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t the Hero Party RAW novel - Chapter 197
〈 197화 〉 막이 내린 다음(3)
* * *
제 1 왕자, 이자크.
내가 그 이름을 처음으로 들은 것은 제 1 왕녀, 르뤼엘을 통해서였다. 왕녀는 내게 말했다. 자신의 오라버니는 편집증적 환자이며, 지랄 같기가 이를 데가 없는 인물이라고.
「내 오라비를 한 단어로 표현하라 한다면, 본녀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정신병자’라는 단어를 선택할 것이다.」
그녀가 말하기를, 권력에 미친 정신병자.
권력을 위해 제 혈육을 죽이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 인물. 내가 르뤼엘 왕녀에게 들은 제 1 왕자는 그런 인물이었다.
‘달리 말하자면, 그게 전부지.’
생각해보면 그랬다.
내가 제 1 왕자에 대해 아는 거라곤 르뤼엘 왕녀의 입을 통해 들은 이야기밖에 없었다. 내가 왕가에 아무리 무관심하다곤 하나, 이건 조금 이상한 일이었다.
“제 1 왕자면, 왕위 계승권자 아닌가?”
기사들의 서임식.
전장에서의 연설.
혹은, 용사의 공을 치하하는 자리.
왕위 계승자라면, 그런 대외적인 장소에서 한 번이라도 봤을 법 한데··· 나는 아직까지 제 1 왕자를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뭔가, 이상한데.’
지금까진 별생각이 없었지만, 한번 생겨난 의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결정적인 건 바로 내 손에 들린 이 편지였다.
켈르할름에게서 받은 편지.
제 1 왕자가 보내왔다는 편지.
그곳에는 희미한 마기(??)가 느껴졌다. 정말 미약하지만, 마기의 잔향이 남아있는 것이다. 물론, 정말 극소량이기에 스케발과 맞닥뜨린 과정에서 남은 잔향이라 생각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이상하다.
무언가 놓치고 있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나는 눈살을 찌푸렸다. 어지간하면 왕가의 권력 투쟁에 발을 들일 생각은 없었다. 내가 끼어들면 어떠한 형태로든 일이 복잡해질 테니까.
‘그런데···.’
이러면 이야기가 좀 달라진다.
일련의 사건에 제 1 왕자가 개입돼 있으며, 그가 마(?)와 연관이 있다는 의심이 든 이상··· 이건 그냥 넘어갈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인류의 중심.
인류를 다스리는, 왕궁의 수뇌부.
그곳에 마(?)가 끼어있다면, 그건 반드시 뿌리째 뽑아내야 한다. 내가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엎어버릴까?”
“엎기는 뭘 엎습니까? 설마 왕궁이요? 제가 진짜 뒷목 잡고 쓰러지는 꼴 보고 싶으신 겁니까, 선배님?”
내 중얼거림에 기겁하며 답하는 목소리가 있었다. 나는 고개를 돌려 목소리가 들려온 곳을 보았다.
“안 그래도 처리해야 할 일이 잔뜩인데, 여기서 사건 하나만 더 터지면 저 진짜 과로사할지도 모릅니다. 정말로요.”
교무실의 한편에 놓인 소파.
내가 애용하는 소파에 걸터앉은 채 눈을 부릅뜨고 있는 칼트였다. 그 시선이 어찌나 매서운지 나는 시선을 아래로 깔았다.
‘이번 사건에서 빚진 게 좀 많기도 하고···.’
슬쩍 고개를 들어, 나는 칼트의 얼굴을 보았다. 보다 정확하겐 한쪽 눈을 가린 안대를.
“···몸은 좀 괜찮냐?”
“근육통이 세게 오긴 했는데, 생각보다 괜찮은 것 같습니다. 좀 이상한 일이긴 합니다.”
“이상해?”
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가?”
“분명 이걸 주사했단 말입니다?”
칼트가 품에서 시험관 하나를 꺼냈다.
붉은 액체가 찰랑이는 시험관은 척 보기에도 정상적인 약물은 아닌 듯 싶었다.
