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ra of a Genius Actor RAW novel - chapter 175
그 때,
쿵-
소리가 들렸다.
투명한 벽에 갇힌 듯 벽을 두드리는 마임.
세 명의 배우가 몸부림치는 모습이 밝은 조명에 반사되어 망막으로 전달된다.
그들이 울고, 웃고, 소리지른다.
한계까지 달아오른 감각에 ‘소리’라는 자극이 추가된다.
아아. 느껴진다.
팽팽히 부풀어올라 압축된 공기에 배우들의 색깔이 물든다. 세 개의 거대한 기단이 자신을 사이에 두고 밀고 밀리기를 반복한다.
그들이 내뿜는, 강렬하고 다채로운 에너지는 기감이 예민한 전병우에게는 만찬과 같았다.
심지어 생애 최초의, 눈으로도 즐길 수 있는 만찬.
‘이것이 늘 보면서도, 보지 못했던 세계.’
갑자기 배우들의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눈물이 앞을 가렸으므로.
그는 재빨리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아냈다. 이 사치스런 만찬의 한 코스라도 놓치지 않기 위해서.
*
“제가 어떻게 이런 행운을 얻을 수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정말 감사합니다.”
유명은 허리를 깊이 숙이는 그를 만류하며, 더욱 깊이 고개를 숙였다.
“아닙니다. 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희에게도 새로운 시도를 해볼 수 있었던 의미있는 공연이었습니다. 공연은 즐겁게 보셨는지요?”
“…평생 오늘을 잊지 못할 겁니다.”
“…제가 괜한 일을 한 게 아닌가 모르겠습니다.”
그 말을 할 때 묻어있는 먹먹한 표정을 보며, 유명은 가슴이 아팠다.
처음 이 아이디어를 생각했을 때도 고민했었다. 혹시나 이번 공연을 본 후, 앞으로 그의 상실감이 더 커지는 것이 아닐까 하고.
무대에서 한없이 존재감이 약하던 과거의 신유명에게, 딱 한 번만 제대로 연기할 기회를 준다면, 그것은 상일까 벌일까···?
“괜한 일이라뇨!”
하지만 그는 단호하게 부인했다.
“이 공연은 단순히 ‘잘 보이는’ 공연이 아니었습니다. 무대 위에서 배우들의 에너지를 그대로 느낄 수 있는, 공연 매니아라면 전 재산을 주고라도 볼 공연인데요. 물론 이런 기회가 다시 없을 것이 아쉽지만, 그건 제가 아니라 다른 눈이 멀쩡한 사람이었다고 해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유명이 그의 말에 안도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진짜’ 배우들의 ‘진짜’ 연기가 어떤 건지 알았으니, 이제부터는 공연 중에 소리만 들리더라도 표정을 상상하면서 볼 수 있을 겁니다. 배우님은 제게 그 상상의 소재를 제공해주신 겁니다.
어쩌면 저는 행운아일지도 모르겠군요. 무슨 공연을 보더라도 최고의 연기를 상상하면서 볼 수 있을 테니까요.”
그리고 그의 극찬에 얼굴을 붉혔다.
“너무 과찬의 말씀입니다. 그리고···”
“…?”
“가끔 연습장에 놀러오시겠어요? 이번처럼 공연을 따로 준비해 드리긴 어렵겠지만, 연습장에선 연기하는 모습을 훨씬 가까이서 볼 수 있어요.”
“…왜 제게 이런 과분한 호의를···”
황송해하는 전병우를 깊은 눈빛으로 바라보며,
유명은 마음 속으로만 대답했다.
‘제 유일한 팬이었던 당신이 아니었다면, 저는 그 때 연기를 포기했을지도 모릅니다. 지금 여기에 제가 있는 건 어쩌면 당신 덕분인걸요.’
*
6월 초순, 인천공항.
두 명의 외국인이 비행기에서 내려, 서울 시내로 들어가는 리무진을 탔다.
한 명은 희끗한 금발 머리에 선글라스를 쓰고 있다. 숱이 적어진 머리와 배가 나온 체형의 50대 장년 남성. 하지만 선글라스를 벗자 드러난 푸른 눈에는 제 나이로 보이지 않는 경쾌함이 있었다.
