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t the Hero Party RAW novel - Chapter 196
〈 196화 〉 막이 내린 다음(2)
* * *
아플리아에서 조금 떨어진 숲속.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곳이라 그런 걸까. 바닥에 내리깔린 낙엽에 발자국은 하나밖에 찍혀있지 않았다. 가지런히 찍힌 발자국을 따라 걸어, 나는 낙엽이 쌓여있는 나무 그루터기의 앞에 멈추어 섰다.
바스락.
그루터기에 쌓인 낙엽을 털어내곤, 나는 그루터기에 걸터앉았다. 적당히 쌀쌀한 바람을 맞으며 나는 짧게 숨을 뱉었다. 그렇게 내뱉은 숨을 다시 마시기 전에, 나는 고개를 들어 앞을 보았다.
광인, 켈르할름.
이곳에서 만나기로 약속한 인물.
나와 나눠야 할 이야기가 조금 많은 사람.
“그래서.”
나의 맞은편에 앉은 그를 바라보며 내가 입을 열었다. 입가에는 약간의 쓴웃음이 맺혔다.
“눈치챈 모양이네.”
“못 채는 게 이상한 이야기지.”
켈르할름이 손끝으로 나를 가리켰다.
“그늘을 상대할 줄 알면서, 내게 제약을 걸 수 있는 마법사가··· 잿빛 마법사 말고 있을 리가 없지 않나.”
그건 확신을 가진 목소리였고, 나도 딱히 부정할 생각이 없었다. 결과적으로는 나의 비밀을 알게 된 사람이 하나 더 늘게 됐지만···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정말로.
‘그늘을 상대해야 했는데, 정체를 숨길 여유가 있을 리가 없지.’
전력을 다해야 할 상황이었다.
여유를 부리며 상대할만한 적은 아니었으니까. 내가 아쉽다는 듯 짧게 혀를 찼다.
“기왕이면 숨기려 했는데.”
“숨길 생각이 있기는 했나? 놀랍군.”
“···뭐?”
“솔직한 대답을 듣고 싶나, 잿빛 마법사.”
내가 눈을 깜빡였다.
순간, 켈르할름의 시선에 실린 온도가 대번에 낮아진 듯한 느낌이 들었다.
“처음 본 순간부터 얼추 감을 잡았다. 의심이 들더군. 확신하진 않지만 짐작 정돈 했다. 너와 눈을 마주친 지 딱 1분이 지난 시점에서 말이다.”
“어···.”
그 정도였단 말인가.
나름 조심한다고 생각했는데.
“···그 정도야?”
“그 정도다.”
내 물음에 켈르할름이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숨길 생각이 있다면, 그 행동거지부터 조금 조심하는 게 좋지 않겠나? 네가 쓰는 주문의 양식도 고칠 필요가 있어 보이더군.”
“···굳이?”
“여태까지 안 들킨 게 더 신기하군···.”
신기할 것까지야.
“애초에, 말이 안 되는 일이잖아.”
내가 어깨를 으쓱였다.
“육(?)과 영()이 변질되는 건 불가능한 일이야. 일어날 수 없는 일이지. 섭리적으로, 그리고 상식적으로 불가능한 일이 가능하리라 의심을 가지는 사람은··· 한 줌에 불과하니까.”
아는 게 많으면 많을수록 말야. 그리 중얼거리며 내가 툭툭, 내 가슴팍을 손가락으로 두들겼다.
“너나 나처럼, 불가능한걸 ‘가능케’ 하는 존재를 마주한 사람들만이 의심을 가지지.”
그늘이라 불리는 존재.
섭리에 반(反)하는 개념.
“···그늘.”
켈르할름이 그리 중얼거렸다.
입에 담은 것은 두 음절의 단어이나, 그 하나의 단어는 켈르할름에게 무엇보다도 많은 의미를 가지는 단어이리라.
“···이번에는 신세를 많이 졌어.”
나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네 덕분에 아플리아도, 학생들도 전부 무사해. 이건 원래 내가 해야 할 일이었는데 말야.”
