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ra of a Genius Actor RAW novel - chapter 48
“음···”
“여…역시 별론가요? 비판도 괜찮으니 솔직한 평가 부탁드립니다.”
유리가 생긋 웃었다.
“좋네요.”
“…네??”
“민주란 버전과는 느낌이 상당히 다른데 장면의 참신성이 좋아요. 솔직히 대사나 장면의 연결에 미숙한 부분이 많이 보이긴 하는데, 신선해요. 특히 딱 한 번, 하이드가 지킬로 변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이 부분.”
“아, 네···”
“우리 배우들, 이거 소화 가능한가요?”
유리가 류신과 유명을 보고 장난스럽게 도발했고, 유명은 그 모습을 보고서 안도했다. 정말로 대본이 마음에 든 모양이다.
각색.
원작이 있는 작품을 공연용으로 만드는 일.
이 작업은 각색가에 따라 결과물이 천차만별이 된다.
소설의 전체 내용 중 장면으로 뽑혀나오는 것은 일부이며, 그 때의 상황이나 대사들은 각색가가 원작의 분위기만 차용해 온전히 창조하는 경우가 많다.
도 대화문보다는 심리 묘사가 많은 고전문학이기에 준호가 대부분 대사를 채워넣었는데, 경험이 없다보니 아쉬운 부분들이 왕왕 보였다.
그럼에도 유리 말대로, 참신함이 돋보이는 대본이다. 디테일은 조정할 수 있다.
“준호야. 대사는 배우들이, 장면은 연출이 좀 건드려야 할 것 같은데 괜찮아?”
“으…응! 얼마든지. 그런데 고치는 과정은 같이 봤으면 좋겠는데. 나도 공부가 되니까.”
“괜찮으시면 연습 함께 참여하시겠어요? 오디우스 객원 멤버로 등록하고 세미 연출부로 연습 참관하셔도 될 것 같은데.”
“정말요?!”
준호의 얼굴이 기쁨으로 가득 찼다.
“그래주시면 정말 감사하죠! 매일 연습실에 가겠습니다. 대본도 보이는대로 계속 수정할게요.”
“네, 쉽지 않겠지만 라이브로 고치면서 같이 만들어봅시다. 저희가 더 고마워요.”
유리가 손을 내밀었고,
준호가 발개진 얼굴로 그 손을 덥석 잡았다.
*
Rococo F/w season up.
디자이너 안즈의 [로코코]가 화보 릴리즈에 들어갔다.
연습에 여념이 없는 유명도 그것만은 알 수 있었다. 대학가에 엄청난 화제가 되었기 때문이다.
잠시 가게에 들렀을 때, 민희는 그 뒷사정을 소상히 알려주었다.
“화보가 너무 잘 나와서 과감한 전략을 쓴거래.”
“어떻게요?”
“‘선영아 사랑해’ 기억나?”
“어우, 당연하죠.”
00년 한국을 휩쓸었던 광고가 있다.
전국 대학가와 골목 곳곳에 붙었던 포스터에는 아무런 설명도 없이 ‘선영아 사랑해’라는 글씨만 인쇄되어 있었다. 도대체 무슨 목적인지, 어떤 남학생의 고백 이벤트는 아닌지 관심이 초집중되었고, 갑론을박하던 사람들은 10일 후에 뒤통수를 맞았다.
한 여성포털의 광고였던 것.
“그 아이디어를 차용한건데, 수연이 화보를 엄청 찍어내서 대학가에 붙였대. 애가 워낙 예쁜데다 사진이 분위기 있게 나왔으니까, 누구냐고 난리가 나지 않았겠어? 포스터를 종류별로 수집하는 사람도 생기고, 인터넷에 포스터 거래하는 사람들까지 있다지 뭐야.
덕분에 편집샵들에서 로코코에 선주문 들어오고, 난리도 아니라더라.”
“헐…대박났네요.”
“네 ‘등’도 유명해졌던데? 으하하. 여기 그 등남 있다고 떠들고 다니고 싶다.”
“참아요 제발.”
그랬다.
로코코 화보에 ‘등’만 등장하는 남자모델도 화제였다. 등만 봐도 잘생김이 보인다는 평이였다.
유명은 등하교하며 여기저기 붙어있는 사진들에서 제 등을 볼 때마다 민망해서 고개를 돌렸다. 쉬는시간에 여학우들이 ‘그 ‘등남’ 누구냐는 열띤 토론을 들을 때마다 슬그머니 자켓을 걸쳐서 등을 가리기도 했다.
“아, 그러고보니 수연이한테 연락 안 왔니?”
“네? 연락처도 모르는데.”
“얼마전에 안즈가 연락와서 수연이가 네 연락처를 물었다고 하더라고. 이유를 물어보니 그냥 묻고싶은 게 있어서 그렇다고 해서 알려줬다던데.”
“그래요? 연락 안왔어요.”
“그날 너한테 반한 거 아냐? 흐흐. 눈빛이 심상치 않았어. 연락처는 받았는데 맘만 끓이다가 아직 연락 못한 거 아닐까?”