“초인의 육체를 강화하기 위해 개발 중인 혈청입니다. 부작용 테스트도 아직인 약물이라··· 솔직히 쓰면서도 각오를 좀 했습니다.”
팔다리 하나쯤은 못쓰게 될 거라고요.
그렇게 중얼거리며 칼트가 시험관을 흔들었다.
“그런데, 멀쩡합니다.”
“···멀쩡해?”
“예. 근육통이 온 것 말곤 정말 멀쩡합니다.”
“약물이 제대로 주사 안된 거 아냐?”
“아닙니다. 약효는 제대로 받았습니다. 실제로 초인에 가까운 움직임이 나오기도 했고···.”
쉭.
칼트가 마치 칼을 휘두르는 것처럼 팔을 휘두르며 말했다.
“마지막 일격을 먹일 때는 정말 초인이라도 된 것 같지 뭡니까.”
“···그래?”
나는 눈을 가늘게 떴다.
시야에 칼트를 담으며 내가 손을 들어 올렸다.
“야, 칼트.”
“예?”
“한번 피해 볼래?”
“예? 뭘 말씀··· 억!”
딱, 하고 내가 손가락을 튕겼다.
일순간 완성된 주문이 빛을 발한다. 위력을 한참 낮춰 따끔한 수준의 주문이었지만··· 그 속도만큼은 평소와 같은 주문이다.
주문이 향하는 곳은 칼트의 이마였다.
다만, 주문이 명중한 것은 교무실의 벽이었다.
“뭡, 뭡니까?”
고개를 옆으로 젖힌 칼트는 당황한 듯 눈을 크게 뜨고 나를 보고 있었지만··· 당황스러운 건 나도 매한가지였다.
“···이걸 피하네?”
“아니,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저 사람이 진짜 미쳐버린 건가, 그런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칼트를 가리키며 내가 말했다.
“너 방금 그거 어떻게 한 건데?”
“예? 뭘···.”
“주문 피한 거 말야. 동작도, 마나의 흐름도 읽히지 않았을 텐데 그거 어떻게 피했냐고.”
그제서야 칼트가 고개를 돌려 등 뒤를 바라봤다. 교무실의 벽에 살짝 남은 스크레치. 그것은, 칼트가 피한 주문의 흔적이었다.
“어···.”
칼트가 눈을 깜빡였다
“뭔가 찌릿, 하고 등줄기를 타고 올라와서···?”
“야, 그거···.”
내가 말했다.
“초감각 아니냐?”
한없이 예지에 가까운 직감.
검의 초인들에게 있어서는 상징과도 같은 감각.
그리고, 칼트가 지금껏 갖지 못했던 감각.
“···이거 진짭니까?”
“···한번 더 해볼까?”
“부, 부탁드립니다.”
칼트가 몸을 뻣뻣하게 굳힌 채 날 바라봤다.
와보라는 듯 자세를 살짝 낮춘 칼트를 향해, 나는 천천히 중지와 엄지를 맞댔다. 꿀꺽, 하고 마른침이 목울대를 타고 넘어갔다. 왠지 나까지 긴장되는 느낌이었다.
“가, 간다?”
“오, 오십시요.”
딱, 하고 내가 손가락을 튕겼다.
이번에는 조금 더 힘을 실어서.
강타(Smite).
한줄기의 섬선이 칼트의 이마를 노리고 쏘아진다. 이번에도 피한다면, 칼트는 분명한 초인의 영역에 닿은 것이리라.
딱!
그리고, 강타가 명중했다.
몹시나 경쾌한 소리를 내면서.
“억!”
벽이 아닌 칼트의 이마에.
확, 하고 칼트의 고개가 젖혀졌다.
2.
“초인의 길은 멀고도 험하군요···.”
“뭔갈 버리거나, 망가지지 않으면 닿을 수 없는 영역이라고들 하잖냐.”
붉어진 이마를 문지르는 칼트를 보며, 나는 쓰게 웃었다.
“그래도 거의 다 온 것 같긴 하네.”
“그런 것 같긴 합니다. 열 발 중에 대여섯 발은 피했으니까요.”
