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by Tyrant RAW novel - Chapter 241
241화. 작고, 또 연약한데
한편, 현실.
메이블이 검은 입구로 사라진 지 며칠이 흘렀다. 얼마간은 일상이 이어지는 듯했으나, 메이블을 기다리는 이들은 심각한 메이블 결핍증을 앓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에스테반은 겉으로는 멀쩡한 모습으로 정사를 돌보았다.
메이블의 부재를 황제의 휴가라 공표한 후 회의에도 참여하고 집무도 보는 행동은 평소와 다름없이 위엄이 넘쳤다.
그러나 그의 보좌인 구스타프만은 진실을 알고 있었다.
어느 밤, 서류를 들고 에스테반의 침실에 갔을 때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광경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침대에 걸터앉은 에스테반이 무언가를 잔뜩 늘어놓은 채 심각한 표정으로 보고 있었다.
내용물은 다양했다. 편지도 있었고, 마른 도토리나 다 먹고 남은 과자 껍질 같은 것도 있었다.
‘저 보잘것없는 것들은 다 뭐지?’
구스타프가 가까이 다가가든 말든 신경도 쓰지 않은 채 에스테반은 오로지 여러 장의 종이에만 시선을 고정했다.
슬쩍 종이를 본 구스타프의 낯이 새하얗게 질렸다.
흰 종이 위, 있어선 안 될 괴생명체가 그려져 있었다. 꿈에라도 등장하지 않기를 바랄 정도로 공포를 자아내는 그런 생명체가.
구스타프는 짐짓 아무렇지 않은 척 떨리는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물었다.
“그게 무엇입니까, 상황 폐하.”
마수?
그러자 구스타프를 본체만체하던 에스테반이 흐뭇하게 미소 지었다.
“이것 말이냐? 보면 모르겠느냐? 우리 아기가 그려준 나의 초상화지. 이 재능을 두고 황제 같은 것을 시키다니 내 죄가 크다.”
“허어…….”
구스타프는 탄식하며 두 눈을 질끈 감고 말았다.
‘입 밖으로 안 꺼내서 다행이다.’
하마터면 실직하다 못해 인생에서 실직당할 뻔했다.
에스테반 외에도 그런 중증 메이블 결핍증을 호소하는 이는 아주 많았다.
오스카는 예전에 찍어둔 메이블 사진을 온종일 들여다보며 그리움을 삭였다.
“메이블. 건강한 거지……? 언제 돌아오는 거야……?”
방 안에 틀어박혀 사진만 보고 있자 청소하러 들어온 사용인들이 기겁하며 뛰쳐나가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임무 차 도노반 저택에 들른 에이단은 오스카의 주접 광경을 보고 말았다.
“어, 에이단. 왔어?”
에이단은 저도 모르게 홀린 듯 사진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자 반갑게 맞이하던 오스카의 표정이 싸악 굳으며 서둘러 사진을 뒤로 숨겼다.
“뭐 하는 짓이야?”
“…….”
“내 거야. 내 거라고!”
“한 장만.”
메이블이 보고 싶기는 에이단도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무슨 한 장이야. 저리 가! 에이단 너도 진작 찍어뒀어야지!”
“한 장만.”
“싫어. 싫다고!”
“한 장만.”
“꺼져!! 저리 가! 야, 에이단!”
몇 시간 동안 실랑이를 벌인 끝에 에이단은 결국 메이블 사진을 한 장 손에 넣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에이단과 함께 도노반 저택에 들렀다가 그 광경을 모두 지켜본 엔리케는 조용히 고개를 돌리며 현실을 외면했다.
‘폐하께서 어서 돌아오셔서 저 추태를 보셔야 할 텐데.’
저 가관을 혼자 보고 있다는 사실이 안타까울 따름이었다.
.
.
.
비어 있는 메이블의 침실을 정돈하러 들어간 라리마는 이불을 정리하다가 깜짝 놀랐다.
