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t the Hero Party RAW novel - Chapter 193
〈 193화 〉 각자의 무대(7)
* * *
광인(?人).
켈르할름을 가리키는 멸칭.
사람들은 켈르할름을 마주할 때 광인이란 단어를 먼저 떠올리곤 한다. 그가 미쳐 날뛰며 마왕군을 산채로 갈아버리던 장면을 기억하는 병사들은 그를 두려워한다. 두렵고, 멀리하고 싶은 것에 사람들은 미쳐버린 이라는 멸칭을 붙였다.
미쳐버린 이.
이성을 놓아버린 마법사.
‘광인, 켈르할름.’
그런 이름으로 불리며 켈르할름은 백여 년의 시간을 전장에서 떠돌았다. 마왕군을 죽이기 위해 전장만 한 곳이 없었으며, 그늘의 흔적을 쫓기 위해서는 마경(??)에 인접한 곳에 머물러야 하는 까닭이었다.
목적을 이루기에, 전장은 적합한 환경이었다.
다만, 좋은 곳은 아니었다.
학생들을 가르치기 위해 배웠던 마법을, 누군가를 죽이고 찢어발기는 데 사용하게 됐다. 태생이 학자였던 켈르할름은 전장을 떠돌며 조금씩 마모되어 갔다. 갈수록 광기를 통제하기 어려워졌다.
광기를 통제하지 못할 때마다.
필요 이상의 참상을 만들어 낼 때마다.
자신을 두려워하는 이는 많아졌다.
모두가 켈르할름이란 이름보다 ‘광인’이란 멸칭을 먼저 떠올리게 됐을 때, 켈르할름의 곁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는 홀로서 전장을 떠돌았다.
이해를 바라지는 않는다.
목적을 이룰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그런 생각으로 살아온 삶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켈르할름은 젊은 마법사를 한 명 마주하게 됐다. 최근 전장에서 이름을 날리는 마법사라던가. 용사와 함께하는 마법사라던가? 소문만이 무성한 마법사였다.
「당신이 켈르할름이야?」
잿빛 머리칼을 가진 청년.
「뭐야.」
자신을 바라보던 그가 툭, 하고 내뱉었다.
「멀쩡하잖아.」
켈르할름은 눈살을 찌푸렸다.
청년의 곁에 있던 기사들은 숨을 헛삼켰다.
그리고, 청년은 웃었다.
「얼마나 미친놈이길래, 광인이란 이름이 붙었나 싶었는데··· 멀쩡한데?」
켈르할름은 청년에게 되물었다.
그게 무슨 소리냐고.
켈르할름의 물음에 청년은 미소 지었다.
「진짜 미친놈들은, 자기가 미친 줄도 모르거든. 혹은 자신이 미칠 수밖에 없는 이유를 대며 이해해 주길 바라지. 검귀 알지? 그놈이 딱 그쪽이거든.」
그는 어깨를 으쓱이며 켈르할름에게 말했다.
「그에 비해 넌 어떤데?」
그가 손끝으로 켈르할름을 가리켰다.
「너는 네 광기를 이해하잖아. 네게도 분명 미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겠지만, 그걸 남들이 이해해 주길 바라지 않아. 홀로서 간직하고, 오롯이 혼자서 책임지려 하지.」
이해를 강요하지 않고.
책임을 외면하지 않으며.
자신의 광기를, 오롯이 자신이 감내하려 한다.
「멋지네.」
그가 웃으며 손을 내민다.
「난 라니엘이다. 만나서 영광이야, 켈르할름.」
잿빛 마법사 라니엘.
그렇게 자신을 소개한 청년의 손을, 켈르할름은 한동안 바라보았다. 초인의 영역에 발을 들인지 100년, 처음으로 경험하는 일이었다.
* * *
나는 켈르할름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그가 어째서 광기를 얻었는지, 왜 그리도 별을 증오하는지, 그의 눈에 세상이 어떤 식으로 비추어 보이는지 나는 알지 못했다.
