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 the first day of my life in living alone, a portal opened RAW novel - Chapter 292
292. 유명세 (4)
‘상’이라는 게 있다.
어떻게 생긴 얼굴을 두고 말하는 상.
고양이상, 강아지상, 토끼상 등등 생긴 것을 두고 말하는 게 가장 흔하다.
그 외에 성격적인 부분을 두고도 어떻게 생겼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남자는 ‘뚱한 상’이었다.
평생 웃음이란 모르고 산 듯한 얼굴.
가죽 같은 눈두덩이는 무거워 보일 지경이다.
무표정한 얼굴.
중년임에도 주름은 별로 없다.
아니, 이마와 미간, 팔자 주름의 흔적은 진하다.
하지만 눈가에는 주름이 없어 보인다.
자주 웃으면 그에 따른 주름이 새겨지기 마련인데.
줄곧 무표정했던 남자의 미간이 깊은 내 천(川)자가 새겨진다.
“드래곤…….”
남자는 레오를 노려보며 말했다.
“착각하지 마라. 마력 하나로 전부가 아니다. 마력의 양은 적어도 드래곤을 제압할 수 있는 인간도 있다.”
갑자기 웬 급발진?
남자의 반응에 레오는 피식 웃었다.
“그런가? 흥미롭군.”
“나도 그중 하나다.”
“그러한가?”
레오는 손을 턱으로 가져가며 말했다.
“그런데 이상하군. 그렇다면 인간들끼리 전부 해결하면 될 것을 왜 드래곤과 교류를 하려고 애쓰는 거지?”
가끔 레오는 똑똑해진다.
평소에는 전혀 아닌데, 이상하게 논리적일 때가 있다.
남자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드래곤…….”
“애초에 왜 그리 불경한 태도인 것이냐?”
레오는 진심으로 어이가 없다는 듯이 말했다.
“나는 그저 네놈이 누구인지 물었을 뿐인데, 뭐가 그리 제 발이 저려서 이빨을 드러내는가?”
“수상해서 그렇다.”
남자는 나와 레오 그리고 지율이까지 훑어보고는 말했다.
“대체 저 남자의 정체가 무엇인지 궁금해하지 않을 수 없어. 너 같은 드래곤이 왜 같이 있는 건지도 모르겠고.”
“알 거 없다.”
“뭐라고?”
“들었잖은가? 알 것 없다. 그냥 돌아가라. 말해줄 의무도 없고, 말해주고 싶지도 않다. 아니면 돌아가게 할 것이다.”
“아까 내 말 못 들었나?”
남자는 입술을 실룩이더니 두 주먹에 마력을 머금었다.
“나는… 드래곤이라도…….”
그가 말을 마치기 전이었다.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일라.”
지율이가 팔등에 눈을 대고 숨바꼭질을 시작했다.
“무슨…?”
남자가 중얼거리다가 다시 말했다.
“뭐야, 어디 갔…….”
나는 남자의 옆에서 날아들고 있었다.
떠엉!
강철처럼 만들어 새까맣게 물든 나의 주먹이 남자의 안면을 후려쳤다.
“억…?”
남자가 옆으로 쭉 밀려나며 날아갔다. 어떻게 보면 보이지 않는 손에 머리채를 잡혀 끌려가는 것 같기도 했고.
펑!
나는 공기를 박차듯 바람을 일으키며 추격했다.
남자가 고개를 틀어 나를 쳐다보기 전, 다시 한 번 주먹을 날렸다.
쾅!
남자가 다시 크게 밀려났고, 나는 또다시 추격하여 주먹을 휘둘렀다.
떵! 떠엉! 떵! 쩡!
어느새 요트는 점처럼 작아 보일 정도로 멀어져 있었다.
“크, 크아아아아아!”
날아가던 남자가 멈춰 서며 날아드는 내게 반격하려고 했다.
턱.
나는 남자의 뒷덜미를 잡은 뒤 바다로 끌고 들어갔다.
