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t the Hero Party RAW novel - Chapter 123
〈 123화 〉 북방으로 향하는 길(1)
* * *
어느 뜨거운 여름날.
“모두들 수고하셨습니다.”
웃지 못할 헤프닝도 있었지만··· 학생들은 한 학기의 끝, 종강을 맞이한다. 들뜨는 발걸음으로 아플리아를 벗어나는 학생들이 있는가 하면, 기숙사에 돌아가 짐을 챙기는 학생들도 있는 법이다.
“라크는 이번에 본가로 올라간다고?”
“그럴 것 같군. 전사들에게 성과를 보이기도 해야 하니 방학에 갔다 올 것 같다.”
라크 또한 그들 중 하나였다.
물론 라크 본인이 짐을 싸진 않는다. 중앙학관의 메이드들과 어느새 도착한 북방의 집사들이 라크의 방을 정리하고 있다. 라크는 1층의 로비에 앉아 같은 과 동기들과 잡담을 나눌 뿐이었다.
그 사이에도 집사들은 계속해서 로비와 계단 사이를 번갈아 오갔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학생들은 무심코 중얼거린다.
“새삼스럽지만, 라크도 귀족이구나···.”
“음?”
“으응, 그냥 뭔가 좀 낯설어서.”
집사들에게 모셔지는 라크의 모습을 보고 있자면, 왠지 모를 낯섦이 느껴진다. 거리감이 느껴진다고 할까. 라크와 한 학기 동안 친하게 지낸 학생들은 참으로 새삼스런 감상을 품는다.
‘하긴, 라크는 북방 대공의 아드님, 공자님이시니까···.’
라크 공자님.
무척이나 어울리지 않는 단어를 억지로 짜 맞춰둔 듯한 느낌이 든다. 학생들은 오묘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기울인다.
‘···생긴 건 공자님이긴 하지’
야만인다운 사고방식과 전사다운 육체 탓에 잘 연결이 안 되긴 하지만··· 생긴 것만 두고 보자면 라크도 미남의 축에 속한다. 입만 다물고 있으면 귀족가의 건장한 미청년 정도로 보이는 것이다.
“라크, 잠깐만 아무 말 하지 말아볼래?”
“···?”
“진지한 표정 한 번만 지어봐.”
라크는 시키는 대로 했다.
“머리도 이렇게 쓸어넘겨 보면···.”
“오···.”
학생들은 내심 감탄한다.
근육 뇌의 야만인은 어디로 가고, 날렵한 인상의 미남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왠지 모를 낯섦에 학생들은 무심코 거리를 둔다. 그 모습에 라크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입을 열었다.
“이게 무슨 의미가 있나? 턱이 아프다. 눈가도 당기는 것 같다.”
“아, 이래야 라크지.”
“도대체 뭐가 말이냐···?”
그렇게 시시덕거리고 있자니, 라크의 방을 정리하던 집사가 입을 열었다.
“라크 도련님, 정리가 얼추 끝났습니다. 이 편지는 백색 마탑주님께 보내면 되겠습니까?”
“아, 그래 주면 고맙겠군.”
고개를 끄덕인 라크가 자리에서 일어선다.
“그럼 다음 학기에 보도록 하지.”
“응, 잘 다녀와 라크.”
동기들의 배웅 속에 라크는 기숙사를 나선다.
내리쬐는 햇살과 뜨거운 공기를 삼키고 있지니, 서늘한 고향의 땅이 그리워지는 법이다.
머나먼 북쪽의 땅.
나고 자란 고향으로 돌아갈 시간이었다.
2.
눈바람이 몰아치는 북방.
험준한 설산들 사이에 위치한 거대한 탑이 하나 있다. 얼핏 보면 설산과 분간이 되지 않는 새하얀 탑을 북방의 사람들은 마탑이라 불렀다.
새하얀 눈과 같은 탑.
수도의 인근에 집중된 다른 마탑들과 달리 왕도에서 한참 떨어진 북방에 위치한 탑. 북방의 주인인 그레이스 가문의 시작과 역사를 함께한 탑.