역사서에 새겨진 몇 줄의 줄글.
소문으로 나도는 쪼개진 낱말.
흩어지고 바스러진 한 줌의 기록.
고작 그만한 정보로 누군가의 과거를 이해했다고 말할 수는 없을 테니까. 그러므로, 나는 켈르할름을 이해한다고 말할 수 없었다. 어쭙잖은 이해는 도리어 실례가 될 테니까.
그러나, 딱 한 가지.
딱 하나만큼은, 내가 켈르할름을 이해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게 있었다.
‘광기.’
켈르할름이 품은 광기.
나는 그것을 이해한다.
‘보았으니까.’
나는 켈르할름이 자신의 광기를 통제하기 위해 어떤 수단을 썼는지, 어떤 각오로 광기를 붙들고 있는지 알고 있다. 그리고···.
「그래, 한 번쯤은 믿어보겠다. 잿빛 마법사.」
그 광기가 풀려났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또한, 알고 있다. 모를 수가 없다. 내 눈으로 직접 보았으니까.
‘왜 경계하는지는 이해가 갔지.’
제약에서 풀려나 광기에 삼켜진 켈르할름.
전장에서 본 그 모습은, 어째서 모두가 그를 광인이라 부르는지 이해하게 만들었다.
다가오는 모든 것을 찢어발긴다. 핏물을 뒤집어쓴 채 주문을 난사한다. 그렇게 할퀴고, 불사름으로써 학살을 자행하던 모습은··· 인간이라기보단 차라리 짐승에 가까웠다. 본능에 따라 움직이는 짐승.
과거에 나는 그 짐승과 마주해야만 했다.
광인이 된 켈르할름을 막는 게, 그 광기를 이용하는 것에 대한 계약이었으니까.
당연하게도, 쉬운 상대는 아니었다.
배교자를 격퇴하고 난 뒤, 나는 지칠 대로 지친 몸을 이끌고 광인이 된 켈르할름을 제압해야 했다. 부러진 손가락으로 회로를 그렸고, 타고 남은 마나의 잔재를 끌어모아 주문을 짜냈다.
서로가 서로의 밑바닥을 보였다.
서로가 서로의 한계를 보았다.
그 과정에서 나는 켈르할름의 광기를 이해했고, 켈르할름이 가진 제약을 읽었으며, 그의 입을 통해 그와 하나의 계약을 맺었다.
「나는 별을 증오한다, 잿빛 마법사.」
켈르할름.
「증오하지만, 별을 증오하는 만큼 나 또한 증오한다. 무력했던 나를 저주한다. 광기에 사로잡혀 버린 나 자신을 경계한다.」
광인(?人).
「그러니, 잿빛 마법사.」
「하나, 부탁해도 되겠나.」
광인이었으나.
「제약을 풀고 광인이 된 내가, 인간으로 돌아오지 못하게 될 날이 올 거다. 반드시 오겠지. 내가 품은 광기는 불길과도 같아서, 언젠가 내 모든 걸 집어삼킬 테니까.」
광인이라 불렸으나.
「그날이 오면 나를 죽여라.」
스스로가 광인이길 저항했던 인간.
「그건 더 이상 내가 아닐 테니까.」
인간으로 남고자 한 광인은 내게 부탁했다.
자신이 인간을 벗어나면 죽여달라고. 그 부탁을, 그 과거를 떠올리며 나는 현재를 바라본다.
주문이 쏟아진다.
그늘이 바닥을 할퀴며 다가온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검은 안개가 자욱하다.
“······.”
나는 말없이 팔을 뻗었다.
쏟아지는 주문을 붙잡는다. 잿빛 마나는 주문을 집어삼킨다. 다가오는 그늘을 향해 발을 구른다. 쿠웅, 하는 진동과 함께 그늘이 주춤한다.
투확.
주춤한 그늘을 향해서, 자욱한 검은 안개를 향해서 팔을 휘저었다. 그렇게 안개를 걷어내며 나는 중심을 향해 다가간다. 그곳에 서 있는 인물을 본다.
