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by Tyrant RAW novel - Chapter 242
242화. 엄마?
메이블이 의아한 듯 자신을 바라보았으나 아데스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이 어린 인간은 이곳에서 허무한 끝을 맞이할 존재가 아니었다.
“……네가 있어야 할 곳으로 돌아 가.”
메이블을 향해 뻗은 그의 손에서 빛이 발하기 시작했다. 그 신성한 빛은 남김없이 메이블에게 스며들었다.
‘이 힘은…….’
그녀는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이 힘은 자신이 지니고 있던 것과 같은 힘이었다.
“아데스!”
아데스가 바닥났던 신성력을 채워 그녀를 현실로 돌려보내려고 하고 있었다.
메이블은 점점 자신의 몸이 흐려지는 것을 느꼈다. 이 세계에서의 존재감이 사라지고 있었다.
황급히 아데스의 팔을 붙잡았지만, 닿지 못하고 그대로 투과했다.
‘잠깐, 이렇게 돌아간다고?’
작별인사도 없이, 이렇게 갑자기?
마음이 급해진 메이블은 주먹을 세게 쥐고 아데스를 응시하며 외쳤다.
“외롭지 않도록 할게!”
그 끔찍한 외로움을 다시 느끼지 않게.
“절대 혼자 두지 않을게…….”
언제나 네 곁에 있을 거야.
“그러니까 조금만 기다려, 아데스.”
그 순간 세계에서 메이블의 존재가 완전히 지워졌다.
속박된 신이 폭주했다.
지상에 강제로 끌려 내려와 처음으로 행하는 반발이었다.
그 힘의 파동은 데블린 전역을 뒤덮고도 남을 정도였다.
신의 힘이 깃든 토양에 마력을 지닌 광물과 식물이 자라기 시작했다. 추후 마도 재료로 불리게 될 것들이.
아데스는 빛보다 빠른 속도로 질주해 눈 깜짝할 사이 보검을 휘둘렀다.
“……!”
절명. 율리우스 3세가 두 눈을 부릅뜬 채 죽었다.
그 순간 아데스는 자신의 소유권이 황제의 후계에게 넘어가는 것을 느꼈다.
신의 타락. 격의 추락.
또한 끊임없이 이어질 윤회의 시작.
메이블을 이 세계의 시간선에서 추방하는 순간 아데스는 미래를 안배했다.
길잡이의 역할을 할 신수를.
진심으로 그녀를 사랑해 줄 가족을.
전생을 담은 신명과 그녀의 말에 무슨 힘이든 실어줄 신탁을.
마지막으로 자신의 시간을 되감음으로써 신의 기억을 모조리 봉인했다.
데블리카의 후예가 자신의 힘을 흡수하는 걸 늦추도록.
언젠가 자신을 찾아낼 그의 씨앗을 기다리며.
***
다시, 현실.
메이블이 없는 사이, 데블린을 치기 위한 준비는 차근차근 진행되고 있었다.
비공식 회의의 분위기는 평소보다 가라앉아 있었다.
“헤일린 왕국을 제외한 국가에서 군사 원조를 약속했습니다.”
오스카의 보고에 에스테반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일이 순조롭게 진행되는 건 전적으로 메이블이 다져놓고 간 기반이 있기 때문이었다.
“에르마노 상인 연합에서 황군에 마도구 지원을 약속했습니다.”
케이시가 싱글벙글 웃으며 보고했다. 마법 강국인 데블린을 상대하려면 마법의 힘이 필요하기에 마도구 물자는 아주 귀중한 지원이었다.
에스테반이 케이시의 공로를 치하했다.
“케이시 상단주의 공이 크군.”
“하하, 제 공은요. 모두 아가씨께서 일군 것이겠죠.”
농담하는 것처럼 가벼운 어조였으나 그 자리의 누구도 그 말을 농담으로 여기지 않았다.
진실이었기 때문이다.
메이블이 이 세계에 태어나 신이 내린 신탁에 반발하기도, 순응하기도 하며 행한 모든 일이 지금 현재 데블린에 대항하기 위한 무기가 되었다.
그 업적은 대단하다는 말로도 부족할 정도라 이따금 경탄하게 만들곤 했다.
아직 베론 아서 데블리카가 제 뜻을 이루지 못한 건 메이블이 끊임없이 방해한 덕분이었다.
차례로 엔리케와 오스카가 말을 얹었다.
“데블린의 동태도 심상치 않습니다.”
“백성들의 봉기를 결국 공포정치로 다스리기로 한 모양입니다.”
“어차피 버릴 패이니 상관없다는 거겠지.”
데블리카의 야망을 곱씹으며 에스테반은 비웃음을 흘렸다.
신이 되겠다니 그야말로 머저리 같은 생각이 아닌가.
그러나 마냥 무시할 수만은 없었다.
‘사상을 가진 미친놈이 제일 위험한 법이니까.’
그러니 무슨 일이 있어도 베론의 야욕을 막아야 했다.
한참 회의가 이어지던 때였다.
“으윽…….”
돌연 에이단이 한 손으로 이마를 짚으며 신음하기 시작했다.
