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 the first day of my life in living alone, a portal opened RAW novel - Chapter 277
277. 글로벌 (2)
같은 질문을 던져도 돌아오는 대답은 다를 수 있다.
동일한 상황에서의 질문은 물론이고, 같은 사람조차도 번복하기 일쑤다.
답변이야 동문서답도 가능한 것이니 답변의 종류만큼은 아니겠지만, 질문에 대답하는 방법 또한 다양하다.
가장 크게 세 가지로 나누자면 예, 아니오 그리고 미루는 정도가 있을 것이다.
여기에 한 가지만 더한다면 질문에 질문으로 답하는 방식이다.
내가 제안한 구정석과의 식사 자리.
거기에 조여진이 선택한 답변.
‘그럴까요?’라니.
억양에 따라서도 답의 의미는 달라진다.
내가 오해한 걸지도 모른다.
조여진이 ‘그럴까요.’라고 말했을지도 모른다.
귓속에서 희미해져 가는 메아리를 되살린다.
‘그럴까요?’
‘요’가 올라갔다.
사실 그냥 ‘그럴까요.’였어도, 뒤에 물음표가 붙지 않았더라도 여지가 있는 대답이다.
귓속에서 몇 차례 재생된 메아리를 들어보니 뒤에 물음표가 붙은 게 확실한지라 이런 가정은 크게 의미가 없지마는.
물음표가 붙지 않았든 붙었든 나쁘지 않다.
이러나저러나 여지가 있다는 것은 좋은 사인이다.
거절할 수도 있지만, 거절하지 않을 수도 있는 거니까.
“예, 괜찮으시다면.”
나름대로 최선의 대답을 내놓았다.
강권도 아니고, 내민 카드를 슬쩍 집어넣지도 않으며, 되물으면서 물음표는 붙이지 않고, 다시 확실한 대답을 듣기에 충분한 문장.
“안 괜찮을 건 없죠.”
이런 식으로 나온다는 건가.
조여진은 줄다리기를 즐기는 걸까?
줄다리기를 한다면 내가 아닌 구정석과 했으면 좋겠는데.
“식사 한 번이야 나쁠 거 없겠죠.”
조여진의 이어진 말에 나는 반응했다.
“그쵸, 부담 가지실 것 없이요.”
“하지만 식사 중에 너무 부담을 주시면 피하고 싶어질 수도 있어요. 사실 자연스러운 게 제일 좋은데.”
부담스러운 건 싫다―라.
어느 정도까지가 부담스러운 것일까?
자연스러운 게 좋다는 얘기는 이런 인위적인 식사 자리 자체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뜻.
하지만 부자연스러운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본다.
정말 매력적인 사람과 기분 좋은 식사를 한다면 호감을 가질 수 있을 테니까.
즉, 첫 번째로 고려해야 할 부분은 부담을 주지 않는 것.
어쩌면 구정석은 이미 탈락일지도 모르겠다.
고백을 준비하고 있을 테니까.
둘이서 하는 첫 식사에서 고백이라…!
이보다 더 부담스러운 자리가 있을까?
구정석의 내비게이션은 잘못된 주소를 찍고 있다.
“근데 언제 어디서요?”
조여진의 물음에 나는 잠시 당황했지만, 웃으며 휴대폰을 들어 보였다.
“지금 전화해 볼게요.”
* * *
조여진과 구정석은 곧장 식사를 하기로 했다.
조민택은 조여진 하나 일을 쉰다고 굴러가지 않는 회사라면, 진작 망해야 할 회사라며 호탕하게 보냈다.
“구정석 씨라면 괜찮죠. 그 정도라면 우리 여진이하고 만나도 괜찮을 것 같아요.”
조민택이 흐뭇하게 웃으며 말하자 옆에서 듣고 있던 지율이가 목소리를 높였다.
“나도 같이 만날까?”
나와 조민택이 시선을 돌리자 지율이는 해맑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다 같이 만나면 좋잖아!”
틀린 말은 아니다.
아니지만.
“오늘은 둘이 만나기로 했어.”
“그래? 왜? 많으면 더 좋은 거 아니야?”
“그건 말이지.”
어떻게 설명할지 고민하는데 조민택이 씩 웃으며 입을 열었다.
“데이트이기 때문이란다.”
이렇게까지 솔직할 줄이야.
“지율이는 데이트가 뭔지 아니?”
조민택의 물음에 내가 대신 대답하려고 했다. 당연히 지율이에게는 좀 이른 얘기라고. 하지만 지율이가 양손을 옆구리에 댄 채 말했다.
“당연하죠! 저도 알아요!”
“오? 정말? 아저씨는 지율이 나이 때는 잘 몰랐는데. 사실 지금도 잘 모르겠어.”
“두 사람이 오붓하게 식사하고 공원을 산책하는 거예요.”