“고마워 할 필요 없다.”
켈르할름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백 년 전, 잿더미가 된 내 고국의 앞에 맹세한 거니까. 이건 내가 해야 하는 일이었고, 내가 해야만 하는 일이었다.”
“그 말은···.”
“내 고국도 똑같은 과정을 밟았다.”
그가 팔을 들어 올렸다.
그늘을 품었던 부작용으로 갈라진 피부를 바라보며 켈르할름이 말을 이었다.
“셀레스티아라는 이름을 알고 있나.”
“재능의 총아라 불리던 아르티아 출신의 정령사? 이름은 알고 있지.”
“그 아이가 별의 축복을 받았다는 것도?”
“그것까진 몰랐는데.”
켈르할름이 주먹을 콱, 움켜쥐었다.
“셀레스티아는 와쳐(Watcher)이자 스텔라(Stella)였다.”
“···두 개의 축복을 한 번에 받았다고? 그게 가능은 해?”
“가능하더군. 그 누구보다 찬란한 별빛을 가진 아이였지. 빛나는 아이였어. 모두가 그 아이가 살아갈 찬란한 미래를 기대했지.”
그래서였을까.
“짓밟히더군.”
무미건조한 목소리에 열기가 더해졌다.
“그 아이가 성인이 되던 날, 아르티아를 졸업하고 세상으로 나아가게 된 그날 셀레스티아는 짓밟히고 말았다.”
배교자가 나타났다.
이 아카데미를 덮친 재앙과 같은 방식으로, 셀레스티아는 그늘에 집어삼켜졌다.
거기까지 말한 뒤, 켈르할름이 짧게 숨을 뱉었다.
“그리고,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지.”
후회가 느껴지는 목소리였다.
“별이 그 아이를 포기할 때도, 그늘이 그 아이를 그릇으로 삼을 때도, 결국 견디지 못하고 영혼이 더럽혀진 채 무너질 때까지도···.”
나는 보고만 있었다.
보고만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 중얼거리는 켈르할름의 목소리에 나는 귀 기울였다. 그것은, 한 학자가 광인이 되기까지의 역사였다. 켈르할름은 자신의 삶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늘 후회했다.”
켈르할름이 말했다.
“다른 방법은 없었을까. 그 자리에서, 내 제자를 구할 수 있는 방법은 없었을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었을까.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백 년이 넘는 삶을 광기와 함께 살아온 인간.
“쉽게 답이 나오지 않더군. 그 답을 어렴풋이나마 더듬어보는데 60년. 답의 가능성을 띄게 만드는데, 다시 40년이 걸렸다.”
백 년 동안 답을 찾아 헤맨 마법사.
이제 겨우 27년을 살아온 내게, 그 시간은 쉽사리 짐작이 가는 것이 아니어서, 나는 다만 신음할 뿐이었다.
‘···닮았네.’
켈르할름에게서 나는 내가 잘 알고 있는 다른 누군가를 겹쳐 보았다.
「100년이 흐른 뒤일지.」
「수백 년이 흐른 뒤일지.」
「어쩌면, 수천 년이 흐른 뒤일지도 모르겠군.」
수천 년의 시간마저 인내할 각오로, 영생의 삶을 견뎌온 엘프. 그 시간의 총량은 다를지언정, 내게는 카르디와 켈르할름이 닮은 것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100년이 흐르더군.”
켈르할름이 한숨을 쉬듯 말했다.
“그리고.”
그가 나를 바라보았다.
여전히 무표정하지만, 어째서인지 웃고 있는듯한 얼굴로··· 그가 내게 말했다.
“나의 백 년은 무의미하지 않았던 것 같군.”
잿빛의 눈동자.
“고맙다고 했던가, 잿빛 마법사. 아니다. 네가 내게 고마워 해야 할 일이 아니지.”
그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오히려 내가 감사 인사를 전하고 싶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그가 고개를 숙였다.
“고맙다. 라니엘.”
