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by Tyrant RAW novel - Chapter 326
7화. 오스카 알레 도노반 (2)
시작은 매년과 다름없는 평범한 생일 파티였다.
떠들썩한 것을 싫어하는 오스카는 귀찮게 구는 귀족들이 바글바글한 탄신연회 대신 친분 있는 이들만 모아 단출하게 축하 파티를 열곤 했다.
단출하다지만 도노반 가의 소연회장을 통째로 사용하는, 구색은 갖춘 파티였다.
종종 오스카와 친분을 쌓기 위해 안달 난 뭇 귀족들의 생일 연회를 열지 않으냐는 요청을 받긴 했지만, 오스카는 아주 간단히 무시했다.
언젠가 가문을 이끄는 지위에 오른 후라면 모를까, 지금 굳이 귀찮은 일을 감수할 필요는 없었으니까.
권력의 정점에 있는 도노반 공작가의 후계자니 인맥 관리할 필요도 없었다. 게다가 무려 황제의 단 하나뿐인 오빠가 아닌가.
소수 정예만이 참석할 수 있는 영광스러운 생일 파티의 첫 번째 손님은 바쁘기로 유명한 에르마노의 위대한 황제, 메이블이었다.
파티 시작도 전에 도노반 가문에 들이닥친 메이블은 옷을 갈아입는 중이던 오스카의 침실로 돌진했다.
소매 단추를 풀려던 오스카가 깜짝 놀라 뒤돌아보았다.
“메, 메이블?”
“오스카, 생일 축하해! 올해 생일 선물은…….”
짓궂게 웃은 메이블이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더니 꽃받침을 만들며 외쳤다.
“나야!”
“정말? 최고의 생일 선물이야, 메이블!”
“엉……?”
이게 아닌데?
분명 농담인 게 분명한데, 오스카는 진심으로 기뻐하며 메이블을 와락 끌어안았다.
뭔가 잘못되었다!
당황한 메이블이 서둘러 해명하려고 했지만, 쉽지 않았다.
“오스-.”
“선물이 메이블 너라니 내가 지금까지 받은 그 어떤 선물보다 값진 선물이라고 할 수 있는데?”
“잠깐-.”
“어떻게 이런 기특한 생각을 했어? 메이블, 천재 아냐?”
“아니-.”
“맞아. 메이블은 원래 천재였지.”
오스카가 메이블을 보며 흐뭇하게 웃었다. 메이블 또한 오스카를 마주 보며 방긋 웃었다.
‘오스카 주접력, 아직 죽지 않았구나…….’
에이단과 결혼한 이후에 좀 잠잠해져서 잊고 있었다.
메이블은 답도 없는 동생 바보의 이름을 불렀다.
“오스카.”
“응?”
“그건 농담이었어. 생일 선물은 따로 있다고.”
그러자 오스카가 곧바로 시무룩한 얼굴을 했다. 진심으로 속상한 얼굴로 그가 중얼거렸다.
“좋다 말았네. 드디어 에이단이랑 이혼 결심한 줄 알았는데…….”
“응? 오스카, 뭐라고?”
“아냐. 아무것도.”
오스카는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메이블을 보며 다정하게 웃었다. 메이블은 의구심 가득한 눈으로 오스카를 보았다.
‘이혼, 어쩌고 했던 것 같은데……?’
하지만 뭐라 할 새도 없이 다른 화제로 넘어갔다.
“네 남편은 어쩌고 이렇게 혼자 왔어?”
“에이단은 케이시한테 붙잡혀서 좀 늦는대.”
“에이단 녀석도 은근히 마음이 여리다니까.”
“맞아. 우리 에이단 엄청 여리고 착하다고.”
졸지에 에이단은 에르마노 황가의 두 남매에게 마음이 여리고 착한 사람으로 평가되었다.
같은 시각, 케이시가 얼마나 들들 볶이고 시달리고 있는 줄도 모르고…….
오스카가 소매 단추를 마저 풀며 메이블을 돌아보았다.
“메이블. 나 옷 마저 갈아입어야 하는데, 잠깐만 산책하면서 기다릴래?”
“응. 빨리 준비하고 나와!”
“네, 폐하. 황명을 따르겠습니다.”
장난스럽게 웃는 오스카를 뒤로하고 메이블은 복도로 나왔다. 싱글벙글 웃고 있던 메이블의 표정이 언뜻 긴장으로 물들었다.
‘좋아. 오스카가 옷 다 갈아입기 전에 확인 끝내야지.’
나중에 자신과 함께 가자는 에이단을 굳이 떼어 놓고 파티가 시작하기도 전에 미리 온 이유가 있었다.
몇 가지 확인을 끝마친 메이블은 마지막 점검을 위해 저택을 돌아다니며 누군가를 찾기 시작했다.
머지않아 그녀는 소연회장을 점검하던 도노반가의 집사를 발견했다.
“황제 폐하를 뵙습니다. 말씀하셨던 대로 일찍 오셨군요.”
깐깐하게 생긴 집사는 그답지 않게 인자하게 웃으며 황제를 맞았다.