그에 비해 다른 한 명은 호리호리한 몸매에 갈색 곱슬 머리를 가지고 있다. 얼굴에 팬 주름이 나이를 말해주지 않는다면 10살은 훌쩍 어리게 볼만큼 관리가 잘 된 남성. 하지만 날카로움과 진지함을 담고 있는 눈빛이 그의 경륜을 말해주는 듯 하다.
[정말 12시간을 날아올 가치가 있는 일이야?] [물론! 내가 휴가를 낸 시기를 생각해봐. 위고 자네보다 내가 더 무리했다고.] [그건 그래. 영화제 수습은 누구에게 맡기고 도망친 거야?] [알리스지. 5월28일에 영화제가 끝나고 일주일 후부터 휴가를 내겠다고 했더니 내 목을 조르려고 하더군.] [알리스, 참을성이 대단하군. 목만 조르다니.]그들은 프랑스어로 대화를 나누었다. 그리고 대화의 내용에 따르면, 금발 남자가 갈색머리 남자를 끌고 온 듯 했다.
[어쨌건, 나와 여행오는 것도 오랜만이잖아, 친구. 이건 휴가야. 쉬이 올 수 없는 동양의 아름다움을 즐기자구.] [동양의 아름다움? 어디?]위고라고 불린 사내가 주변을 훑으며 물었다.
공항 리무진의 창으로 보이는 풍경들은 거대한 빌딩숲을 가득 담고 있었다.
금발 남자가 그의 불퉁한 표정에 웃음을 터뜨렸다.
[맞아. 내가 표현을 잘못 선택했군. 이왕 온 휴가이니 이 정신없는 나라를 마음껏 즐겨보자구. ‘그 공연’은 아직 며칠 후니까.] [난 아무것도 모르니 자네가 책임져, 발롱.]금발 남자의 이름은 발롱.
발롱 드 파루지에, 칸 영화제의 수석 프로그래머가 다시 한국을 찾았다.
아직 정체를 알 수 없는 한 명의 친구를 데리고.
131 한국배우들은 다 이래?
발롱은 약 두 달 전, KBK의 인터뷰 요청을 받았다.
-이 인터뷰, 목적이 뭔가요?
-저희 방송국에서 신유명 배우의 다큐멘터리를 찍고 있습니다.
-오오, 그 사이에 다큐를 찍을 정도의 배우가 되었습니까?
-그렇습니다. 전작 영화가 대히트를 쳤고, 지금은 연극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연극요?
영화제 프로그래머들은 한 번 눈에 든 감독이나 배우들을 주기적으로 체크한다. 를 본 후, 발롱은 신유명의 이후 행보를 체크하고 있었다. 영화를 찍었다는 소식도 한국 쪽 소식통을 통해 당연히 들었다.
그 영화를 칸에 초대하려는 욕심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배급시기를 이미 받아놓았고, 한국 역사를 배경으로 한 작품이라는 말을 듣고 다음을 기약했었다.
그런데 연극을 준비 중이라고…?
-어떤 연극입니까?
-을 재해석한 공연으로…
발롱의 문화적 소양은 넓게 걸쳐 있었다.
그 중에서도 단연코 영화, 그리고 연극, 발레 등의 문화공연에 사족을 쓰지 못했다.
피디에게 의 내용을 전해 들으며, 그의 촉이 바짝 곤두섰다.
기록된 매체는 나중에라도 볼 수 있지만, 무대 공연은 그 때 그 시점이 지나가면 다시는 보지 못한다는 것이 궁금증을 더했다.
-혹시, 대본을 좀 공유받을 수 있겠습니까? 물론 사적으로 이용하는 일은 없을 겁니다.
몇 가지 절차를 밟아, 의 대본이 넘어왔다. 물론 한국어 대본이었지만, 이 때 영화제 프로그래머인 그의 직업 특성이 빛을 발한다. 가장 실력있는 한국어 번역가가 실비로 번역을 맡아 준 것이다.
그리고 번역된 대본이 자신에게 넘어온 날, 그것을 단숨에 읽어치운 발롱은 결심했다.
‘이건 봐야겠어.’
과감한 결심이었다.
올해의 칸 영화제는 5월 17일에서 28일까지.
피터팬의 일정은 5월 27일에서 6월 18일까지이다.
초연을 보는 것은 당연히 불가능하고, 영화제 종료 후 산더미같이 처리해야 할 뒷수습들을 생각하면 6월 18일 이전에 휴가를 쓰는 것은 상당한 무리이다.