다섯개의 색을 물려받은 마탑 중 하나.
순수 원소의 요람, 백색 마탑.
그런 백색 마탑의 최상층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북방의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드넓게 펼쳐진 설원. 깎아지른 듯한 협곡과 설산의 정경은 눈에 담는 것만으로도 마음을 울리는 무언가 있는 법이다.
절경이오.
한 폭의 그림과도 같은 장면이야.
마탑에 찾아온 외부인들은 그 풍경을 볼 때마다 절경(?)이라며 감탄하곤 한다.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 한구석이 탁 트이는 듯 싶다.
“흐응.”
그 경치를 매일같이 보고 사는 인물이 있다.
백색 마탑의 가장 높은 곳에 거한 여인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미소 짓는다. 그녀 휘하의 마법사들에게 보이는 인자하고 기품있는 미소와는 거리가 멀다.
백색 마탑의 주인.
셀리 드벨라.
그녀는 짓궂은 어린아이 같은 미소를 흘리며 팔을 뻗었다. 그리곤 검지를 세워 벽면에 새겨진 회로를 부드럽게 쓸어 내렸다.
키잉.
건드린 것은 통신 회로.
통신이 향하는 곳은 언제나와 같다.
···또 무슨 일이지?
얼마 안 가 집무실 안에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투영된 화면에는 피곤한 기색이 가득한 어느 마법사의 얼굴이 비쳐 보인다.
그 얼굴을 보며 셀리는 미소 지었다.
“그러게요, 무슨 일 일까요? 흑색.”
흑색 마탑주, 예투알.
화면에 비춘 마법사를 향해 셀리는 말을 이었다.
“사실, 당신한테 통신하는 이유도 늘 정해져 있지 않나요? 정말 몰라서 물어요?”
꼭 놀리는듯한 목소리다.
예투알의 눈살이 찌푸려진다. 그는 귀찮다는 듯 눈가를 쓸어내리며 답했다.
또 시답잖은 자랑질이나 할 생각이라면 지금 끊겠다. 안 그래도 바빠 죽겠는데, 나 원···.
언제나와 같은 흑색의 모습이었다. 그 모습이 우스워 셀리는 그만 웃음을 흘리고 만다.
‘하여간, 상황 파악 안 되는 늙은이 같으니라고.’
셀리는 턱을 괸 채 화면을 본다.
조금 여유를 부리며 애 태울 생각이었으나, 화면 속의 흑색은 정말 당장이라도 통신을 끊을 듯한 모습이다. 이러다 정말 끊어버릴까 싶어, 셀리는 황급히 뒷말을 이었다.
“···시답잖은 일은 아닐걸요?”
용건만 말해라. 간단히.
“뭐긴 뭐겠어요? 라크가 선수를 쳤다 이거죠. 당신의 제자보다 훨씬 빨리.”
예투알의 눈매가 가늘어진다.
그것이 무슨 소리냐고 묻는듯한 눈동자다. 셀리는 어깨를 으쓱이며 그 눈빛에 답했다.
“당신네 제자가 가만히 손 놓고 있는 동안, 우리 라크가 그 교수한테 초대장을 보냈단 소리에요.”
그 교수라면, 라니아 교수를 말하는 건가?
“제가 관심 가질 만한 교수가 뭐 달리 있겠어요? 당연히 라니아 교수죠.”
라니아 반 트리아스.
비범한 재능을 가진 소녀.
당장은 그 쓸데없이 눈치 좋은 잿빛 늙은이의 아래에 있으니 빼 오기는 힘들지만, 언젠가는 반드시 빼 와야 할 인재.
‘그리고, 이미 저울은 백색 마탑 쪽으로 기울었다 이거지.’
학기 초부터 흑색과 그 소녀를 두고 암암리에 경쟁을 해왔던 셀리다. 그런 그녀의 입장에서··· 라니아 교수가 북방으로 방문 의사를 밝힌 사건은, 아무래도 자신 쪽으로 저울이 기운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흐흥.”
