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chelor RAW novel - Chapter 222
222화. 진법으로 진법을 깨다
금청은 한립을 이끌고 석조 건물이 있는 곳으로 데리고 갔다. 건물은 허름하기 그지없어 한눈에 봐도 석화술을 이용해 대충 만든 것이었다.
금청과 한립이 하강하기도 전에 사내 둘과 여인 하나가 걸어 나왔다. 사내들은 모두 결단기 수사였으나 여인은 축기기 수사에 불과했다.
두 사내 중 하얀 옷을 걸친 젊은 수사가 점잖게 손님을 맞이했다.
“금 선사, 오셨군요!”
“저처럼 천성성까지 가지 않으셨으니 일찍 와서 기다리고 계실 줄 알았습니다.”
금청의 온화한 답에 젊은 수사의 시선이 한립과 곡혼을 맴돌았다. 한립이 바로 포권을 취했다.
“저는 한립이라 하고 이쪽은 제 사형인 곡혼입니다.”
이미 오는 길에 곡혼의 신분을 드러내지 않기로 금청과 이야기를 끝내 놓았었다.
한립이 보니 호 선사란 이는 겉보기엔 젊어 보였으나 눈가에 미세한 주름 등으로 보아 그리 어린 나이는 아닌 듯 했다. 호 선사가 바로 금청이 말한 또 한 개의 구슬 주인인 듯 했다.
“저는 호월이라 합니다. 비록 오늘 처음 뵈나 앞으로 두 분 수사와 깨달음을 나누며 교류하고 싶습니다. 어쨌든 산수 중에 결단에 이른 이가 너무 적으니 서로서로 도와야지요. 제가 다른 두 분을 소개하겠습니다.”
호월은 대인관계에 능한지 말 몇 마디에 벌써 호감을 주었고 이후 옆에 있는 선사들을 소개하기 시작했다.
“석접 선자와 간 형이십니다. 석 선자는 홍월도(紅月島)의 유명한 진법 고수로 한 선사와 더불어 진법을 해체해주실 분입니다. 또한 간 형은 결단기 중기의 수사로 진법을 깨는 과정에서 힘을 써주실 분이지요.”
잠자코 서있던 석접이 돌연 입을 열었다.
“먼저 이야기해 두는데 전 진법을 해체하는 데만 나설 것입니다. 이후 어떤 위험이 있든 축기기 수사로 힘을 쓸 일은 없을 것이고 나중에 발견한 물건들을 나눌 때도 제가 가장 먼저 고르겠어요.”
석 선자는 평범한 얼굴에 자만심은 상당한지 말을 꺼내자마자 일행들을 당황스럽게 만들었다. 금청이 돌연 무슨 생각이 났는지 물었다.
“홍월도라면 설마 석 진인과 관계된 분이신가?”
“제 아버님이십니다.”
“허허! 그렇다면 석 소저의 말에 따르겠소.”
망설임 없이 대답하는 금청을 한립이 의아하다는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이때 한립의 귓가에 금청의 전음이 들려왔다.
“한 선사, 제가 일전에 석 진인의 도움을 받은 일이 있으니 석 소저의 말대로 편의를 보아주십시오.”
한립은 별 다른 말없이 금청을 향해 담담히 미소를 지어주었다.
호월이 처음엔 난감하단 얼굴을 하더니 서둘러 한립을 끌어들여 상황을 좋게 마무리 했다.
“그럼 이렇게 하지요. 만일 한 선사와 석 선자께서 진법을 해결해 주신다면 두 분께 우선권을 드리겠습니다. 그 이후에 나머지를 분배하지요.”
간 씨 성을 가진 키 크고 마른 선사는 줄곧 조용히 있었기에 속을 알 수 없었다.
금청이 미소를 지으며 건의했다.
“그럼 호 선사, 일단 한 선사와 석 선자를 모시고 진법을 보러 갑시다. 사실 진법을 못 깨면 아무것도 소용이 없지 않겠습니까!”
“그러니 말입니다. 진법이 정말 강력해서 금 선사와 법력이 바닥날 때까지 하루 종일 공격해 보았지만 전혀 손상을 줄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날아오른 무리는 토산의 가운데쯤에서 멈춰 섰다. 호월이 공중에서 어떤 곳을 가리켰다.
“저 쪽을 봐 주십쇼. 노란 먼지 같은 것으로 가려진 곳이 바로 진법이 있는 곳입니다.”
그가 가리키기 전부터 한립의 시선이 아래쪽에 고정되어 있었다. 그곳은 노란 먼지로 뒤덮여 거대한 요수가 웅크리고 있는 듯 어두컴컴하고 고요해서 무언가 기이한 느낌을 주고 있었다.
석접이 진법의 기세를 보자마자 눈을 빛냈다.
“와, 흙과 바람 두 가지 속성이 섞인 진법이네요! 재미있겠어요!”
그녀의 말에 한립이 석접을 힐끗 보고는 다시 신중한 얼굴로 아래쪽을 내려다보았다.