사실이었다.
한 번의 성공과 실패 이후로도 나는 강타를 열댓 발 정도 더 날렸고, 칼트는 그중 대여섯 번을 피하는 데 성공했다.
“완전하진 않지만, 초인을 향해 한 걸음 더 다가선 듯한 느낌이 드는군요.”
“솔직히, 네가 초인이 돼도 이상하지 않을 경험을 하긴 했지.”
“그렇습니까?”
“야, 생각을 해봐라.”
내가 손가락을 쫙 펼쳤다.
“전장에서 너 오래 있었잖아. 몇 년 동안 몇 번이고 사선을 넘나들었으니 경험은 충족됐지.”
엄지.
“거기에 검의 초인, 쿤텔 아저씨에게 검술도 배우긴 했으니··· 기술도 어느 정도 완성됐고.”
검지.
“그리고··· 죽음의 칼과, 해골바가지를 만나고도 살아 돌아왔지. 나는 이게 제일 신기해. 도대체 어떻게 버틴 거냐?”
중지와 약지를 동시에 접었다.
그렇게 남은 남은 하나의 손가락을 칼트의 앞에 흔들며, 내가 말했다.
“남은 건 망가지거나, 무언가를 버리는 것 뿐이지.”
“···그게 초인이 되는 조건이긴 하죠.”
“뭐, 옛날 갈라트릭의 검의 초인들은 다른 방식으로 초인의 영역에 올랐다던데··· 그거까진 나는 모르겠고.”
내가 미소 지었다.
“축하한다, 칼트.”
초인의 영역에 닿는 것.
그것은 칼트가 오래전부터 꿈꿔왔던 것이었다. 꿈을 향해 한 걸음 다가선 옛 부하의 모습을 보는 것은, 제법 기분 좋은 일이었다.
“그 눈동자.”
내가 칼트의 눈을 가리켰다.
스케발과의 전투에서 잃어버린 왼쪽 눈동자였다.
“어떻게든 고쳐줄 테니까, 그건 걱정하지 말아라.”
칼트가 제 안대를 매만지며 쓰게 웃었다.
“굳이 안 그러셔도 됩니다.”
“내가 걸려서 그래. 내가.”
내가 손을 휘휘 내저으며 말했다.
“그래서, 이야기가 좀 샜는데.”
테이블에 올려둔 편지를 들어 올렸다.
“제 1 왕자, 도대체 뭐 하는 놈이냐?”
“저도 잘 모릅니다.”
“···뭐?”
내가 눈을 깜빡였다.
“너 로얄 가드잖아.”
“그렇죠. 하운드란 이름이 익숙하긴 하지만.”
“왕실 최측근이 왕자를 잘 모른다는 게 말이 돼?”
“그게 말입니다.”
칼트가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할 말이 많은데, 어디서부터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제 1 왕자는, 굉장히 독특한 인물입니다. 몇 번 마주하고 관찰한 결과 내린 결론이긴 한데··· 이걸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
아, 하고 칼트가 탄식을 뱉었다.
“한 명이 아닌 것 같은 느낌입니다.”
“···한 명이 아니라고?”
“예, 다릅니다. 그냥··· 좀 이질적입니다.”
추적자(Tracker).
누군가의 행동을 읽고, 파악하며 대상을 ‘추적’ 하는 클래스. 그 클래스에 독보적인 재능을 자랑하는 칼트 답게 칼트의 인간관찰은 놀랍도록 예리했다.
그런 칼트가 말한다.
제 1 왕자는, 이질적이라고. 잘 모르겠다고.
“권력에 미친 것 같은 일면이 있습니다. 왕궁의 모든 곳에 거미줄을 치고, 자신에게 반하는 이들을 숙청하는 폭군의 면모가 존재합니다.”
그러나, 하고 칼트가 말을 끊었다.
“그러는 한편, 숨어서 지켜보면 다릅니다. 유령과도 같습니다. 제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려 합니다. 무대의 뒤편에 숨어서 지켜보는 듯한··· 느낌입니다.”
서로 다른 두 개의 모습.
