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by Tyrant RAW novel - Chapter 226
226화. 언제부터 날 좋아했어?
나비 날개가 스치듯 가벼운 입맞춤이었다. 찰나의 접촉이었으나 온기가 개화하듯 퍼졌다.
에이단은 순간 이 상황이 현실인지 또는 간혹 보곤 하는 환상인지 분간하지 못했다.
하지만 메이블의 작은 손이 겁 없이 뻗어와 제 손을 감싸는 것을 보니 현실인 듯했다.
“어, 에이단. 또 귀 빨개졌다!”
에이단이라는 호수에 큰 돌 하나를 던져 놓고 자신이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자각도 하지 못한 메이블은 그를 놀리며 천진하게 웃었다.
에이단의 눈빛이 어둡게 침잠했다.
“이건, 드린 게 아니라 받은 것 같은데-.”
스스로를 진정시키기 위해 말을 꺼냈지만, 그 사이 에이단의 인내심이 닳았다.
조심스럽게 뻗은 에이단의 손끝이 메이블의 뺨에 닿기 무섭게 그의 입술이 경건하게 이마 위에 내려앉았다.
“에이, 단……?”
에이단은 저도 모르게 찡긋거리는 메이블의 눈가에 입을 맞추었다.
“으읏.”
쪽, 쪽. 짧게 닿았다 떨어지는 입맞춤이 이어지자 메이블의 얼굴 또한 발갛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가, 간지러워.”
투정 같은 중얼거림에도 에이단의 짧은 입맞춤은 멈추지 않았다.
사랑스럽다는 듯 조심스럽게 뺨을 감싸고 쏟아지는 애정표현에 결국 항복을 외친 것은 메이블이었다.
와락, 에이단의 허리를 부둥켜안은 메이블이 얼굴을 그만 숨겨버렸다.
아쉬운 듯 에이단의 얕은 한숨이 공중에 흩어졌다.
“아직 생일 선물을 다 드리지 못했습니다.”
“……놀리지 마, 바보야.”
“진심인데.”
에이단의 손이 메이블의 머리칼을 가만가만 쓰다듬었다. 손가락에 감겼다가 스르륵 흘러내리는 머리칼을 매만지고 있자니 어쩐지 속이 뜨겁게 끓었다.
무작정 에이단의 품속에 얼굴을 숨긴 메이블 또한 당황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완전 능숙하잖아……!’
메이블 자신은 고작 볼에 뽀뽀 한 번 했을 뿐인데, 에이단은 이에 질세라 얼굴 곳곳에 짧은 입맞춤을 남겼다.
마음의 준비도 하지 못하고 몰아닥친 뽀뽀 세례에 도무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혼자 부끄러워하는 게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이가 된 것 같아서 또 부끄러웠다.
‘이런 건 면역이 없다고…….’
그렇다고 싫다고 묻자면 아니었다. 고스란히 전해지는 에이단의 진심에 벅찬 건 메이블도 마찬가지였다.
슬그머니 고개를 들어 에이단의 얼굴을 보았다. 줄곧 자신을 내려다보던 붉은 눈동자와 딱 마주쳤다.
“……잘 지내셨습니까?”
이제야 안부를 묻는 에이단의 질문에 메이블이 짧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 하나도 못 지냈어.”
“…….”
“에이단이 보고 싶어서. 밥도 맛없고, 케이크도 맛없고, 푸딩도 맛없고…….”
에이단은 잠자코 생각했다.
‘어쩐지 먹을 것 이야기밖에 안 하는 것 같은데.’
어쨌든 그것이 바로 오스카의 ‘디저트 공세 작전’이 통하지 않았던 이유였다. 여전히 에이단을 끌어안은 채로 메이블이 투정 부리듯 말했다.
“아무튼 에이단 없어서 심심했단 뜻이야.”
“심심하기만 했습니까?”
“심심하기만 했겠어?”
일상을 보내는 중에도 불쑥불쑥 에이단에 대해서 생각했다.
지금쯤 뭘 하고 있을지, 혹시나 식사는 거르지 않을지, 아니면 연무장에서 몸을 혹사하고 있지는 않은지.
