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 the first day of my life in living alone, a portal opened RAW novel - Chapter 252
252.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
지율이를 바라보던 나는 고성우의 얼굴을 힐끗 봤다.
아이스맨이 아니라, 워터맨이라고 해야 할 듯한 얼굴.
뙤약볕 아래 아이스크림처럼 녹아내리고 있었다.
‘삼촌미소라는 건 바로 이런 것이다’라고 말하는 듯했다.
“뭔데에에에?”
고성우는 되물었다.
듣기 힘들 만큼 애교 섞인 높은 톤의 목소리였다.
“그러게, 뭘까아아아?”
하지만 나도 고성우의 만행에 동참하고 말았다.
어쩔 수 없었다.
지율이 앞에서는 완전히 무장해제가 된다.
카메라 앵글을 움직여서 세상을 바라본다면, 지율이를 담을 때는 배경의 색깔 자체가 달라지는 느낌이다.
“맞춰봐!”
지율이는 고르고 하얀 치아를 자랑하듯 키득거렸다.
고민하던 고성우가 말했다.
“허니포켓?”
“땡!”
“동화책?”
“땡!”
“그럼 음…….”
다짜고짜 뒤로 숨긴 게 무엇인지 맞추기에는 너무 막연했다.
“지율아, 힌트!”
내가 말하자 지율이는 잠시 사선 위로 시선을 뒀다.
“으으으음.”
지율이가 눈을 반짝이며 목소리를 냈다.
“추운 거!”
“추운 거?”
“응! 추운 거랑 가까운 거야!”
“차가운 거랑 연관이 있다는 얘기지?”
“연관? 관련 같은 거야?”
“맞아!”
“지율이 어려운 말도 잘 아네.”
지율이는 생글생글 웃어 보였다.
“자! 빨리 맞춰봐!”
차가운 거라.
“얼음?”
“땡!”
“눈?”
“땡!”
“눈덩이?”
“땡!”
“얼음가루!”
“땡!”
생각보다 난이도가 높았다.
“눈사람!”
이번에는 자신 있었다. 백설공주를 만나고 오면서 눈사람이 있기도 했고. 얼음가루도 듬뿍 있었으니 뭉쳐서 눈사람처럼 만드는 게 가능했다.
“눈사람을 어떻게 뒤에 숨기냐?”
고성우가 답답하다는 듯이 말했다.
“왜 안 돼? 작게 만들면 되잖아.”
나의 반박에 고성우는 잠시 시선을 위로 두다가 말했다.
“아. 그렇네?”
“참나.”
나는 다시 지율이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눈빛으로 ‘맞지? 정답이지?’라고 물으면서.
“땡!”
이후에도 나와 고성우는 수차례 더 도전했지만 답을 맞히지는 못했다.
결국 우리는 백기를 들었다.
“모르겠어 지율아. 정답 알려줘.”
“그러게. 대체 뭐야?”
지율이가 생글생글 웃으며 뒤로 숨기고 있던 것을 내밀었다.
“정답은 빙수였습니다!”
“빙수… 어?”
지율이의 자그마한 양손을 꽉 채우고 있는 그릇과 수북하게 쌓인 얼음가루.
진짜 그럴싸한 빙수 형태였다.
“우와! 진짜 빙수네?”
깜짝 놀란 내가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게? 바로 먹어도 되겠어!”
고성우는 순식간에 얼음 숟가락을 만들어 보였다.
“우와! 숟가락!”
지율이가 만든 빙수에 감탄하는데 뭔가 이상했다.
“그런데 이거 어떻게 만들었어?”
내가 물었다.
얼음가루야 그냥 퍼서 담으면 되지만, 그릇은 그렇지가 않았다.
일단 가능할 것으로 생각되는 방법은 얼음덩어리의 일부분을 녹여서 형태를 갖추는 방법이었다.
그렇게 녹였다면 흔적이 남는 게 당연했다. 녹아서 물이 뚝뚝 떨어지고 투명해져야 됐다.
하지만 지율이가 손에 들고 있는 빙수는 처음부터 그런 형태인 것처럼 꽁꽁 언 모습이었다.
깎아서 만들었다기에는 마땅한 도구가 없었다. 무룩이가 발톱을 빼서 도와줬을 리도 없었고. 도와줬다고 해도 저렇게 만들었을 것 같지는 않았따.
“아빠 잠깐 봐도 돼?”
지율이는 냉큼 빙수를 내어줬다.
