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chelor Degree RAW novel - Chapter 185
185화. 새옹지마
5층은 남 부인이 축기 후기 수사인데 6층은 결단기 수사라도 기다리고 있는 것인가? 그러나 남 부인이 데려간 곳엔 겨우 열예닐곱 정도의 소녀가 기다리고 있었다.
맑은 눈을 가진 소녀는 소박한 옷에 법력이라곤 전혀 없는 범인이라 그의 예상을 완전히 벗어났다.
소녀는 남 부인을 보자마자 달려와 그녀에게 달라붙어 남 이모라 부르며 부산을 떠는 것이 한립은 전혀 안중에도 없는 것 같았다.
“손님께서 계시잖니.”
남 부인은 말은 이렇게 해도 그녀를 지극히 아끼는 것 같았다.
“손님이요?”
그녀는 한립을 훑어보더니 별 관심 없다는 표정이었다.
“그래, 한 수사님께서 최근 들어온 약방과 저번에 매입한 할 벌로 된 법기가 보고 싶으시다니 안내해 드리거라. 난 5층을 맡아야 하니까 말이야.”
“네, 그럼 다음에 올라오시면 더 놀다 가셔야 해요?”
소녀는 꽤나 아쉬운 눈치였다. 남 부인은 자애로운 미소를 지으며 다시 아래로 내려갔다.
소녀가 드디어 한립을 보고는 냉랭히 말했다.
“원하시는 약방이 어떤 것입니까? 저희에게 8장 정도가 있으나 그 중 축기기 수사님이 쓰실 만한 것은 2장뿐이고 가격이 엄청나서 영석 수 백 개로는 어림도 없을 정도 입니다.”
한립은 조금 무례하게 느껴지는 말에도 화를 내기보다 미소를 지었다.
“약방이기만 하다면 가격은 걱정하지 마시오.”
“그럼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약방과 법기를 내오라 하지요.”
어쨌든 가격에 구애 받지 않는 씀씀이 큰 고객은 언제나 환영이었다.
그녀는 품에서 종을 꺼내 규칙적으로 울리더니 바로 곁의 나무의자로 가 먼저 앉아 버렸다. 한립에게 자리를 권하지도 않았다.
조금 뜻밖이긴 했으나 한립도 천천히 의자로 다가가 그녀와 협탁을 사이에 두고 앉았다.
잠시 후 젊은 여수사가 두 개의 옥함을 내왔다.
“여기다 두고 나가거라.”
“예, 아가씨!”
여수사는 공손히 답하고는 옥함을 두고 물러났다.
분명 수도자인 여수사가 겨우 범인 소녀에게 이리 조심스럽게 대하는 것이 이상했다.
“법기와 약방이니 스스로 살펴보시지요. 마음에 드신다면 가격을 알려드리죠.”
소녀는 옥함을 한립 쪽으로 밀었다.
한립은 바로 작은 옥함을 열어보았고 그 안에는 붉은 서책과 하얀 서책이 놓여있었다. 그는 옥으로 된 서책을 꺼내 가만히 눈을 감고 의식을 불어넣었다.
두 약방 중 하나는 뢰만학에게 받았던 취령단(聚靈丹)이란 고대 약방으로 이미 있으니 필요가 없었고 다른 하나는 진원단(眞元丹)이란 약방으로 오래 된 약재가 필요할 뿐 비교적 배합이 쉬워 그에게 적합했다.
그러나 가격 면에서 보통 약방인 진원단은 고대 약방인 취령단 보다 수배는 비쌀 것이 분명했다.
생각을 마친 한립은 평이한 표정으로 서책들을 옥함에 돌려놓고는 다른 옥함을 열어보았다.
그리고는 한립은 놀란 기색을 여과 없이 드러냈다. 뜻밖에도 무려 13개나 되는 붉은 빛이 가득한 가는 침들이 놓여 있었던 것이다.
한립이 그간 많은 종류의 법기를 접했지만 침의 형태로 된 것은 처음이었다. 소녀는 한립이 놀라는 것을 보더니 슬쩍 책에서 시선을 뗐다가 다시 고개를 숙여 독서에 열중했다.
한립은 13개 중 하나를 뽑아 들어 자세히 살펴보느라 그녀의 표정을 보지 못했다.
비록 한 번도 누군가 이런 법기를 사용하거나 지닌 것은 본적이 없지만 날아다니는 침 형태의 법기가 얼마나 무서운 무기인지는 들어 알고 있었다.
공격력은 일반적인 법기에 비해 약간 떨어지지만 몸집이 작은 만큼 속도에서는 따라갈 수가 없어 습격에 최적인 물건이었다. 그래서 일부 수사들은 침 형태의 법기를 음험한 무기라 경계했다.
당연히 이렇게 작고 얇은 만큼 제련에 특수한 재료가 필수였고 난이도도 높아 수도계에서 잘 찾아 볼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이런 법기를 사용하는 이들은 위기의 순간 필살기로 이용해 적을 부지불식간에 죽이곤 했다.