분명히 드라마 장면 같은 것을 본 듯하다. 아니, 지율이가 드라마를 볼 확률은 낮은데. 만화에서도 데이트 같은 것은 나오겠지.
“하하하하하! 정확하구나! 그게 맞겠어. 그럼 아저씨가 지율이한테 상을 줘야지.”
조민택의 말에 지율이는 양손을 모으고 눈을 반짝거렸다.
“진짜요? 무슨 상이요?”
그러다가 아차 싶은지 표정을 관리하며 다시 말했다.
“아니에요, 상 같은 거 안 주셔도 괜찮아요.”
“응? 왜?”
“무언가를 바라고 말한 게 아니니까요.”
“하하, 지율이는 마음씨도 착하네. 하지만 걱정하지 마라. 아저씨가 주고 싶어서 주는 거니까.”
조민택은 금세 지율이를 위한 간식을 준비했다.
조각 케이크와 흰 우유 그리고 그림책 두 권.
잠시 지율이가 정신을 뺏기기에는 충분해 보였다.
“드릴 말씀이 있다고 했었죠.”
조민택이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말했다.
“아주 잘되고 있습니다.”
“예? 뭐든 잘되고 있다니 축하드릴 일이기는 한데, 뭐가요?”
나의 말에 조민택이 하하 웃었다.
“축하는 저보다 대표님께서 받으셔야죠.”
“그런가요? 제가요?”
“예. 휴도라는 브랜드는 이제 더 커질 겁니다.”
“갑자기요?”
커져도 그만, 안 커져도 그만.
그래도 기왕이면 잘되기를 바라기는 한다.
가능한 좋은 영향력을 퍼뜨리려 노력하고.
“예.”
조민택은 입가에 시원한 미소를 머금어 보였다.
“예전에 시도해 보자고 하셨던 것이 성공했습니다.”
휴도의 작물들을 단순히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농사에 성공한 것이었다.
수많은 차원문들에서 작물들이 나오지만, 대부분은 농사에 실패한다. 가능하더라도 조건이 너무 까다로워서 생산에 뛰어들 이유가 없거나.
하지만 휴도의 작물들은 하나둘씩 성공을 거두고 있었다. 쉽지만은 않아도 가능했고, 흉작만 아니면 확실한 흑자를 볼 수 있다고.
“예전에도 작은 성공은 확인됐었죠. 해외에서도 많은 관심을 보였고요. 하지만 이번에는 다릅니다. 몇몇 국가들에서는 번호표를 뽑아서 줄을 섰습니다. 미국의 한 농장은 면적이 얼마나 되는지 아십니까?”
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말씀해 주셔야 알죠.”
“하하! 자그마치 제주도보다도 큽니다.”
“예? 농장이요?”
“예. 참고로 제주도가 서울의 세 배 이상입니다. 근데 더 큰 농장에서 원한다고 합니다. 물론, 휴도의 정신에 맞게 단순히 돈을 위해서가 아니라 모두가 더 건강하고 맛있게 즐거울 수 있도록 해야죠. 그렇게 진행할까 합니다. 괜찮으시겠습니까?”
“물론이죠. 사실상 저는 대표님께 전부 권한을 드리고 있는 거나 다름없죠.”
“그래도 제가 최종 결재는 대표님께서 하셔야 하니까요.”
“제가 그럴 자격이 있는지 모르겠네요.”
조민택이 눈을 크게 뜨고 말했다.
“자격이요? 넘치다마다요. 휴도의 주인 아니십니까?”
“하하, 그렇네요.”
문서상으로는 그랬다.
마음속으로는 다르게 생각했다.
휴도의 주인은 ‘나’가 아니라, ‘우리’다.
* * *
“식사하시겠습니까? 나가서 드셔도 괜찮고, 여기서도 바로 준비해 드릴 수 있습니다.”
조민택의 제안에 나는 곧바로 거절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전에 지율이를 돌아보며 물었다.
“지율이 배고파?”
손에 자신의 주먹만큼 커다란 자두를 쥔 지율이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자두 먹고 있어서 괜찮아.”
나는 조민택에게로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괜찮다네요. 저도 이것저것 하도 많이 먹어서 배부르고요.”
“그렇습니까? 그럼 과일은 괜찮으시죠?”
휴도에서 온갖 진귀한 과일들을 다 먹지만, 그렇다고 원래 존재하는 과일들이 맛없는 것은 아니다.
가끔은 평범한 과일이 먹고 싶을 때도 있다.
거만하면서 사치스러운 사람이나 쓸 법한 표현이지만, 가끔은 평범하고 수수한 맛이 그리워진다고나 할까.
“자두 처음 먹는데 되게 맛있다.”
지율이의 말에 내가 ‘오’ 하고 소리를 냈다.
“그렇네? 지율이 자두 처음 먹네?”
