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chelor RAW novel - Chapter 150
150화. 약속대로 찾아가다
“마도인과 관계가 있을지 모른단 말입니까?”
오 선사는 한립이 황풍곡 인물이란 것에는 놀라지 않았다. 어차피 칠대선파 출신 외의 축기기 수사는 드물었으니 이미 예상한 바였다.
그러나 자신의 제자가 될 이와 왕 총관이 마도와 관련이 있을 거란 의혹에는 얼굴색이 바뀌었다. 마도인의 악명은 대단했다.
그들의 잔혹하고 피비린내 나는 손속은 오 선사 같은 일개 연기기 수사가 감당할 만한 것이 아니었다.
“선배님께서 잘못 아신 것은 아니겠지요? 제가 소왕야의 몸을 점검해 보았으나 영력의 흔적은 발견하지 못 했습니다.”
오 선사가 어쨌든 며칠간 왕부에 지내며 본 결과 그들이 마도와 관련되어 있다는 정황은 전혀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상대의 말에 길게 설명할 이유가 없었다.
“그 두 사람이 마도인과 관련이 있는지 없는지는 직접 알아보면 될 일이고 별 다른 점이 없다면 또 다행일 것이다. 나도 사실이 확정될 때까지는 어떤 행동도 하지 않을 테니 잘 감시만 하거라. 다만 목숨을 보전하고 싶다면 절대 먼저 상대를 떠보거나 무리한 일을 하지는 말고.”
한립의 말은 경고로 끝났다. 처음에는 긴가민가하던 오 선사도 한립이 진지하게 나오자 두려운 표정을 보였다. 오 선사는 위축된 와중에도 입을 달싹거렸다.
“만일 그들이 제가 감시하는 것을 눈치 채면 어쩌지요? 빈도의 법력이 부족해 선배님의 대사를 망칠까 걱정입니다.”
한립은 미간을 좁혔다. 저렇게 벌벌 떠는 것을 보니 일을 제대로 할 것 같지 않았다.
아무래도 지금은 당근을 던질 시점 같았다. 한립은 저물대에 손을 넣어 쓸 만한 물건을 꺼내놓았다.
“그래, 그냥 두 사람을 지켜보는 것은 위험할 수도 있겠지. 이 상계 법기를 방어용으로 주마 일이 끝나도 이것은 네 것이다.”
한립이 탁자 위에서 은은히 빛을 내는 자색의 구슬을 가리키며 차분히 설명했다.
“상계 법기!”
듣기만 해도 정신이 번쩍 나는 소리였다. 그 같은 수준 낮은 산수는 상계 법기는 커녕 중계 법기도 사들이기 어려웠다.
“자광주(紫光珠)라는 것으로 법력을 주입하면 즉시 방어막을 형성해 주니 웬만한 연기기 수사는 이것을 뚫지 못할 것이다.”
“방어성 법기였군요!”
상계 법기에 대한 상세한 설명까지 듣자 오 선사가 다시 타오르기 시작했다. 방어성 법기는 다른 종류의 법기보다 더 귀했다. 만일 영석을 주고 이런 물건을 사고자 한다면 남은 평생을 노력해도 불가능할 터였다.
“예! 최선을 다해 일을 수행하겠습니다!”
한참을 고민하던 그가 결국에는 이를 악물고 제안을 수락했다. 동물은 먹이를 찾다 죽고 인간은 탐욕을 좇다 죽는다더니 수도계라 해도 다를 바가 없었다.
이런 위험한 일을 맡아주겠다 상대가 제안에 응하자 한립이 속으로 한숨을 돌렸다.
“영력의 표지를 남겨 놓아 만일의 상황에 너를 찾을 수 있도록 하마. 이 표지가 네 목숨을 살리지도 모를 일이지. 또한 일이 끝나는 대로 네게 황룡단 한 병을 더 내리겠다.”
아까 소가 노인과 손녀에게 남겨 놓은 것과 동일한 영기의 표식을 오 선사의 몸에 주입했다.
오 선사는 한립의 행동에 잠시 몸이 굳었으나 그저 동의할 수밖에는 없었다.
상대가 이리 물색 있게 행동하니 한립도 만족했다. 그는 오 선사의 공손한 배웅을 받으며 다시 왕부를 조용히 빠져 나왔다.
한립은 바로 진가 저택으로 향하지 않고 다루를 찾아 들어갔다. 잠시 자신이 일을 잘 처리하고 있는지 무언가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할 시간을 갖고 싶었다. 그는 항상 여러 번 반복해 고민하며 사고를 정리해 두는 습관을 지녔다.
아직 소가 노인과 약속한 시간은 멀었지만 정말 늦은 밤에 그들을 찾아갈 생각은 없었다.