“에이단? 왜 그래?”
“괜찮으십니까?”
오스카와 엔리케가 에이단의 안색을 살폈다.
에이단은 눈가를 찌푸렸다.
머리가 깨질 듯한 통증과 함께 불현듯 모르는 기억이 떠올랐다.
초토화된 어느 장소에서, 메이블이 자신을 향해 무어라 외치고 있었다.
“그러니까 조금만 기다려, 아데스.”
그 이후 사라지는 메이블의 모습과 음성.
“……메이블.”
되살아난 기억의 편린에서 에이단은 메이블의 존재를 느꼈다.
과거에 메이블이 있다.
세계를 구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메이블이.
그는 곧바로 자리를 박차고 달려나가 메이블을 찾아 황성을 헤매기 시작했다.
“에이단 아세라드. 무슨 일이냐.”
그를 뒤쫓아 온 에스테반이 심각한 얼굴로 물었다. 에이단은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되돌아온 줄 알았는데.”
그의 숨이 새하얗게 흩어졌다.
‘……어째서?’
메이블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분명 과거에서 사라지는 기억을 보았는데도.
‘메이블은 어디로 간 거지?’
***
목 부근이 타오르듯 뜨거웠다.
견딜 수 없는 고통에 몸부림치던 그때, 문득 주위의 풍경이 뒤바뀌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익숙한 장소였다. 다름 아닌 내가 살고 있는 황성 안이었으니까. 내가 서 있는 곳은 자주 산책을 나오곤 하던 본성 근처의 정원이었다.
그러나 이상한 위화감이 불현듯 머릿속에 스치는 가운데, 고개를 든 나는 순간 숨 쉬는 것조차 멈췄다.
부스럭.
“……!”
누군가와 마주쳤다.
그 순간 타오르던 열감의 원인이던 목걸이가 깨어졌다.
파삭.
“어…….”
나는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혹시라도 뒷말이 새어나가지 않도록.
‘……엄마?’
엄마가 눈앞에 있었다.
외할아버지가 선물로 주었던 펜던트 속에서 웃고 있던 그 엄마가.
***
바람이 불자 꽃잎이 우수수 떨어졌다.
성장한 내 모습이 저런 모습일까?
저녁놀이 내려앉은 정원에서 엄마가 놀란 듯 나를 바라보았다.
순간 머리가 굳었지만 재빠르게 사태를 파악했다.
목걸이를 매개로 엄마가 살아 있던 과거에 떨어진 듯했다.
비교적 멀지 않은 과거이고, 신의 방대한 신성력이 개입했기 때문에 고작 목걸이 하나에 감응하여 이 시간대에 떨어질 수 있었던 것이다.
혹은 목걸이에 담겨 있는 엄마의 추억과 기억이 강했다든가.
‘어쩌지?’
나는 내 행색을 살폈다.
500년 전 데블린 군대와 싸우다 왔기 때문에 꼴이 말이 아니었다.
옷은 여기저기 찢어져 있었고 얼굴과 팔에 생채기가 한가득이었다.
‘거지꼴…….’
누가 봐도 수상한 몰골이었다.
나도 모르게 한 발짝 물러선 순간, 엄마가 가까이 다가왔다. 내가 물러선 거리는 무색하게 금세 좁아졌다.
“뺨에 상처가…….”
“아앗.”
“어서 치료해야겠어요.”
“괘, 괜찮…….”
처음 만나는 엄마였다. 나는 바보처럼 말을 더듬으며 눈도 마주치지 못했다.
‘정말 만나고 싶었는데,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아기일 때부터 엄마에 대한 이야기를 수없이 들으며 자랐다.
그 단편적인 이야기 속에서도 엄마의 사랑을 느낄 수 있었다.
소녀 때에는 말괄량이였던 후작가의 영애. 그리고 상냥하고 다정하게 자라 제국의 황후가 되었던 내 엄마 시아나 가데니아 에르마노.
이야기 속의 엄마가 눈앞에 존재했다.
‘엄마. 진짜 엄마야…….’
점점 현실감이 들기 시작했다.
눈앞의 이 아름다운 여인이 내 엄마라고.
나와 똑같은 연분홍색의 벚꽃잎 같은 머리칼. 따뜻한 온기를 머금은 호박색의 눈동자가 예쁘게 휘었다.
초상화로 봤던 것보다 더 다정하고 따뜻했다.
“잠깐 들어와 볼래요?”
상냥한 권유였지만 그 말을 거역할 수가 없었다.
누가 봐도 수상한 나를 경계하지도 않고 엄마는 거침없이 다가와 내 손을 붙잡았다.
율리우스 3세의 군대와 싸운 탓에 손도 생채기투성이였다.
“어쩌다가 이렇게……. 오래 걸리지 않을 거예요. 응? 치료만 하고 가요. 그냥 보내기에 마음이 불편해서 그래요.”
끄덕끄덕. 내가 열없이 고개를 끄덕이자 엄마가 다정하게 웃었다.
“착해요.”
아이를 어르듯 나긋나긋한 말씨였다.