“먹으면 안 돼?”
“하하하, 안 먹어. 보기만 할게.”
얼음그릇은 마치 손으로 조물조물 주물러서 만든 듯했다.
고성우도 똑같이 궁금했는지 살펴보면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떻게 한 거지?”
계속 우리끼리 고민하고 있을 필요는 없었다.
“지율아, 이거 어떻게 만든 거야?”
내가 묻자 지율이는 활짝 웃으며 양손을 보였다.
“손으로!”
“손으로? 어떻게?”
“주물러서!”
“응?”
“주물러서 만들었어! 지점토 놀이했을 때처럼.”
이게 무슨 말일까.
눈을 뭉쳐서 만든 것도 아니고 얼음을 주물러서 만들었다고?
“앗! 녹는다!”
지율이가 빙수를 가리켰다.
“어이쿠.”
고성우는 황급히 냉기를 뿜어내 빙수 모형을 언 상태로 유지했다. 그 과정에서 얼음가루도 꽁꽁 얼어버렸다.
“미안해 지율아.”
“미안하다. 이게 삼촌의 최선이었어.”
빙수를 돌려받은 지율이는 씩 웃어 보였다.
“괜찮아! 얼음가루는 다시 채울 수도 있는 거고!”
관대한 지율이의 마음씨에 웃다가 다시 의문이 고개를 들었다.
잠깐 들고만 있어도 얼음가루는 금세 녹아내렸다.
주변에 쌓여 있는 얼음가루도 마찬가지.
어느새 얼음가루는 남아 있지 않은 상태.
그런데 지율이가 빙수를 들고 있는 동안에는 얼음가루가 단 한 톨도 녹지 않았다.
“지율아, 빙수 또 만들 수 있어?”
나의 물음에 지율이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럼!”
“한번 만들어볼래?”
“응! 아빠랑 삼촌 것도 만들어줄게!”
지율이는 두리번거리더니 굴러다니던 얼음덩어리 하나를 집어 들었다.
“잘 봐? 이렇게 해서…….”
나와 고성우는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지율이가 얼음덩어리를 주무르자 마치 찹쌀떡처럼 물렁해졌다.
지율이는 아무렇지도 않게 얼음덩어리를 주물러서 선사시대의 유물처럼 보이는 그릇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두리번거리다가 내게 그릇을 내밀었다.
“빠아, 잠깐만 들고 있어?”
“어어, 알았어.”
너무 황당한 경우인지라 일단 지켜보고 있었다.
두리번거리던 지율이는 손에 쏙 들어오는 얼음덩어리 하나를 주워왔다. 그리고 움켜쥐어서 손아귀에서 얼음덩어리를 비비자 얼음가루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짠! 빙수 완성!”
얼음덩어리를 악력을 이용해 가루로 만드는 힘에 놀라야 할지, 아니면 얼음덩어리를 떡처럼 주무르는 능력에 놀라야 할지.
괴력이야 이미 알고 있었으니 얼음을 주무르는 능력에 집중했다.
“잠깐만, 삼촌도 좀 해볼게.”
고성우가 손을 뻗어 빙수그릇을 만졌다.
“아니, 대체 어떻게…….”
얼음을 떡 주무르듯 주무르는 것은 아이스맨이라 불리는 고성우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고성우는 처음부터 얼음을 특정한 모양으로 만들어낼 수는 있었다. 일부를 없애거나, 덧붙여서 모양을 바꿀 수도 있었고.
하지만 얼음이 가지는 특성 자체를 바꿀 수는 없는 일이었다.
“지율아, 대체 어떻게…….”
질문을 하던 나는 지율이가 양손에 끼고 있는 장갑에 시선이 머물렀다.
그랬다.
백설공주가 선물해 준 장갑에 담긴 힘이었다.
눈과 얼음을 마음대로 다룰 수 있는 힘.
“너희들도 내가 빙수 만들어줄게!”
지율이의 빙수가게가 열렸다.
아이들은 지율이 앞에 줄을 서서 자신의 차례를 기다렸다.
고성우가 얼음숟가락을 만들었고, 시럽으로 허니포켓의 꿀을 뿌리면 완성이었다.
모두가 숟가락을 들고 빙수를 먹었다.
손이 조금 시려워도 나름대로의 재미였다.
숟가락질을 할 수 없는 핫도그는 숟가락까지 씹어 먹었다.
“냥!”
그 와중에 무룩이는 숟가락질은 할 수 없지만, 그냥 먹기는 싫다나.