나의 이름을 부르면서.
2.
고개를 숙이며 켈르할름은 자신의 삶에 대해 반추해본다. 쉬운 삶은 아니었다. 지난한 삶이었다. 기나긴 세월 동안 켈르할름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며 견뎌야만 했다.
이 삶에 의미가 있는가.
늙지 않는 삶에 가치가 있는가.
스스로가 인간을 벗어나고 있음을 켈르할름은 매순간 느껴야만 했다. 배교자가 속삭였던 말은 언제나 악몽이 되어 켈르할름의 곁에 맴돌았다.
「너는 나를 닮았단다, 아이야.」
광기에 젖은 여인.
별을 증오하여, 모든 것을 다만 자신과 같은 곳으로 끌어 내리려 했던 광인(?人).
켈르할름은 배교자에게서 자신의 미래를 엿보았다. 언젠가 저런 모습이 되어버릴 자신의 미래를, 켈르할름은 언제나 두려워했다.
두려워했기에.
그런 미래를 바라지 않았기에.
켈르할름은 끝없이 스스로를 경계해야만 했다. 제약을 걸고 광기를 다스렸다. 배교자와 같이 타인의 목숨을 가볍게 여기지 않고자 노력했다.
‘쉬운 길은 있었다.’
몇 번이고 쉬운 길이 보였다. 광기에 몸을 맡기고, 편해지는 것만이 쉬운 길은 아니었다.
‘타협.’
이 정도면 충분하다는 타협.
대의를 위해, 소수를 희생시킨다는 합리화.
합리화와 타협으로 걷는 길이 몇 번이고 켈르할름의 눈앞에 아른거렸다. 당장 누군가를 희생시킨다면 얻을 수 있는 답은 수십 가지도 넘었다.
그러나, 고르지 않았다.
고를 수 없었다.
‘맹세를 지켜야만 했으므로.’
셀레스티아가 자신에게 바란 건 그런 삶이 아닐 테니까. 맹세를 지키기 위해 초인이 된 켈르할름은, 결코 자신의 맹세를 망각하는 법이 없었다.
그렇게 걸어온 백 년이다.
하나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가 찾아낸 답을 검증하기 위해 걸어온 불로의 삶이다.
의심과 경계 속을 걸어온 삶.
후회를 더듬으며 견뎌온 삶.
광기를 견디며 버텨온 삶.
그 삶에 의미가 있었는가, 그 질문에 켈르할름은 여태까지 답을 하지 못했다. 그러나 오늘 이 자리에서는 당당히 말할 수 있었다.
“의미가 있었다.”
구했으므로.
“나의 백 년은, 의미가 있었다.”
다른 결말이 있음을 두 눈으로 보았으므로.
“그리고.”
켈르할름은 눈앞의 마법사를 본다.
그것은 자신과는 다른 답을 찾아낸 존재다.
“다른 답을 보여줌으로써, 내게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 네게 감사한다.”
자신은 그늘은 ‘상대할 수 없는 것’이라고 단정 지었다. 그렇기에 그것을 묶고 속박하는 방향으로만 답을 찾아왔다. 그러나, 눈앞의 마법사는 아니었다.
「재는 재로(Ashes to Ashes).」
광기에 잠긴 의식 속에서, 흐릿한 시야로 보았던 그 화염을 켈르할름은 똑똑히 기억한다.
「저주 또한 재로(Curse to Ashes).」
그늘을 불사르던 잿빛의 화염.
어둠을 걷어내던 빛줄기.
그것은 켈르할름에게 새로운 길을 제시했다.
“나의 계획은 실패했었다. 그늘을 삼키는 데는 성공했으나, 완전히 가두어두진 못했지. 시간이 지나면 결국 그늘은 내게서 풀려나왔을 것이다.”
완벽한 계획이 아니었다.
본래대로라면, 또다시 켈르할름은 실패를 경험했어야만 했다. 자신의 백 년이 무의미했음에 좌절했어야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리되지 않았다.