엄마는 상처투성이인 내 손을 조심스럽게 붙잡고 앞장서 걸어가기 시작했다.
주변을 둘러보며 어째서 익숙한 이 장소에 위화감을 느꼈는지 알 수 있었다. 내가 태어나기 전의 과거의 황성이니까 현실의 공간과 다른 건 당연했다.
게다가 현실은 눈발이 흩날리던 겨울이었지만 여긴 훈풍이 불어오는 따사로운 봄날이었다.
걷는 길목 길목마다 아빠가 심어놓았을 게 분명한 벚꽃이 꽃비를 내렸다. 개화 시기가 지나 낙화 시기에 접어든 모양이었다.
그 아래 앞장서 걷는 엄마의 모습은 그림 속 풍경 같았다. 머리 위에 사뿐히 내려앉는 꽃잎이 머리카락 색과 같아서 분간되지 않았다.
엄마의 손에 이끌려 졸졸 따라가던 나는 문득 무언가를 깨달았다.
‘일부러 사람이 없는 곳으로 돌아서 가고 있어.’
내가 살고 있는 황성이니 모를 수가 없었다.
그런데 어째서 엄마는 호위도 없이 정원을 거닐고 있었던 걸까. 위험하게.
‘후작가의 레이디 시절에도 몰래 탈출하는 걸 즐겼다고 그랬으니까, 아마 지금도 일부러 사람을 물린 걸지도 몰라.’
이런저런 생각에 잠긴 사이 황후의 침실에 도착했다.
문을 잠근 엄마가 나를 소파에 앉히고 치료 도구가 든 상자를 들고 왔다.
“제게 귀여운 아들이 있는데, 종종 다치곤 하거든요. 그때마다 치료해주곤 한답니다.”
“그, 그래요?”
오스카 이야기다! 아는 이름이 나오자 나는 극도로 긴장했다.
엄마는 익숙한 손길로 내 얼굴 상처를 꼼꼼하게 치료하기 시작했다.
어색한 침묵이 흐르는 가운데, 엄마가 내게 물었다.
“이름이 뭔가요?”
“어…….”
“알려주기 곤란한가요?”
“위, 윈터예요.”
어째서인지 내 이름을 그냥 내뱉을 수가 없었다. 쭈뼛쭈뼛 대답하자 나와 눈이 마주친 엄마가 해사하게 웃었다.
“예쁜 이름이네요.”
그 또한 내 이름 중 하나인 신명이니 거짓말은 아니지만, 그래도 거짓말을 했다는 죄책감이 들었다.
“엄, 아니, 그……. 말 편하게 해주세요…….”
엄마라고 부를 수도 없고, 그렇다고 다짜고짜 황후 폐하라고 할 수도 없어서 호칭을 내뱉지 못한 나는 부디 말을 놓기를 청했다.
“그래도 될까요? 친해진 것 같아서 나는 너무 좋은데.”
“네……!”
“그럼 그렇게 할게, 윈터 양.”
엄마는 생각했던 대로 친화력이 무척 뛰어난 사람이었다.
만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금세 내 긴장은 풀어져 엄마의 말을 홀린 듯 경청하고 있었다.
“이것도 마셔보렴. 아버지가 주신 건데 향이 아주 좋아.”
“감사합니다.”
“여기 쿠키도 같이 먹고.”
“눼.”
와작와작.
따뜻하고 향긋한 차와 달콤한 쿠키 폭격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불과 몇십 분 전까지 율리우스 3세와 대전했다는 사실도 가물가물하게 느껴질 정도로 평화로운 분위기였다.
턱을 괸 채 내가 과자를 먹는 걸 흐뭇하게 지켜보던 엄마가 문득 새로운 화제를 꺼냈다.
“고민이 있어.”
“뭔데요?”
“실은 남편에게도 아직 말하지 않았는데, 배 속에 귀여운 아가가 자라고 있거든.”
“……!”
나는 쿠키를 씹는 것도 멈추고 두 눈을 휘둥그레 뜬 채 엄마의 배를 응시했다.
‘엄마 배 속에 내가 있다……!’
임신 초기인 건지 배는 아직 납작했다. 따사로운 손길로 아기가 있는 배를 쓰다듬은 엄마가 나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이름을 뭐라고 지으면 좋을까?”
무려 내 이름을 무엇으로 지을지 내게 묻다니. 입을 벙긋거리자 엄마가 어째선지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음, 여자아이였구나. 생각해 둔 후보는 두 개가 있어.”
“뭔데요……?”
“메이블과 파시피카.”
“……?!”
뭐라고요?
“파시피카라는 분이 있는데, 내가 그분을 아주 존경하거든. 정말 멋진 분이야. 어떤 것 같니?”
경악한 나를 앞에 내버려 둔 채 엄마가 수줍게 웃었다.
“파, 파, 파, 파시……?”
“역시 파시피카가 좋겠-.”
끄아악!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나는 엄마의 두 손을 꽉 부여잡았다.
“메이블! 메이블이 좋아요!!”
어떻게든 이름을 사수해야만 한다!
‘도노반 공작과 동명이인이 될 순 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