“자, 아―해.”
지율이가 떠서 먹여줬고, 무룩이는 만족스러운 얼굴을 했다.
“맛있구냥!”
원래 고양이는 단맛을 못 느낀다고 하던데.
무룩이는 예외인 걸까.
하긴, 보통 고양이는 아니니까.
“또 만들어줄게!”
지율이는 빙수를 끝도 없이 만들려고 했는데, 내가 웃으면서 말렸다.
“너무 많이 먹으면 배탈 나.”
“그런가?”
“그렇지.”
장갑을 낀 양손을 들여다보던 지율이가 생긋 웃으며 말했다.
“그럼 그릇만 만들래!”
얼음으로 무언가를 만드는 것 자체가 재미있는 모양이었다.
백설공주의 선물 덕분에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 * *
늦은 밤.
아이들은 전부 잠이 들어 있었다.
오늘은 마당에서 고성우와 마주 앉아서 하늘을 올려다봤다.
딸칵, 치익.
고성우가 캔맥주를 따서 내밀었다.
“땡큐.”
캔으로 건배를 했다. 둔탁하고 낮은 소리가 울렸다.
“캔맥은 다 좋은데 부딪치는 맛이 안 나.”
고성우는 괜히 구시렁거리고는 한 모금 마셨다.
“에이.”
“왜 그래?”
“별로 안 차갑다.”
“그래? 괜찮은 거 같은데?”
“캔만 그렇고 속은 별로 안 차가워. 잠깐만.”
고성우는 캔맥주 입구 쪽으로 냉기를 불어넣었다. 순식간에 살얼음이 꼈다. 고성우는 다시 맥주를 한 모금 마시더니 콧잔등을 찡그렸다.
“크으, 이거지.”
나는 웃음과 함께 맥주 한 모금을 입에 머금었다.
“좋네.”
나는 평소에 술을 마시지 않는다.
지율이를 비롯한 아이들과 함께 지내기도 하고, 술 자체를 크게 즐기는 편이 아니다.
가끔 생각날 때가 있기는 하지만, 생각에서 멈춘다.
오랜만에 친구와 앉아서 맥주를 마시며 슬슬 밀려오는 더위를 밀어내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아니, 좋았다.
“그런데.”
내가 말문을 열자 고성우가 마른오징어를 질겅질겅 씹으며 쳐다봤다.
“퀸한테는 왜 이렇게 관심이 많아? 아까 말하다가 말았잖아.”
“아니, 그냥. 신비롭잖아.”
“그것뿐이야?”
다른 종족이기는 하지만, 퀸이 또 크게 이질감을 주지는 않는다.
사실 특이한 머리카락을 제외하면 그냥 사람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고성우야 차원문에서 나오는 온갖 마수와 이종들을 상대하고, 휴도에서 싹이도 많이 봤으니 거부감도 덜하겠지.
그렇다.
사랑에는 국경도 없고 나이는 숫자라고 한다.
이종 간의 사랑도 가능하겠지.
너무 앞서간 생각일지도 모르지만, 그럴 수도 있는 거니까.
“아니, 그냥.”
고성우는 달을 쳐다봤다. 그 순간에는 어울리지 않게 아이처럼 순수한 눈을 하고 있었다.
“그냥 이상하게 궁금하더라고. 또 보고 싶기도 하고.”
“뭐… 특이하고 신기하긴 하지.”
“착하다며.”
“응, 착해. 아마 또 볼 일이 있지 않을까?”
“그때는 나도 한번 같이 봤으면 좋겠네.”
“그러면 되지.”
“그래, 웬만하면 꼭.”
우리는 계속해서 맥주를 홀짝였다. 이런저런 얘기를 주고받았다. 일 얘기, 애 키우는 얘기, 요즘 재밌는 티브이 프로그램, 최근 뉴스 등등.
이야기로 안주를 대신하다 보니 안주로 내놓았던 마른오징어는 조금씩 더 딱딱해지고 있었다.
마지막 맥주 한 캔.
“건배.”
“건배.”
“뭐를 위해서?”
고성우는 잠시 고민하다가 씩 웃으며 말했다.
“온 세상 사람들의 행복을 위하여.”
“허? 언제부터 그런 사람이었대?”
“사실 뭐 대단한 것도 아니지. 그 행복한 사람들 중에 우리도 포함되니까.”
