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t the Hero Party RAW novel - Chapter 194
〈 194화 〉 각자의 무대(8)
* * *
스스로 선택하고, 스스로의 선택에 책임을 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남들의 앞에서 답을 내놓는 것 또한 쉬운 일은 아니다.
자신의 말에 책임을 져야 하며.
자신의 답이, 오답일 가능성을 감안해야 하고.
실패했을 때 그 대가를 오롯이 감내해야 하므로.
타인의 앞에 선다는 것은, 원치 않더라도 책임을 지게 된다. 급박한 상황이라면 더욱더. 그렇기에 대부분의 이는 앞으로 나서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것을 비난할 순 없으리라. 당연한 것일 테니까.
하지만, 여기 한 명의 소녀가 있다.
“어쩌면.”
별에 의지해 살아가는 쉬운 길이 아닌, 스스로 선택하며 나아가는 어려운 길을 고른 소녀. 모두가 침묵할 때 그녀는 입을 열어 말한다.
“어쩌면, 방법이 있을지도 몰라요.”
그녀의 금빛 눈동자는 어둠 속에서 찬연히 빛난다. 금빛의 눈동자는 자신의 곁에 선 인물들을 본다. 금색의 눈동자가 차례로 자색과 녹색의 눈동자를 비추었다.
“레스티, 제가 아는 당신의 재능은 별과 관련된 모든 것을 보고 이해하는 눈이에요. 맞나요?”
레스티가 고개를 끄덕인다.
아일라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이해했다면, 당신 정도 역량을 가진 마법사라면 당연히 그 활용도 가능하겠죠?”
“···아직은 불가능해요.”
이번에는 레스티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무슨 생각을 하시는지 이해는 가요. 지금, 저 애의 마나를 활용하라고 말씀하시는 거죠?”
레스티가 클로에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녀 또한 그 생각을 안 해본 건 아니었다. 클로에의 마나를 자신이 활용해서, 별빛을 무기로써 사용한다. 가능만 한다면 완벽한 계획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저 애의 마나는, 그러니까 별빛은··· 일반적인 마나와는 달라요. 지난 한 달 가까이 연구를 해봤지만, 아직 가닥을 잡진 못했어요.”
같은 수업을 들으며 몇 번이고 시도해 봤다.
그러나, 좀처럼 성과가 나오질 않았다. 이론적으로는 이해하나, 그것을 실전으로 옮기는 건 다른 문제다. 클로에의 마나는 손가락 사이 사이로 흘러내릴 뿐 통제가 되지는 않았다.
“···그게 가능한 건, 라니아 교수님뿐이에요.”
자신에겐 불가능한 영역이다.
그렇게 말하는듯한 레스티에게, 아일라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일라의 입가에 부드러운 미소가 맺혔다.
“혼자서 하라는 게 아니에요.”
“···네?”
“이곳엔 당신과 클로에 양만 있는 게 아니에요. 저도 별과 관련된 재능을 가지고 있답니다.”
아일라가 지휘봉을 휘두르듯, 제 손가락으로 허공에 원을 그렸다. 그 순간, 레스티는 마나의 흐름이 뒤바뀜을 느꼈다.
“···방금?”
“이게 제 재능이죠.”
레스티가 눈을 크게 뜬 가운데, 아일라가 말을 이었다.
“저는 주변의 마나, 혹은 흐름 따위를 ‘통제’할 수 있어요. 그게 별빛을 품은 마나라 한들··· 크게 다를 바는 없겠죠?”
그건 달리 말해.
“클로에 양이 풀어놓은 마나를, 제가 다루기 쉽게 통제할게요. 그걸 당신이 활용해주세요.”
무모해 보이던 계획이, 성공의 영역으로 도약함을 의미했다.
“클로에 양.”
“네, 네에?”
아일라가 클로에의 팔을 잡아끌었다.
“클로에 양은 마나를 있는 대로 퍼뜨려 주세요. 다른 건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아도 돼요.”
다그치지 않고, 어디까지나 부탁하는듯한 부드러운 목소리로 아일라는 말한다. 클로에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곤 지긋이 두 눈을 감았다.