그늘을 품은 인간.
인간을 벗어나 버린 존재.
더 이상, 초인이라 부를 수 없게 된 존재.
그의 이름을 나는 입에 담는다.
“켈르할름.”
그가 나를 바라본다.
나는 그를 향해 쓰게 웃었다.
“계약을 지키라고, 그렇게 말하는 거냐.”
광인의 잿빛 눈동자 속에서는 불길이 타오른다. 눈동자를 기점으로 피부가 갈라지고 있다. 갈라진 피부에선 검은 구정물이 흘러내린다.
그것은 한 인간의 파멸이다.
하나의 영혼이 박살 나는 과정이다.
나 또한, 경험해본 과정이었다.
「바친다, 내 수명의 절반을.」
수명의 절반을 별에 바친 그날, 나는 내가 감당할 수 없는 힘을 손에 넣었다. 그 대가는 끔찍했다. 나의 영혼에는 금이 갔고, 영혼의 균열은 그대로 육체에 나타났다.
‘내 경우에는 별빛을 흘렸지만.’
지금의 켈르할름은 그늘을 흘린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시간이 많지 않음을 직감한다. 비단 켈르할름만의 이야기는 아니었다.
‘나 또한.’
그늘에게서 나를 지키는 잿빛 마나.
‘마찬가지겠지.’
그 또한 독(?)이다.
독으로서 독을 막을 뿐, 잿빛 마나 역시 내 몸에 부담이 되는 것은 변함이 없다. 쓸 수 있는 시간은 한정돼 있으며, 모래시계의 마지막 모래가 떨어지는 순간 나는 패배하고 만다.
시간은 없다.
해야 할 일은 많다.
한정된 시간은 내게 선택을 강요한다.
내 이성은 그늘이 켈르할름을 벗어나기 전에, 켈르할름과 함께 그늘을 죽이라고 속삭인다.
‘이미 켈르할름은 모든 제약을 끊어냈다.’
그늘을 뜯어낸다고 하더라도, 그는 미쳐 날뛰는 광인이 될 뿐이다. 과거처럼 제약을 다시 건다는 선택지는 불가능하다.
그때 켈르할름은 하나의 제약을 남겨뒀다.
그 제약이 켈르할름의 마지막 이성을 남겨뒀기에, 시간이 흐름에 따라 켈르할름은 이성을 되찾았다. 그 사슬을 중심으로 다시 제약을 만들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불가능하다.
‘모든 제약을 풀었으니까.’
켈르할름이 돌아올 길이 남지 않았다.
그에게 남은 최후는 죽음뿐이리라.
‘그러니, 죽여라.’
그것이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선택이다.
그늘과 함께 켈르할름을 죽여라.
그가 바란 죽음을 안겨주어라.
그렇지 않으면, 내가 죽을 뿐이다.
“······.”
줄어드는 시간. 다가오는 선택의 순간.
선택의 기로에 선 나는 눈을 감았다.
2.
세 명의 소녀는 어둠 속을 걷는다.
회오리치는 결계의 안은 어둡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아일라가 피워 올리는 별빛에 기대어 앞으로 향한다. 하지만, 언제나 기대지는 않는다.
“이쪽이에요.”
레스티가 길을 가리킨다.
“이쪽으로 흐름이 이어져 있어요.”
범인(凡人)은 보지 못하는 것을 보는 눈.
그것을 가진 와쳐(Watcher)는, 어둠 속에서도 길을 찾아낸다.
“많이 어둡네요.”
“···잠깐이라면, 밝힐 수 있을 것 같아요.”
아일라의 빛이 닿지 않는 곳.
그곳을 향해 클로에가 손을 뻗는다. 한순간의 섬광과 함께 어둠이 주춤한다. 주춤하고 난 어둠은 전보다 짙지 않다. 아일라의 별은 다시 길을 밝힌다.
그들은 그런 식으로 나아갔다.