하지만, 그는 그 무리를 했다.
피터팬의 대본을 본 이후로, 지금 이것을 보지 않는다면 평생 후회할지도 모른다는 초조함에 휩싸였다. 2년 전의 그 배우가 지금은 어떤 연기를 하고 있을지가 눈 앞에 아른거렸다.
결국 자신의 부재 시 역할을 대행할 알리사에게 휴가를 가겠다는 얘기를 꺼냈고, 그녀의 온갖 질타와 구박을 견딘 끝에, 6월 12일부터의 휴가를 쟁취해냈다.
그리고 그는 두 명에게 연락을 했다.
-위고, 짐을 싸게. 한국 가본 적 있나? 휴가를 떠나보자고.
-알로? 마담 까미유? 잠시 통화 가능한가요?
그 중 한 명인 위고와 함께, 그는 한국에 도착한 것이었다.
*
[안녕하세요.]다음 날, 발롱은 위고를 호텔에 남겨두고 어느 곳을 향했다.
그가 이번 여행에서 꼭 만나고 싶은 두 명 중의 한 명을 찾아서.
[정말 오셨네요, 안녕하세요.]그가 찾은 곳은 한 개인 연습실.
머리를 틀어올린 아름다운 여성이 땀을 닦으며 그에게 손을 내민다.
의외로 능숙한 영어와, 당황하지 않은 차분한 음성으로.
그녀는 영화에서 보았을 때보다 좀더 선이 가늘어져 있었지만, 근육은 결이 보일듯이 예리한 각이 살아있었다.
얼마나 높은 강도로 몸을 단련해 왔는지, 발레에 조예가 깊은 발롱은 금세 눈치챘다.
[발롱 파루지에라고 합니다, 마드모아젤 세련.] [반갑습니다. 오시느라 고생하셨어요.]세련은 한 달 전쯤, 기도한 감독을 통해 발롱의 연락을 받았다.
그는 대단한 발레 팬이라고 했고, 에서 세련을 보고 그녀의 재기를 마음깊이 응원하고 있다며, 실례되지 않는다면 재활이 잘 되어가는지를 알려줄 수 있냐고 했다.
고맙다면 고맙고, 부담스럽다면 부담스러운 질문.
하지만 세련에게 그는 고마운 사람이었다.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를 본 그의 발언이 영화를 부스팅했다.
제작자로서가 아니라, 그 덕분에 유명이 좀 더 빨리 뜬 것이 고마웠다.
물론 유명은 그런 행운 따위 없었어도, 가 잘 되지 않았다 해도 금세 날아올랐을 사람이지만…그래도 그를 띄워올린 것에 자신의 역할이 조금은 있다는 것이 세련에겐 커다란 마음의 위안이었다.
그래서, 발롱이 한국에 올 때 한 번 보고싶다고 청했을 때도, 별다른 불쾌감 없이 승낙했던 것이다.
연습실 한 쪽에 놓인 테이블에 마주앉아, 발롱과 세련은 이야기를 나눴다.
발레에 조예가 깊은 사람들끼리의 전문적인 수다를 조금 떨다, 발롱은 조심스럽게 준비해 온 이야기를 꺼냈다.
[들어올 때 보니, 푸앵트(*발 끝으로 서는 발레의 기술)가 이제는 되시는 건가요?] [한 번 나간 인대는 복구가 안 된다고 하더군요. 주변의 보조근육들의 힘을 길러서 겨우 서기는 하는데 오래는 못 해요. 덕분에 양 다리의 두께가 달라졌죠.]그녀가 웃으며 두 다리를 뻗어보인다.
그 얘기를 듣고 보니 오른쪽 다리가 왼쪽보다 좀 더 굵어 보인다. 담담한 웃음 밑에 깔린 어마어마한 고통과 인내를 상상하며, 발롱의 눈썹이 조금 처졌다.
[재활, 힘드시지 않습니까. 그 때부터 벌써 2년이나 되었는데 도중에 포기할 생각은…] [상상했던 것 보다는 덜 힘들어요. 힘들까봐 도피하고 있을 때 마음이 힘들던 것보단, 지금 몸이 힘든 게 낫더라고요. 그리고, 포기할 생각은 없어요. 적어도 내년까지는.] [내년까지…요?] [그 때까진 아무 생각없이 노력해보기로 했어요. 약속한 게 있어서요.]그녀가 묘하게 아름다운 미소를 지었다.