“그렇기에, 내 계획은 시간을 버는 것에 그쳤다.”
시간을 끈다.
다른 누군가를 위해서.
“벌어낸 시간의 가치를 정하는 건···.”
“그 시간을 잇는 사람의 몫이지.”
켈르할름의 말에 라니엘이 답한다.
“네가 벌어준 시간은, 칼트가 이어받았고. 칼트가 다시금 벌어낸 시간은 다시 내가 받았지.”
다음으로, 다시 다음으로.
“그 결과가 이거지. 학생들은 전부 무사하고, 이 자리에 나타난 그늘의 편린도 완전히 불타 사라졌고··· 그리고 너마저도 무사하지.”
라니엘이 켈르할름을 가리켰다.
그리곤 장난스레 질문을 던졌다.
“새 목줄은 어떻냐?”
그 말에, 켈르할름은 쓰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글쎄···.”
켈르할름이 제 목덜미를 매만졌다. 그의 귀에는 찰캉, 하는 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아마 눈앞의 이 소녀에게도 똑같은 소리가 들리고 있겠지.
“익숙한 느낌이군.”
“전에 읽어놨던 대로 걸어봤는데, 잘 맞으면 다행이고.”
라니엘이 어깨를 으쓱였다.
결투를 진행하며 훔쳐보았던 제약을 라니엘은 전부 기억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다시 제약을 걺에 있어 큰 어려움은 없었다.
“···달라진 게 하나 있군.”
사슬을 매만지던 켈르할름은, 자신의 심장을 묶고 있는 백금색의 사슬을 의식한다. 본래 그곳에 존재하던 사슬에 새겨진 글자는 「그늘을 삼켜라.」 였지만, 지금은 아니다.
같은 조건, 같은 상황.
그러나 그때 취할 행동 방침은 다른 글자로 새겨져 있다. 악필(??)로 쓰인 글자를 켈르할름은 소리 내 읽어보았다.
“「잿빛 마법사를 불러라」.”
사슬에 새겨진 건 그런 글자였다.
라니엘이 능글맞은 웃음을 흘렸다.
“근본 있는 배틀 메이지(BattleMage)가 도와주러 갈 테니까, 시간만 벌고 있어.”
“앞에 위대한 잿빛 마법사라고 새기지 그랬나?”
“······.”
라니엘이 슬그머니 시선을 돌렸다.
그 얼굴이 묘하게 붉어져 있었다. 황급히 화제를 돌리려는 듯 라니엘이 말을 이었다.
“그래서, 앞으로는 어떻게 할 건데?”
“마나가 차오를 때까진 조금 더 쉬어야겠지. 그리고, 약속했던 수업도 마저 해야 할 테고···.”
“그러고 나선?”
“아마도.”
켈르할름이 말했다.
“다시 전장으로 돌아가겠지.”
“···출력이 떨어진 건 알지? 위력은 옛 주문의 절반도 채 안 나올 텐데.”
“알고 있다.”
그때, 라니엘의 주문은 그늘에 오염된 켈르할름의 마나를 전부 태웠다. 그 과정에서 몇 개의 통로는 완전히 불타 사라지고 말았다.
“잘 쳐줘 봐야 3할 정도 나오지 않겠나 싶더군.”
“그런데도 전장으로 돌아가게?”
“아직은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 많을 테니까.”
약해졌다고 한들, 자신은 여전히 초인이다.
그리고 전장은 아직 초인을 필요로 한다.
“나는 너처럼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방법은 찾지 못했으니, 시간이라도 벌어야 하지 않겠나.”
“···눈치챘구나?”
켈르할름이 고개를 끄덕였다.
“키워둔 학생들을 보니 얼추 감이 잡히더군. 구성이 꽤 괜찮던데. 그 아이들이 다 성장할 때까지, 시간을 끌어주는 역할 정도야··· 이 몸으로도 할 수 있겠지.”
다만, 하고 켈르할름이 말끝을 흐렸다.
“그 아이들이 별을 너무 신뢰하지 않으면 좋겠군.”
