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by Tyrant RAW novel - Chapter 194
194화. 나를 죽여줘
아벨라르도의 땅이 에이단을 거부하다니.
“신성력 때문에?”
“아마 그렇겠지.”
“하지만 내 신성력은 괜찮잖아.”
오히려 검은 기운을 억눌러 겹겹이 둘러싼 금제에도 이성을 되찾게 하기도 했다.
“어쩌면 브리브리 네 신성력만 괜찮은 걸지도 모르지. 다른 사제들의 신성력, 쐬어본 적 없지 않아?”
에이단은 불사의 몸을 가지고 있으니 상처를 치유할 필요가 없어 더욱 다른 사제들의 신성력에 노출될 일이 없었다.
‘그렇다고 지금 당장 실험을 할 순 없으니까.’
우선은 안색이 파리한 에이단을 쉬게 해야 했다.
나는 에이단의 개인 방에 들어와 문을 닫았다. 여전히 괜찮은 척 버티고 있는 에이단을 침대 방향으로 밀자 에이단이 힘없이 앉았다.
“그만 버티고 누워.”
“견딜 수 있습니다.”
“아니. 견디지 마. 아프면 쉬어야 해.”
고통에 익숙한 사람은 티 내는 법을 모른다. 에이단이 딱 그랬다.
하지만 익숙하다 해서 아프지 않은 건 아니었다.
“에이단은 황성에 먼저 돌아가는 게 좋겠어. 여기에 있으면 계속 아플 테니까.”
“……싫습니다.”
고통을 참느라 인상을 쓰고 있는 얼굴은 정말 고집스러웠다. 황명이라고 해도 듣지 않을 것 같았다.
결국 나는 한발 물러났다.
“신전 안은 여기보다 신성력 농도가 짙을 텐데, 안 들어가는 게 좋을 거야. 그러니까 이 여관에서 대기하고 있어. 응?”
여전히 내 명령이 마음에 들지 않는 듯했지만 에이단은 끝내 수긍했다.
괜찮다는 에이단을 침대에 눕혀 이불까지 덮어준 후 밖으로 나왔다. 추가된 의문은 점점 증폭되어만 갔다.
문가에 몸을 기댄 나는 골몰히 생각에 잠겼다.
‘에이단은 대체 어떤 존재일까.’
정말로 에이단이 붉은 재앙일까.
하지만 중요한 건 에이단이 어떤 존재라도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내 마음이었다.
‘설령 재앙이라도.’
***
아벨라르도 신전의 성소는 적막한 어둠에 휩싸여 있었다. 농축된 신성력이 신의 샘 주위 물체에 아롱아롱 맺혀 반딧불이처럼 주위를 밝혔다.
뚫린 성소의 밤하늘에는 달무리가 껴 흐린 달이 떠 있었다.
평소라면 신의 샘에 가라앉아 있을 창세목의 정수를 지키기 위해 성소의 입구에 성기사가 대기하고 있을 터였다.
하지만 신왕이 자리를 비운 지금, 창세목의 정수를 성소 안 심실에 옮겼으니 성소를 지키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저벅. ……저벅.
어둠보다 더 짙은 그림자 하나가 성소의 하얀 대리석 바닥을 밟았다.
조심스러운 발걸음은 신의 샘이 뻗은 길을 따라 성소의 안으로 하염없이 들어갔다.
이윽고 걸음이 멎은 곳은 성소의 가장 안쪽에 있는 심실로 통하는 문 바로 앞이었다.
다소 긴장한 것처럼 떨리는 손이 품 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달빛에 반사되어 찬란하게 빛나는 옐리움이었다.
그림자는 심실의 문을 여는 옐리움의 권능을 발동했다.
쿠궁-.
긴 진동이 성소 내부를 울렸지만 심실의 문은 끄떡도 하지 않았다.
“……?”
그림자는 당황하며 다시 한번 옐리움의 권능을 발동했다.
쿠구궁-.