때로는 레스티가 길을 가리키고, 때로는 클로에가 어둠을 걷어낸다. 앞장서는 건 아일라지만, 그녀가 혼자서 걷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서로의 힘을 빌리며 앞으로 향했다.
“여기인가 보군요.”
그리고 도착한다.
“저희가 부숴야 하는 제단이, 저거고요.”
아일라가 어둠의 끝을 가리킨다.
그곳에는 끔찍한 형태의 무언가가 놓여있다. 인골(人?)을 엮어 만든 그것은, 신께 제물을 바치기 위한 제단이다.
“저걸 부숴야 모든 게 끝이 난다고 들었어요.”
아일라가 말한다.
레스티가 고개를 끄덕였다.
“잠깐 물러서 주세요.”
레스티는 바닥에 손을 짚었다. 그녀의 손바닥과 바닥이 맞닿은 곳에 균열이 인다. 균열 속에서 무언가 손을 뻗는다.
쿠궁, 쿠웅.
바닥이 울린다. 땅을 울리는 진동과 함께 바닥에서 무언가 솟아올랐다. 그것은 골렘(Golem)이라 불리는 사역마다.
‘가장 기본적이기에, 골렘만 보아도 소환사의 역량을 알 수 있다던가.’
그런 생각을 떠올리며 아일라는 레스티가 불러낸 골렘을 본다. 고개를 꺾다시피 올려다보아야 그 끝이 보이는 거대한 크기의 골렘이다.
‘왕실의 수호 골렘보다 더 큰 것 같기도 한데···.’
소환사로서의 기량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레스티가 골렘의 등을 건드렸다. 골렘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쿵, 쿠웅 땅을 울리며 골렘이 제단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오오오오!
충분한 가속이 붙은 골렘이 몸을 던지다시피 제단에 달려들었다. 거구의 골렘과 인골로 이루어진 제단이 충돌했다.
거구의 골렘과 사람 뼈로 만든 제단.
그 둘이 충돌했을 때 무엇이 박살 날지를 예상하는 건 쉬운 일이었다. 아일라는 제단이 박살 나리라 생각했으나··· 흙먼지가 걷히고 드러난 것은, 예상과는 다른 결과였다.
“···멀쩡해?”
박살 난 건 골렘이다.
제단에 닿는 순간 골렘은 산산이 조각났다. 제단에는 흠집 하나 남지 않았다.
“······.”
레스티가 눈살을 찌푸렸다.
그녀가 짝, 하고 박수를 쳤다. 그 소리에 반응하듯 레스티의 눈앞에 회로가 떠오른다. 순식간에 완성된 회로가 빛을 발하고, 일대의 땅이 뒤흔들렸다.
쿵, 쿠웅!
거구의 골렘들이 솟아오른다. 늑대를 닮은 사역마들이 공간을 찢으며 나타난다. 각양각색의 소환수들이 일대를 가득 메웠다.
수십을 넘어, 백에 가까워지는 소환수들.
일류의 경지에 이른 소환사는 홀로서 군대를 이룬다. 그 사실을 증명하듯, 레스티가 손을 휘둘렀다. 지휘관의 명령을 사역마들은 충실히 따른다.
그오오오오!
괴성을 내지르며 사역마들이 제단을 향해 진군한다. 땅이 뒤흔들리고, 흙먼지가 피어오른다.
“와···.”
자신의 곁을 스쳐 지나가는 소환수들의 무리에 클로에가 감탄을 내지르는 가운데, 백에 이르는 소환수가 제단에 근접한다.
그리고, 그 순간이다.
“···!”
아일라가 눈을 크게 떴다.
그녀의 직감이 경종을 울린다. 오랜 시간 별의 예언을 받아왔던 소녀의 직감은 더없이 날카롭다. 아일라는 직감대로 행동했다.
콱.
레스티의 손목을 잡아당겼다.
클로에의 목덜미를 붙잡고 자세를 낮췄다.
그리고, 그것은 옳은 선택이었다.
구웅.