“응! 되게 달콤하고 맛있어! 근데 안쪽 씨 있는 데는 조금 새콤해. 근데 맛있어.”
아직도 지율이는 처음 경험하는 게 많다.
나도 함께 처음 경험하는 것도 많지만, 지율이와는 처음이라 새롭게 느껴지기도 한다.
휴도에 살면서 한가하게 늘어져 있지만은 않지만, 당연히 매일 현장에 다닐 때가 훨씬 바빴다.
일단 하루 종일 쉬지 않고 일을 했으니까.
그런데 다양한 경험들의 수는 지금이 압도적으로 많다.
많은 수준이 아니다.
지금껏 평생 해온 경험보다 휴도에서 지율이와 함께 살며 경험하는 일들이 더 많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가끔은 이미 했던 것을 하지 않았다고, 하지 않은 것을 했다고 착각할 때도 있는 수준이다.
배부르고 행복한 착각이다.
“아무튼… 오늘은 원래 성대하게 파티라도 열어야 하는데 말이죠. 휴도는 전 세계적으로 유명해질 겁니다. 물론, 휴도라는 브랜드가 말이죠.”
조민택이 통창 쪽을 향해 걸음을 옮기며 말했다.
“저는 대표님 덕분에 인생이 바뀌었습니다. 저희 회사에서 일하는 많은 사람들의 삶도 바뀌었다고 확신합니다. 거래를 하는 사람들 역시요. 앞으로 더 많은 사람들의 삶도 바뀌겠죠.”
무엇보다 바라던 바다.
그때 조민택이 창밖을 보며 깜짝 놀랐다.
“엇? 오오?”
지율이가 호기심을 보이며 물었다.
“왜요오? 뭐 때문에 놀랐어요?”
조민택이 씩 웃으며 대답했다.
“이리 와서 밖을 보렴.”
지율이와 나는 창가로 다가섰다.
밖을 본 나는 깜짝 놀라 눈만 가만히 깜빡거렸다.
가까이 딱 붙어서 걷고 있는 구정석과 조여진이 보였다.
손을 잡거나 팔짱을 낀 것은 아니지만, 어깨와 팔이 닿을 정도로 가까웠다. 생글생글 웃는 조여진과 헤벌쭉 웃는 구정석 사이에 거리감이 없었다.
두 사람 사이의 벽은 확실히 낮아져 서로 눈빛을 교환할 수 있는 정도가 됐다.
첫 식사 자리에서 한 고백이 성공한 건가?
그런 듯했다.
분명히 조여진은 부담스러운 게 싫다고 했었는데.
그래서 구정석의 내비게이션은 잘못됐다고 여겼는데.
전부 오산이었다.
처음부터 구정석의 내비게이션은 잘못되지 않았다.
도착해야 할 주소지는 조여진이었으니 틀린 게 없었다.
내 생각과 달랐던 것은 경로였다.
구정석은 보기 좋게 더 빠르게 목적지에 다다른 듯했다.
하긴, 처음부터 내 걱정은 기우(杞憂)였다.
아니, 거만하고 오만하며 우둔했는지도 모르겠다.
누가 누구의 연애사를 걱정했는지.
“빠아.”
고개를 사선 아래로 내리자 지율이와 눈이 마주쳤다.
“아빠도 데이트하고 싶어?”
예상치 못한 지율이의 질문에 나는 기침을 할 뻔했다.
“하하하, 글쎄?”
지율이가 방긋 웃으며 내 손을 잡았다.
“나랑 데이트하자 빠아.”
아무러면 어떤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지율이와 데이트를 할 수 있는 내가 승리자다.
“그래, 좋아.”
* * *
일본.
노란색 차원문의 차원막은 여전히 갈라진 상태.
엘프는 계속 미간을 찡그린 채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아직인가? 바로 하거라.”
엘프의 물음에 무사시가 대답했다.
“연락을 취할 것이니 조금 기다려라.”
그러자 엘프가 고성우를 바라보며 말했다.
“버릇없는 인간에게 물은 것이 아니라고 전해주겠나?”
가운데 낀 고성우가 당황하는데 무사시가 목소리를 냈다.
“급해서 도움을 청하러 온 주제에 바라는 것은 많고 오만한 귀가 긴 종족에게 그런 식이라면 아무것도 돕지 않을 것이라고 전해주게.”
둘이 으르렁거리는데 고성우가 손을 뻗으며 중재했다.
“아니아니, 지금 둘이서 이럴 게 아니잖아. 그리고 급한 일이라며. 도움이 필요하다며. 나한테라도 말해.”
엘프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렇게까지 급하지는 않다. 그만큼 급한 상황이 되기 전에 미리 찾아온 거니까. 그때 나와 대화하던 인간을 데려와라. 어차피 너희들만으로는 안 된다. 그 인간의 도움이 필요하다.”
귀촌 첫날 차원문이 생겼다 278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