“···아하.”
켈르할름의 말에 라니엘이 미소 지었다.
그 웃음의 의미를 켈르할름은 이해하지 못했다.
“···왜 웃는 거지?”
“네가 보면 좋아할 만한 학생이 하나 있거든.”
라니엘이 아플리아 쪽을 바라보며 말했다.
“제 4 왕녀, 아일라.”
“···스텔라(Stella)를 말하는 건가?”
“응. 아플리아에 머무는 동안, 그 왕녀님을 한번 찾아가 봐. 네가 보면 만족스러워 할 거야.”
그리 말하며 라니엘이 툭툭, 무릎을 털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곤 켈르할름의 앞에 바로 섰다.
“이번일은, 정말 수고했어.”
그녀가 켈르할름에게 손을 내밀었다.
“만나서 영광이었다, 켈르할름.”
그리곤 자신의 이름을 말한다.
“난 라니아다. 아마도, 당분간은.”
「난 라니엘이다. 만나서 영광이야, 켈르할름.」
언젠가 나누었던 인사가 떠올라, 켈르할름은 피식 웃음을 흘리며 그 손을 맞잡았다.
3.
“아, 그러고 보니 이걸 말하는 걸 잊었군.”
나는 뒤를 돌아봤다. 숲에서 빠져나오다 말고, 켈르할름이 내게 말을 건넨 탓이었다.
“뭐를?”
“나를 이곳으로 불러온 존재 말이다.”
“···제 1 왕자?”
내가 걸음을 멈췄다.
제 1 왕자, 그건 깔끔하게 해결된 이 사건에서 유일하게 내가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르뤼엘 왕녀에게 편지가 아직 도착하지 않아서, 조만간 찾아가 볼까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나는 켈르할름을 흘겨봤다.
“제 1 왕자가 왜?”
“그자는 무언가 이상하다.”
켈르할름이 제 턱을 매만졌다.
“나는 별의 주기를 지난 백 년 간 연구해왔다. 별빛이 유난히도 강해지는 날, 축복을 내린 자들을 보다 강하게 비추는 날. 그날이 바로 ‘의식’이 거행되는 날임을 유추하는 데까지 성공했지.”
아플리아에 그늘이 찾아올 거라는 사실을 미리 알고, 그가 이곳으로 찾아올 수 있었던 이유. 그 이유를 설명하던 켈르할름의 목소리가 조금 낮아졌다.
“그걸 파악하고, 아플리아로의 방문 의사를 밝히고자 서신을 쓰려던 날이었다.”
그가 로브 속에 손을 넣었다.
꺼내 든 것은 왕가의 문양이 찍힌 편지였다.
“그때 도착한 게 이 서신이다.”
서신에는 별다른 말이 적혀있지 않았다. 아플리아 아카데미라는 한 줄의 지명만이 적혀있을 뿐이었다.
“내가 아플리아를 방문하려는 찰나에, 아플리아로 향하라는 서신이 도착했다. 그 순서가 세간에는 잘못 알려진 듯 싶지만··· 너만큼은 알고 있어야 할 것 같군.”
“···제 1 왕자가 무언갈 알고 있다?”
“우연이라 치기엔 힘든 상황이니까.”
켈르할름이 편지를 접어 내게 건넸다.
“판단은 네게 맡기마.”
나는 받아든 편지를 바라봤다. 편지의 귀퉁이를 따라 그려진 것은 핏빛의 문양이다. 그것을 바라보다 말고, 나는 눈살을 찌푸렸다.
“···야, 켈르할름.”
“왜 부르지.”
“너, 스케발이랑 맞붙을 때 마기에 노출··· 됐지? 가지고 있는 것들 전부말야.”
“아마도 그렇겠지. 그래서 전부 정화하지 않았나. 뭔가 문제가 있나?”
“이거.”
내가 편지를 흔들었다.
“여기서, 그 해골 바가지랑 비슷한 마기(??)가 느껴지는데?”
* * *