“···해볼게요.”
클로에가 깍지를 낀 채 기도하듯 고개를 살짝 숙였다. 그녀를 중심으로 별빛이 흘러나온다. 어둠에 묻히지 않는 찬란한 별빛이 주변을 가득 메웠다.
마나를 닮았으나, 마나는 아닌 것.
세상의 그 어느 법칙으로도 재단 할 수 없는 별빛이 물줄기가 되어 흐른다. 덩굴이 되어 허공을 휘감는다. 휘감아 흐르는 것을 바라보며 아일라는 짧게 숨을 삼켰다.
“···후우.”
삼켰던 숨을 뱉으며 아일라는 각오를 다진다.
가늘게 뜬 금빛의 눈동자에는 백금색의 빛고리가 회전하고 있다. 별이 자신을 주목함을 느끼며 아일라는 팔을 들어 올린다. 손가락을 세운다.
바라는 것은 통제.
기원하는 것은 휘어잡을 권한.
쭉 뻗은 손가락은 지휘봉이요, 팔을 뻗은 자신은 지휘자이리라. 아일라가 손가락을 움직여 연주의 개시(??)를 알린다.
사락.
질서 없는 빛무리에 규칙이 생겨난다. 미약하지만 확실하게나마 일정한 방향성을 가진다. 그리고, 와쳐(Watcher)는 그 방향을 놓치지 않는다.
“지금.”
아일라가 말한다.
레스티가 움직인다.
끼긱, 끼기긱.
허공에 회로가 떠오른다. 회로의 길과 길을 따라 별빛이 흐르기 시작한다. 느리지만 확실하게, 그리고 명확한 방향을 띈 채로. 완성된 회로를 앞에 두고 레스티는 주문 언어를 입에 담았다.
“소환(Summon).”
빛이 범람한다.
휘몰아치는 빛무리 속에서 연주가 시작된다.
2.
모든 싸움은 한순간에 결판이 난다.
그 한순간을 위해, 싸움은 몹시도 번거로운 과정을 거치게 된다. 빈틈을 만들고, 빈틈을 노리고, 유도하고 속이고, 달려들고 물러서기를 반복한다. 그것은 마법사들의 싸움 또한 다를 바 없다.
촤아아악!
라니엘이 흙먼지를 끌며 달렸다. 한계까지 강화된 육체는 잔상마저 남기며 달린다. 주문이 휩쓸고 지나간 곳에 라니엘은 없다. 그녀가 지나간 곳에는 잿가루만이 남을 뿐이다.
회피. 회피에서 이어지는 반격.
피어오른 흙먼지가 한순간에 걷힌다. 시야의 사각에서 튀어나온 건 주문을 움켜쥔 주먹이다. 흙먼지 사이로 섬광이 번뜩였다.
분쇄(Smash).
지면이 뒤흔들린다. 무형의 충격파가 일대를 집어삼킨다. 그늘은 본능적으로 그릇을 보호하기 위해 움직인다. 구정물이 켈르할름을 감싸나, 밀려나는 것마저 막을 수는 없다.
쩌억!
잿빛 마나를 머금은 충격파가 켈르할름을 후려친다. 거센 풍압에 떠밀린 구정물이 사방으로 튀어 오른다. 그러나, 그 또한 잠시다. 튀었던 구정물은 다시 켈르할름에게로 돌아온다.
‘주문의 위력이 약하다.’
라니엘은 본능적으로 그것을 느낀다.
그늘을 치우기 위해선 보다 위력적인 주문이 요구된다. 자신이 쓸 수 있는 가장 위력적인 주문. 그에 대한 답은 멀리서 찾을 필요가 없다.
촤악!
라니엘이 바닥 위를 미끄러진다. 그녀의 손에는 어느새 작은 불씨가 쥐어져 있다.
“재는 재로(Ashes to Ashes).”
틱, 티디딕.
불씨가 튀어 오른다.