“어머.”
황제의 신수가 몸을 둥그렇게 말고 새근새근 잠들어 있었다. 메이블이 늘 잠들던 바로 그 자리에서.
라리마는 웃으며 신수에게 이불을 덮어주었다. 양이는 잠결에 투정 부렸다.
모두 한마음으로 메이블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
콜록콜록.
쉼터에 있던 모포를 탈탈 털자 먼지가 부윰하게 일었다. 메이블은 연신 기침을 하며 아데스에게 외투와 모포를 건넸다.
“우선 이걸로 얼굴을 가려.”
붉은 눈은 너무 눈에 띄었다. 내가 아데스요 하고 광고하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
이름 모를 마구간지기의 외투를 걸쳤음에도 아데스의 외모는 흠잡을 곳 없이 완벽했다.
‘신은 불공평해. ……아니, 이 남자가 신이지?’
새삼스러운 깨달음과 함께 메이블은 짧게 탄식했다. 에이단의 성장 버전인 아데스의 외모는 가끔 치명적이라 넋을 놓고 보게 했다.
메이블은 괜히 시선을 돌리며 이후 계획을 세웠다.
‘아무래도 충동적이긴 했어.’
상처투성이로 속박당한 아데스를 두고 볼 수만은 없었다. 그래서 그를 데리고 나왔지만, 당장 해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머뭇거리던 메이블을 가만히 내려다보던 아데스가 선수를 쳤다.
“돌아가려던 것 아닌가?”
“어?”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야지.”
메이블은 순간 아데스가 속마음을 들여다보기라도 한 줄 알았다.
“내가 당신을…… 데리고 나와서 곤란하게 만들-.”
“괜찮다.”
“왜?”
“오랜만에 태양을 맞는 기분이 나쁘지 않아서.”
다른 이들에게는 일상일 일출이 아데스에게는 특별했다. 율리우스 3세의 손아귀에 들어간 이후로는 줄곧 지하에만 있었기에.
그러니까 괜찮았다.
눈앞의 구원자를 자처한 이 어린 인간이 원래의 세상으로 돌아가도.
그리하여 그 이후로 까마득한 윤회를 반복한다고 하더라도.
한 조각 빛을 맛보았으니, 그것으로 충분했다.
아데스의 담담한 모습에 메이블은 어쩐지 속이 답답해지는 걸 느꼈다.
늘 괜찮다고 말하던 에이단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과거로 올 때 가져온 물건들이 있어. 그걸 가지고 돌아가려고.”
오로지 메이블의 안전을 위해서 사랑하는 이들이 챙겨주었던 소중한 마도구였다. 막상 사용한 건 이동 마도구뿐이었지만, 나머지를 두고 돌아갈 수는 없었다.
“황성 밖 숙소에 있어.”
“그런가.”
“……같이 나갈래?”
메이블의 마지막 동행 제의에-.
“그래.”
아데스는 흔쾌히 승낙했다.
두 사람 모두 헤어질 결말을 알지만, 입에 담지 않았다.
***
쉼터를 빠져나가자 수색을 하는 중인지 군사들의 인기척이 느껴졌다.
메이블은 아데스를 수풀 뒤로 끌어당기며 작게 속삭였다.
“아데스. 힘은 어디까지 쓸 수 있어?”
“사용하면 바로 황제에게 위치를 발각당할 것이다.”
“그럼 절대 힘 사용하지 말고, 나만 따라와.”
무심코 에이단에게 하듯 손을 내민 메이블이 다시 손을 거두려고 했지만, 아데스가 더 빨랐다.
그의 큰 손이 메이블의 손을 붙잡았다.
‘커다란 강아지 같아.’
어쩐지 책임감이 무럭무럭 자라나는 것을 느끼며 메이블은 앞장서 삼엄한 감시를 뚫고 황성을 빠져나갔다.
그 과정에서 수차례 발각될 뻔했지만, 가까스로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슬슬 신성력이 고갈되고 있었다.
