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ra of a Genius Actor RAW novel - chapter 128
광활한 중국 땅에서 벌어질 정몽주와 이방원의 외교.
유명은 솟구쳐오르는 패기에 가슴을 활짝 폈다.
자신의 첫 해외로케가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끝
ⓒ 글술술
인천공항.
유명은 가벼운 여름옷 차림에 선글라스를 쓰고 밴에서 내렸다. 이번 촬영에 동행하게 된 호철도 함께였다.
비공식 일정이라 팬클럽이나 기자들은 없었지만, 낯익은 얼굴들이 하나둘 나타나자 지나가던 사람들이 조금씩 몰려들기 시작했다.
“꺄- 쟤 걔 아냐? 지난 겨울에 했던 드라마 주인공.”
“주인공 아니고 서브남주잖아, 신유명이야.”
“그래? 윤씨 아니었어?”
“바보~ 그건 캐릭터 이름이고.”
유명은 자신의 이름을 소리지르는 몇몇 사람들에게 살짝 고개숙여 인사해주고, 팀이 모여있는 곳으로 향했다.
매일 봐온 익숙한 얼굴들이 유명을 보고 이리오라며 손을 까딱거린다.
이번 중국 로케에 참여하는 것은 윤한성과 자신, 이색 분의 노배우 이근찬과 정도전 분의 민경국, 그리고 이방원의 호위무사 시헌역의 배우와 사절단 역할을 할 몇몇 단역배우들.
중국 측 인력은 현지조달한다고 했다.
려말선초의 제작사인 영화마루와 업무 협약을 맺은 중국쪽 영화제작사에서 현지에서 사용할 장비와 엑스트라들을 섭외해 뒀다고 하며, 실감나는 장면을 위해 주원장 역은 중국 배우로 손감독이 직접 캐스팅을 마쳤다고 했다.
사람들이 모두 도착하기를 기다리고 있는 와중에, 호철이 슬쩍 말을 걸었다.
“윤한성 배우님은 아직 안오셨어요?”
“아, 한성 형은 내일 새벽에 도착하신대.”
“그렇구나···근데 형, 사실 저…해외 처음가봐요.”
“나도.”
“어? 정말요?”
호철은 로드생활이 벌써 3년차이지만, 이상하게도 해외와 연이 없었다고 했다.
유명도 국제선을 타보는 것은 처음이다. 원생에서 해외 로케에 데려갈 정도로 비중있는 배역을 맡은 적이 없었고, 룰루랄라 해외여행을 다녀올 형편도 되지 못했으니, 제주도에 한 번 다녀온 것을 제외하곤 비행기를 타본 적이 없는 것.
“형은 많이 다녀왔을 줄 알았는데 의외네요. 기분이 어때요?”
“비행기에서 밥 먹는 거 좀 기대 중···”
유명이 민망한 듯 속삭였다.
국내선에선 기내식을 주지 않았다. 하늘을 날면서 식사를 하다니, 어찌 아니 신기한가. 심지어 술도 준다니.
“형은 비즈니스래요, 부럽다···! 형 그거 알아요? 비즈니스는 식사가 식기에 나온대요.”
“아, 그렇다면서. 그럼 설거지는 어떻게 하지?”
“그러게요.”
첫 해외여행을 앞둔 두 사람이 어벙한 문답을 주고받는 것을 보고, 옆에 있던 스탭들이 쿡쿡 웃었다.
“와아···”
유명은 어색한 듯 비행기에 올랐다.
제작사에서는 감독과 주요 배우들만 비즈니스석을 끊어주었다. 호철이 부러운 눈빛을 남기고 뒤쪽 칸으로 사라지자 괜스레 미안해졌다. 다같이 좋은 자리에 앉을 수 없다면, 다같이 이코노미에 타는 게 좋을텐데. 제작사의 입장을 생각하면 또 어쩔 수 없는 일
이다.
유명은 조심스럽게 자리에 앉았다. 원생에서 딱 두 번 타본 국내선의 이코노미와는 비교도 되지 않게 넓다. 유명의 눈이 휘둥그레해지자 옆자리에 앉은 민경국이 싱글거리며 옆의 버튼을 눌러준다.
지이잉-
‘어…어?’
좌석이 주욱 내려가면서 허리가 펴진다.
“와…대박!”
“큭큭. 네 표정이 더 대박이다~ 여긴 비행구간이 짧아서 167도만 펴지는 좌석인데, 180도 펴지는 좌석에 앉으면 기절하겠다.”
“그런 게 있다는 얘기는 들어서 저도 알아요, 뭐.”
“지금도 알고 있었지만 그렇게 놀란 거잖아.”