사방에 흩날리는 잿가루들이 불씨와 반응한다. 일순, 섬광이 일대를 후려친다. 몰아치는 열기와 함께 구정물이 증발한다. 그렇게 틈이 만들어진다.
턱.
라니엘은 켈르할름에게 돌진한다.
코앞까지 간격을 줄인 그녀가 주먹을 내지른다. 켈르할름의 복부에 주먹이 틀어박히나, 구정물에 막히고 만다. 물리적인 충격은 상쇄된다.
하지만, 주문은 남는다.
주문 강화(SpellEnhance).
이중 주문(DoubleSpell).
분쇄(Smash).
한 번의 섬광이 구정물을 밀어낸다. 그렇게 드러난 켈르할름의 복부에, 구정물이 다시 차오르기 직전 한 번의 주문이 더 틀어박힌다.
쿠웅!
켈르할름의 발이 땅에서 들린다.
그 멱살을 라니엘이 붙잡으려는 순간, 라니엘의 몸이 무언가에 붙잡힌 듯 공중으로 붕 떴다.
“···컥!”
무언가가 목을 조이고 있다. 숨이 막혀옴을 느끼며, 라니엘은 눈을 가늘게 뜬다. 자신의 목덜미를 움켜쥔 무언가가 있었다.
‘···손?’
검은 손아귀.
그것이 자신의 목을 움켜쥐고 있다. 손아귀에서 이어진 팔은 켈르할름의 몸을 두른 구정물과 연결돼 있다.
후웅!
팔이 라니엘을 내던져 바닥에 처박으려 한다. 라니엘은 이를 악물고 검은 팔을 잿빛 마나를 두른 양손으로 붙잡았다. 몸을 비틀어 팔을 끊어냈다.
쿵!
낙하의 기세를 완전히 줄이지 못한 채, 라니엘은 몇 번을 땅을 구르고 나서 겨우 일어섰다.
“···큽, 퉷.”
그녀는 검게 물든 자신의 목덜미를 문지르며 피를 뱉었다. 잿빛 마나를 둘렀기에 망정이지, 자칫했다간 목이 바스러져 죽을 뻔했다.
“···지랄 같네.”
라니엘은 그리 중얼거리며 앞을 본다.
기껏 줄여놨던 거리가 다시 벌어졌다. 그리고, 켈르할름의 몸을 휘감은 그늘은··· 이전과는 다른 형태를 띠고 있다.
‘아까까지는 형체가 없는 안개였다면.’
지금은 명확한 형태를 가지고 있다.
‘검은 손아귀.’
무언가를 붙잡기 위한 형태. 마치 갈고리와도 같이 구부러진 손가락은 무언가를 잡아 끌어내리기 위한 형상 같기도 하다.
“···마왕 때보단 낫네.”
라니엘은 피식, 웃음을 흘렸다.
지금 켈르할름의 몸에서 솟아오르는 손아귀는 많이 쳐줘 봐야 수십에 불과하나··· 라니엘이 기억하는 마왕(?王)은 고작 저 정도가 아니었다.
‘수천, 수만 개의 손아귀.’
일대를 가득 메운 손아귀는 몰아치는 파도와도 같았다. 범람하는 그늘마저 묶어본 경험이 있는 라니엘로서 이 정도는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범위 내였다.
“후우···.”
그녀가 짧게 숨을 뱉으며 자세를 다잡는 가운데, 켈르할름의 몸이 크게 떨렸다. 이윽고, 수십의 손아귀가 라니엘을 향해 쏟아졌다.
탁탁.
라니엘이 발끝으로 땅을 두어 번 건드린다. 그리곤 피에 젖은 앞머리를 쓸어 넘겼다. 그렇게 드러난 푸른 눈동자가 어둠 속에서 번들거린다.
뿌득.
라니엘의 발목이 요란스러운 소리를 낸다.
자세를 낮춘 채, 그녀가 다가오는 손아귀를 똑바로 바라본다. 덮쳐드는 그늘의 앞에 라니엘이 선택한 건 회피가 아니었다.
쩌억!