어릴 때부터 종종 마주치곤 했던 도노반 가문의 집사는 메이블에게도 제법 친숙한 존재였다.
“오랜만에 보는군, 집사. 아무래도 짐이 직접 확인하는 게 마음 편해서 말이야. 도노반 공이 오늘 저녁이 되어서야 돌아오는 게 확실한가?”
“물론입니다, 황제 폐하.”
“차질이 있어선 안 되네.”
“걱정일랑 하지 마시지요. 혹 변수가 생기더라도 폐하께서 말씀하신 순간까지는 무슨 일이 있어도 착실히 시간을 벌겠습니다.”
진작 메이블의 작당모의를 듣고 그 계획에 가담한 집사는 열의에 불타 선언하듯 말했다.
든든한 아군의 존재에 메이블이 흐뭇하게 미소 지었다.
“그래. 오늘 파티도 잘 부탁해. 집사가 늘 수고가 많아.”
“무슨 수고?”
갑자기 끼어든 음성에 고개를 돌리자 준비를 모두 끝마치고 온 오스카가 집사와 메이블을 번갈아 보았다.
메이블은 눈짓으로 집사에게 얼른 가라고 종용하며 오스카의 앞을 막아섰다.
“우와, 우리 오스카. 그 옷 완전 잘 어울리는데? 누구 오빤지 정말 잘생겼다!”
“뭘 새삼스럽게. 누구 오빤데 당연하지. ……그래서, 집사랑 무슨 이야기 했어?”
웬만하면 그냥 넘어갈 오스카인데, 오늘따라 어째서인지 집요했다.
메이블은 뒤를 흘긋 보며 집사가 사라진 것을 확인한 후 대답했다.
“이번에도 생일 파티 잘 부탁한다고 이야기했지. 또 오늘 누구누구 오는지도 궁금해서 물어봤고.”
“그게 다야?”
“음, 맛있는 거 많냐고도 물어보긴 했는데…….”
하핫. 메이블이 민망한 듯 웃어 보였다.
오스카는 메이블의 단 하나뿐인 오빠로서 누구보다 메이블에 대해 빠삭하게 잘 안다고 자부했다.
본인은 잘 모르는 듯하지만 메이블이 계획을 세울 때 짓는 특유의 표정이 있었다.
‘뭔가를 꾸미고 있는 얼굴인데.’
바로 지금처럼.
“오스카. 준비 다 된 것 같아. 들어가자.”
하지만 뒤돌아 해맑게 웃는 메이블의 얼굴을 보니 뭐 아무렴 어떤가 싶었다.
‘메이블이 나한테 해가 될 일을 할 리가 없으니까.’
***
도노반 저택의 소연회장에 초대된 모든 사람이 모였다.
도노반 가문의 유일한 후계자인 오스카를 위해 사용인들이 정성껏 꾸민 소연회장은 규모는 작지만 상당히 화려했다.
오스카는 오늘 생일의 주인공으로서 돌아다니며 손님들의 인사를 받았다.
첫 번째로 인사한 손님은 무려 일국의 황제면서 에르마노까지 몰래 행차한 딜런이었다.
“생일 축하해. 오스카 형.”
고종사촌이지만 자주 교류하는 메이블과 달리 오스카는 딜런과 연락을 잘하는 편이 아니었다.
물론 초대장을 보내긴 했지만, 이렇게 냉큼 찾아온 건 의도가 뻔했다.
“사실 식사하러 오신 것 아닙니까, 폐하?”
오스카의 일침에 딜런이 상큼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아, 들켰다.”
“하아…….”
“여기, 선물. 누님 것도.”
오스카에게 선물 상자 두 개를 건넨 딜런은 제 소임을 다했다는 듯 홀가분한 얼굴로 에르마노의 미식 탐구를 위해 여행을 떠났다.
“오늘 음식은 남아나질 않겠네…….”
다음 인사 상대는 어째선지 초췌한 몰골의 케이시였다.
“생일 축하드려요. 제 맘 알죠?”
“모르겠는데.”
“하하하! 예나 지금이나 쑥스러움이 많으시다니까.”
케이시는 오스카의 까칠함을 쑥스러움으로 포장하며 능청스럽게 웃었다.
“선물은 무려 바로바로바로 이번에 개발한 저의 회심의 역작 시제품 마도구랍니다! 와아아, 박수!”
짝짝짝!
케이시는 혼자 박수를 신명 나게 치더니 구석에 걸어가 픽 쓰러져 잠들었다.
“…….”
그 광경을 지켜보던 오스카는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에이단. 대체 뭘 시킨 거야?’
한 번 마스터는 영원한 마스터라며 부려 먹기라도 하는 건가.
마침 두리번거리던 메이블이 구석에서 잠든 케이시를 보자마자 담요를 가져와 그 위에 덮어 주는 게 보였다.
‘역시 내 동생 메이블이 세상에서 제일 착하다.’
오스카가 뿌듯하게 웃고 있을 때 엔리케가 다가와 그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뭘 그렇게 웃고 있어, 오스카.”
“내 동생이 너무 귀여워서 곤란해.”
엔리케는 오스카의 주접을 가볍게 무시하며 포장된 선물을 건넸다.