이 진법은 그녀의 말대로 흙과 바람 두 가지 속성이 뒤섞인 진법으로 지금 그의 수준으로는 해결하기가 고될 듯싶었다.
석접은 진법의 가장자리로 다가가더니 신이 나서 괴상한 법기들을 꺼내었다. 아마 무언가 측량을 하려는 듯 했다.
그녀가 원반형 법기를 들어 올리자 그것이 황토 먼지 속으로 초록색 빛기둥이 되어 사라졌다.
눈썹을 꿈틀거린 석접은 또 붉은 수정 구슬을 꺼내더니 다시 그것을 발동해 황토 먼지 속으로 날려 보냈다. 그러나 이 법기도 몇 번 붉은 빛을 반짝이더니 짙은 황토 먼지 안에서 종적을 감춰 버렸다.
이제 조금 얼굴이 붉어진 그녀가 참을 수 없다는 듯 연달아 일고여덟 개의 법기들을 꺼냈다. 그 결과 노란 거울이 그나마 안을 투과해 보였고 나머지는 아무런 소용도 없었다.
이 모습에 호월 등이 서로 눈치를 살피더니 석접 곁으로 날아왔다.
그들이 왔는데도 여전히 같은 식으로 법기만 쏘아 보내는 여인의 보습에 한립이 몰래 한숨을 내쉬었다. 그가 온화한 말투로 그녀를 제지했다.
“석 선자, 내가 한번 해보겠소.”
조금 답답하던 차였는지 석접 선자가 좋은 얼굴로 그를 돌아보지는 않았다.
“흥! 한 선사께서 하고 싶으신 일이 있다면 마음대로 해보십시오. 소녀는 막은 일이 없습니다.”
조금 불쾌한 말투였다. 그러나 항상 평정을 유지하온 한립은 전혀 불쾌감을 드러내지 않았다. 다만 자신의 저물대를 스쳐 열댓 개의 다채로운 깃발들이 주변을 돌게 만들었다.
깃발을 본 금청이 소리쳤다.
“진법 법기로군요?”
다들 의아하단 얼굴이었다. 진법을 깨달라고 했는데 어째서 다른 진법 법기를 꺼내는지 의도를 모르겠다는 뜻이었다.
한립은 그런 시선에 개의치 않고 법기들을 향해 손짓했다.
동시에 열댓 개의 빛줄기로 변한 깃발들이 황토 모래 상공으로 날아가 북두칠성처럼 배열되었다. 석접은 깃발의 배열을 보더니 조금 놀란 듯 했다.
“북두량의진(北斗兩儀陣)!”
웅웅.
이때 한립의 깃발들이 은은한 울림을 내며 열댓 개의 빛기둥을 뿜어냈고 중앙에서 거대한 흐름을 만들어 아래쪽을 향해 쏟아져 내렸다.
놀라운 광경에 석접을 포함한 수사들이 정신을 집중했으나 여전히 황토 먼지가 짙게 끼어있어 어떤 변화도 없었다.
“한 형, 이것이….”
금청이 참지 못하고 입을 떼려는데 결국엔 이상이 감지되었다.
‘휘이잉’
본래 죽은 것처럼 고요하던 황토 먼지가 돌연 꿈틀거리더니 안에서 용이 날아다니기라도 하는 듯 요동치기 시작한 것이다.
금청은 하려던 말을 삼켰다. 한립은 두 눈을 빛내며 다시 수많은 법결을 외워 허공의 깃발들에게 쏘아 보냈다.
동시에 열댓 개의 깃발에서 모인 다채로운 빛깔의 빛기둥이 끝없이 이어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미친 듯 요동치던 황토 먼지들이 잦아 들며 울룩불룩하게 형태가 변화한 것이다. 마치 안에서 뛰어 놀던 괴물들이 밖으로 나오고 싶어 하는 모양새였다.
그 모습에 놀란 선사들이 자신도 모르게 뒤로 물러났다.
펑펑펑…….
귀를 울리는 폭음이 연달아 터져 나왔다.
이미 대비를 해둔 선사들이었지만 맹렬한 기운에 제대로 서있기가 힘들자 서둘러 각종 방어구 등을 꺼내 겨우 중심을 잡았다.
이런 결과를 예상했던 석접을 제외한 모두의 얼굴에 놀람이 어렸다. 짙게 시야를 가리며 사라지지 않던 황토 먼지가 날이 갠 듯 사라져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안에 가려져 있던 모습도 모두 드러났다. 홍월 등은 크게 기뻐했고 금청은 바로 한립에게 다가와 눈웃음을 지었다.
“한 선사! 이런 재주를 감추고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벌써 진법을 깬 것입니까!”
“진법을 깨다니요. 금 형, 고대 수사의 진법을 얕잡아 보십니다. 방금은 그저 가장 바깥층의 환술을 없앤 것뿐입니다.”
금청은 조금 실망한 눈치였으나 호월이 바로 호탕하게 웃으며 다가왔다.
“하하! 그러면 어떻습니까? 진법을 해결할 수 있다는 희망이 생겼으니 이제 저희는 진법이 깨지기만을 기다리면 되겠습니다.”