경국이 비즈니스석에 편안하게 앉아있는 걸 보니 뭔가 멋있어 보인다. 너무 초보 티를 냈나 조금 민망해진 유명은 자신도 익숙한 척 뒤로 몸을 편안히 기댔다.
그리고 곧 스튜어디스가 와서 말했다.
“손님, 이륙시에는 등받이 모두 정위치 해주셔야 합니다.”
“네…넵! 죄송합니다!”
당황한 유명이 벌떡 일어나서 등받이를 올리는 버튼을 찾아 허둥대자, 경국이 다시 한 번 빵- 터졌다.
연기할 때는 그렇게 능숙하고 대단한 녀석이 이렇게 귀여워 보이는 것도 처음이었다.
*
{신기하당, 비행기란 건 좋은 거였구낭.}
‘첨 타봐?’
{비행기를 탈 일이 뭐가 있겠냥. 내가 훨씬 빠른뎅.}
‘하기야···’
칸막이로 옆자리의 시야가 가려진 사각에서, 맥주가 공기 중으로 빨려들어가고 있다.
비즈니스석에서 무료 제공되는 맥주를 신나게 흡입 중인 미호였다.
‘맛있어?’
{나쁘지 않당.}
미호는 맥주 한 캔을 꿀꺽 비우고는, 한 캔을 더 받아 주자 아공간에 슬쩍 넣었다.
Zzz-
유명은 기내식을 먹자마자 곯아 떨어졌다. 첫 해외여행이었기에 신이 나 잠을 이루지 못할 것 같았는데, 몇달 간 촬영으로 쌓인 피로 때문인지 착륙 방송이 나올 때까지 유명은 일어나지 못했다.
쿠르릉–
우렁찬 진동에 번쩍 놀라 몸을 일으키니 중국 공항에 도착해 있었다.
“우와-”
공항에서 느낀 첫 인상은, 한국과는 냄새가 다르다는 것. 여기저기 보이는 외국어 간판들에 유명의 눈이 돌아갔지만 구경하고 있을 시간은 없었다.
이번 로케는 무척 일정이 빠듯하여, 관광할 여유는 조금도 없다.
대절한 버스를 타고 다시 몇 시간을 달려서야 도착한 곳은 절강성 항주 외각.
이번 로케의 주촬영지는 항주 인근에 있는 명나라 세트장이었다.
“오느라 수고했어요.”
이미 도착해 있던 손 감독이 반갑게 인사했고, 모두 함께 도와 부지런히 짐을 날랐다. 유명도 만류를 무릅쓰고 함께 정리를 돕다, 어느 정도 마무리 되고서야 로비의 창가에 섰다. 세트장에서 촬영하는 팀들의 인기숙소라는 이 호텔의 로비에서는 저 멀리 광활
한 세트장의 지붕들이 보인다.
“어마어마하죠?”
“네…규모가 다르네요.”
“중국에선 뭐든 커요. 크게 만드는 게 전공인가봐. 이 웅장함, 고려에 있던 사람이 처음으로 명에 도착했을 때의 놀라움과 짓눌릴 듯한 기분, 그럼에도 ‘인간의 격’ 하나로 그것을 극복하고 인정받는 그림.”
“……”
“그런 그림을 위해서 로케를 고집한 거죠. 제작사에선 싫어했지만.”
“하하.”
손감독의 솔직한 말에 유명이 웃었다.
“조금 쉬어둬요. 저녁은 주원장 역 배우랑 같이 미팅할 겁니다. 5일이지만 같이 촬영할 동료인데 인사는 해둬야죠.”
“네, 감독님.”
유명은 제 방으로 올라가 침대에 몸을 뉘었지만, 해외 첫 로케에 대한 기대로 결국 잠을 이루진 못했다.
*
명나라 시조인 주원장의 카리스마. 10만 명을 숙청했다는 잔인함과, 밑바닥에서 시작해 중국 대륙을 통일했다는 통치자로서의 특별함.
이것을 표현할 만한 배우를 찾기 위해, 손 감독은 프리프로덕션 기간에 직접 중국을 찾아 오디션까지 보았다.
뤄더룽.
올해 50세가 된 중견 배우로, 젊었을 땐 상당한 인기를 구가하다 지금은 탄탄한 연기력의 조연으로 자리잡은, 유명에게도 낯이 익은 얼굴이었다.
손감독은 이근찬, 민경국, 신유명. 그리고 동시통역사까지 대동하고 그를 만났다.
“어서오시죠, 뤄더룽씨.”
[안녕하세요.] (*중국말은 [ ]내에 표기)“저희 배우들과 인사하시죠. 이방원 분의 신유명씨, 정도전 분의 민경국 씨, 이색 분의 이근찬씨 입니다.”