지금 그런 물건이 무려 13개가 한 벌로 나타났으니 한립이 놀라는 것은 당연했다.
“소저, 이 법기의 이름은 무엇이오?”
“홍선둔광침(紅綫遁光針)!”
소녀가 한립의 물음에 책을 내려놓고 답했다.
“좋소, 진원단 약방과 이 법기를 거래하겠소.”
“이 법기를 원한다고요?”
“어찌 문제라도 있소?”
“홍선둔광침이 굉장한 물건인 것이 사실입니다만 거래를 하기 전에 알려드릴 것이 있습니다. 이 한 벌로 된 법기는 다른 것들과 달리 언제나 열세 개를 함께 구동해야만 사용할 수 있습니다.”
“동시에 사용해야 한다?”
그에게 뜻밖의 소식이었다. 어쩐지 귀한 물건이 아직도 거래되지 않고 남아있던 이유가 있었다.
“예, 이모님도 이 법기를 마음에 들어 하셨으나 겨우 8개를 장악하다가 포기하셨지요.”
“13개라.”
한립이 미소를 지으며 옥함을 향해 뻗자 동시에 법기에서 붉은 빛이 번득이며 모든 침들이 공중으로 떠올랐다. 이어 열세 줄기의 붉은 빛이 한립의 주위를 쾌속으로 돌더니 순식간에 붉은 실의 그물망처럼 변했다.
이 광경엔 서늘하던 소녀도 입이 벌어졌다. 그가 다시 손을 거두어 붉은 침들을 옥함으로 돌려놓았다.
“이제 거래할 수 있겠소?”
“사용하실 수만 있다면 당연히 거래 가능하지요. 진원단 약방과 더해 영석 4,000개를 지불해 주시면 됩니다.”
소녀의 안색이 평이하게 돌아와 역시 웃음기 없는 얼굴로 가격을 말했다.
“4,000개!”
한립은 소녀를 보며 코를 문질렀다. 생각했던 것보다 더 높은 가격이었다.
“약방이 1,500개, 법기가 2,500개입니다.”
그녀는 바로 가격을 설명했다.
사실 영석 4,000개도 비싸게 부른 것이 아니었다. 삼국 연합이 마도에 대패한 상황만 아니었어도 이렇게 귀한 물건들이 시장에 나타날 리도 없을 것이다.
한립이 돌연 다시 자리에 앉아 물었다.
“혹시 천년 영초는 시세가 어떻게 되오?”
* * *
일각 후 한립은 진성각을 나섰다.
그는 되돌아 높은 누각을 올려다보며 장난스런 미소를 지었는데 걸음이 가벼웠다. 그의 저물대에는 홍선둔광침과 약방이 담긴 서책이 들어있었기 때문이었다.
아까 소녀에게 천년 영초의 시세를 물어보고는 약초 자체가 아니라 그것이 함유된 두 알의 정안단(定顔丹)을 꺼내 보였었다.
한립이 정안단이 어린 용모를 유지하게 해준다는 설명을 하자 차갑기 그지없던 소녀의 두 뺨이 열기로 발그레해 진것을 똑똑히 기억했다.
소녀는 바로 성진각의 연단사를 불러와 풍문으론 들었으나 아무도 만들었단 이야기는 없는 단약을 검사하려 했다.
연단사가 나타나 단약 두 알이 분명 정안단 임을 확인해 주자 소녀는 바로 5층에 있던 자신의 이모를 모셔왔다.
두 여인은 무언가 속닥거리기 시작했고 곧 정안단 2알과 영석 1,000개를 받고 약방과 법기를 내준 것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운이 좋았다.
미모를 영원히 유지해준다는 이야기는 어느 여인이라도 혹할 것이었지만 영리하고 법력도 심후한 여수사 마저 정안단 앞에서 소녀처럼 어쩔 줄 모를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원래 기껏해야 영석 2,000개 정도로 쳐줄 것이라 생각했는데 성진각의 주인이 모두 여인인 것이 이렇게 다행일 수가 없었다. 만일 사내였다면 이렇게 열띤 반응은 기대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거래를 마치고 남 부인이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단약을 어디서 구한 것인지 물어왔으나 한립은 딱 잘라 우연히 얻었다 답하고는 자리를 떴다.
사실 성진각을 떠나며 조금 아쉽기는 했다.
지금 같은 혼란기에 홍선둔광침과 약방 외에도 쓸 만한 물건이 있겠지만 단약이나 영초를 가지고 계속 거래하려 했다가는 남들의 눈에 띄어 안 좋은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아쉬움을 가득 안고 시장거리의 객잔에 들어가 방을 잡았다. 남은 시간 동안 휴식을 취하고는 내일 서 노인의 점포를 찾을 생각이었다.
이튿날 아침 법기 상점에 약속한 대로 한립이 나타났다. 서 노인은 그를 목이 빠져라 기다리다가 한립이 들어오는 것을 보자마자 흥분해 다가왔고 그 둘은 후원으로 이동했다.
* * *
보름 후 한립은 결국 점포를 나섰다.
