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 the first day of my life in living alone, a portal opened RAW novel - Chapter 78
78. 지율전(池燏傳) (3)
바다를 가본 적이 없는 사람이 아니라면, 후각이 없는 게 아니라면, 바다 냄새가 무엇인지 안다.
바다가 아닌데도, ‘바다 냄새 난다’라고 말하곤 한다.
휴도에서 산 이후로 나는 바다 냄새를 자주 맡는다. 하지만 여느 해변이나 선착장 등에서 맡는 냄새와는 사뭇 다르다.
이따금씩 바다 그 자체보다는, 바다에서 난 생물들로 인한 비릿한 냄새, 휴도에는 그게 없다.
바닷가에서는 그저 시원하고, 숲에서는 상쾌하기만 하다.
그만큼 바다 냄새는 내게 익숙한 것인데, 살면서 처음 맡는 바다 냄새에 놀라고 있었다.
바닷속 냄새.
수중에서 호흡이 가능해지고, 점차 익숙해진 뒤로는 바닷속 냄새까지 느껴졌다.
코로 물이 들어가면 매운 느낌이 난다. 염분이 있는 바닷물이면 그 정도가 더욱 심하다. 지금 내게는 그러한 느낌은 없고, 기분 좋은 시원함이 콧속으로 전해졌다. 희한하게도 눈 위쪽이 시원했다.
“빠아! 너무 재밌다!”
지율이는 바닷속에서 자유자재로 움직였다. 헤엄을 잘 치는 것을 넘어선 움직임. 제자리에서 빙글빙글 돌다가 원하면 곧바로 멈췄고, 어디든 손을 짚고 발을 디딜 수 있었다. 그러다가도 무중력 상태인 양 움직였고.
수압에 대한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듯했다. 이미 한참을 내려와서 수면에 비치는 햇빛이 멀게 느껴질 정도였지만, 어떠한 불편함도 느낄 수 없었다. 지율이는 말할 것도 없었고.
“예쁘다아아아.”
지율이의 시선은 바닥으로 향했다. 빨간 단풍 빛깔의 산호와 벚꽃 같은 산호가 사슴뿔 같은 몸을 부채꼴로 펼치고 있었다.
바다거북들이 산호들 가운데를 지났고, 나와 지율이도 그 뒤를 따랐다. 물고기들이 산호들 사이사이에서 얼굴을 내밀거나, 깊은 곳으로 숨어드는 등 각양각색의 반응을 보였다.
상아색 옥수수 껍질로 옷을 입고 있는 듯한 말미잘은 눈꽃 같은 머리를 흔들었다. 페인트로 칠한 듯 샛노란 색의 조개는 바닥 위로 둥실둥실 떠다녔다.
“빠아! 너무 예쁘지?”
지율이의 물음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응, 너무 예쁘네.”
살면서 꿈꿔본 적조차 없는 바닷속 탐험은 설렘을 주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어디까지 내려가는지 궁금해졌다.
이쪽이 원래 이렇게까지 깊나, 하고 의구심이 들다가 금세 이해됐다. 여기는 휴도 근처. 휴도의 해역이니 이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검은 차원문의 영향이 미쳤겠지.
다시 산호들이 손을 뻗고 있는 터널 같은 곳을 지났다. 그리고 나왔을 때 나와 지율이는 상반된 반응을 보였다.
“와아아아아아…….”
그 순간 지율이의 두 눈은 바다에서 가장 빛났다.
“…….”
나는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숨을 죽였다.
바닥에 거대하고 둥글며 짙푸른 구멍이 있었다.
이보다 더 파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만큼 새파랬다.
지상에도 이러한 구멍이 생기곤 한다. 흔히들 싱크홀이라 부르는 것.
바닷속에 생긴 이 구멍은 블루홀이었다.
바다거북들은 블루홀로 향했다.
나는 멈춰서 망설이고 있었는데, 지율이가 천천히 앞서나갔다.
“빠아.”
지율이가 해맑은 얼굴로 나를 돌아봤다.
나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그리고 지율이에게 다가가 손을 꼭 잡았다. 우리는 천천히 바다거북들의 뒤를 따라 블루홀로 향했다.
* * *
거대해 보이는 블루홀.
들어서기 전에는 극히 일부만 보는 것에 불과하다.
블루홀은 입구가 가장 좁고, 아래로 내려가면 거대한 공동이 나오는 형태다. 아래로 내려가는 것은 쉽지만, 다시 올라오는 것이 어렵다.
물속에서 자유자재로 움직이며 호흡에도 문제가 없고, 압력마저 느끼지 않는 지율이에게는 놀이터나 다름없지만.
나 역시 바람을 일으켜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게 가능하다.
미지의 영역인 블루홀에는 많은 설이 있고, 그에 걸맞은 괴담도 존재한다.
대표적인 것이 크립티드(신비동물학, 은서동물학, 미지동물학 등)에 관한 것.