강제로 에이단과 떨어져 있는 건 처음이라, 더 이상한 하루하루였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옛날 생각을 자주 했다. 이번 생에서 첫 산책을 나섰을 때 에이단과 처음 마주쳤던 그때라든가.
‘적국의 인질 소년이 내 연인이 될 거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어.’
축제 날 마을에서 폭주하던 에이단을 끌어안았다가 기억을 엿보게 되었을 때라든가.
하지만 아무리 과거를 더듬어도, 현재의 에이단만 못했다.
메이블은 에이단을 더 꽉 끌어안으며 볼멘소리로 중얼거렸다.
“……꿈에도 안 나오고 말이야.”
“죄송합니다.”
진지하게 사과하는 에이단의 태도에 실없는 웃음이 새어 나왔다.
“그냥 해 본 말인데, 사과하면 어떡해?”
“어쨌든 안 나왔으니까.”
“그럼 오늘 밤 꿈에는 나오도록 노력해.”
“네.”
무슨 말을 해도 진지한 에이단의 태도에 메이블은 또다시 웃음을 터트려버리고 말았다.
그러다 문득 한 가지 궁금한 게 떠올랐다.
“있잖아, 에이단. 나 계속 궁금했던 거 있었는데.”
“말씀하십시오.”
“언제부터 날 좋아했어?”
연인이라면 으레 묻곤 하는 질문에 에이단은 잠깐 고민에 빠졌다. 대답은 곧바로 나왔다.
“아주 오래전부터.”
처음 마주쳤던 그때부터일까.
아니, 어째서인지 그 이전부터 메이블을 알고 있었던 것만 같은 말도 안 되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 데블린을 배반하여 망명하기를 결심했을 때, 에이단에게 메이블의 의미는 지금과 현저히 달랐다.
이 끝없는 삶의 굴레와 속박에서 자신을 끄집어낼 수 있는 유일한 존재라고 여겼다.
데블리카의 멸망 이후, 모든 과업을 끝낸 후 영원한 안식을 맞이할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 그런 건 원하지 않았다. 메이블은 에이단이 처음으로 ‘살고 싶다’고 생각하게 만든 존재였다.
언제까지나 메이블 곁에 남는 것.
이제는 욕심까지 더 보태 메이블의 연인으로서.
“대답이 너무 추상적인 거 아니야?”
“시점을 명확히 짚을 수 없습니다.”
“그건 뭐, 나도 그렇긴 하니까…….”
에이단을 좋아한다고 자각한 순간은 있지만, 언제부터 좋아했느냐고 묻는다면 대답하기 쉽지 않았다.
아주 어릴 때부터 공통의 적을 둔 동료로 지내왔다. 그러면서 불가분의 관계가 되었다.
‘그래. 중요한 건 그게 아니지.’
메이블은 에이단을 올려다보며 생긋 웃었다. 중요한 건 에이단과 떨어지고 싶지 않다는 것이었다.
메이블은 씩씩하게 에이단의 손을 붙잡았다.
“이제 나가자.”
“…….”
손을 가만히 응시하는 시선을 메이블은 지레짐작했다.
“아빠랑 오스카가 무서워? 괜찮아. 내가 있잖아.”
‘무서울 리가.’
무섭다기보다는 귀찮을 뿐이다. 부러 정정하지 않자 메이블은 제 마음대로 확신했다.
“내가 무찔러줄게. 걱정하지 마!”
든든한 외침에 에이단은 그만 메이블의 손가락에 끊임없이 입을 맞추며 옅게 웃었다.
‘큰일이다.’
벌써 이렇게 떨어지는 게 싫으면, 남들 앞에서 메이블을 가만히 두고 볼 자신이 없었다.
.
.
.
멈칫. 홀로 돌아가기 직전, 걸음을 멈춘 메이블이 갑자기 고개를 돌렸다.
“……?”
“에이단.”
“네.”
“다른 선물은 뭔데?”
에이단의 뺨에 입 맞추는 것이 생일 선물이라고 말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준비한 게 뭔지 궁금하긴 했다.
에이단조차 다른 선물이 있다는 걸 잊고 있었다. 그는 품속에서 작은 상자를 꺼내 메이블에게 건넸다.
