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by Tyrant RAW novel - Chapter 262
262화. 그러나 메이블은 해냈다
난데없는 아기 천사 강림 신화.
메이블이 충격을 받든 말든 오히려 신이 난 것은 주변 사람이었다.
“아기 천사상을 만들자니, 그런 훌륭한 의견을 낸 자가 누구지? 상을 주어야겠다.”
“진심이십니까?”
구스타프의 되물음에 에스테반은 거침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지. 수도의 유망한 조각가들을 죄 불러모으거라!”
이윽고 에스테반은 제도 광장에 아기 천사상을 건립하자는 신하에게 큰 상을 내린 후 정말로 공사에 착수하기까지 이르는데…….
메이블이 미처 말릴 새도 없이 벌어진 일이었다. 수습하기에는 이미 소문이 널리 퍼져서 걷잡을 수 없는 수준이었다.
아무래도 같은 기사단 소속이다 보니 리산드로는 발 빠르게 소문의 출처를 알아 왔다.
“아무래도 기사 중 한 놈이 수습하려다 그런 소문이 난 것 같습니다. 아기 천사님.”
“르슨드르…….”
“그럼 저는 이만!”
잔뜩 털을 세운 고양이처럼 메이블이 눈을 가늘게 뜨고 노려보자 리산드로가 ‘꺅’ 비명을 지르며 부리나케 달아났다.
메이블 옆에서 책을 읽고 있던 오스카가 그녀를 위로했다.
“어쨌든 군사들이 함구 명령을 어긴 건 아니잖아.”
“어기다 못해 괴소문을 퍼트렸지.”
“상징성이 있는 거니까. 긍정적으로 생각해, 긍정적으로.”
위로하는 사람치고 싱글벙글한 오스카를 불만스럽게 바라보던 메이블은 한숨을 푸우욱 내쉬었다.
어차피 퍼진 소문, 돌이킬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으래. 나만 수치스러우면, 에르마노에 신화 하나가 더 생기는 거니까…….’
흑흑.
슬픔은 오로지 메이블의 몫이었다.
***
성대한 승전식이 준비되는 한편, 황제인 내게는 한 가지 과제가 생겼다.
바로 논공행상.
전쟁에 참여한 이들의 전공에 따라 적절히 상을 분배하는 일이었다.
아무리 내가 직접 전쟁에 참전하여 선두에 섰다고는 하나, 모든 전장 상황을 알 수는 없으니 객관적인 의견이 필요했다.
나는 가장 먼저 각 수장이 올린 보고서를 살펴보았다. 전쟁 중 그들이 눈여겨보고 또한 전공을 세운 이들이 누구인지 파악할 수 있었다.
“음.”
‘맞아. 이 기사는 나도 본 적이 있지. 판단력이 굉장했어.’
“흐음.”
‘이 기사는 아무래도 사심이 섞인 평가네.’
사각사각…….
한참 동안 내 집무실에서는 종이에 이름과 공적, 그리고 상 목록을 쓰는 소리만 났다.
“케이시…….”
수도에서도 사비까지 써가며 군수물자를 지원한 케이시.
“사병을 내어준 귀족들.”
비록 할아버지의 압박에 못 이긴 것일지라도 가문의 전력을 내어준 그들.
“엔리케 하비에르.”
몸을 던져 내 목숨을 구한 나의 자랑스러운 기사에게도.
목록이 척척 완성되었다. 적절한 상을 고심하느라 시간이 좀 걸리긴 했지만 이 정도라면 모두가 만족하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나는 어렵사리 마지막 이름을 썼다.
“에이단, 아세라드으…….”
하지만 이름을 쓴 그대로 멈춘 채 더 이상 움직이지 못했다.
에이단. 데블리카 황가에서 아데스에게 새로 낙인찍은 이름.
아세라드. 내가 에이단에게 지어준 ‘천사’라는 뜻의 성.
‘그러고 보면 에이단은 에이단이라고 불려도 상관없는 걸까?’
기억이 없어서일지도 몰랐다. 눈을 떴을 때부터 에이단은 아데스가 아닌 에이단이었을 테니까.
비록 기억이 없다고는 하지만 신인 에이단에게 한낱 인간일 뿐인 내가 주는 상이 의미가 있는 걸까?
에이단에게 상을 준다고 해도 뭘 줘야 하는 거지?
문득 에이단과 처음 손을 잡았던 그때가 떠올랐다.
“데부링을 뿌셔 버릴 꼬야. 가치 뿌술래?”
그런 내 질문에 에이단은 한쪽 무릎을 꿇으며 대답했었다.
“폐하의 뜻을 따르겠습니다.”
“바라시는 대로 저를 이용하십시오.”
우리는 데블린을 무너뜨리기 위해 서로를 이용하는 파트너였다.
나를 공격해서 가족을 다치게 한 데블린을 무너뜨리겠다는 나와, 금제를 통해서 자신을 휘두르던 베론에게 복수하겠다는 에이단.
처음에는 그런 단순한 목적이었던 우리의 관계는 시간이 지날수록 달라졌다.
이용이 아닌 강한 신뢰로 묶인 우리.