풍덩! 쿠르르르르르르르…!
물속에 끌려온 남자가 허우적거렸다.
나는 물속에서도 거의 아무런 저항 없이 움직일 수 있었다.
쿠릉! 쿠르릉! 쿠릉! 쿠르르릉!
일방적인 구타였다.
폭력을 좋아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무엇에든 예외가 있는 법이다.
나는 주변으로 공기방울을 만들고 소리쳤다.
“감히…! 감히 내 딸 앞에서…!”
지율이가 있는 자리에서 공격적으로 마력을 드러낸 것을 용서할 수 없었다.
처음에 레오가 끼어들었을 때는 내심 좋아했다.
다른 변명을 늘어놓을 필요 없이 레오가 해결할 거라 생각했으니까.
남자는 자신감을 가졌지만, 아무리 뛰어난 헌터라도 혼자서 드래곤을 이긴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고성우 정도라면 진짜로 웬만한 드래곤을 상대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남자의 수준으로는 어림도 없다.
더군다나 레오는 일반적인 드래곤도 아니고.
쿠웅! 쿠웅! 쿠우웅! 쿠웅!
어느새 바닥에 남자는 바닥에 처박혀 있었다.
내가 다시 한 번 주먹을 치켜드는데 남자가 입을 우물거렸다.
분명히 알 수 있었다.
살려줘.
하지만 내 주먹에서는 힘이 빠져나가지 않았다.
“그냥 이대로 바다에 묻어버리는 게 나을 것 같다.”
마지막으로 주먹을 휘두르려는 찰나였다.
쿠르르르르르!
내 옆으로 레오가 내려왔다.
레오는 떡이 된 남자를 한 번 보고는 내게로 시선을 옮겼다.
그다지 놀라는 얼굴은 아니었다.
길을 가다가 조금 특이하게 생긴 돌멩이를 본 정도의 반응.
“죽겠구나.”
레오가 나지막이 말했다.
나는 주먹을 쥔 채 잠시 멈춰 있었다.
“죽일 거냐?”
레오가 물었다.
나는 여전히 대답하지 않고 서 있었다.
“잠깐 기다리라 하고 오긴 했지만, 요트에 혼자 오래 두기는 좀 그렇지 않은가? 우리가 걱정할 필요가 있는 아이는 아니지만 말이다.”
레오는 요트가 있는 쪽을 한 번 쳐다보고는 말했다.
“그리고 네가 그런 기운을 계속 뿜어내면… 분명히 느낄 거다.”
그 말에 나는 천천히 주먹을 내렸다.
남자는 이미 의식을 잃은 상태.
“이놈 좀 맡겨도 되겠어?”
나의 물음에 레오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당연히 안 된다.”
“레오야…….”
“싫다.”
“그럴 거면 왜 말린 거야?”
“말린 게 아니다. 그냥 상황을 알려준 것뿐이지.”
“하아……. 치사한 놈.”
“치사해도 싫은 건 싫은 거다.”
“네가 해달라는 요리 다 해줄게.”
레오의 눈이 살짝 커졌다.
“다? 무엇이든 말이냐?”
“내가 할 수 있는 거라면 전부.”
“네가 할 수 있는 것과 못하는 것을 내가 알 리가 없지 않은가?”
“같이 맞춰보면 되지. 그리고 못 하는 거면 연습해서라도 해볼게.”
“호오……. 그럼 몇 번이나 할 것이냐?”
역시 만만치 않은 놈이다.
“뭘 몇 번이야. 한 번 진수성찬 차려주면 됐지.”
“그럼 필요 없다.”
“……두 번.”
“뭐? 말도 안 되는 소리하지 마라. 열 번은 해야지.”
“열 번은 좀 심하지.”
레오는 쓰러져 있는 남자를 발로 툭 친 다음 말했다.
“그럼 이놈도 네가 알아서 처리하든가.”