자연스레 어깨에 힘이 들어간다.
셀리는 으스대며 말을 이었다.
“당신이 손 놓고 여유 부릴 때, 저는 이미 라크를 통해 물밑작업을 쳐놨다 이거죠.”
물론 거짓말이다.
라크가 혼자서 벌인 일이었다.
‘아무렴 어때.’
그 시작이야 어찌 됐든, 지금은 그녀에게 유리하게 상황이 돌아가고 있다. 북방에 방문 의사를 밝혔다는 건 고작 하루 이틀 머무르고 감을 의미하지 않을테니까.
‘최소가 열흘이다.’
그리고, 열흘이란 시간은··· 어린 마법사 하나를 구워삶기엔 충분하고도 남을 시간이었다.
‘이참에 공격적으로 영입 시도를 하면··· 어쩌면 방학 내로 가능할지도?’
좋은 조건을 내밀고, 후려치고, 구워삶아 어떻게든 백색 마탑으로 끌어들인다. 심혈을 기울여 짜올린 계획은 이미 완성단계에 있다. 남은 것은 그 소녀의 반응을 보며 세부사항을 조정하는 것 뿐이다.
“흐응.”
셀리는 자신만만하게 웃었다.
“이제 좀 느껴져요?”
한술 더 떠 다리를 꼬며 도발을 날린다.
“이게 바로 저와 당신의 차이 아니겠어요? 흑색 마탑보다 백색 마탑이 더 우월하다, 이거죠.”
그러나.
······.
돌아오는 반응은 없다.
흑색은 침묵할 뿐이다.
“뭐에요? 왜 말이 없어요?”
셀리가 눈살을 찌푸렸다.
‘뭔가이상한데?’
이렇게 도발을 날리면, 흑색은 언제나 신경질적인 목소리로 짜증을 냈다. 나이를 허투루 처먹었냐는 등의 험담을 뱉곤 했다.
······음.
그러나, 지금은 어떠한가?
흑색은 무척이나 한심하다는 듯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 그 눈동자에서는 동정심마저 묻어나온다. 마치, 아무것도 모르는 애송이를 보는듯한 눈동자다.
셀리가 기대한 반응이 아니었다. 전혀.
‘이 늙은이가 미쳤나?’
셀리가 눈살을 찌푸리며 떽, 소리 질렀다.
“눈을 왜 그렇게 떠요? 뭐 불만 있어요? 불만 있으면 말로 해요, 이 뱀 같은 늙은이야!”
아니, 뭐··· 딱히 할 말은 없고······.
흑색은 딱하다는 듯 쯧쯧, 혀를 차며 말했다.
거, 열심히 해봐라. 백색.
“···뭐라구요?”
응원한단 뜻이다. 할 일이 많아 나는 이만 가보도록 하지. 아무쪼록 좋은 소식 있기를 바라마.
뚝.
통신은 끊겼다.
“···?”
셀리는 멍하니 눈을 깜빡였다.
도무지 상황을 따라갈 수가 없었다.
“저 노인네가 진짜 미쳤나···?”
공허한 물음만이 허공에 맴돈다.
저울이 자신 쪽으로 기울기는커녕, 저울 자체가 박살 났음을··· 셀리로서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3.
“북방은 무척이나 춥다. 알고 있느냐, 라니엘.”
“예? 아 예. 당연히 알고 있죠.”
“그러니 옷을 두껍게 껴입으란 이야기다. 설마, 그렇게 얇은 옷을 입고 북방으로 가겠단 소린 아니겠지? 그 정도로 생각이 없지는···.”
“예? 그냥 이대로 갈 생각이었는데요?”
“···환장하겠구나.”
스승님이 이마를 짚으셨다.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니 뭐··· 전장 쏘다니던 시절엔 웃통 까 벗은 채 설산에서 구르고 다녔는걸요? 새삼스레······.”