가장 유명한 크립티드가 루스카인데, 머리 쪽은 상어와 같으며 아래쪽은 문어를 닮았다고 한다. 목격설에 의하면 몸길이가 수십 미터까지 자라고, 이빨은 면도날 같으며, 촉수의 수많은 빨판이 있으며 색도 변경한다고 한다.
루스카와 마주치면 무조건 죽는다고 하는데, 그러면서 목격설은 존재하니 역설적이다. 멀리서 봤다고 할 수는 있지만.
후에 차원문 현장에서 루스카와 닮은 마수가 발견됐고, 이름을 루스코로 붙였다.
루스카보다 크기는 훨씬 작았지만, 생김새 특징은 흡사했다. 맛도 없고, 부산물도 가치가 없어서 현장에서는 크고 무거운 쓰레기로 유명하다. 나 같은 사람들이야 그걸 치워서 또 돈을 벌긴 했지만.
루스카와 루스코의 차이는 다른 차원의 것이냐 아니냐의 차이다.
루스카는 차원문을 통해서 온 것이 아니라, 원래 우리가 사는 지구의 것이라는 핵심.
하지만 실제로 어떠한 증거자료도 없으니 그냥 떠도는 괴담에 가깝다.
“커다란 보석 안에 있는 것 같아.”
블루홀을 내려가던 중 지율이가 말했다.
어쩜 이렇게 말 한마디 한마디를 예쁘게 할까.
가장 무서운 공포가 미지에서 오는 거라고들 한다.
인간은 알 수 없는 것에서 가장 큰 공포를 느낀다고.
하지만 지율이에게 미지는 호기심이고 새로움에 지나지 않았다.
미지의 것을 두려워하는 게 인간의 본능이라고들 하는데, 그만큼 순수하지 못하기 때문이 아닐까.
제법 차가운 물속에서도 지율이의 손은 따뜻했다. 지율이에게도 내 손이 따뜻하게 느껴졌으면 좋겠는데.
“춥지는 않아?”
나의 물음에 지율이는 방긋 웃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하나도.”
“그래?”
“응!”
어쩌면 지금 우리가 내려가는 블루홀은 세상에서 가장 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다거북들을 따라서 깊이, 더 깊이 내려가던 중이었다.
표면이 둥근 바닥에 다다랐다.
여기가 블루홀의 끝일까?
사실 바다거북을 따라오면서 잠시 동화 같은 현실을 꿈꿨다.
바다거북과 친구가 됐을 때부터 그런 생각을 했다.
‘토끼전(傳)’, ‘별주부전(鼈主簿傳)’, ‘토생원전(兎生員傳)’이라고 불리는 동화. 정확히는 조선의 고전 소설인 ‘수궁전(水宮傳)’.
본래 구전되던 것이 조선 후기에 기록되기 시작하여 지금까지 전해져 지율이까지 읽게 됐다. 판본이 여러 개인데, 여느 동화들이 그러하듯 결말이나 내용이 다르기도 하다.
그러니 바다거북을 따라간다고 해서 간을 내줄 걱정을 하지는 않아도 된다.
“용궁은 없네?”
지율이가 블루홀의 바닥을 보고 말했다.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던 모양이다.
“그러게. 용궁으로 이어지지는 않나 보다.”
블루홀의 바닥을 보며 조금 실망하다가 의문이 들었다.
그런데 여기가 바다거북들의 집인가? 아무것도 없는데?
그때 바다거북이 고개를 돌려 지느러미 같은 앞다리를 가볍게 저었다.
바닥인 줄 알았는데, 벽 쪽으로 틈이 있었다. 우리가 가까이 다가서자 그 틈이 넓게 벌어졌다. 블루홀 끝에 자동문이 있을 줄이야.
바다거북들을 따라서 틈에 들어섰고, 블루홀의 끝보다 더 깊은 곳으로 향했다.
블루홀 밑은 또 다른 바다가 펼쳐져 확 트여 있었는데, 우리의 위로는 천장이 있는 상태였다.
천장은 또 다른 바다처럼 흐르고 있었다. 지금 우리가 들어선 곳보다는 좀 더 밝은 빛깔이었는데, 확실하게 층이 나뉜 게 보였다.
나의 상식들이 기분 좋게 무너지던 중, 지율이가 등지고 있던 벽을 돌아보며 활짝 웃었다.
“안녕!”
안녕?
나는 천천히 몸을 돌려 뒤를 바라봤다. 블루홀 끝을 틀어막고 있던 둥글고 검은 바닥. 벽 역시 둥글게 이어졌고, 한눈에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아래로 뻗어 있었다. 그리고 벽 중간에 분화구 같은 게 보였다. 두꺼운 테두리는 상아색이고, 가운데는 검었다.
분화구라 생각한 것은 살짝 움직였고, 이내 그게 무엇인지 인지했다.
눈이었다. 내 키보다도 훨씬 커다란 눈.
마력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지만, 50미터도 넘는 몸길이의 생물.
루스카였다.
악의나 살의 혹은 비슷한 무언가는 느껴지지 않았다. 루스카는 우리를 반기고 있었다. 그 온화함에 마음을 놓으며 위아래로 살폈다.