나는 한숨을 내쉰 다음 손가락 다섯 개를 펴 보였다.
“다섯 번. 어때?”
레오가 씩 웃으며 대답했다.
“좋다. 의외로 후하군.”
“뭐?”
“세 번 정도에 합의를 볼 줄 알았는데, 다섯 번이나 될 줄이야. 각오하는 게 좋을 거다. 이몸의 입은 고급이니까. 아니, 초고급이지.”
“너…….”
레오는 클클 웃으며 뻗어 있는 남자의 멱살을 잡았다.
“그럼 이따 보도록 하지.”
“그놈은 어떻게 할 건데?”
“내가 알아서 하마.”
그렇게 레오가 먼저 수면으로 향했다.
나는 멀어지는 레오와 남자를 바라보다가 요트 쪽을 향해 나아갔다.
금세 요트에 다다랐다.
지율이는 나를 환한 미소로 맞이했다.
“빠아!”
“응, 지율아.”
“숨바꼭질하다가 사라졌으니까 아빠가 진 거야!”
“하하하, 알았어. 아빠가 졌다. 으악.”
양손을 살짝 들어 보였고, 지율이는 그것도 재밌다고 까르르 웃었다.
지율이는 내가 갑자기 자리를 비운 것에 대해서는 묻지 않았다.
지금 상황을 전부 알지는 못해도, 피치 못할 사정이 있다는 것 정도는 아는 듯했다.
“이제 성우 삼촌이랑 엘프 언니 만나러 갈까?”
“응! 출발!”
요트를 움직이려는데 저 멀리 날아가는 마블 드래곤이 하나 보였다.
레오였다.
손에는 축 늘어진 남자가 들려 있었다.
레오가 알아서 한다고 했으니까…….
조금 신경 쓰였지만, 일단 강척으로 향했다.
* * *
“지율아 안녕?”
강척 마리나항에는 조여진이 나와 있었다.
“언니이이이이!”
지율이는 붙임성 좋게 폭 안겼다.
“그래그래, 반가워 죽겠다 얘.”
조여진이 말하자 지율이는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뒤로 뺐다.
“죽으면 안 돼! 오래오래 살아야지!”
“풉!”
조여진은 웃음을 참지 못하며 말했다.
“알았어, 오래 살게. 바다거북이처럼.”
“거북이 아저씨처럼?”
“응. 거북이 아저씨처럼.”
“거북이 아저씨처럼 오래 살면 등껍질이 생길까?”
조여진은 또다시 웃음을 터트렸다.
“한 번 살아보면 알겠지? 지율이 언니랑 같이 거북이 아저씨만큼, 아니 더 오래 살자?”
“응!”
그 와중에 나는 어색하게 눈빛을 교환하고 있었다.
조여진 옆에 서 있는 구정석.
“하, 하하. 안녕하세요, 대표님?”
나는 피식 웃은 다음 물었다.
“잘 됐나 봐요?”
구정석은 조여진을 힐끔 쳐다보고는 머쓱하게 웃으며 뒷머리를 긁적거렸다.
“예, 뭐… 알아가는 단계입니다.”
“완전히 잘 된 건 아니고요?”
그러자 조여진이 대화에 끼어들었다.
“당연하죠. 만나주긴 하지만, 아직 한참 멀었어요.”
구정석은 눈을 번뜩이며 힘차게 말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지율이는 생글생글 웃으며 두 사람을 쳐다보다가 말했다.
“둘이 더 친해졌어.”
그렇게 화기애애한 자리에서도 나는 벗어나야 할 시간이었다.
“그럼 수고스럽겠지만 잘 부탁해요.”
나의 말에 구정석은 힘차게 ‘예’하고 대답했다.
조여진은 지율이를 끌어안으면서 웃어 보였다.
“수고는요, 오히려 지율이랑 놀 수 있어서 좋은걸요.”
강척에서 잠시 지율이는 맡겨두기로 했고, 나는 구정석과 안드리엘이 있는 곳으로 향할 예정이었다.