‘돌아갈 신성력은 남겨놔야 해.’
아빠와 했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메이블은 신성력 관리에 특히 신경 썼다.
묵었던 숙소에 도착한 메이블은 의심받지 않도록 천연덕스럽게 방에 들어갔다.
달칵. 문을 잠근 메이블은 옷장에 넣어둔 가방부터 챙겼다.
‘결계도 마도구도 그대로야.’
이제 원래 세계로 돌아가는 일만 남았다.
아직도 마주 잡은 손을 응시하던 메이블이 고개를 들었다.
“아데스. 궁금한 게 있어.”
“무엇이지?”
“율리우스 3세가 죽고 난 이후에 데블린에서 희귀한 마도 재료들이 발견되기 시작했거든. 혹시 알고 있는 거 있어?”
“글쎄.”
신인 아데스는 알 거라 생각했지만 예상외의 대답이었다.
“모른다니 어쩔 수 없지.”
비록 마도 재료가 데블린에만 나는 이유를 알 수는 없었으나 베론을 처치할 방법을 알게 되었으니 그것만으로도 큰 성과였다.
메이블이 마지막 작별인사를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할 그때였다.
콰앙-!
돌연 굉음과 함께 객실에 둘러놓았던 결계가 깨졌다.
사태를 파악하기도 전에 연이은 공격이 머리 위로 내리꽂혔다. 순식간에 여관 지붕이 날아가고, 건물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쉬익-! 뒤이어 뚫린 천장으로 불 마법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판단보다 행동이 더 빨랐다.
챙! 메이블이 펼친 결계에 불 마법이 튕겨 나갔다.
갑작스러운 습격을 막아냈지만 메이블의 표정은 어두워졌다.
‘큰일이야.’
현실로 돌아가기 위해 남겨둔 최소한의 신성력을 그만 써버리고 말았다.
충분히 회복하려면 몇 시간은 족히 걸릴 텐데.
그 사이에도 마법은 연이어 쏟아졌다.
콰광! 콰과광!
건물이 완전히 무너져내리자 그들을 습격한 무리를 확인할 수 있었다.
휘황찬란한 의복을 걸친 한 남자를 위시한 대군이 여관을 사방으로 둘러싸고 있었다.
“어쩐지 황성을 빠져나오는 게 쉽다 했더니…….”
일부러 빠져나갈 길을 내어줬던 것인가.
메이블은 이를 악물며 아데스를 뒤로 보냈다.
“감히 짐의 죄수를 빼돌린 자가 누구인지 궁금했거늘, 연약한 레이디로군. 신성 결계라, 사제인가? 아벨라르도에서 보냈나?”
남자의 질문이 쏟아졌지만 메이블은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
‘저 인간이 율리우스 3세.’
베론의 선조답게 언뜻 닮게 느껴지는 것도 같았다.
‘대답할 가치도 없어.’
메이블은 코웃음을 치며 한 발짝 앞으로 나섰다. 어차피 써 버린 신성력, 이제 아낄 이유가 없었다.
돌아갈 수 없는 상황이 된 이상 물러날 곳도 없었으니까.
“발악하지 말고 죄수를 이리 넘기거라.”
“죄수거리고 있네.”
메이블의 싸늘한 대답에 율리우스 3세가 미간을 좁혔다.
“아주 불손하구-.”
율리우스 3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메이블은 신성의 칼날을 생성해 그를 향해 던졌다.
황제를 호위하던 기사들이 재빠르게 공격을 쳐내었다.
“이런 무도한……!”
율리우스 3세의 눈이 분노로 뒤집혔다. 메이블은 어깨를 으쓱한 후 본격적으로 가방을 뒤져 온갖 마도구를 꺼냈다.
“그깟 장난감으로 뭘 하겠다는 것이냐. 순순히 투항하거라.”
“좋아, 그 장난감 맛을 보여주마.”