소환수들이 제단에 근접한 순간, 제단이 크게 진동했다. 곧이어 제단을 기점으로 터져 나온 파장이 일대를 휩쓸었다. 자세를 낮춘 아일라와 둘의 머리 위를 파장이 스쳐 지나갔다.
“···아.”
파장이 휩쓴 곳에 남은 것은 없다. 박살 나고, 찢어발겨진 사역마들을 보며 아일라가 숨을 삼켰다.
“···아무래도, 통상의 수단으로 부술 수는 없는 모양이네요.”
그렇다면 어떤 수단을 써야 하는가?
“···무기의 형태를 띤 별빛.”
레스티가 중얼거렸다.
아일라와 클로에가 그녀를 바라보았다. 레스티의 눈동자에 백금색 빛의 고리가 회전하고 있었다.
“저 제단을 이룬 구조는 별빛으로만 무너트릴 수 있는데, 단순한 별빛으론 불가능할 거예요.”
레스티가 말했다.
“무기의 형태를 지닌 별빛, 그러니까··· 성검(??) 같은 게 필요하다는 이야기인데.”
시선은 자연스레 클로에에게 모여든다.
성검은 용사의 전유물이다. 그리고, 이곳에도 후보생이라 한들 용사가 한 명 존재하긴 한다.
“클로에 양.”
“···아직, 저는 시련을 거치지 못했어요.”
클로에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녀가 마나 자체가 별빛으로 이루어진, 이례적인 경우라곤 하나··· 아직은 후보생일 뿐이다.
“시련을 거쳐야 용사로 인정받고, 별의 재능을 개화(?花)할 수 있다고 들었어요. 제 시련은 아직 찾아오지 않아서, 저는 아직 후보생인 거구요···.”
별의 무기를 다룰 수 없다.
그녀의 마나는 아직 무기가 되지 못한다.
“그럼 어떻게 해야···.”
아일라가 제 입가를 매만졌다.
저 제단을 박살 내야만 한다. 하지만, 좀처럼 방법이 떠오르질 않았다.
‘···라니아 교수님이, 그러니까 라니엘 님이.’
부탁한 일이다.
그 사람이 자신에게 맡겼다는 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란 뜻이다. 아일라가 눈을 감았다. 그녀는 생각하고 또 생각한다.
자신의 재능.
그리고, 이곳에 있는 이들의 재능.
“···아.”
그 끝에 아일라는 무언가를 떠올린다.
「얼마 전부터, 특강을 시작해서···.」
「레스티씨 하고 같이 듣는 수업인데요, 그게 내용이 조금 어려워서 고생하고 있어요.」
그것은, 자신의 앞에서 클로에가 떠들었던 이야기다. 그 이야기가 조금 전 라니엘에게 들었던 말과 맞물리기 시작한다.
「레스티, 그리고 클로에.」
「그 두 명은 서로의 재능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왕녀님의 재능이 함께 한다면요.」
그렇기에 모은 두사람.
아일라는 자신의 재능과 둘의 재능을 떠올린다.
별에게 사랑받는 아이, 스텔라(Stella).
스텔라는 주변의 흐름을 자신의 것으로 만든다.
모든 흐름을 통제할 수 있다.
별의 맥락을 읽는 이, 와쳐(Watcher).
와쳐는 모든 것을 보고 이해한다.
이해는 분석으로, 분석은 활용으로 이어진다.
별에게 축복받은 아이, 용사(Brave).
용사는 별빛을 무기로써 다룬다.
개화하지 않았다는 것은 아직 담금질이 덜 되었을 뿐, 용사가 가진 별빛은 그 자체가 무기로 변할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셋의 재능이 맞물린다.
아일라가 감았던 눈을 뜬다.
“어쩌면.”
그녀가 둘을 바라본다.
“어쩌면, 있을지도 몰라요.”
제단을 부술 방법이.
그렇게 말하는 아일라의 눈이 금빛으로 빛났다.
3.
“어쩌면 있을지도 모르지, 다른 방법이.”
그리 중얼거리며 나는 감았던 눈을 떴다.