그러나 들어갈 때와는 달리 잔뜩 실망한 채였다. 그 뒤로 서 노인이 부끄러운 듯 고개를 푹 숙이고는 무어라 중얼거리며 따라 나오고 있었다.
한립은 숨을 길게 내쉬고서야 겨우 안정을 찾았는지 차분히 주인에게 몇 마디를 해주고는 떠났다.
얼마 뒤 시장의 금제를 벗어난 그는 바로 신풍주를 타고 신여음이 있는 이름 없는 산으로 날아올랐다.
아무도 없는 허공에서 그의 인상은 잔뜩 구겨져 버렸다.
서 노인의 제련술을 믿었건만 그 귀한 재료들을 다 날리고 겨우 법기 한 벌만을 만들어냈던 것이다.
게다가 가장 아꼈던 거대 사마귀의 부속물들은 단 하나도 남김없이 모두 망쳤다.
한립은 화가나 호되게 서 노인을 혼내 주려고 했으나 노인도 수치심에 차마 고개를 들지 못하자 그럴 필요를 못 느끼게 되었다. 심지어 점포를 나서기 전에 그를 위로까지 해준 것이다.
탄식한 그는 저물대에서 새하얀 다섯 개의 비도를 꺼내 발동했고 하얀 불빛이 그의 주위를 돌았다.
이것은 하얀 거미의 다리로 만들어낸 것으로 그나마 이 한 벌이 성공하며 큰 위안을 주었다.
나머지 다리들도 죄다 망가지고 등 부분으로 방어용 법기를 만들려던 희망도 날아갔지만 이것만으로도 감지덕지였다.
이번 경험을 통해 귀한 재료일수록 정말 기술이 뛰어난 장인을 찾아야 함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지난 번 교룡의 재료는 거의 대부분이 제련에 성공했으니 말이다.
그는 다시 작은 산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번엔 한립이 전음부를 보낼 것도 없이 진법의 안개가 걷히며 그를 위해 길을 열어주었다.
그는 미소를 지으며 안으로 진입했다. 약속한 시일이 며칠 남았는데도 신여음이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딱 맞춰서 오셨습니다. 이틀 전에 수리가 끝나 이 진법도를 가지고가 그대로 복구하시면 고대 전송진을 이용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신여음은 옥으로 된 서책을 꺼내 한립에게 건넸다. 그녀에게도 고대 전송진을 복구하는 것은 즐거운 도전이었고 성공까지 했으니 기분이 나쁘지 않았던 것이다.
한립은 옥을 매만지며 드물게 진심을 담아 미소를 지었다.
비록 당장 고대 전송진을 이용할 생각은 없었지만 최후의 퇴로라는 의미에서 무엇보다 중요했다. 의식을 불어넣어보니 역시 훼손된 일부가 완전히 복구되어 있었다.
“신 소저가 그간 고생이 많았습니다.”
“고생이랄 게 있나요. 저도 무척 즐거웠는걸요.”
그녀는 차분히 말하고는 무언가 생각난 듯 작은 저물대를 한립에게 건넸다.
“전 기껏해야 두 해를 넘기지 못할 테니 저와 제 부군이 함께 제련한 진법 법기들은 한 선배님께 맡기겠습니다. 앞으로 수련을 하시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렇게 중요한 물건들을 주며 가볍게 얘기하는 그녀를 보곤 한립의 눈빛이 깊어졌다. 잠시 말이 없던 그는 두 손으로 저물대를 건네받으며 입을 열었다.
“나 한립이 비록 무슨 군자나 협사는 아니지만, 신 소저와 약속한 대로 능력이 되는 한 부가 일족을 멸하고 수도계에서 그 이름을 들을 수 없게 만들 것을 약속하겠소.”
한립의 진지한 약속에 그녀가 미소를 지었다.
그녀는 한립처럼 쉽게 약속을 하지 않는 이가 더욱 자신이 한 말에 책임을 진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선배님께서 급하신 일이 없다면 이곳에서 며칠 머무르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진법에 대해 이야기를 좀 나누고 싶습니다.”
* * *
사흘 후 한립은 신여음의 거처를 떠나 수도자들이 자주 모이는 백지산(白池山)으로 향했다.
그곳은 원무국 산수들이나 가문의 사람들이 모여 정보를 나누며 교류하고 작은 거래도 이루어지는 곳이었다.
이번에 백지산을 가는 목적은 월국 수도계의 소식을 듣기 위해서였다. 아마 이번에 모은 정보를 기반으로 계획을 정할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이번 모임의 시일이 얼마 남지 않았다.
백지산은 신여음의 거처와도 그리 멀지 않아 그녀와 제운소도 생전에 몇 번 모임에 참여했었는데 이런 소규모 모임은 거의 연기기 수사들 위주로 이뤄진다 들었다.
하루가 지나고 그는 백지산에 도착했다.
그다지 높은 산이 아니라 크고 작은 세 개의 봉우리가 있었고 그 중 가장 높은 서쪽 봉우리가 이번 모임의 장소였다.
하얀 빛 줄기로 화한 한립이 그곳을 향해 날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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