그 말에 금청도 금세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덧붙였다.
“맞습니다. 우리 수도자들이 시간이 없어 걱정을 할까요. 제가 괜히 조급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때 석접 역시 걸어와서는 한립을 향해 예를 취했다.
“소녀가 우물 안의 개구리였습니다. 선배님께서 진법으로 진법을 깨는 남다른 발상을 하시는 것을 보며 소녀가 오늘 견문을 넓힙니다. 앞으로도 진법에 관해 많은 지도 부탁드리겠습니다.”
“별 것 아닌 잔재주에 불과하오. 실제 진법에 대해 그리 깊게 아는 것도 아니고.”
이 말은 진심이었다. 상대가 먼저 진법의 속성을 파악해 주지 않았다면 한립도 당장 어찌 할 바를 몰랐을 것이다.
겨우 20년을 연구해 알게 된 지식에는 한계가 있었고 대부분의 진법의 오묘한 도리에 대해서는 머릿속이 깜깜해 지는 경우가 많았다.
게다가 북두량의진의 진법 깃발로 환술을 깨뜨린 것도 신여음 덕분이었다. 그녀가 준 서책에 여러 상황에서 진법을 처리할 수 있는 방법들이 기재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번 성공으로 다른 선사들은 한립의 말을 겸양으로 받아들인 듯 했다. 한립은 그저 미소를 지으며 굳이 해명하지 않고 시선을 아직도 남아 있는 진법으로 돌렸다.
황토 먼지가 사라진 후 은은한 노란 방어막이 생성되니 그 범위가 방원 백 여 장 정도였다.
노란 방어막은 혼탁해서 황토 먼지가 덮었을 때 보다는 나아졌지만 여전히 시야를 흐리게 했다.
게다가 이 방어막 외에도 그 안에는 여러 층이 더 있었고, 그 가운데로 원형 기둥이 보였는데 겉에 고대 문자나 문양이 새겨진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의식이 방어막에 튕겨나가 버렸기에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는 파악할 수 없었다. 더욱이 일곱 가지 색의 빛들이 보호막이 살아있는 것처럼 떠다니니 기이하기 이를 데 없었다.
모두 이 모습에 혀를 찼으나 한립의 눈엔 조금 의혹이 어렸다.
고대 진법에 대한 이해가 뛰어나다고는 할 수 없었으나 신여음이 남긴 경전에서 여러 고대 진법들을 봐왔었다.
그러나 눈앞의 진법은 모습이나 분위기가 그것들과는 전혀 달랐다. 오히려 조금 요사스런 분위기를 풍기는 것 같았다. 이런 생각을 하며 한립은 슬쩍 석접을 살폈다.
하지만 그녀는 호기심 어린 눈으로 진법을 살피며 어떤 이상도 느끼지 못한 듯 했다. 이에 한립도 마음이 놓였고 자신의 착각일 거라 생각했다.
호월이 한립 등을 배려해 입을 열었다.
“하늘이 어두워지기도 했고 한 선사 등은 먼 곳에서 방금 왔으니 일단 휴식을 취하시지요. 보아하니 당장 처리하기는 어렵고 내일 아침 다시 나오는 것이 좋겠습니다.”
확실히 몇 달을 날아온 한립 등은 조금 피곤했기에 그 의견에 반대하지 않았다. 석 선자는 진법을 보고 당장이라고 무언가 하고 싶어 했으나 호월이 다른 사람을 위해 하는 말인 것을 알았기에 뭐라 하지 못했다.
이렇게 모두가 석조 건물이 있는 곳으로 돌아왔다.
방이 모자라 한립 등은 바로 술법을 걸어 조잡한 방을 만들었고 각자 안으로 들어가 휴식을 취했다.
* * *
이튿날 아침 한립과 석접은 다시 진법으로 돌아와 일을 시작했다. 그러나 진법을 깨는 과정은 정말 지지부진했다.
특히 처음엔 두 사람 모두 어찌할 바를 몰라 연달아 며칠을 흘려보내기까지 했다. 하지만 한립과 석접이 힘을 합치자 고대 진법에 대해서도 조금씩 이해하게 되었다.
진법을 이해하는 과정에서 한립의 석 선자에 대한 생각도 변해갔다. 그녀가 조금 자만심이 있기는 했으나 그만한 실력을 갖추고 있었던 것이다.
일단 흔히 쓰이는 각종 진법에 대해서는 손바닥을 보듯 꿰뚫고 있었고 특히 진법의 구조를 파악하는 데 일가견이 있어 한립을 탄복하게 했다.
진법 이론상에서만 보면 신여음보다 뛰어나진 못해도 거의 비슷한 경지에 이른 듯 했다. 하지만 석 선자는 신여음과 비교해 실전에 너무 약한 느낌이었다.
각종 진법 이론은 훤했으나 실제로 어떻게 진법을 깨야 하는 지는 경험이 적었다. 그녀가 아는 것을 몇 가지 시도를 해보고 모두 실패하면 속수무책이 되어버리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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