“누나 제가 아까 말한 거 기억나요?”
“응? 뭐?”
“참아요 제발.”
민희가 버럭하며 유명의 등짝을 때리려는 것을, 그는 가볍게 손목을 잡아 제압했다.
‘설수연이 내 연락처를 물어갔다라…’
유명은 잠시 그녀의 얼굴을 떠올렸다. 드라마틱한 마스크와 애절한 눈빛.
그 눈빛은 갈구하는 게 있었지.
무엇을 묻고싶은지는 알 것 같았다. 하지만 정말 연락할 만큼 용기를 낼런지 모를 일이다.
‘절박하면 연락하겠지.’
유명은 떠오르는 생각을 간단히 일축하고, 다시 대본을 들여다보았다.
*
[안녕하세요. 로코코 화보 함께 작업했던 설수연이라고 하는데 혹시 기억하실까요.]한 통의 문자가 도착한 것은 그로부터 일주일이 지난 후였다. 유명이 준호의 새 대본을 외고, 본격적인 연습에 진입한 지 2주만인 10월 둘째주.
무척 용기를 짜낸 것이 여실한 그 문자에, 유명은 선선히 답을 했다.
[그럼요. 화보 무척 화제던데 축하해요. 어쩐 일이세요?] [아, 제가 좀 여쭙고 싶은 게 있는데···] [뭐든 편하게 물어보세요.] [직접 보고 묻고 싶은데 혹시 시간 좀 내주실 수 있으세요?]유명은 수연을 학교로 불렀다.
공연 준비로 시간을 빼기 힘들다는 문제도 있었고, 수연의 고민을 짐작하기에 보여주고 싶은 것이 있기도 했다.
“와, 저 사람 봐···”
“저거 사람 맞아? CG 아냐?”
“아, 연예인이다. 그 티저 화보 모델!”
캠퍼스 내에 등장한 미녀의 효과는 굉장했다. 화보로만 봤을 뿐 익숙한 연예인이란 느낌이 없어서 그런지, 학생들은 섣불리 말을 걸지는 못했다. 그렇지만 왠지 그녀 주변의 인구밀도가 자꾸 증식하고 있었다.
“잘 찾아왔네요.”
유명은 그들에게 쏟아지는 시선을 보고, 황급히 머리에 쓰고 있던 야구모자를 벗어 그녀에게 씌웠다. 아직 신인인 그녀는 자신의 유명세에 대한 감이 전혀 없는 모양이다.
수연도 그제서야 아차 한 듯 가방 안에서 선글라스를 꺼내썼고, 시선이 조금씩 흩어져갔다.
“아..몰랐어요. 죄송해요.”
“아니에요. 뭐 한 잔 마실래요?”
자판기에서 뽑은 350원짜리 캔커피를 하나씩 손에 쥐고, 유명과 수연은 한적한 벤치에 앉았다. 캠퍼스는 조금씩 붉고 노란 덧옷을 입어가고 있었고, 하늘이 시리도록 푸르렀다. 가을이었다.
“요즘 바쁘겠어요, 로코코 대박나서 일 많이 들어오죠?”
지나가는 인사로 물은 한 마디에, 수연의 얼굴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이런, 첫마디 부터 정곡을 건드린 모양이다.
“…일은 많은데요. 그때처럼 몰입이 안 돼서 작업할 때마다 문제가 생겨요. 어떨 땐 계약 취소 당하기도 하고…저, 혹시 그 때 어떻게 하신건지…콜라도 먹어보고 그 때처럼 머리 속에 흰 점도 그려봤는데 잘 안 돼서···”
한참을 망설이던 수연이 말을 힘들게 주워 섬긴다. 손 끝이 파르르 떨리고 있다.
유명은 그녀의 말을 조용히 끝까지 들은 후, 질문했다.
“연극연습, 본 적 있어요?”
.
.
오디우스 연습실.
유명과 함께 들어온 낯선 여자의 모습에 모두들 입을 벌린다. 인간의 외모가 아니다.
“유명아. 이 처…천사분은 누구시니. 혹시 여동생분이십니까, 형님!”
수호가 먼저 난장을 떨었고,
“같은 등급의 유전자가 아닌데요? 혹시 유명. 너의 주인님?”
혜선의 말도 안 되는 드립에 수연이 풉-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그 웃음에 수호는 넋이 나갔다.
“말도 안돼. 천사가 웃었어…”
“형, 정신차려요.”
유명이 웃으며 수호를 밀어낸 후, 유리에게 양해를 구했다.
“연출. 연습 참관 좀 가능할까?”
“누구신데?”
“외부인. 연기 지망생인데, 조금 헤메고 있어서. 이럴 때 남의 연습 보면 풀리기도 하잖아.”
“아아···”
유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참관을 아무나 받아주지는 않지만 그런 사정이 있다면야.
“편한 자리에 앉아서 구경하세요. 중간에 바쁘시면 조용히 나가시면 돼요.”
“네, 감사합니다.”
수연이 조용히 자리에 앉았고, 연습이 시작되었다.
‘정말 다들 대단해.’
하나-
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