그 과정에서 에이단의 비밀을 알게 되면서 위기를 겪었다.
사실 에이단은 500년 동안 데블리카 황가에게 금제를 통해 이용당해왔고, 죽기 위해 나를 이 세계에 부른 거라고.
하지만 결국 헤쳐 나갔다.
‘이제 에이단은 행복해지는 일만 남았어.’
에이단과 내 바람대로 데블리카의 몰락이라는 목적을 이룬 지금, 에이단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이런저런 고민으로 시간은 빠르게 흘러만 갔다.
‘그런 에이단의 고통을 보상하려면…….’
결정을 내렸다.
비로소 깃펜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다 됐다.”
이윽고 마지막 상까지 정하고 깃펜을 내려놓았을 때였다.
굳게 닫혀 있던 집무실 문이 살짝 열렸다.
“메이블. 밤이 늦었는데 쉬지 않고 무엇 하느냐?”
가벼운 차림새의 아빠가 놀란 얼굴로 들어와 내 뺨을 쓰다듬었다. 나는 마침 다 완성한 서류를 아빠에게 내밀며 대답했다.
“논공행상!”
“이번 승전의 논공행상이더냐?”
“응. 아빠가 한번 봐 줘.”
집무 책상에 걸터앉은 아빠가 서류를 넘겨보기 시작했다. 나는 아빠의 허벅지 위에 얼굴을 기댄 채 아빠의 반응을 살폈다.
“어때?”
“상의 배분이 적절하구나. 누구도 이견을 제시할 수 없을 훌륭한 논공행-.”
아빠의 말이 도중에 뚝 끊겼다. 서류를 보니 가장 마지막 페이지였다.
에이단의 상이 적혀 있을 페이지. 나는 슬쩍 아빠의 얼굴을 살폈다. 그런데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지 모를 정도로 아빠의 표정은 묘했다.
‘반대하는 걸까?’
어쩌면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긴 했다. 다른 사람들 눈에는 에이단의 상이 과하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아빠는 예상외로 덤덤히 고개를 끄덕였다.
“잘했다. 이대로 진행하면 되겠구나.”
“정말?”
“그래. 수고했다, 메이블.”
나는 아빠가 딴소리하기 전에 얼른 서류를 챙겼다.
어쨌든 좋은 게 좋은 거 아니겠어?
***
승전식을 며칠 앞두고, 초대하지도 않은 손님이 에르마노에 방문했다.
나는 떫은 표정으로 귀빈을 맞이했다.
“신왕이 이렇게 허구한 날 놀러와도 돼?”
“안 되지.”
안 된다는 말을 당당하게 하는 미하엘의 뻔뻔한 태도에 절로 떠오르는 얼굴이 있었다.
“이쿠이가 불쌍해…….”
“네 구스타프만 할까.”
“구스타프는 아빠가 고생시키지. 난 안 그랬어.”
“그럼 케이시.”
“크흠.”
갑자기 공격당한 나는 헛기침을 하며 시선을 피했다.
찔렸다.
‘그래도 이번에 또 월급 인상했는데…….’
어찌나 돈이 없다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던지, 올려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쯤 되니 누가 상사인지 모를 지경이었다.
괜히 차만 홀짝홀짝 마시고 있으려니 미하엘이 넌지시 물었다.
“아드님은?”
“아드님?”
“아데스 님.”
“…….”
윽. 갑자기 소름이 쫙 돋았다. 미하엘의 입으로 아데스 님이라고 하다니.
나는 양팔을 쓸어내리며 대답했다.
“곧 교대시간이니까 올 거야.”
“그럼 그때까지 기다리자.”
“왜? 에이단한테 할 말 있어?”
“신께서도 함께 들었으면 하는 이야기라.”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이렇게 분위기를 잡는 건지 궁금하긴 했지만 묻지 않고 잠자코 기다렸다.
들어오기 전부터 에이단은 심기가 불편해 보였다. 아마 멀리서부터 미하엘이 이곳에 있다는 것을 알아챘기 때문인 듯했다.
“표정 풀어, 에이단.”
나는 에이단을 끌어당겨 내 옆에 앉힌 후 미하엘을 재촉했다.
“에이단도 왔으니까, 이제 말해 봐. 할 이야기라는 게 뭔데?”
“신탁.”
“신탁?”
미하엘이 말하는 신탁이라면 단 하나밖에 없었다.
내가 이 세계에 다시 태어나면서 내려왔다는 바로 그 신탁.
동쪽의 끝. 세계를 구원할 씨앗이 심어졌다.
잿더미 속에서 붉은 재앙이 타오르는 종말의 순간, 근원의 씨앗이 발아하리니.
마침내 창세의 가호가 함께 하리라.
미하엘이 짐짓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신탁이 마음에 걸려.”
“어째서?”
나는 신탁의 내용을 곰곰이 곱씹었다.
씨앗은 나고, 붉은 재앙이 타오르는 종말의 순간은 베론과 베론이 깨트린 세계를 뜻하는 것일 터.
씨앗의 발아는 전쟁의 승리이며 창세의 가호도 대충 그런 뜻이 아닐까 싶은데.