“그 두 가지 모습의 분간이 명확합니다. 꼭, 한 사람이 아닌 것처럼요.”
그래서, 뭐가 문제이십니까?
그렇게 말하는 칼트에게 내가 자초지종을 설명하려는 순간이었다. 품속에서 무언가 빛났다. 그건 르뤼엘 왕녀와 이어진 마도구였다.
“···잠깐만.”
내가 마도구를 꺼내 들었다.
왕가의 통신망이 다시 복구됐는지, 환히 빛나는 편지지에는 글자가 새겨지고 있었다.
「교수, 왕가의 통신망이 복구됐다.」
그리고,마도구가 울리는 것은 나만이 아니었다.
삐이이이익.
칼트의 코트 자락에서 요란스러운 소리가 울렸다. 칼트가 인상을 쓴 채 코트에서 마도구를 꺼냈다.
“···일단, 확인하고 이야기하자.”
“그게 좋겠군요.”
칼트와 나는 각자에게 전해지는 소식에 집중했다. 나는 편지지 위에 새겨지는 글자를 보았다.
「그대에게는 전해야 할 말이 많지만, 우선 이 사실을 먼저 전해야 할 것 같군.」
잠깐의 머뭇거림.
이후 새겨지는 글자에 나는 눈을 가늘게 떴다.
「내 오라비가 왕실에서 모습을 감췄다.」
「하룻밤 사이에 사라졌단 뜻이다.」
그리고.
「오라비가 머물던 적색궁에는···.」
이어진 글자를 본 순간, 나는 숨을 헛삼켰다. 편지지에서 시선을 때고 내가 칼트를 보았다. 칼트 또한, 나와 같은 정보를 전해들은듯··· 그 시선이 흔들리고 있었다.
“···지금, 가겠다.”
칼트는 부하에게 통신을 날렸으며, 나는 르뤼엘 왕녀의 편지에 답장을 적었다. 그리고, 우리 둘은 동시에 자리에서 일어섰다.
막이 내린 무대.
그 뒤에서 무언가 꿈틀 거리고 있었다.
3.
제 1 왕녀, 르뤼엘.
그녀는 홀로 왕궁의 복도를 거닐고 있었다. 생각이 좀처럼 정리가 되질 않는 탓이었다. 머릿속이 복잡할 때마다 그녀는 홀로 왕궁을 거닐곤 했다.
‘오라비가 실종됐다.’
무려 왕위 후계자가 실종된 것이다.
각 부서가 발칵 뒤집혔지만, 제 1 왕자의 거처가 있는 적색궁만큼은 언제나와 다를 바 없다. 그 사실을 르뤼엘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주인을 잃은 이들.
주인의 소재를 파악하지 못한 하인들.
그 누구보다 혼란스러워해야 할 그들은, 언제나처럼 적색궁을 가꾸고 있을 뿐이었다. 마치, 영혼을 잃은 인형처럼. 언제나와 같지만, 그렇기에 지나치리만치 기괴한 풍경이었다.
‘놓치고 있다.’
그런 확신이 든다.
‘도대체, 무엇을?’
르뤼엘은 눈살을 찌푸린 채 왕실의 복도를 걷는다. 그렇게 생각에 잠긴 채 얼마나 걸었을까, 르뤼엘은 주변의 공기가 바뀌었음을 느낀다.
“······.”
르뤼엘이 말없이 고개를 들어 올렸다.
분명 햇살이 내리쬐는 낮일 텐데, 주변은 밤이라도 찾아온 듯 어두컴컴하다. 자연스러운 어둠은 아니었다. 햇빛이 사물을 비추어 만들어낸 그늘과도 같은 어둠이다.
턱.
그리고, 어둠 속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려온다.
르뤼엘은 소리가 들려오는 곳을 바라본다. 그림자를 끌고 다가오는 이가 있다. 그가 르뤼엘을 향해 과장스레 팔을 활짝 벌렸다.
“오, 르뤼엘.”
삐쩍마른 체구.
색이 빠져 회색에 가까운 백금발.
흑과 백으로만 이루어진 복장.