이번에도 진동만 할 뿐 문은 열리지 않았다.
그때였다.
“아무리 해도 안 열릴걸.”
흠칫. 그림자는 뒤에서 들려오는 익숙한 음성에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이윽고 달무리가 물러가자 밝은 달빛이 불청객의 얼굴을 밝혔다.
“배반자는 너였군. ……수.”
장로 수. 그녀는 12장로 중 유일한 여성으로 30대의 젊은 나이에 장로가 된 아벨라르도의 인재였다. 잠재 신성력의 양으로는 신왕인 미하엘의 다음일 정도였다.
수는 난데없이 나타난 미하엘을 보고 태연하게 너털웃음을 지었다.
“배반자라니 무슨 말씀인가요, 하하.”
“흐음.”
“그저 궁금했을 뿐이에요. 오로지 성하께서만 출입할 수 있다는 심실이 어떤 모습일지 궁금해서 그만!”
“그래?”
“설마 저를 의심하시는 건 아니시죠?”
환하게 웃는 수는 활달하고 천진한 평소의 모습 그대로였다.
다른 이가 보았으면 정말로 호기심에 심실의 문을 열려 시도했다고 생각할 정도로.
하지만 미하엘의 대답은 매정했다.
“의심이 아니라 확신.”
“……하하.”
“넌 거짓말을 할 때면 한쪽 입꼬리를 올리는 버릇이 있으니까.”
수의 손이 저절로 입가에 향했다. 미하엘이 매섭게 지적했다.
“거짓말인데, 찔렸나 보네.”
“……성하는 정말 못 당하겠네요.”
그녀의 시인과 동시에 잠복하고 있던 메이블과 엔리케가 모습을 드러냈다. 세 사람은 수를 포위했다.
아벨라르도의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난 수가 강대한 신성력을 인정받아 신전에 들어왔을 그때부터 미하엘은 그녀를 봐왔다.
아이였던 수가 멋도 모르고 신전을 활보하던 그때도 미하엘은 신왕이었기에 그녀의 성장 과정을 빠짐없이 봐왔다.
티는 내지 않았으나 충격을 받지 않았다면 거짓이었다.
‘엘리엇인 줄 알았는데.’
갑자기 신성력이 생겼다며 난데없이 르네즈미를 신의 씨앗으로 추대하던 꼴이 영 수상해서 엘리엇의 동태를 쭉 살펴보았으나 헛발질이었던 것인가.
왜 배신했냐는 물음은 입에 담지 않았다. 배반했다는 것부터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일이었으므로.
“신의 씨앗까지 제 얼굴을 보러 오신 건가요? 영광입니다, 옐리움!”
하하하. 수는 웃었다. 마치 자포자기한 사람처럼.
하지만 그들은 빈틈을 내보이지 않았다. 언제든 공격할 수 있는 준비를 한 채 메이블이 물었다.
“심실에 들어가려는 이유가 창세목의 정수 때문이야?”
“글쎄요?”
“데블린의 황제에게 붙은 건가?”
“폐하께서는 호기심이 참 많으시네요!”
“목적이 뭐지?”
수는 대답을 회피하기만 할 뿐 제대로 된 대화를 할 생각이 없는 듯했다.
‘설마, 시간을 끄는 건가?’
메이블의 생각이 거기까지 미쳤을 때.
“……엔리케!”
검은 기운이 엔리케에게로 쏘아졌다.
“윽!”
엔리케가 검으로 기운을 쳐내자 그것은 방향을 우회하며 등을 관통하려 했다.
하지만 메이블의 결계가 더 빨랐다.
단단한 신성 결계에 부딪힌 검은 기운은 힘을 잃고 상쇄되었다.
메이블이 엔리케의 방어에 치중한 틈을 타 수가 몸을 돌렸다.
쿠구구구-.
수가 가지고 있던 옐리움과 미하엘의 품속에 있던 옐리움이 공명하며 심실의 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수.”
미하엘이 수를 불렀지만 이미 심실은 열린 후였다.
