“알겠다.”
레오는 여전히 자세를 유지하고 있었고, 지율이를 보며 말했다.
“특별히 허락해 주지. 타라.”
“고마워!”
지율이는 고민도 없이 레오의 복부 위로 점프했다.
텅, 쿵.
레오는 버티지 못하고 등이 바닥에 닿았다.
찰나였지만, 레오가 눈을 희번덕이는 게 보였다.
다시 바람을 일으켜 지율이를 복부 위에 태운 채로 살짝 떠올랐다.
“어떠냐……! 보았지……?”
레오가 눈치를 살피며 목소리를 냈다.
고성우가 둘을 가리키며 중얼거리듯 말했다.
“방금 분명히…….”
나는 그냥 하지 말라는 의미로 고개를 저어 보였다.
“그래, 그렇게들 놀고 있어. 나는 밥하러 갈 테니까.”
“뭐라?”
“얘들아, 전부 올라타! 레오는 드래곤이라 버틸 수 있어!”
내가 목소리를 높이자 곰곰이와 삐삐, 핫도그가 레오의 하반신 위로 뛰어들기 시작했다.
“자, 잠깐……! 이건 얘기했던 것과는 다르지 않은가……!”
아이들 모두 레오의 위로 올라타기 시작했다.
현백이는 그저 재미있다는 듯이 웃으며 지켜보고 있었다.
“너도 타야지.”
싹이는 덩굴들을 움직여 현백이를 들어 올렸다. 그리고 레오의 가슴팍 위에 태웠다.
“충분히 버틸 수 있겠지? 드래곤이니까.”
“너 풀떼기……!”
레오가 불만을 토하려는 순간이었다.
탁.
무룩이가 레오의 얼굴 위에 안착했다.
“냐하아아아앙.”
나는 무룩이의 하품 소리를 뒤로하고는 미소를 지으며 주방으로 향했다.
귀촌 첫날 차원문이 생겼다 179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