그림자 속에서 이쪽을 바라보는 인물의 이름을, 르뤼엘은 제 입에 담았다.
“···이자크 오라버니.”
제 1 왕자, 이자크.
그를 바라보는 르뤼엘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실종됐다고 들었습니다만.”
“글쎄.”
이자크가 어깨를 으쓱였다.
“돌아갈 곳으로 돌아갈 뿐이지. 내 자리는 이곳이 아니었으니 말야.”
“···확실히, 오라버니가 왕위에 어울리는 인물이 아니긴 합니다. 본인 스스로가 알고 계시니 다행이군요. 제가 짖어댄 보람이 있긴 한가 봅니다.”
“하하, 신랄하기도 하구나. 르뤼엘.”
메마른 웃음소리가 복도에 메아리친다.
이자크의 눈매가 반달로 휜다. 비웃음을 닮은 웃음이 르뤼엘의 귓가에 맴돌았다.
“겁에 질려 도망치던 어린 시절이 아직도 눈앞에 어른거리는데 말야.”
가벼운 위협. 르뤼엘은 파르르 떨리는 손끝을 소매 사이로 숨기며 말을 마저 이었다.
“···뭘 하실 생각입니까?”
“더 가치 있는 일을.”
“왕좌에 앉기 위해 해왔던 지난 십여 년보다, 더욱 가치가 있는 일이 달리 있습니까?”
“오, 르뤼엘. 원한다면 언제든 가져갈 수 있는 것에 가치가 있을 듯싶으냐?”
움찔, 하고 르뤼엘이 눈썹을 찌푸렸다.
“···지금 ‘무가치 하다’ 라고 말씀하신 겁니까?”
“달리 뜻이 있을 리가.”
“그럼, 오라버니께선 무가치한 것을 위해···.”
동생들을, 혈육을 무참히 살해하신 겁니까.
르뤼엘이 그렇게 말하려던 찰나, 이자크가 그녀의 말허리를 끊었다. 뒷말을 자신의 말로 메꾸었다.
“무가치한 것을 위한 희생은 아니야.”
그가 미소 지었다.
“지루한 삶에 자극이 필요했거든. 살고자 발버둥 치는 인간은 언제나 아름답지. 백 년 전에도, 천 년 전에도 그러했듯이.”
그림자가 기우뚱, 하고 기울었다.
“오랜 삶을 살다 보면 자극이 고픈 법이거든.”
르뤼엘은 말없이 이자크를 바라보았다.
분명 마주 바라보고 있는 것은 르뤼엘이 증오해 왔던 제 오라비가 맞다. 하지만, 그녀가 기억하는 이자크는 ‘저런 식’으로 웃지 않는다. 저런 식의 말투를 즐기지도 않았다.
다르다.
무언가, 다르다.
“당신, 내 오라버니가 아니로군.”
르뤼엘은입을 연다.
“당신은 누구지?”
그 물음에 이자크의 입가가 비틀린다. 덩달아 주변의 그림자도 비틀린다. 비틀리는 그림자와 함께 이자크가 르뤼엘에게 다가온다.
한걸음, 다시 한걸음.
인간의 탈을 뒤집어쓴 무언가가 자신에게 다가온다. 그러나, 르뤼엘은 움직일 수 없다. 숨을 쉬는 것 조차 잊은 채 르뤼엘은 다가오는 그림자를 보았다.
턱.
코앞까지 다가온 그림자가 멈춰섰다.
그림자는 천천히 고개를 내린다.
“그 질문은 네 것이 아니야.”
그림자가 르뤼엘의 귓가에 속삭인다.
“질문을 던지는 건, 스텔라(Stella)의 몫이다.”
그 문장을 남긴 채 발걸음 소리는 멀어진다. 걸음 소리가 아예 들리지 않을 때가 되어서야, 르뤼엘은 숨을 토해냈다.
“흣, 흐욱···.”
숨을 몰아쉬며, 목덜미를 타고 흘러내린 식은땀을 닦으며 르뤼엘은 뒤를 돌아보았다.
“······.”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마치, 처음부터 그랬다는 듯이.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