취기가 조금 오르는지 이상하게 웃음이 났다. 그렇게 재미있는 말도 아닌데 우리는 계속 킬킬 웃었다.
마지막 반 캔.
우리는 달을 올려다보며 조용히 빈 캔을 만들어갔다.
* * *
아침식사를 마치고.
“삼촌 잘 가아아아아아!”
지율이가 손을 흔들자 고성우는 활짝 웃었다.
“응, 삼촌 갈게!”
“언제 또 와?”
“음. 금방?”
“좋아!”
“좋아?”
“응!”
자주 보는 게 좋다는 한마디에 고성우는 제법 감동을 받은 듯했다.
“그럼 진짜 갈게!”
“응, 삼촌!”
고성우는 아이들의 머리도 한 번씩 쓰다듬었다.
“또 보자. 너도, 너도, 너도…….”
곰곰이, 삐삐, 핫도그와 차례로 인사했다. 그리고 무룩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려는 찰나였다.
턱.
무룩이가 앞발을 들어 고성우의 손을 막았다.
“잘 가라옹.”
“……그래.”
고성우는 조금 떨떠름하게 손을 내렸고, 무룩이는 아무렇지도 않게 꼬리를 팔랑거렸다.
그렇게 고성우가 휴도를 떠났고, 다시 우리만 있는 평온한 하루가 시작됐다.
나는 잠시 앞마당의 텃밭에서 채소들을 수확했다.
귀촌을 하면 그렇다.
아침을 먹으면서 혹은 먹은 후에는 점심 생각을 하고, 점심을 먹으면서 혹은 먹은 다음에는 저녁 생각을 한다. 저녁식사를 할 때나 후식을 먹으면서는 다음 날 아침을 떠올리는 게 당연하게 느껴진다.
나도 점심식사 생각을 하며 일단 채소들을 수확했다.
그때 지율이와 싹이는 딱 붙어서 앉아 무언가를 열심히 보고 있었다.
마이패드에 빨려 들어갈 기세여서 웃음이 나왔다.
“뭘 그렇게 열심히 봐?”
내가 웃으며 다가서자 지율이가 화면을 보여줬다.
아이튜브의 알고리즘이 지율이와 싹이에게 강아지와 고양이 간식 영상을 보여주고 있었다.
정확히는 강아지와 고양이를 나란히 앉혀놓고 코스요리처럼 간식을 내주는 영상.
“빠아, 오마카세가 뭐야?”
지율이가 물었다.
영상 제목이 ‘고양이와 강아지를 위한 오마카세’였다.
“아, 오마카세? 주방 특선을 뜻하는 일식 용어야.”
“주방 특선?”
“주방장이 특별히 만든 요리 같은 거지. 우리가 메뉴를 고르는 게 아니라, 요리사에게 맡기는 거야.”
“그렇구나.”
지율이는 고양이와 강아지 영상을 힐끗 보고는 다시 나와 눈을 마주쳤다.
“그럼 우리 집은 맨날 오마카세네?”
“응?”
“가끔 아닐 때도 있지만, 평소에 대부분 아빠가 우리를 위해서 요리를 해주잖아.”
“하하하, 그렇게 보면 맞는 말이긴 하네!”
그때 옆에서 싹이가 목소리를 냈다.
“다시 보자. 다음에는 무엇이 나올지 궁금하구나.”
사실 고양이와 강아지가 간식을 먹는 영상일 뿐인데, 싹이는 푹 빠져 있었다.
지율이도 제법 흥미롭게 보는 듯했고.
나는 그런 지율이와 싹이를 지켜보는 게 즐거웠다.
“멍멍멍멍멍멍멍멍!”
멀리서 핫도그가 짖으면서 달려왔다.
“멍멍멍멍멍!”
왜 저러나 싶은 찰나, 지율이가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핫도그를 힐끗 보고는 나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빠아, 핫도그가 빨리 자기 따라오래.”
“그래?”
내가 고개를 돌리자 핫도그가 재촉하듯 멍멍 짖었다.
결국 핫도그가 안내하는 곳으로 향했다.
핫도그가 안내한 곳은 갯바위가 있는 쪽이었다.
“멍멍!”
핫도그는 나를 향해 짖고는 바다 쪽을 쳐다봤다.
“왜 그래? 무슨 일인데 그래?”
바다를 들여다봤다.
검은 갯바위가 언뜻 보이는 듯했다.
“어?”
시커멓고 큰 둥그런 무언가가 보였다.
귀촌 첫날 차원문이 생겼다 253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