호기롭게 웃은 메이블이 차분히 마도구를 발동시키기 시작했다.
위협적인 공격이 데블린의 군대를 향해 쏟아졌다.
팔불출들이 바리바리 챙겨주었던 마도구의 위력이 비로소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으아아악!”
“사, 살려-!”
“결계, 결계를 펼쳐!”
순식간에 아비규환이 되었다. 율리우스 3세는 단신의 몸으로 대군을 위협하는 이 비상식적인 힘의 균형에 경악했다.
‘도대체 뭐하는 계집이지?’
갑자기 나타나서는 자신의 신을 훔쳐서 도주했다. 그러고는 보도 듣도 못한 물건을 꺼내서 강력한 공격을 날려대었다.
“크윽, 폐하. 어서 명령을 내려주십시오!”
“저 여자를 처치해라! 죽여도 좋다!”
주춤했던 데블린의 군사들도 전열을 가다듬고는 위력적인 공세를 펼치기 시작했다.
메이블은 적극적으로 마도구와 신성력을 활용해서 데블린의 군사와 대치했다.
순식간에 일대가 초토화되었다.
아데스는 메이블의 뒤에서 그 공방을 지켜보았다. 그는 위태로운 상황 속에서도 자신을 지키려 앞을 막고 선 그녀의 뒤를 가만히 응시했다.
‘작고, 또 연약한데.’
그런데도 포기할 줄 모른다.
돌아갈 신성력이 바닥나고 있어도, 절대 물러서지 않았다.
이러다 정말로 원래 시간으로 돌아갈 수 없을지도 모르는데.
아데스는 흘러가는 상황에 순응했다. 지상에 강제로 속박당해 율리우스 3세에게 힘을 강탈당해도 저항하지 않았다.
크게 분개하지도 않았다.
신이 되고 싶어 신이 된 것이 아니라, 눈을 떴을 때부터 홀로 있었기에 신이 된 것이므로.
그러나 그의 피조물이 아닌, 미래의 그가 불러왔을 어린 인간은 사투하고 있었다.
아데스의 눈빛이 천천히 가라앉았다.
“헉, 헉…….”
메이블의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다.
미처 방어하지 못한 탓에 스쳐 간 공격이 팔뚝과 뺨에 생채기를 남겼다.
이윽고 메이블은 가지고 있던 공격과 방어 마도구를 모두 소진했다. 이제 남은 건 아기로 변하지 않을 만큼의 신성력과, 단거리 이동 마도구 하나뿐.
‘센 척했는데 다 털렸네…….’
메이블은 허탈하게 웃으면서도 애써 태연함을 가장했다.
그러고는 단거리 이동 마도구를 데블린의 군사들 보란 듯 흔들기 시작했다.
“이게 뭔 줄 알아? 순식간에 당신들을 전멸시킬 수 있는 비장의 마법이 담긴 마도구야.”
메이블이 누구던가. 명실상부 에르마노 최고 사기의 귀재가 아니던가.
궁지에 몰린 메이블은 이윽고 율리우스 3세를 상대로 사기를 치기 시작했다. 마도구에 대한 정보가 없는 군사들은 당연히 동요하기 시작했다.
“히익!”
“폐하. 군사를 물리셔야 합니다!”
부하들의 재촉에도 율리우스 3세는 냉정한 판단력을 유지했다.
“저것은 허세다.”
“어째서 그리 장담하십니까.”
“단신으로 군대를 상대하고 있지 않으냐. 그런 비장의 무기가 있었다면 진작 사용해야 하거늘. 위기에 몰렸을 때 꺼내 들었으니, 저것은 허세다.”
율리우스 3세의 판단은 정확했다.
‘저 눈치 빠른 놈.’
“쳇.”
사기를 치려던 최후의 수단까지 털려버린 메이블은 이제 수세에 몰리고 말았다.
그때였다.
“아데스?”
줄곧 상황을 관망하던 아데스가 처음으로 움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