“그럼.”
그렇게 인사를 하고 걸음을 떼는데 구정석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앗, 죄송합니다. 잠시.”
“죄송할 게 뭐 있나요. 편하게 받으세요. 그럼 전 가보겠습니다.”
나는 지율이와 눈높이를 맞추며 씩 웃어 보였다.
“언니 말 잘 듣고 있어야 돼?”
“응!”
“이따 다 같이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
“응! 잘 다녀와 아빠!”
지율이의 머리를 쓰다듬은 뒤 자리에서 일어나는데 전화를 받는 구정석의 표정이 변했다.
“예, 예. 네, 알겠습니다.”
전화를 끊은 구정석이 내게로 시선을 옮겼다.
“대표님, 아무래도 먼저 들르실 곳이 있는 것 같습니다.”
* * *
한 건물의 옥상.
“왜 이렇게 늦는 거냐?”
팔짱을 낀 레오가 눈썹을 찡그리며 말했다.
“뭘 늦어, 연락받자마자 왔는데. 그나저나…….”
레오의 옆에는 얼굴이 엉망이 된 남자가 무릎을 꿇고 있었다.
“뭘 더 한 거야?”
나의 물음에 레오가 인상을 찡그렸다.
“나름대로 해결은 했지만, 물리적인 공격은 한 적이 없다. 격의 차이를 보여줬을 뿐.”
“근데 얼굴이 왜 저래?”
“네놈 짓이다.”
하긴, 내가 최소한의 힘 조절을 하고 남자가 튼튼해서 저 정도로 그친 것이다.
사실 웬만한 헌터였다면 죽었어도 이상할 게 없었다.
나는 남자를 쳐다보며 말했다.
“자식이 있는 부모라면… 아마 다들 그렇게 했을 겁니다. 당신이 거기서 레오와 맞붙었다면 어떻게 됐을지 뻔한 거니까요.”
남자는 고개를 빠르게 끄덕거렸다.
“예, 예. 무슨 말씀인지 알고 있습니다. 제 실수를 인정합니다.”
“……아무튼 당신한테 제가 가진 비밀을 다 얘기할 생각은 없으니, 당신은 제 비밀이 뭔지는 모른다고 할 수 있죠.”
나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데 제게 비밀이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으니까 곤란하네요.”
남자가 눈을 크게 뜨고 말했다.
“절대, 절대로, 절대로 제 입에서 새어나갈 일은 없을 겁니다.”
나는 마력을 감지하고 있었다.
흔들림이 없다.
진심인가?
레오가 씩 웃고 있었다.
자신만만한 얼굴.
“……믿겠습니다. 이제 그만 일어서세요.”
내가 말하자 남자는 눈치를 살피다가 천천히 일어섰다.
“감사… 합니다.”
나는 남자의 말에 아랑곳하지 않았다. 내가 할 말을 했다.
“저는… 여러 번 기회를 드리지 않습니다. 한 번만 믿어보는 겁니다. 의혹이 생기는 순간… 아시겠죠?”
“예…!”
그때 남자의 주머니에서 진동이 울렸다.
“아까부터 계속 전화가 오더군.”
레오가 말했다.
“누구 전홥니까?”
내가 묻자 남자가 불안한 눈을 한 채 대답했다.
“채소희 씨…….”
“복귀해야 되는 거죠?”
“그렇습니다.”
남자가 약속을 지킨다고 해도 문제였다.
망가진 얼굴 자체가 의혹 덩어리였으니까.
안드리엘이 줬던 요정의 가루가 떠올랐다.
그거면 치료를 할 수 있었는데 내가 다 먹어버렸으니…….
“에휴.”
한숨을 내쉬는데 레오가 인상을 찡그리고 물었다.
“손에 그건 뭐냐?”
“응? 뭐가? 잉?”
내 손끝이 반짝거리고 있었다.
귀촌 첫날 차원문이 생겼다 293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