“가지십시오.”
“그래도 돼? 난 이미 에이단 뺨을 가졌는데?”
“…….”
뽀뽀한 게 아니라 뺨을 가졌다니.
메이블다운 엉뚱한 표현에 에이단의 말문이 막히든 말든 메이블은 상자를 열어보았다.
“이건…….”
푸핫. 에이단다운 선물에 메이블은 그만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
메이블과 에르마노 부자의 공방전은 연회의 가장 큰 화젯거리였다. 사람들은 홀에 놓인 음식을 먹으며 안 보는 척하면서 다 구경했다.
“정말 재밌네요. 요새 유행하는 로맨스 소설보다 몇 배는 더 재밌는 것 같아요.”
“역시 로맨스에 가족들의 반대는 빠질 수가 없죠. 호호.”
“역시 황제 폐하께서는 보통이 아니십니다. 저 두 분을 보란 듯 무찔러 버리시다니.”
흥미롭게 지켜보는 사람들 가운데, 발코니 입구를 초조하게 응시하는 두 사내가 있었으니.
“결계. 깨버리면 안 되겠죠, 부황.”
“안 된다, 오스카. 강제로 깨지면 메이블에게도 영향이 가니까.”
“메이브을…….”
바로 눈뜨고 코베인 에르마노 부자 되시겠다.
그들은 견고한 메이블의 결계를 파괴하지도 못한 채 그저 문이 열리기를 바라며 전전긍긍했다.
황제의 열애설을 직접 퍼뜨린 주동자인 의회 귀족들은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꽃을 피웠다.
이왕 일이 벌어진 것, 아들을 국서로 밀겠다는 꿈을 깔끔하게 접은 귀족들은 강 건너 불구경하는 심정으로 상황을 즐겼다.
신하들이 홀홀 웃었다.
“역시 황제 폐하십니다. 저 두 분의 못 말리는 팔불출을 저리도 무참히 꺾으시다니, 대단하시지 않습니까?”
“허어, 이러다 조만간 국혼이 치러질지도 모르겠습니다?”
메이블의 나이 어느덧 열일곱. 이제 국서를 두어도 이상하지 않을 나이기는 했다. 상대가 에이단인 것에도 이의가 없었다.
‘외려 아벨라르도와의 결속을 돈독히 다질 수 있게 되겠지.’
그런 의회 귀족들을 못마땅하게 바라보는 이가 있었다.
“썩을 것들……. 반대하지는 못할망정…….”
바로 메이블의 외조부인 가데니아 후작이었다. 그의 옆에는 어째서인지 데버릴 백작 부인이 있었다.
“그만 우시게.”
“안 운다고 몇 번이나 말하지 않았나!”
“그대의 눈시울이 빨간데.”
“아까 꽃가루를 만져서 그런 걸세!”
“그대의 손녀가 꽃가루인가?”
“…….”
건수를 잡은 데버릴 백작 부인은 오랜 원수를 놀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두 사람은 언쟁하면서도 자리를 뜨지 않았다.
메이블과 에르마노 부자 사이의 전쟁이 어떤 결말을 맞이하게 될지 궁금한 것은 매한가지였기 때문이다.
눈에 띄지 않는 기둥 뒤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던 엔리케는 누군가 불쑥 들이미는 잔에 고개를 돌렸다.
“차라리 불참하지 그랬어.”
에밀리가 뚱한 표정으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엔리케는 동생이 건넨 잔을 받아들며 밝게 웃었다.
“그럴 수는 없지. 폐하의 호위니까.”
“황제 폐하께서 오늘 같은 날에도 호위를 서라고 하실 분이 아닌데.”
“……그렇지.”
결국 엔리케의 자의로 이 자리에 있는 것이었다.
“내 오라버니지만 참 안타깝다니까. 하지만 뭐 어쩔 수 없지 않겠어? 폐하는 한 분이시니까.”
“그런 건 굳이 짚어서 얘기하지 않아도 돼, 에밀리.”
“흐음. 폐하도 참 죄 많은 사람이지. 이렇게 사람 마음을 애태우다니. 그러는 오라버니도 죄 많은 남자인 거 알지?”