“저를 막지 마세요, 성하.”
수는 심실의 안으로 뛰쳐들어갔다. 미하엘이 펼친 신성 결계가 수를 붙들었지만 그녀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꺄아악!”
강제로 결계를 뚫는 것에는 엄청난 고통을 동반했다.
옷자락이 뜯겨나가고 살갗이 타오르는 듯한 작열감을 느끼면서도 수는 달렸다.
이윽고 그녀가 멈춰선 곳은, 메이블과 미하엘이 그동안 모은 창세목의 정수들이 놓여 있는 제단 위였다.
“그 손 치워. 당장.”
뒤따라 들어온 미하엘의 경고에도 수는 거침없이 창세목의 정수를 손에 쥐었다.
또 다른 이름인 월장석에 걸맞게 투명한 천장을 타고 들어온 달빛에 정수는 찬연하게 빛났다.
열 개가 넘는 정수를 두 손 가득 쥔 수가 손아귀에 힘을 주었다.
우드득. 우드드득!
표면에 얇은 실금이 가더니 이내 정수들이 완전히 깨어졌다. 흘러나온 생명력은 모조리 수에게로 흡수되었다.
“으, 으윽!”
갑자기 흡수된 정수의 힘을 견디지 못한 수의 몸이 경련하듯 잘게 떨렸다.
마치 화형을 당하는 듯한 극심한 고통에도 수는 손안에 남은 정수 하나의 힘까지 모두 흡수했다.
“수!!”
미하엘이 다시 한번 신성 결계를 펼치자, 수는 더 이상 옴짝달싹할 수 없었다. 이미 과도한 힘에 폭주한 육체는 너덜너덜해 결계의 속박을 견디기 힘들 정도였지만 그녀는 인내했다.
“결계를 깨려고 들면 목숨이 위태로울걸.”
수의 육신은 이미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 힘들 정도로 만신창이였다. 이제 더는 수작 따위 부릴 수 없을 터였다.
미하엘은 수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수의 바로 앞까지 도착했을 때, 그녀가 반쯤 부서져 내린 얼굴로 미소를 지었다.
“……옐리움.”
“……!”
검은 기운이 폭발하듯 주위를 잠식했다. 휘말리면 치명적이라는 직감에 미하엘은 자신을 보호하는 결계를 펼치며 뒤로 물러났다.
미하엘에게 마지막 인사를 남긴 수가 옐리움의 권능을 사용해 아벨라르도를 완전히 탈출했다.
“미하엘!”
“괜찮으십니까, 성하.”
뒤늦게 메이블과 엔리케가 심실 안으로 들어왔지만, 남은 건 제단 위 수가 미처 쥐지 못한 정수들뿐이었다.
세 사람은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바로 눈앞에서 배신자를 놓치다니.
그 누구도 아벨라르도의 사제라는 존재가 검은 기운을 쓸 거라고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검은 기운을 어떻게 쓴 거지?”
메이블은 인상을 찡그렸다. 분명 에이단의 검은 기운과 같은 기운이었다.
“에이단 아세라드가 원래 데블린의 사람이었으니, 데블린과 관련이 있겠지.”
그렇게 말하며 미하엘은 품속에서 옐리움을 꺼냈다.
“실제로 데블린이군.”
옐리움은 두 개가 한 쌍이므로 서로의 위치를 대략 가늠할 수 있었다.
다른 옐리움의 위치는 예상과 한 치 어긋남도 없이 데블린에 있었다.
“이제 어떻게 되는 건가요?”
엔리케의 물음에 미하엘이 허탈한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어떻게 되긴. 망한 거지.”
겨우 균형을 맞춰가던 세계를 유지하는 힘의 추가 다시 한쪽으로 기운 것이다.
***
“크윽…….”
수는 신음을 흘리면서도 휘청거리며 힘이 풀리는 다리를 바로 세웠다.
강대한 생명력을 품은 육체가 견디지 못하고 부서지고 있었다. 하지만 수는 아랑곳하지 않고 걸었다.