“반갑습니다.”
[봔괍, 쑵니다.]어디서 배웠는지 뤄더룽이 어설픈 한국말로 인사하자, 웃음이 터지며 분위기가 화기애애해졌다.
[주연 배우는 아직 안 오셨습니까?]“네, 다른 스케줄 때문에 내일 새벽에 도착한다고 합니다.”
[그래요? 주연 배우가 당일날 도착하다니…쩝.]그가 슬쩍 혀를 찬다.
묘하게 부정적인 말투다. 사람좋은 웃음을 띠고 있어 호인 타입인 줄 알았는데, 이후로도 그는 애매하게 거슬리는 말을 툭툭 던졌다. 동시통역사가 뉘앙스를 잘못 전달하는 것이라고 믿고 싶을 정도로.
[베를린 영화제에서 수상하셨던 손감독님의 영화는 정말 인상깊게 봤습니다. 존경합니다.]“하하, 보셨습니까.”
[네, 꽉 짜여진 스토리도 그렇고 화면의 질감이나 아름다움이 참으로 인상적이었습니다.]“감사합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좀 실험적인 작품입니까?]“네?”
또다.
[별로 유명한 배우는 없더라구요. 주연인 윤도 아직 필모가 많지 않고, 준주연인 신도 데뷔한지 얼마 안 되는 신인이고…조연들 중 엔 유명한 배우들이 좀 있는 것 같긴 같던데 주연들은 흠…이번엔 신선한 마스크를 쓰는 전략인 것인지···?]돌려돌려 말하지만, 해석해 보면
배우 라인업이 신통치 않다는 의미.
그 말에 감독의 눈썹이 꿈틀했고, 다혈질인 민경국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졌다.
그 분위기를 아는지 모르는지 뤄더룽이 한 마디를 덧붙였다.
[저는 손감독님과의 작업을 무척 기대하고 있었는데, 프로 대 프로의 무대가 아니라고 생각하니 조금 맥이 빠지는 느낌이 있습니다, 하하. 뭐 상황이 어쨌든 저는 배우로서 최선을 다할 테지만요.]무명생활이 길었고, 약 5년 전부터 연기력을 인정받아 스타의 반열에 올랐지만 중국 쪽에서 유명한 작품은 없는 한성.
그리고 이제 막 작품활동을 시작한 신인배우 유명을 겨냥한 도발이었다.
‘……’
유명도 화가 났다.
무명생활이 오랬던 그였기에 타인의 무시와 폄하는 별로 멘탈을 흔들지 못했다.
자기 자신에 한정되었다면 말이다.
하지만 한성까지 걸고 넘어지자, 유명은 순간 손발이 싸늘히 식을 정도로 감정이 격해졌다.
한성의 오랜 좌절, 그것을 뛰어넘은 노력, 그리고 이미 연기법이 몸에 익은 나이에 새로운 연기법을 체득하기 위해 발버둥치던 겸손과 열정.
프로가 아니라는 말을 결코 그에게 쓰지 못한다.
참지 못하고 입을 열기 직전에, 먼저 터진 것은 민경국이었다.
“본인이 알지 못한다고 세상을 얕잡아보는 것은 소견이 좁은 거지요. 는 보셨습니까? 은요?”
그 두 작품은, 윤한성이란 배우의 진가를 드러냈다는 평을 받는 작품들이었다. 은 손감독의 작품이기도 했다.
“손감독님을 존경하신다면서, 감독님 작품도 모두 안 챙겨보신 분이 감독님이 캐스팅한 주연 배우를 얕보는 건, 그 분께 캐스팅된 자기 자신의 연기도 그냥 그렇다는 겁니까?”
“민배우···”
손감독은 말리는 척 하면서도, 통역사가 그 얘기를 옮기는 것을 중지시키진 않았다.
그도 은근히 배알이 꼴렸던 모양이다.
그리고, 민경국의 말을 전해듣고 뤄더룽의 표정이 시뻘개졌다.
[말이 너무 심한 것 아닙니까?]“제가요? 엄청 차분하고 이성적으로 꾹꾹 참으면서 최소한의 말만 한겁니다만?”
둘 사이에 파지직 불꽃이 튀었고,
손감독이 그제서야 허허- 능구렁이같은 웃음을 지으며 중재에 나섰다.
“뤄더룽씨, 원래 배우들이 연기와 자존심 빼면 시체 아닙니까. 민배우가 좀 발끈 했지만, 솔직히 그럴만한 소지가 있었긴 해요. 지금 배우들은, 제가 심혈을 기울여 뽑은 최적의 배우들입니다. 연기력도 열정도 제가 평생 한 작품 중 최고에요.”
[…흠, 그런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