“자. 전에 갖고 싶다고 했던 거. 생일 축하해.”
“고맙다, 엔리케.”
무슨 선물인지 말하지 않아도 알아들을 수 있었다. 오스카가 선물을 구겨지지 않도록 소중하게 챙기려던 순간이었다.
“대체 뭔데 그렇게 은밀하게 감추는데?”
어느새 다가온 에밀리가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엔리케의 생일 선물을 보았다.
“……별거 아냐.”
오스카가 아무렇지 않은 척 태연하게 대답했지만, 이미 정치판의 노련한 정치인이 되어 버린 에밀리의 눈을 속일 수는 없었다.
“별거 아닌데 왜 그렇게 숨기시나요, 도노반 공자?”
“말을 놓을 거면 그냥 놓고, 높일 거면 높여, 에밀리.”
“뭔데 그래?”
입을 다문 오스카 대신 선물의 정체를 말해 준 건 엔리케였다.
“황제 폐하 특집 기사야.”
“아, 딱 100부만 인쇄해서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라는 바로 그 잡지?”
무려 황제의 용안 사진이 실려 있어 다들 갖고 싶어서 난리였지만 가진 사람들도 그 사실을 숨겨서 전설의 잡지로 취급되었다는 바로 그 잡지!
엔리케는 무려 그 귀한 잡지를 오스카의 생일 선물로 구해서 준 것이다.
에밀리가 감탄하며 중얼거렸다.
“100부 다 아세라드 대공이 사들였다는 소문이 있었는데, 아니었나 봐.”
“그것도 영 뜬소문은 아닐걸.”
오스카는 질린다는 얼굴로 메이블 옆에 딱 붙어 있는 에이단을 보았다.
100부까진 아니더라도 최소 90부는 에이단이 소장하고 있을 게 분명했다.
“저 자식 집착을 누가 말려?”
오스카의 말에 에밀리가 작게 웃었다.
“메이블도 즐기는 것 같던데?”
“으음.”
오스카는 그 말에 동의할 수밖에 없다는 게 자존심 상했다.
그러다 문득 에밀리는 가장 중요한 말을 하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
“아, 맞다. 생일 축하해, 오스카 오라버니. 선물은…… 뭐, 피차 돈이라면 충분하니 값비싼 건 의미 없을 테고. 저번에 메이블이랑 여행 갔을 때 찍은 사진 좀 가져와 봤는데-.”
“고마워!”
오스카는 사양하지도 않고 냉큼 받았다.
메이블은 많으면 많을수록 이득이다.
다음 인사 대상은 사람은 아니지만 유일하게 초대된 존재인 신수 양이였다.
거대화를 해야 대화할 수 있음에도 양이는 귀찮다는 듯 작은 모습으로 타박타박 걸어오더니 오스카의 발치에 무언가를 뱉었다.
“퉤.”
북쪽 숲에서 대충 꺾어 왔을 게 분명한 들꽃이었다.
“이야옹.”
양이는 알아들을 수 없는 고양이 언어를 하더니 시니컬하게 뒤돌았다.
“생일 축하한다는 뜻인가……?”
통역사인 메이블이 없으니 뭐라고 하는지 알 수가 있어야지.
인사를 끝마친 양이는 음식을 털고 있는 딜런의 옆에 한 자리 차지하고 신나게 먹기 시작했다.
양이의 목적도 다른 곳에 있었던 듯했다.
“올해 생일 파티, 유독 범상치 않네…….”
참석한 손님들이 다 다른 의미에서 비범하니 당연한 결과였다.
그때 닫혀 있던 연회장 문을 활짝 열고 누군가 활기차게 난입했다.
근무를 마치고 돌아온 리산드로였다.
오는 길에 한잔 걸치기라도 했는지 그의 얼굴이 살짝 붉었다.
“오스카. 생일 축하한다!”
“오셨습니까, 외숙부.”
오스카가 의젓하게 대답했지만, 리산드로는 개의치 않고 두 팔을 활짝 벌렸다.
“이리 와라, 오스카. 오랜만에 한 번 안아 보자!”
“예?! 외, 외숙부! 갑자기 이러시면 곤란……!”
와락! 당황한 오스카는 외숙부를 밀어내지도 못하고 어정쩡하게 서서 속절없이 안겼다.
오스카는 다 큰 청년이 다 큰 어른에게 안긴 이 장면이 우스꽝스러울 것이라 확신할 수 있었다.
리산드로가 기껏 매만진 오스카의 뒷머리를 거칠게 쓰다듬으며 말했다.
“네가 꼬맹이일 땐 목말 태우고 그랬는데, 이젠 그러지도 못하겠네!”
“시간이 많이 흘렀으니까요.”
하하. 짧게 웃은 리산드로가 여전히 오스카를 끌어안은 채 물었다.
“작위 승계를 계속 피하고 있다던데.”
“…….”
“네 마음 다 안다, 오스카.”
훅 치고 들어오는 리산드로의 나지막한 음성에 오스카는 이를 꽉 물었다.
이렇게 갑자기 마음을 두드리면, 곤란했다.
특별외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