그녀의 말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한 채로, 발롱이 본론을 꺼냈다.
[혹시 유학갈 생각 없으십니까?] […유학…요?] [세계 최고의 발레 재활전문가가 프랑스에 있습니다.]달관한 듯 차분하던 세련의 눈이 처음으로 흔들렸다.
[혹시…마담 까미유…] [아시는군요, 저와는 오랜 벗이지요. 그녀에게 를 보여주고, 세련씨의 사정을 얘기했더니 관심을 보이더군요.] [……]세련은 말을 잃었다.
그녀는 지난 2년간 최선을 다했다.
받아주는 발레단이 있을 리 없었기에 혼자 연습을 했다. 스포츠 재활전문가가 붙어서 그녀를 도왔지만, 국내에는 ‘발레’에 특화된 재활전문가는 없었기에, 그녀의 투쟁은 무척 외로웠다. 길잡이가 없고 고지도 보이지 않는 길.
그리고 지금 발롱이 내민 것은, 그녀가 꿈꿔본 적 없었던 최고의 카드였다.
[왜 제게 이런 기회를…] [이번에 한국에 올 기회가 생겼는데, 세련씨의 무대를 보고 싶어서 알아보았습니다. 그리고 그때부터 지금까지 재활을 계속하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마음이 아팠구요. 미리 연락을 못드려서 죄송할 따름입니다.] [……] [어차피 앞으로도 1년은 더 해보실 생각이라면, 최고의 전문가와 함께 해보시지 않겠습니까?] [정말…그래도 될까요?] [부탁합니다. 세련씨의 지젤을 영상이 아닌 무대에서 보고 싶었어요.]그녀의 눈에 기쁨의 눈물이 고였다.
그 날부터 그녀는 프랑스에 갈 채비를 시작했다.
*
[이 나라의 음식은 모두 악마의 음식이야, 매워.] [잘 느껴봐. 매운 맛 안에 단 맛도 깊은 맛도 있어. 풍미가 있다고.] [혀가 어떻게 된 것 아니야?]발롱과 위고는 대학로의 한 낚지볶음집에 앉아 있었다.
위고는 6월인데도 벌써 쪄오기 시작하는 한국의 이른 더위와, 매연과, 매운 음식들에 불평을 토해냈다.
발롱은 몇 년 전에 그와 함께 브라질 여행을 갔을 때를 떠올렸다. 그 때도 저랬지. 뭘 해도 투덜거려서 결국에는 대판 싸우고, 다시는 그와 함께 여행을 가지 않으리라 결심했었다.
[도대체 왜 이 먼 나라까지 휴가를 온 거야? 마음에 드는 게 하나도 없는데. 그냥 쾌적한 프로방스의 호텔에서 수영이나 했으면 좋았잖아?] [재미있는 게 있다니까. 자네도 좋아할 거야.]그럼에도 이 먼 나라까지 그를 데려온 이유는, 꼭 보여주고 싶은 배우가 있어서.
사적인 공간에서는 저렇게 어린애처럼 투덜거리는 저 인간은, 본인의 일에 있어서만큼은 세계 최고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기에.
그가 그 배우를 보면 어떻게 평가할지가 궁금했다.
[대본은 읽어봤어?] [대본?] [오늘 우리는 연극 하나를 보러 갈 거야. 이메일로 대본을 보내뒀는데 못 봤어?] [연극?]그는 예술가들이 종종 그러하듯, 여행을 가기 위해 비행기표를 예약하고, 숙소를 예약하고, 일정표를 짜는 현실적인 잡무에 관심이 없었다. 발롱은 여러 번의 시행착오 끝에, 그에게 그런 기대를 포기했다.
당연한 듯이 자신이 일정을 짜고, 예약을 했고, 이메일로 보내주었던 일정표에는 연극 대본도 첨부했지만, 아예 메일을 열어보지도 않은 것이 분명하다.
[메일 보냈다고 했잖…후, 됐다. 지금이라도 읽어봐. 공연에 영어 자막은 안 나온다고.] [흠…제대로 된 대본이겠지? 이 더운 날 엉망인 대본은 너무 가혹해.] [읽.어.봐.]말 안듣는 아이에게 최종경고를 날리는 엄마의 빡침이 발롱의 목소리에 묻어나자, 위고는 드디어 입을 닫고 대본을 펼쳤다.