한립은 종종 시간을 딱 맞추기 보다는 약속 시간보다 서두르는 것을 선호했다.
상대가 무슨 꿍꿍이를 부릴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걸음을 옮기면서 미간을 좁혔다.
분명 그들의 거처가 있는 동성 구역에 있어야 할 영기의 표식이 서성 구역에서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콧방귀를 뀐 그는 사람이 없는 틈을 타 신풍주에 올라탔다. 곧 하얀 빛 줄기로 변한 그는 순식간에 서성에 당도해 있었다.
잠시 후 서성 하늘 위에서 한립은 서늘한 눈빛으로 작은 민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겨우 방이 세 개인 오래 된 집이었다.
옥처럼 새하얀 나룻배에 서서 한립은 무언가를 고민했다. 결국엔 신풍주를 움직여 지면을 향해 떨어져 내리던 그는 오륙 장을 남겨 놓고 법기를 멈추었다.
그가 땅에 발을 댔을 때는 신풍주가 작게 변해 그의 손에 들려있었다.
잠시 살펴보아도 이 주변에 별다른 이상한 점은 발견하지 못했다. 이어서 중간 방 앞에 선 한립은 의식을 퍼뜨려 방 안의 상황을 염탐했다.
이미 그 안에서 희미하게 느껴지는 영력을 감지했던 것이다. 역시 의식이 퍼져나가자 방 안의 말소리가 전해졌다.
“할아버지, 이러다가 그를 화나게 하는 것 아니에요? 정말 여기까지 찾아온다면 아무리 핑계를 대도 잘 넘어갈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소녀의 목소리에 걱정이 가득한 것이 한립이 분명한 인상을 남기긴 한 모양이었다.
“쯧! 바보 같기는, 그 자가 우릴 찾을 것이란 말을 곧이곧대로 믿은 것이야? 이 할애비는 우쭐대며 되도 않는 위협을 하는 이들을 한두 번 본 것이 아니야. 상대가 아무리 축기기 수사라도 이런 거리라면 추적하지 못할 테지. 만일 동성 구역에서 기다리고 있었다면 꼼짝없이 걸렸을 테지만 말이다.”
“그럼 아예 달아나 버리면 되지 어째서 서성으로 와서 기다리시는 거예요?”
“아직도 모르겠느냐? 방금 말한 것은 할애비의 추측에 불과하다. 만일 추측대로라면 상대가 우리를 찾지 못할 것이고 달아나면 그만이겠지만 상대가 어쨌든 축기기 수사이니 어떤 방법으로 우릴 추적할 지 알 수 없지. 만일 월경 밖으로 달아났다 잡히면 할 말이 없겠지만 서성에만 머물러도 핑계거리가 허다하지 않겠니.”
손녀에게 가르침을 주듯 상세하게 설명해 주었다.
“헤헤! 역시 할아버지에요. 그런데 제가 보기엔 그리 나쁜 사람 같지 않던데 꼭 이렇게 숨어야 해요? 정말 거래를 해도 좋은 것을 얻을 수도 있잖아요! 어차피 그 서책은 너무 이상해서 가지고 있어봐야 쓸모도 없고요.”
“악하고 선하고가 네 생각처럼 간단한 것이 아니다. 정말 정당하게 거래를 하는 것이라면 우리도 상대를 피할 이유가 없겠지. 그러나 공평한 거래는 실력이 비슷한 상대와만 가능한 것이야. 한 쪽이 훨씬 강하다면 어찌 공평한 거래라 할 수 있겠니.
게다가 이 서책이 우리에겐 별 볼일 없을지 몰라도 진가를 아는 이에겐 보물일 수도 있다. 보물을 얻은 뒤 살인멸구를 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아느냐? 상대가 정말 우리를 없애려 한다면 엄청난 법력 차이 때문에 손쓸 틈도 없이 당할 것이다.”
노인은 어두운 표정으로 말을 끝맺었다. 자신의 명줄이 상대에게 달려있다는 것이 기분 좋은 현실을 아니었던 것이다.
“할아버지, 그리 의기소침해 하지 마셔요. 아까도 그 자가 겉으론 어려 보이지만 사실 수백 년 된 노괴일 수도 있다고 그러셨잖아요.”
“어찌? 내가 그리 늙어 보이더냐?”
소녀가 노인을 위로하는데 돌연 방 밖에서 서늘한 음성이 들려왔다. 조부와 손녀가 안색이 변해 숨소리도 내지 못하는데 한립이 차분하게 방문을 열고 등장했다. 그가 거침없이 자리에 앉을 때까지도 둘은 입을 열지 못했다.
“늙어 보이다뇨? 절대 아닙니다.”