대충 이해하고 넘어간 나와는 달리 미하엘은 의구심이 남은 모양이었다. 이윽고 그는 직접 신탁의 당사자인 에이단에게 질문했다.
“신탁은 실현되었습니까?”
에이단은 고민도 않고 대답했다.
“그래.”
“그렇습니까.”
끈질기게 물고 늘어질 것만 같더니, 의외로 에이단이 그렇다고 대답하자 미하엘은 깔끔하게 납득하고 물러섰다.
‘누가 신 추종자 아니랄까 봐.’
에이단에게 물어보고 싶은 건 그게 끝이 아닌지, 미하엘의 질문이 이어졌다.
“신의 신자로서 여러 가지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아니.”
그러자 미하엘이 나를 바라보았다. 의도가 명확히 보이는 시선에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에이단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에이단.”
“물어봐.”
돌변한 에이단의 태도에 미하엘이 잠깐 허탈한 듯 웃었다. 에이단이 경고하듯 말했다.
“온전한 신의 기억이 있는 게 아니라 확실히 대답해 줄 순 없다는 것을 염두에 둬.”
“물론입니다. 첫 번째는 창세 신화와 관련한 의문입니다.”
무의 공간에서 탄생한 신이 세계 곳곳에 심은 창세목.
그 나무를 관리하기 위한 정원사가 바로 인간이었는데, 한 인간이 창세목을 먹어치우는 것을 시작으로 다른 인간들도 합세하여 결국 대륙의 창세목이 대부분 사라졌다.
그래서 신은 인간을 저주하며 일곱 가지 죄악을 뿌리내리고 지상에서 사라졌다는 게 창세 신화의 내용이었다.
‘에이단이 인간을 저주한다고?’
에이단의 성격상 상상도 되지 않는 일이라 더 생뚱맞게 느껴졌다.
“창세 신화의 내용이 진실입니까?”
미하엘의 질문에 에이단이 나지막이 대답했다.
“이 세계의 문명은 유구하다. 그 긴 시간 동안 신의 불멸과 창세의 권능을 탐낸 인간이 데블리카 황가만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창세목을 먹어치웠다는 말은 진실이군요.”
“애초에 인간이 다룰 수 없는 힘이다.”
베론만 하더라도 육체의 부식을 막지 못해 끊임없이 정수의 힘을 갈구하고는 했다.
“신이 되고자 했지만 실패한 인간들의 역사다. 그 대가로 죄악이 생겨났고.”
“그게 후대에 가서 신화로 포장된 것이군요.”
“아마도.”
신으로부터 직접 전해 듣는 진실에 흥분한 미하엘의 눈이 초롱초롱하게 빛났다.
“잠깐. 그럼 정말로 에르마노의 시조는 유일하게 신을 탐하지 않은 정원사입니까?”
베론의 질문이 쏟아지자 에이단이 나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내 허락만 기다리는 듯한 에이단의 태도에 결국 동정심이 이겼다.
“에이단, 도망가자!”
“뭐? 브리브리!”
열렬한 신도를 피해, 나는 얼른 신을 데리고 튀었다.
***
“그럼 회의 다녀올게. 산책이라도 하고 있어.”
명랑하게 손을 흔든 메이블이 대회의장 안으로 쏙 들어갔다.
에이단은 대회의장 출구 옆에 기댔다. 메이블의 회의가 끝날 때까지 대기할 생각이었다.
그때 맞은편 복도에서 미하엘이 걸어왔다. 에이단이 노골적으로 인상을 찌푸렸다.
“아드님.”
“뭐……?”
미하엘이 자신들을 바라보는 사람들을 눈짓했다.
“대외적으로는 제 아들이지 않습니까? 그렇다고 불경하게 ‘아들아’ 할 수 없으니까, 아드님.”
에이단의 표정이 더더욱 구겨졌다. 하지만 미하엘은 개의치 않고 독대를 청했다.
“잠깐 이야기를 나누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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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인적 드문 후원으로 자리를 옮겼다. 미하엘은 용건만 간단히 말하기를 바라는 에이단의 의도를 눈치채고 곧바로 본론을 꺼냈다.
“신탁이 실현되었다는 말씀, 거짓입니까?”
“그래.”
메이블이 없는 자리니 사실대로 말할 수 있었다.
에이단은 500년 전, 과거에 떨어졌던 메이블과 헤어지던 그 순간을 떠올렸다.
그 짧은 순간 그는 미래를 안배했다. 왜냐하면 그때 그가 목격한 미래에는 분명 폭주한 자신과 무너져가는 세계가 생생하게 보였으므로.
신탁 속 붉은 재앙은 아데스 자신이었다.
그러므로 미래의 안배와 신탁은 모두 자신을 죽이기 위한 과정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자신은 죽지 않았고, 신탁은 실현되지 않았다.
기어코 죽일 수 없다는 메이블의 의지가 자신을 살렸기 때문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균형이 깨져 무너져가던 이 세계조차.
한 사람의 의지가 예견된 미래를 바꿀 수 있는가?
그러나 메이블은 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