‘수명이 줄어도 상관없어.’
남은 생을 불태울 수 있다면.
‘강한 힘을 탐하는 게 죄인가?’
수는 강해지고 싶었다. 그뿐이었다.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던 자신을 신전에 팔아넘기듯 보내 버린 가족들이나, 여자 사제 주제에 장로 자리를 꿰찼다며 조롱을 일삼던 아벨라르도의 사제들이나 모두 구역질 나기는 마찬가지였다.
건물 전체를 휘감은 검은 결계를 통과한 수는 곧바로 데블린의 황제를 알현했다.
그가 있는 곳은 건물의 연구실이었다. 온갖 것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어 발 디딜 틈도 없었다.
그곳에 베론 아서 데블리카가 있었다.
온몸을 붕대로 감은 그는 수에게서 옐리움을 건네받았다. 놀랍게도 외팔이로 알려진 베론은 두 팔 모두 존재했다.
“뭘 바란다고 했지? 기억이 잘 나지 않아서.”
옐리움을 손에 굴리던 베론의 가벼운 물음에 수가 고개를 숙였다.
“강한 힘을 원합니다.”
“힘은 이미 주었지 않나. 아벨라르도 놈들의 신성력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힘을.”
“보다 더 강한 힘을 원합니다.”
“그보다 강한 힘이라…….”
턱을 괴고 고민하던 베론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힘을 주지.”
마른 몸을 이끌고 베론이 천천히 수에게 다가갔다. 자신이 맛보았던 ‘검은 기운’의 힘을 완전히 손에 넣게 되는가.
그녀가 기대에 벅차던 그 순간, 베론의 손이 수의 심장을 꿰뚫었다.
“……컥!”
단말마의 신음.
“죽음보다 강한 힘은 없지 않나?”
큭, 크큭……. 비열하게 웃은 베론은 수의 생명력을 모조리 흡수했다. 그녀가 흡수했던 정수의 힘까지.
금이 가고 약해졌던 육체의 힘이 되돌아오는 것이 느껴졌다.
수의 피가 묻은 손으로 베론은 천천히 얼굴을 감싼 붕대를 풀어내었다.
“그 순간이 머지않았군…….”
이내 붕대 아래 감춰졌던 베론의 얼굴이 모습을 드러냈다.
환희에 가득 찬 얼굴은 마치 젊었을 때처럼 강건했다.
***
‘이럴 순 없어.’
정수를 찾아다니던 나의 약 10년의 노력이 모두 물거품이 되었다.
그럼에도 해는 떴고, 공표식의 아침은 밝았다.
“망할 신, 망할 아데스……!”
신전에서 신을 모욕하는 짜릿한 배덕감과 함께 공표식이 열리는 대신전의 홀에 섰다.
높은 계단 위에 신단이 있었다. 아벨라르도의 사제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나는 계단을 올라 신단 위에 섰다.
우여곡절 끝에 신의 씨앗임을 세계에 공표하게 되었다.
신단 바로 아래에서 미하엘이 성의를 차려입고 성전을 든 채 신을 경배하는 구절을 읊었다. 정말이지 지루하기 짝이 없었다.
“……하여 신께서 첫발을 뗀 그곳에 물이 솟았으니, 그를 신의 샘이라 이르고, 성소라 이름 짓는다. 신께서 두 번째 발을 뗀…….”
‘끝나면 바로 돌아가서 햄버거 먹어야지.’
그 무엇보다 진지하게 다음 식사 메뉴를 결정했을 때, 돌연 눈앞이 반짝거렸다.
“……!”
곳곳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무엇인가!”
“설마, 신탁 아닙니까?”
“오, 옐리움!”
사제들의 웅성거림에 섞여 누군가의 음성이 들려 왔다.
[……줘.]음성의 자취는 금세 어렴풋이 사라졌다. 하지만 끊어지기 무섭게 바로 들려 왔다.
[……나를…….]“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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