눈을 뜨면 보이는 것은 범람하는 그늘이다. 파도가 되어 나를 덮치는 그늘을 향해 나는 걸었다.
“효율적이고, 확실하고, 합리적인 길.”
그래서 매력적인 길.
“쉬운 길.”
그런 길만을 고집한 사람을 나는 알고 있다.
“드라카가 그런 길을 걸었지.”
검귀, 드라카.
그는 효율을 부르짖으며 남에게 희생을 강요했다. 타인의 목숨을 가벼이 여겼다. 오직 자신만이 인간이어서, 다른 이들을 인간이 아닌 소모품으로 여겼다.
드라카는 그런 인간이었다.
“가볍게 선택하고.”
그는 언제나 쉽게 선택을 내렸다.
“가볍게 버리고.”
그는 누군가를 버림에 있어 가감이 없었다.
“가볍게, 가볍게만 사는 인간들이 있지.”
그리고 나는.
“생각해봤는데.”
드라카를.
“그런 인간이 되고 싶진 않더라고.”
그런 종류의 인간들을 혐오하며 살아왔다.
내 마을을 짓밟은 건 마왕군이었으나, 불태운 건 그런 인간들이었으므로, 나는 그들과 같은 길을 걷고 싶지 않았다. 이것은 오기였다.
그래서 나는 쉬운 길을 고르지 않았다.
효율을 등한시했다. 포기하는 건 쉽다. 쉽기에 하지 않았다. 남들이 불가능하다고, 버리자고 소리칠 때도 나는 누군가를 버리는 일은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뒤로 미루곤 했다.
‘희생을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되니까.’
그게.
“모두의 앞에 선 사람은 그래서는 안 되지.”
모두가 포기할 때, 포기하지 않는 것이.
포기하지 않고, 다른 방법을 찾는 것이.
그렇게, 버려야 할 누군가를 구해내는 것이.
“용사란 그래선 안 되거든.”
용사의 곁에 선 나의 역할이었으므로.
“그러니까 말이다, 켈르할름.”
쿠웅!
내가 그늘을 향해 한걸음 크게 내디뎠다.
내디딘 발을 기점으로 잿빛 마나가 퍼진다. 잿빛 마나가 내 몸을 기어오른다. 살갗에 새긴 회로를 타고 마나가 흘렀다.
분쇄(Smash).
완성된 주문을 주먹에 쥐고, 휘둘렀다.
투확!
그늘이 일거에 걷혔다. 걷히고 드러난 켈르할름을 마주하며 나는 입가를 비틀어 웃었다.
“계약은 조금 더 뒤로 미뤄야 할 것 같다.”
나는 가능성을 본다.
켈르할름은 모든 제약을 풀었지만, 그래서 그에게 남은 제약은 아무것도 없지만.
“우선되어야 할 계약이 있거든.”
그가 아닌 내게는 남아 있었다.
켈르할름이 아플리아에 찾아왔을 때 나와 맺었던 계약. 그것은, 켈르할름과 내가 나누어 가진 사슬이다. 나는 그것을 떠올린다.
【계약은 유지되고 있다.】
제약 하나, 제약이 흔들릴 경우 원칙에 반하지 않는 이상 대상은 계약자의 제안을 수락해야 한다.
제약 둘, 대상이 이성을 잃을 경우 ‘새로운 제약’을 매길 권리를 계약자에게 양도한다.
제약 셋, 위의 제약은 아플리아 내에서 절대적인 우선권을 가진다.
【계약을 이행하라, 마법사.】
그것을 떠올린 순간, 나의 손에 무언가 잡혔다. 그것은 별빛으로 이루어진 사슬이다. 차르륵, 소리를 내는 사슬을 쥔 채 나는 미소 지었다.
“계약은 언제나 신중히 해야하지. 안 그래?”
쉬운 길은 아니다.
무척이나 번거롭고 까다롭지만, 그렇기에 가치가 있는 길이다. 내가 선택해왔고, 앞으로도 선택할 길은 그런 길이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