에밀리가 엔리케의 근처를 맴돌며 힐긋힐긋 엿보는 레이디들을 눈짓하며 말했다. 하지만 엔리케는 웃는 얼굴로 단호하게 답했다.
“호위 중이야.”
“어련하시겠어.”
타인에게도 늘 웃는 얼굴이지만 엔리케에게는 다가가지 못할 벽이 있었다.
그 벽이 느껴지지 않는 유일한 이성은 가족인 에밀리를 제외하고 오로지 메이블밖에 없었다.
아마 앞으로도 그런 존재는 생기지 않겠지.
‘오라버니 장가가기는 틀렸네.’
에밀리는 새삼 자신이 가주가 된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적어도 후계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니까.
“그럼 호위 잘해.”
그녀는 신랑감을 물색하기 위해 또다시 연회장을 배회하기 시작했다.
한편, 굳게 닫힌 발코니 문을 초조하게 응시하는 이가 또 있었다.
“아냐. 아직 기회가 있다. 연인일 뿐이야. 헤어지면 그만 아닌가? 그래. 나에게도 아직 가능성이 있어. 암, 그렇고말고.”
멋대로 헤어짐을 가정하는 헬리아스였다. 랑가르드의 신하들은 한심한 황태자를 보며 한숨을 내뱉었다.
‘나라 망신이다.’
‘빨리 이 연회가 끝나고 차라리 랑가르드로 어서 돌아가고 싶다.’
에르마노에서 그렇게 수모를 당해놓고, 심지어 협상까지 처절하게 실패한 후에도 연심을 버리지 못하고 구질구질하게 굴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자국의 미래가 걱정되었다.
미하엘은 그 모든 광경을 흥미롭게 지켜보았다. 권태롭던 수십 년의 삶 중, 이렇게 재미있던 때가 있었던가?
신의 씨앗, 메이블의 존재가 어쩌면 신이 제게 선사한 선물 같다는 생각마저 들 정도였다.
“하고 싶은 대로 다 하네. 우리 브리브리는.”
“성하만 할까요?”
이쿠이의 대답에 미하엘이 그를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크흠, 갑자기 급한 일이 생각났어요. 공주 전하, 그럼 성하를 부탁드립니다!”
이쿠이가 딴청을 피우며 자리를 떴다.
르네즈미는 연회에 들어선 이후 한마디도 하지 않은 채 묵묵히 미하엘의 옆자리를 지켰다.
많은 이들의 갖가지 반응 속에서 탄신 연회는 무르익어만 갔다.
***
에이단의 손을 붙잡고 발코니를 빠져나온 것까지 좋았다.
예상했던 대로 우리의 앞에는 아빠와 오스카라는 커다란 난관이 있었다.
“칫이다, 메이블.”
“흥이야, 메이블.”
“……두 사람 다 유치하게 왜 이래?”
내가 한마디 하자 서운한 듯 두 사람이 나를 바라보았다. 오스카는 에이단과 맞잡은 내 손을 보더니 사이를 갈라 에이단의 손을 낚아챘다.
“에이단. 잠깐 이야기 좀 해.”
그러더니 에이단을 끌고 홀 반대편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졸지에 눈앞에서 에이단을 강탈당한 나는 어안이 벙벙해졌다.
“휴…….”
고개를 들자 이마를 짚고 깊은 한숨을 내쉬는 아빠가 보였다.
“아빠. 어디 편찮아?”
“안 아프고 배기겠느냐, 메이블.”
“에이단 때문에?”
아빠는 부정하지 않고 내게 한 발짝 다가왔다.
“이 아빠의 마음을 다 알면서 그리 묻다니, 내 딸은 참으로 잔인하구나.”
상처받은 마음을 위로해달라는 듯 투정 부리는 아빠를 보며 나는 진지하게 대답했다.
“그건 어쩔 수 없는 거야, 아빠. 엄마도 할아버지 반대를 무릅쓰고 아빠랑 결혼했잖아? 굳이 대입해 보자면 옛날 아빠와 에이단의 처지가 같은 거지. 지금 아빠는 할아버지 역할이고.”
“…….”
아빠가 입을 떡 벌리고 나를 보았다.
할 말이 없는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