위쪽은 상어 같다더니, 단순히 위장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괴담처럼 떠돌던 말이 거짓말은 아니었네. 진짜 상어는 아니어도 상어처럼 보였으니까.
문어 같다던 다리들은 물속에서 긴 머리를 풀어헤친 것처럼 무수히 많았다. 하나하나가 부드럽게 움직였고, 몇 가닥이 다가와 우리를 쓰다듬었다. 빨판은 없고, 대신 부드러운 섬모가 자리했다.
이내 루스카는 수많은 다리들을 움직여서 나와 지율이, 바다거북들을 더 깊은 곳으로 부드럽게 밀었다.
루스카를 보고 사람이 죽었다는 것은 거짓말이 확실하다. 혹은 안타깝게도 사람이 죽는 상황에서 우연히 루스카도 본 사람이 있을 뿐이다.
“고마워어어어어!”
지율이가 루스카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묘하게 루스카의 눈에서 웃음기가 묻어났고, 해초 같은 다리들을 흐느적거렸다.
* * *
바다거북들을 따라서 더 깊은 곳으로 향하는데 점점 밝아졌다.
푸른빛으로 가득했고, 울퉁불퉁한 바닥 곳곳에서는 오로라처럼 빛이 새어 나왔다.
“빠아! 거북이 아저씨가 거의 다 왔대!”
“그래?”
“응! 조금만 더 가면 된대!”
지율이는 아름다운 바닷속 풍경을 보며 활짝 웃었다.
“이렇게 예쁜 건 처음 봐! 아빠는 본 적 있어?”
“아빠도 처음 봐.”
“진짜? 아빠도 처음이야?”
“응.”
“좋다!”
“좋아? 왜?”
“같이 처음으로 보니까!”
하긴, 앞으로 내가 무슨 경험을 하든 좋은 것이라면 지율이를 가장 먼저 떠올리겠지. 지율이 역시 비슷하게 생각을 하는 것 같아서 기뻤다.
“그나저나… 진짜 예쁘네.”
살면서 어떤 풍경을 보고 이런 생각을 할 줄 몰랐지만, 황홀하게 느껴졌다.
함께 온 바다거북들이 자신들은 여기까지라며 흩어졌다.
내가 따개비를 제거해줬던 바다거북만이 길을 안내했다.
바다거북이 인도한 곳은 입구부터 오색찬란한 빛이 뿜어져나오는 동굴이었다.
동굴 안쪽은 마치 전복 껍데기 같았다. 모든 길이 오로라로 이뤄진 것 같아서 계속해서 눈이 돌아갔다.
동굴 더 깊숙한 곳으로 들어가자 거대한 공간이 펼쳐졌고, 그 앞에는 온갖 종류의 바다생물들이 터전을 이루고 있었다.
한 곳에서는 상어와 고래가 바닥 근처에서 마주한 채로 바닥을 응시했다. 뭘 하나 하고 봤더니 선이 가로세로로 쭉쭉 그어져 있었고, 군데군데가 가운데가 빈 동그라미와 속이 꽉 찬 동그라미로 표시돼 있었다.
“허.”
상어와 고래가 오목을 두고 있었다.
내가 웃음을 참지 못하자 지율이도 얼굴에 웃음기를 가득 머금고 질문을 던졌다.
“왜? 왜애? 왜 웃어 아빠?”
“응, 저기 상어 아저씨랑 고래 아저씨 보이지?”
“아니야.”
“응? 뭐가 아니야?”
“상어 언니랑 고래 언니야.”
상어랑 고래 성별까지 구분할 줄이야.
“하하하, 그래? 그건 아빠가 몰랐네.”
“근데 저게 왜?”
“오목이라고 하는 건데…….”
오목에 대해서 잠시 설명했지만, 지율이가 완벽하게 이해한 것 같지는 않았다.
“이해했어?”
“응!”
“그래?”
“응! 둘이 논다는 거잖아!”
“그렇지, 맞아. 맞긴 해.”
바다거북을 따라 가는데 나와 지율이는 깜짝 놀라서 잠시 멈췄다.
“우와아아아아…….”
“하하하…….”
이글루 여러 채를 겹겹이 쌓아서 지은 듯한 건물이 자리하고 있었다. 겉면이 전부 반짝반짝 빛나며 마력을 품고 있었다.
보자마자 용궁(龍宮)이 떠올랐다.
“빠아! 용궁이야 용궁!”
지율이가 활짝 웃었고, 나도 공감하며 고개를 가볍게 끄덕였다. 하지만 입가에 옅은 미소를 겨우 머금을 뿐, 마음 편히 웃지는 못했다.
용궁 안쪽에 있는 무언가가 뿜어내는 마력 때문이었다. 마력만 따진다면 고성우와 비슷한 수준이 최소 수십. 그리고 독보적인 무언가가 뿜어내는 마력은 살면서 느낀 것 중에서 손에 꼽는 수준이었다.
귀촌 첫날 차원문이 생겼다 79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