정면으로 달려든다. 그녀가 박찬 땅이 움푹 파이고 흙먼지가 솟구쳐 오른다. 라니엘은 사슬을 향해 정면으로 뛰어들었다.
한걸음, 다시 한걸음.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가속에 가속을 더한다. 잿가루를 흩뿌리며 그녀가 질주하기 시작한다. 손아귀가 그녀를 움켜쥐고자 달려드나, 느리다. 너무나도.
콰직!
그늘의 손아귀를 후려친다. 찌그러지는 손아귀를 짓밟으며 나아간다. 주먹을 휘둘러서, 발로 짓밟아서 그녀는 자신이 달릴 길을 만들어낸다.
손아귀들이 주춤한다.
붙잡지 못함을 직감한 듯, 손아귀가 한군데로 모여들기 시작한다. 붙잡기 위해서가 아닌 막아서기 위한 움직임을 보인다.
재구축(Rebuild).
켈르할름의 주문이 지면을 후려친다.
땅이 융기되고, 평야의 지형이 협곡처럼 변해간다. 솟아오르고 날카롭게 변하는 땅바닥을 박차고 라니엘이 뛰어올랐다.
발 디딜 곳을잃은 전사들은 땅을 다시 평평하게 만들고자 하리라. 도약할 곳을 찾아 융기한 지면을 베어낼지도 모른다.
하지만, 라니엘은 마법사다.
그녀는 발 디딜 곳을 굳이 ‘땅’으로 한정할 필요가 없었다. 그녀가 허공에서 팔을 휘두른다. 찰나의 순간 완성된 주문이 빛을 발한다.
사슬(Chain).
구속(Restriction).
챠라라락! 사출된 수십의 사슬이 지면에 융기한 땅과 땅 위를 묶는다. 마치 거미줄처럼 일대에 쳐진 사슬 위로 라니엘이 착지한다.
출렁.
사슬이 출렁이고 라니엘이 다시금 도약한다. 도약을 거듭하면 거듭할수록 그 움직임은 빨라지고 있다. 더 이상 켈르할름의 주문이 라니엘의 움직임을 따라가지 못한다.
‘남은 것은.’
마지막 사슬을 밟고 뛰어오르며 라니엘은 땅 아래를 내려다본다. 그늘에 휩싸인 켈르할름과 라니엘이 시선을 마주한다. 광인을 삼킨 그늘이 일순간 크게 출렁거렸다.
쩌어억.
마치, 짐승이 다가오는 먹이를 향해 아가리를 벌리는듯한 모습이다. 검은 구정물이 라니엘을 향해 입을 벌렸다. 올 테면 와보라는 듯이.
“···하.”
라니엘은 비웃음을 흘린다.
공중에 뜬 그녀가 몸을 빙글, 돌린다. 제 가슴팍에 손바닥을 올린다. 과열하는 회로, 회로에서 새어 나오는 잿빛의 마나. 그것에 손을 올린 채 라니엘은 짧게 숨을 가다듬었다.
‘처음, 이것을 사용했던 날.’
몇 번이고 정신을 잃어야만 했다.
마왕에게 당한 저주를 억누르기 위해 개념을 만들고, 그것을 마나에 담는 데는 성공했다. 하지만, 그렇게 완성된 잿빛 마나는 통상의 마나와는 완전히 다른 성질을 가지고 있었다.
저주를 억누르고, 그늘을 몰아낼 뿐.
일반적인 마나와는 그 성질이 다르니 활용법조차도 다르다. 회로에 억지로 끼워 넣어도 주문이 불발하기가 일쑤였다. 그 가성비도 나빠, 한번 쓰고 나면 며칠을 앓아눕곤 했다.
그럼에도, 연구해야 했기에.
이것을 다룰 방법을 찾아야 했기에.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쳤다.’
라니엘은 연구를 멈추지 않았다.
그 과정이 있기에 지금이 있다. 지금의 라니엘은 잿빛 마나로 주문을 쓸 수 있다. 잿빛 마나를 버틸 수 있는 시간도 늘어나고 있다.
그리고.
“재는 재로(Ashes to Ashes).”