“전장은 극한 상황이다 라니엘. 그리고, 지금은 북방의 대공에게 ‘초대’를 받아 손님으로서 가는 상황이지 아니지 않으냐.”
“그으렇죠?”
“그럼 걸맞은 복장을 하거라. 최소한, 보는 남이 다 추워 보이는 복장은 피하란 소리다.”
···그런가?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스승님이 주신 옷을 주섬주섬 주워 입었다. 머플러와 털장갑, 털신 등등 전장에서 무척이나 보기 힘든 것들이었다.
“오, 이거 사치품···.”
“마탑을 다섯 채는 짓고도 남을 돈을 가진 녀석이, 참 별것도 아닌 거로···.”
쯧쯧, 스승님은 혀를 차며 머플러를 확장 마법이 걸린 내 로브 안에 밀어넣으셨다. 그리곤 툭, 하고 내 등을 미셨다.
“아무쪼록 조심히 다녀오거라.”
“네, 스승님.”
나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저택을 나섰다.
조금 걷다 보니, 저택 앞에 도착해있는 마차가 눈에 들어왔다. 북방의 문양이 새겨진 마차였다.
“모시겠습니다.”
나이가 지긋해 보이는 초로의 노인이 허리를 숙여 인사한다. 그레이스 가문이 보내온 마차의 규모에 나는 내심 혀를 내둘렀다.
‘라크가 명문가 출신이긴 하구나.’
···생각해보면, 당연한 거긴 했다.
라크는 무려 북방의 대공, 에랴흘 반 그레이스의 외동아들이다. 하나뿐인 후계자이니 사실 이런 취급이 당연했다.
‘오히려, 아플리아에서 라크가 호위 하나 없이 싸돌아다니는 게 말이 안 되는 일이긴 하지···.’
하지만 어째서인가.
내 안에서 라크와 귀족, 혹은 명문가라는 단어는 도무지 짝이 맞지 않았다. 물과 기름 같은 느낌이다. 나는 오묘한 표정을 지으며 마차에 올랐다.
‘그야, 라크는 라크인 걸.’
그렇게 탁, 하고 마차에 오르는 순간이다.
“아, 오셨습니까.”
마차 안에 타 있는 누군가가 나를 반겼다.
머리를 이마 위로 시원스레 쓸어넘긴 남자였다. 소매를 걷어붙인 와이셔츠 차림의 그가 나를 바라보더니 살짝 고개를 숙였다.
“어···.”
나는 눈을 깜빡이며 질문했다.
“···누구세요?”
“예? 저 라크입니다. 라니아 교수님.”
“뭐?”
“라크 입니다. 전투 마학과 라크.”
남자가 눈을 깜빡이더니, 집사에게 손을 흔들었다. 집사가 한숨을 내쉬더니 남자의 손위에 손도끼를 툭 하고 올려두었다. 남자가 어정쩡한 자세로 손도끼를 쥐었다.
“아, 라크구나.”
난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
“뭘 어울리지도 않게 그런 걸 입고 있어?”
“그러게 말입니다. 저도 불편합니다.”
라크는 팔을 접으며 말했다.
꽉 찬 근육 탓에 와이셔츠가 찢어질 것 같았다.
“그런데, 교수님을 모신다니까··· 세바스가 꼭 이렇게라도 입으라더군요.”
“기본입니다, 도련님.”
“그럼 내 도끼는 왜 뺏어갔지.”
“손님 앞에서 도끼를 보란 듯이 차고 있는 것은 무례가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교수라 한들, 이분 또한 귀족가의 아가씨···.”
···무례?
‘고작 그게?’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라크.”
“예, 교수님.”
“너 나한테 도끼도 던지고 막 그러지 않았냐?”
집사의 안색이 새파래졌다.
그가 눈을 휘둥그레 뜬 채, 라크를 바라봤다. 라크는 잠시 음, 하고 턱을 매만지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아, 그때 실습 말하시는 겁니까?”
“응, 그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집사의 안색이 새파랗다 못해 새하얗게 질렸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