소녀가 억지로 웃음을 지으며 말하고는 고개를 숙였다. 한립은 가볍게 웃더니 소녀와 더 말을 나누지 않고 노인을 향해 시선을 던졌다. 노인은 당황해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다. 한립이 자신과 소녀의 대화를 어디서부터 들은 것인지 알 수 없었으니 마음이 답답할 만 했다.
“선배님께서 이렇게 일찍 찾아 주실 줄은 몰랐습니다. 최소한 두 시진은 있다 오실 줄 알았습니다. 아! 후배가 서책을 준비해 오겠습니다.”
어쩔 수 없이 한립의 서늘한 눈빛을 마주한 노인은 갑자기 서책이 떠올라 서둘러 화제를 바꾸었다.
“그래 가져와 보거라.”
칼날 같은 날카로운 눈빛이 사라지고 한립의 명이 떨어졌다. 노인이 급히 대답을 하고 방을 나서려는데 소녀가 자연히 그 뒤를 따르려 했다.
이에 노인이 단호한 눈빛으로 소녀를 제지한 것은 당연지사였다. 만일 이런 상황에서 둘이 동시에 방을 나서면 상대를 더 열 받게 할 뿐이었다.
상대가 저들 둘이 나가 무슨 오해라도 한다면 아무리 그럴 생각이 없더라도 화를 불러들일 것이다.
노인의 눈빛에 그저 입을 내밀고 방에 남은 소녀는 감히 한립에게 말도 걸지 못하고 가만히 자리를 지켰다. 소가 노인이 걸음은 또 빨라서 순식간에 낡은 목함을 들고 돌아왔다.
“저와 손녀의 기를 숨기는 공법은 이 서책에서 익힌 것입니다. 쓸 만한 물건인지 한번 살펴보시겠습니까?”
공손하게 함을 연 노인이 검게 때가 탄 누런 가죽 서책을 한립에게 건넸다. 척 봐도 아주 오래된 것임을 알 수 있었다. 한립은 고개를 끄덕이며 서책을 받아 들었다.
오랜 세월을 거치며 색이 바랐지만 손에서 전해지는 감촉으로는 아직도 튼튼해 보였다. 일반적인 종이가 아니라 어떤 요수의 가죽을 이용해 제련한 서책이었다. 그러지 않았다면 이렇게 오래 원형을 보전하고 있을 리 없었다.
한립은 가볍게 표지를 만져보다가 책장을 넘기기 시작했다. 대략 살펴보는데도 한립의 눈썹이 올라갔다.
책을 넘기자마자 생소한 상고시대의 문자가 나타났고 이런 문자를 읽을 수는 없었지만 황풍곡의 장서 중에 유사한 부호가 써진 서책을 본 기억이 떠올랐다.
어차피 내용을 모른다면 깊게 고민할 이유가 없었다. 한립은 재빨리 책장을 뒤쪽으로 넘겼다.
결국 겨우 마지막 두 장에서야 그가 알만한 글귀가 나타났다. 누군가 덧붙여 놓은 듯한 무명의 구결이었는데 수도계에서 상용되는 문자라 손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이것이 바로 저들이 말하던 공법임을 깨달은 한립은 반복해서 그 구절들을 헤아려보았다. 시간이 지나자 그가 천천히 책장을 덮고는 무언가 생각에 잠겼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노인은 심장이 두근두근하며 그가 지금 자신들을 어찌 처리할까 생각 중인 것은 아닌지 두려워했다. 긴장한 모습의 노인을 못 본 척하며 한립은 서책을 저물대 안 옥함에 잘 넣어 챙겨두었다.
“이 서책은 내가 챙기지. 원하는 것이 있다면 말해 보거라 가능하다면 원하는 것을 내주마.”
한립의 목소리는 크지 않았으나 그의 입만 쳐다보고 있던 노인과 소녀에게는 분명히 전달되었다. 두 사람은 목숨을 잃지 않았을 뿐 아니라 축기기 수사에게 좋은 보답을 받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기뻐하고 있었다.
“선배님, 잠시 상의를 해봐도 되겠습니까?”
일단 위기를 넘겼으니 이제 자신에게 가장 이익이 될 만한 거래조건을 생각해 볼 때였다.
노인은 웃는 얼굴로 손녀와 상의할 시간을 달라 청했다. 한립이 오기 전에는 불확실한 것이 너무 많아 살 궁리만 했지 보답까지는 정하지 못한 것이다.
“너무 오래 걸리지만 않는다면 마음대로 하거라.”
“감사합니다. 정말 잠깐이면 됩니다!”
실실 웃으며 대답을 한 노인은 손녀를 데리고 밖으로 나가 속닥거리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한립도 미소를 지었다. 사실 그냥 저들을 없애버리는 것도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한립이 무슨 흉악무도한 자도 아니고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그런 일을 하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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