잿빛 마나의 성질을 살린 주문 또한,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라니엘은 그것을 사용할 준비를 마친다.
화아아앗!
흩뿌려둔 재가 한점으로 모여든다.
마나의 잔재가 한군데 모였다. 흩날리는 잿가루를 향해 라니아는 하나의 주문을 더 새긴다.
“저주 또한 재로(Curse to Ashes).”
불길의 색이 잿빛으로 변질한다.
잿빛 마나의 성질을 그대로 빨아들인 화염이 거세게 날뛴다. 그것은 오직 저주만을 태우는 불길이다.
그것을 손에 움켜쥔 채.
눈은 부릅뜬 채.
노려야 할 것을 바라본 채.
“이 꽉 깨물어라, 켈르할름.”
화염을 끌며 라니아는 추락한다.
“좀 뜨거울 테니.”
3.
길었던 어둠도 끝이 다가온다.
아플리아에 어둠을 끌고 온 중심, 제단이 놓여있을 곳은 몇 번이고 뒤흔들린다. 그곳을 중심으로 몇 번의 진동이 울려 퍼진다.
어둠이 회오리치는 결계의 속. 제단이 놓인 그곳의 상황도 막바지로 치닫고 있다.
카각, 카가가각!
별빛을 머금은 채 질주한 소환수들이 제단을 부수기 시작한다. 그들의 이빨은 성창(??)이요, 그들이 할퀴는 손톱은 성검(??)이리라.
별의 무기에 비하자면 턱없이 약하나, 수십 수백이 모이면 그것 또한 하나의 무기가 되는 법이다.
쿠구구구구궁!
별빛을 머금은 소환수들은 기어코 제단을 무너트린다. 제단이 박살 나고, 땅을 울리는 진동과 함께 검은 결계가 걷히기 시작한다.
그러는 한편, 그 누구의 시선도 닿지 않는 무대의 뒤편에서도 결판의 순간은 다가온다.
화륵!
화염을 이끌고, 한줄기의 불이 되어 어둠을 향해 뛰어드는 인간이 있다. 인간이 피워올린 불길이 그늘을 불사른다. 그것은 마치 어둠을 밝히는 등불과도 같다. 불길이 어둠을 몰아내기 시작한다.
화아아악!
그늘이 만들어낸 어둠을 모조리 불사지르고, 그 속에 있는 광인에게 인간은 도달한다. 광인의 머리를 붙잡고 그 속에 담긴 그늘을 모조리 불사지른다. 잿빛 화염이 요란스레 날뛰고, 광인을 좀먹는 그늘이 타오르기 시작한다.
재가 흩날린다.
신과 비견되는 존재가 불타 사라진다.
바스러지는 그늘 속에서 광인이 될 수밖에 없었던 인간이 모습을 드러낸다.
그리고 인간은 인간과 마주한다.
그 누구의 목숨도 가벼이 여기지 않은 인간은, 타인을 위해 희생하려 했던 인간을 구하기 위해 손을 뻗는다. 그 손에 쥐어진 별의 사슬은 성검(??)과도 같다. 누군가를 구하기 위한 도구라는 의미에서 그 본질은 크게 다르지 않다.
사슬이 광인을 옭아맨다.
그를 인간으로 되돌린다.
빛이 범람하고, 그곳에서 새로운 계약은 체결된다. 어둠을 몰아내는 별빛이 찬란히 빛난다. 그렇게 길었던 싸움에도 마침표가 찍힌다.
【계약은 맺어졌다.】
그 누구도 보고 있지 않다고 하더라도.
무대의 뒤편에 불과하더라도.
그곳을 기꺼이 자신의 무대로 받아들였던 두 인간은 각자의 역할에 최선을 다했다. 그렇기에 그들이 마주한 건 최선이라 불릴만한 결말이다.
최악이 아니다.
어쩔 수 없이 결정한 차악이 아니다.
최선을 다했기에 마주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수고했다.”
그리고, 잿빛 마법사 라니엘은 웃는다.
“켈르할름.”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인간에게 찬사를 보내며.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