그리고 한 마디도 부언하지 않고 대본을 끝까지 읽어내렸다.
탁-
[어때?] […재밌네, 이거.]그의 눈빛이 조금 바뀌어 있었다.
[그렇지? 아이디어가 기발하지?] [피터팬은 확실히 insane하지. 나도 그런 생각해 본 적 있어. 그것보다 내가 재밌다는 포인트는, 대사들이 다면적이야.] [설명하자면?] [한 사람이 쓴 대본이 아니야, 이건. 보통 한 작가가 여러 인물을 만들어 내면 아무리 캐릭터를 다르게 한다 해도 겹치는 그 작가만의 느낌이 있거든. 그런데 이 대본에서는 캐릭터의 느낌이 제각각이야. 공동집필가가 네 명인가? 그건 좀 특이한데.]눈으로 본 듯이 정확한 분석을 해내는 친구를 보며, 발롱은 감탄했다. 평소엔 하등 쓸모없는 투덜이지만, 역시 제 일에 관해서만은 쓸모가 있다.
[좋은 통찰력이야. 대본이 만들어지기 전에 캐스팅을 먼저 했대. 그리고 각자가 그 배역에 몰입해서 대사를 쏟아낸 걸 정리한 형식의 실험극이라더라고.] [호오..또 그렇다기엔 대본이 조잡하지 않고, 메세지가 일관되어 있는데…]위고는 대본을 다시 들추어 보았다.
발롱의 말이 사실이라면, 상당히 재미있는 시도이다. 네 명이 그렇게 대사를 얽어나가서 이 정도의 퀄리티를 뽑아냈다면, 넷 다 상당한 자질의 배우라는 뜻인데.
[개연한지 얼마나 됐지?] [3주. 오늘이 19회차 공연이야. 내일로 공연이 끝난다더군.] [표는 어떻게 구했어?] [주연배우의 기획사에 연락했어. 표를 구할 수 있다는 확신도 없이 한국까지 올 수는 없었으니까.] [주연배우가 예전부터 얘기하던 그 한국 배우인가? 연기는 잘 하는 거겠지? 대본 보니까 연기력이 못 받쳐주면 코메디가 될 것 같은데.] [기대해도 돼. 어서 대본이나 숙지하셔. 이해 못해서 도중에 졸지 말고.] [벌써 머리에 넣었어, 대본은 바로 입력된다고.]그가 자신만만하게 관자놀이를 톡톡 두들겼다.
6시 반이 되자, 그들은 낚지볶음집에서 일어나, 매운 입을 물로 가시고 줄라이 극장으로 향했다.
그리고, 극장 앞에 끝도 없이 늘어선 행렬을 보고 벙찐 표정을 지었다.
[이건…무슨 상황이야?]*
그들은 극장에 들어섰다.
유석이 마련해준 자리는 vip석 중에서도 가장 좋은 자리인, 3열의 중앙 자리였다.
[도대체 그 인파는 다 뭐야?] [연극 제작 과정이 다큐로도 나왔다고 하니, 상당한 유명세를 타고 있는 모양이지?] [흠…무대는 상당히 단촐하네.]극장 안.
전문가의 눈에는 공연 전부터 많은 것들이 들어온다.
커튼이 쳐 있지 않아 훤히 드러나 있는 무대는, 매우 간단히 구성되어 있다.
상징화된 무대는 장단이 있다. 무대 사용이 무척 자유롭다는 장점이 있는 반면, 상황에 몰입할 수 있는 디테일이 떨어진다는 것이 단점. 결국 그것이 초라한 무대가 되냐, 상상력이 풍부한 무대가 되냐는 ‘연기’의 퀄리티에 따라 갈린다.
[점점 기대가 되네.] [뭘 보고서?] [관객들의 분위기. 기대감이 엄청나.]위고는 그 말을 끝으로 입을 닫았고, 발롱은 확 진지해진 그의 모습을 보고 싱긋 웃었다.
그러는 사이에 객석이 모두 들어차고, 객석등이 어두워졌다.
다시 객석등이 밝아왔을 때, 그들은 짜기라도 한 듯 얼굴을 마주보았다.
멍한 표정의 발롱에 비해, 위고는 입술이 꾸욱 다물려있었다.
그것이 공연을 보고난 직후, 위고의 첫마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